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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인(真·善·忍)’을 실천하자 행복이 저절로 찾아오다

[밍후이왕](밍후이 기자 황위성 대만 취재 보도) 레이샤오전(雷曉臻)은 대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예술가로 사업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돌이켜보며 그녀는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역경을 벗어나게 이끌어줬고, 진선인(真·善·忍)을 실천하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감격하며 말했다.

대만에서 레이샤오전은 ‘양모펠트계의 우바오춘(吳寶春: 세계 제빵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녀는 생동감 넘치는 빵 모양 ‘스큐어모피즘’ 양모펠트 제품을 개발해, 단기간에 많은 언론에 보도되고 호평을 받았으며, 2019년 대만문화부의 ‘문창정품상(文創精品獎)’, 대만 ‘소년두가(肖年頭家)’ 신 브랜드를 수상했다. 하지만 이 성공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图1:雷晓臻全家福的生活照。'
레이샤오전의 가족사진

정에 사로잡혀 결혼생활이 궁지에 몰리자 다시 수련하다

시간을 거슬러 20년 전, 18세였던 레이샤오전은 국방부에서 해군 장교로 복무했고 이와 동시에 그녀 가족은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레이샤오전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은 정말로 사람을 제도하시기 위해 오셨어”라는 남동생의 진지한 말이었다. 그녀는 그때 고등학생인 남동생이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파룬궁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놀라워했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그녀는 방학에 부모님 및 남동생과 함께 법공부를 한 외에 스스로는 진지하게 ‘전법륜(轉法輪)’을 읽지 않았다.

“저는 안일한 향락에 욕심을 부렸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공주님과 왕자님 식 사랑을 꿈꾸던 레이샤오전은 애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해 수련을 중단했다. 하지만 밤이 깊어 인적이 없을 때면 ‘내가 마비된 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수련의 길로 되돌아가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중에 그녀는 남편과 결혼했지만 그녀의 공주님 꿈은 산산조각이 났고 ‘3일에 작은 말다툼, 5일에 큰 말다툼’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편은 그녀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잘해주기만 바라고 자신의 방식으로만 생활하려 하며, 타인이 원하는 생활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아주 이기적이야.”

결혼생활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점차 깨달았다. “저는 동경해온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어떻게 해도 실현할 수 없었습니다. 애정이라는 것은 그저 그랬고, 애정에는 원망도 들어있기에 정이 많으면 원망과 불만도 많아지며 마음이 더 괴로워집니다. 알고 보면 그것은 조금 조금씩 사람을 괴롭힙니다.”

결혼생활에서의 좌절로 인해 레이샤오전은 다시 수련하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생각을 확 바꿔놓은 다른 한 가지 계기는 장기적으로 밍후이왕 교류문장을 읽고, 밍후이 라디오 방송을 들은 것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밍후이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성이 제고됐고, 주위 환경도 변화했으며 가장 뚜렷한 것은 남편의 변화였다.

심신이 향상되자 부부가 서로 손님처럼 존중하다

그녀는 심성 제고에 공을 들이는 것 외에 안정적으로 연공과 법공부를 해서 고질병인 생리시 편두통 증상이 사라졌다. 남편은 그녀가 착실한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이 개변된 것을 보고 현재는 그녀와 아들에게 연공과 법공부를 하라고 일깨워주기도 하며 늘 관심 있게 “오늘은 연공했나요?”라고 물었다.

부부는 더 이상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지 않는다. 의견이 다를 때 그녀는 평온한 마음을 갖고 이성적으로 소통했고 집안일도 앞다투어서 했다. 그녀는 웃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그릇을) 다 씻었어요! 저는 고생을 수련으로 여겨요.” 그러자 남편도 말했다. “저도 고생을 해야겠네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고생을 다 해버릴 수 있으니까요.” 부부가 이처럼 서로 손님처럼 존경하는 것은 그녀가 이전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행복이었다.

레이샤오전은 감격하면서 말했다. “수련자는 마땅히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행해야 하고, 저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말하는 것을 연습하고 불만을 거의 표현하지 않자 가족 관계가 상대적으로 개선됐고, 타인을 많이 이해하려 노력하자 불필요한 갈등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퇴직금을 포기하고 양모펠트를 제작하다

그녀는 대법 수련을 통해 가정환경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창업의 길에서 명예와 이익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서 마음이 승화되는 아름다움을 체득했다.

2016년 레이샤오전은 양모펠트 창작을 위해 용감하게 한 걸음 나아가 20년간 일하면 종신 봉급을 받을 수 있는 군 직장을 포기하고(그 당시 4년만 지나면 20년이 됨) 양모펠트 창작에 뛰어들었다. 그 당시 상관과 전우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가족도 설득했다. “군대 복무 외에도 인생의 포부를 펼칠 수 있습니다.” 그녀는 그때 상관에게 말했다. “세상엔 진선인(真·善·忍)이 필요하기에 저는 양모펠트로 이야기하고 전시하고 싶습니다.” 계속 군 복무를 하라고 애써 충고하던 상관도 그녀의 확고함에 감동해 말했다. “당신 눈에서 반짝이는 빛을 보았네.”

브랜드 ‘가방·수제 양모펠트’를 창립하기 시작하면서 레이샤오전은 ‘양모펠트는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전통을 깨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스큐어모피즘’으로 군침 돌게 하는 ‘식빵’ 모양 양모펠트 작품을 만들자 그녀는 ‘양모펠트계의 우바오춘’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图2~4:雷晓臻创作的手工复刻食物,“拟真”的食物羊毛毡作品,栩栩如生。'
음식을 모방한 생동감이 넘치는 ‘스큐어모피즘’ 수제 양모펠트 작품들
'图5:二零一九年雷晓臻荣获文化部台湾文博会“文创精品奖”。图为文化部次长颁发“文创精品奖”予雷晓臻。'
2019년 레이샤오전은 대만문화부의 ‘문창정품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문화부 차관이 레이샤오전에게 상을 수여하는 모습.

급속히 유명세를 탔지만 역병으로 실적이 바닥으로 떨어지다

“수공예는 대만에서 아주 하기 힘든 일이고 많은 동업자가 10년, 20년간 무명시절을 보냅니다.” 갑자기 유명해지고 바삐 보내자 그녀는 잠시 실속 없는 표면 현상에 미혹됐고, 심지어 자신에게 중생을 구하려는 소원이 있었다는 것도 잊었다. 하지만 2020년 세기적인 역병으로 인해 그녀는 미혹 속에서 깨어났다.

“그 2개월간은 정말로 밑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사실 저도 이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2020년 3~4월 사이 중공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아 장터가 폐쇄돼 레이샤오전은 사업에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큰 타격을 입었다. “한순간에 밑바닥까지 떨어졌고 수입이 전혀 없었습니다.”

명리를 간파하고 수련의 진리를 깨닫다

역병은 레이샤오전에게 오히려 자신을 돌이켜보는 기회가 됐다. “제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군대에서 퇴역한 것은 전시를 하려고 한 것이지만, 너무 빨리 유명해져 뭔가 변한 것 같았고 많은 나쁜 마음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면 유명해졌다고 자만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에 진선인(真·善·忍)을 마음에 간직하고 브랜드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 다시 또렷이 생각났다.

그녀는 법공부를 많이 하기 시작했고 한 번은 밍후이 라디오 방송에서 ‘밀레르빠 부처님’의 수련 이야기를 들은 후 정진하면서 착실히 수련하려고 결심했다. 그녀는 ‘어떠한 마음의 경지가 있었기에 밀레르빠 부처님은 줄곧 그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라고 자신에게 물었다. 창업해서 유명해지고 이후 역병의 영향을 경험하면서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그때 알았어요, 정말로 알았죠. 모든 마음이 담담해진 것 같았고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이 생겼습니다.”

심성이 제고된 그녀는 말했다. “저는 아이의 어머니이자 사장이고 창작자입니다. 용감하고 냉정하며 평온한 마음으로 모든 시련에 마주했고 외적인 환경 변화에도 좌우지 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학생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실적이 안정되다

착실하게 ‘전법륜(轉法輪)’을 공부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창업 초기에 명리심이 커져 고객을 진정하게 존중하거나 매 한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했고, 상품의 섬세한 부분도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 떠올랐다. “수련은 바로 생활 속에서 진선인(真·善·忍)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후 성실한 태도로 많은 시간을 들여 상품 제작, 포장, 상품 설명 및 웹사이트 등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양모펠트 교사가 된 지 거의 5년이 된 그녀는 학생 100명을 가르쳤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양모펠트를 학습하려면 눈과 귀를 열어야 하고 마음도 진정하게 열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지 못하면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은 반복적으로 퇴짜를 맞았고 그녀는 참을성 있게 다시 가르쳤다. 이것은 학생들과 그녀에게 아주 큰 심성 시험이었지만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모두 진보할 수 있었다.

또한 레이샤오전은 늘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학생들과 공유하고 교류했으며 그들이 진선인(真·善·忍)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그들은 생활에서 봉착하는 일에 대해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혼합 양모는 부드럽게 당겨야 펼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펼치기 어려우며 역작용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일을 처리할 때도 힘을 많이 쓴다고 잘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볍게 대할수록 더 잘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역병 때문에 사업 실적은 좋지 않았지만 그녀가 수련을 착실하고 안정되게 하자 기적이 나타났다. 어느 날 레이샤오전은 타이베이시 온천협회의 한 이사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역병에 직면한 타이베이시 관광국의 일부 산업을 지도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래서 그녀는 2개월간 부진했던 실적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인연 있는 사람이 잇따라 법을 얻다

수백만 생명을 앗아간 세기의 역병으로 사람들이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시기에, 그녀는 파룬따파가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점과 중공의 박해 진상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장터가 점차 다시 개방됨에 따라 그녀는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알렸고 그들이 누구나 ‘전법륜(轉法輪: 파룬궁의 주요 저서)’을 청할 기회를 줬다. 예를 들면 한 비누회사 사장은 대법을 얻고 나서 부자간의 장기적인 갈등을 해소했고, 곁에서 매일 보고 듣던 비서도 스스로 온라인에서 파룬궁을 알아보고 나서 대법과 인연을 맺었다.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잡는 것 외에 그녀는 자신의 최초 소원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파룬궁수련생이 개최한 ‘진선인(真·善·忍) 미술전’ 관람 안내서에서 화가가 사실을 그대로 섬세하게 전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작가가 전하고 싶은 생각을 알릴 수 있었다는 부분을 회상하면서 말했다. “시사를 기록하는 것은 당대 예술가의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초심을 잊지 않고 대변혁 시대의 이야기를 창작하다

레이샤오전은 “진정한 예술은 마땅히 사람의 마음을 계발해줘야 합니다”라고 말했고, 예술가로서 ‘인권 전시회’를 주제로 이 대변혁 시대를 반영하고 싶다고 밝혔다.

중공의 은폐로 역병이 지속되면서 전 세계가 재앙을 맞았다. “우리는 줄곧 방역의 중요성을 말해왔지만 세인들이 ‘사악한 붉은 용’(중공 정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근원을 차단할 수 없고, 우리의 삶을 수호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예술창작자로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최근 그녀는 양모펠트 작품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를 발표했고, 작품에서는 한 사람이 사악한 붉은 용의 꼬리를 잡고 있다. 그녀는 “붉은 세력의 근원을 차단해 이것이 세계에 더 이상 퍼지지 못하게 사람들을 일깨우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图6:雷晓臻反映大时代故事的新作:《我想说话……》。'
레이샤오전의 신작: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레이샤오전은 이 작품을 팔로워 플랫폼에 게재했고 창작 이념을 적어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중공의 사악함을 과감히 폭로해야 전 세계의 재앙을 진정하게 피할 수 있습니다.” 일부 팔로워는 그녀의 작품에 대해 감동과 공감을 표했다.

수련을 통해 명리정(名·利·情)의 굴레에서 벗어나 크게 제고된 레이샤오전은 분명하게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향후 그녀는 예술가이자 파룬따파 제자인 신분을 더욱 소중히 하고, 생활 속에서 착실히 수련하며 진선인(真·善·忍)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원문발표: 2021년 6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6/13/4269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