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온 길 (8)

글/ 중국 대법제자 리리(李莉)

[명혜망](전편에 이어) 열흘 후 사부님이 옌지에서 돌아오셨습니다. 쉬 씨 집에 가니 사부님은 이미 방 안에서 몇 사람과 대화 중이셨습니다. 저와 몇몇 수련생은 바깥 큰 방에서 연공했습니다. 연공 후 사부님께서 일이 있으셔서 어떤 수련생들은 갔습니다. 사부님도 일을 마치고 안방에서 나오셨습니다. 우리는 사부님을 아래층까지 배웅해 드렸습니다. 사부님이 가신 후 올라가려는데 동료와 쉬 씨, 그의 아들 ‘샤오쉬’가 오늘 좀 이상했습니다. 저를 보고 웃기만 하고 말하려다 말며, 무슨 비밀처럼 저에게 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엔 다들 아주 친해 무슨 말이든 했는데 오늘 왜 이럴까? 게다가 사부님이 막 돌아오셨으니 분명 내게 숨기는 일이 있을 거야.’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샤오쉬에게 물었습니다. “샤오쉬, 무슨 일인데 나한테 말 안 해? 분명 나랑 관련된 거지?” 샤오쉬가 말했습니다. “말 못 해요, 말 못 해요. 어쨌든 좋은 일인 줄만 아세요.” 제가 농담조로 말했습니다. “안 돼, 오늘 꼭 말해야 해.” 그는 제가 자꾸 물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습니다. “말씀해드리면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저는 생각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할 수 있어.”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알기만 하고 절대 남한테 말하지 마세요.” “말 안 해, 안심해!” 샤오쉬가 말했습니다. “아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선생님 얘기를 하셨는데, 선생님이 이미 나한(羅漢) 과위까지 수련됐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듣고 멍해져서 ‘왜 우리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죠?’라고 했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아, 그런 거였구나.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소식을 듣고도 당시엔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나한’이란 말도 몰랐기에, 그냥 좋은 일이라고 여기며 사부님 말씀을 믿었습니다. 며칠 뒤 다시 사부님을 뵈었는데 사부님이 물으셨습니다. “기쁜가요?” 저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내가 알게 된 걸 아시나 보다. 아니면 묻지 않으셨겠지. 사부님께서 나한이라고 하셨으니 어느 정도 층차에 오른 모양인데 너무 빠르지 않나, 난 별 느낌 없는데 어떻게 올라갔지?’ 나중에 사부님의 한마디 법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전법륜) 사실 저는 아무것도 몰랐고 다 사부님께서 해주신 겁니다. 한번은 저와 몇몇 수련생이 바닥에 가부좌하고 앉았는데 사부님이 우리 앞에 앉으셔서 저를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뒤를 보세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이 천목으로 남들이 못 보는 걸 보게 하시려나 보다, 사부님이 공능을 열어주시려나 보다.’ 그런데 당시 저는 오히려 좀 무서웠습니다. ‘안 돼, 보면 안 돼. 천목이 열려서 나중에 감당 못 하면 어떡해.’ 창춘에서 제가 알기로 많은 사람이 천목을 추구하다 문제가 생겼고, 사부님께서 법에서 추구하면 안 된다고 하셨기에 저는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은 저를 보자마자 제 생각을 아셨습니다. 나중에 몇몇 수련생이 오성이 낮다고 저를 나무랐습니다. 또 한번은 우리가 쉬 씨 집에서 연공하고 있는데 사부님이 오셨습니다. 사부님이 싱글 침대에 앉으셔서 우리는 사부님을 둘러싸고 바닥에 앉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과 아주 가까웠고 쉬 씨가 제 옆에 있었는데, 처음에 아무도 감히 말을 못 하다가 쉬 씨가 짧은 침묵을 깨고 갑자기 제게 물었습니다. “리리, 무엇을 봤는지 좀 말해봐요.” 그가 어느 일을 말하는지 알아서 “그건 다 지난 일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사부님이 “무엇을 봤는지 말해보세요” 하셔서 말씀드렸습니다. 수련 초기에 본 사부님이 문인, 외국인 형상이었던 것을 말씀드리자 사부님께서 “본 게 맞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외국인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감히 여쭙지 못했는데, 사부님은 또 가볍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예전에 속인 중에서 구걸한 적이 있습니다.” 왕(王) 씨 수련생이 가부좌 중에 사부님이 황제였던 걸 보았다고 하자 사부님은 그랬다고 하셨습니다. 쉬 씨에게 당태종 이세민이 사부님의 어느 한 생이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의 수련 상황이 순식간에 수련생들에게 퍼져 수련생들의 수련에 큰 영향을 주었고, 당시 많은 수련생이 문제가 있으면 제게 와서 관 넘는 일 등을 묻곤 했습니다. 저는 자신을 잘 단속해야 하고 환희심을 가지면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 사부님의 ‘중국파룬궁(수정본)’이 이미 출판되어 우리는 전체적으로 배우고 외우고, 단체로 배우고 혼자 배우며 법공부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9월 15일, 수업 끝나고 바로 쉬 씨 집으로 갔는데 문을 들어서니 사부님께서 방에서 뭔가를 쓰고 계셨고 쉬 씨 가족만 있었습니다. 사부님을 방해할까 봐 조용히 한쪽에 앉았는데, 사부님이 고개를 들어 저를 보셨습니다. 저는 사부님 책상 옆으로 갔습니다. 사부님은 시 한 수를 쓰고 계셨는데 바로 ‘홍음’ 중의 ‘인과(因果)’였습니다. 사부님은 파란 펜으로 다 쓰시고 보시더니 “글씨가 작네요”라고 하셨습니다. 사부님은 다시 펜과 종이를 들어 이번에는 검은 펜으로 글씨를 크게 다시 쓰셨습니다. 저는 사부님이 글씨가 작다고 하신 그 종이가 책상 옆에 놓인 걸 보고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이 종이를 저 주시면 안 될까요?” 사부님은 동의하셨습니다. 사부님은 시 두 수를 쓰셨는데 하나는 ‘인과’, 하나는 ‘미혹 속의 수련(迷中修)’이었고, ‘인과’를 먼저 쓰시고 ‘미혹 속의 수련’을 나중에 쓰셨습니다.

저는 이 인과라는 시를 보며 사부님께서 왜 이 ‘횡(橫-가로, 뜻밖에, 거칠다, 결심하다 등)’ 자를 쓰셨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역주: 橫心消業修心性 부분) 제가 생각하고 있을 때 쉬 씨 아내가 사부님께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어째서 이 ‘횡’ 자를 쓰셨나요?” 제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바로 이 ‘횡’을 써야죠.” 저는 금방 이 ‘횡’ 자를 쓴 함의를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수련 중에 마음을 굳게 먹으라는(橫下一條心) 뜻으로, 문자적으로는 확고하고 단호하다는 뜻입니다. 사부님은 “여러분이 가서 잘 깨달아보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사부님은 옌지에서 돌아오신 후, 이 두 시 이후부터 ‘파룬궁’을 ‘파룬따파(法輪大法)’로 고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루가 창춘에 저를 보러 왔는데 며칠간 또 저와 다퉜고, 자기 친구들과 밥 먹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식탁에서 루는 술잔을 들고 제게 말했습니다. “오늘 당신은 술을 마셔야 해. 이 한 잔 같이 마셔.” 저는 “난 술 안 마셔요”라고 했습니다. 루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무조건 마셔야 해. 안 마시면 오늘 밥 아무도 못 먹어.” 저는 “당신도 나 술 안 마시는 거 알잖아요. 나 연공해서 술 안 마셔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제가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다고 여기고 큰 소리로 명령했습니다. “오늘은 반드시 마셔야 해.” 저는 여전히 “안 마셔요!”라고 했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말려도 듣지 않았고 결국 제가 마시지 않아 판이 깨졌고 아무도 못 먹고 불쾌하게 헤어졌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런 문제에서 당신이 뒤집어엎어도 난 당신 뜻대로 안 해. 나는 법의 요구대로 할 거야. 법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으면 그대로 하고, 나는 법을 원하지 사람의 것을 원하지 않아.’ 루의 이 시험은 바로 제가 사부님이 ‘인과’, ‘미혹 속의 수련’을 쓰시는 걸 본 그 며칠간이었고, 사부님의 시를 반복해서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이 마치 제게 설법해주시는 것 같았고, 제가 체험담에서 제기했던 문제, 즉 내가 왜 이렇게 괴로운가에 대한 답을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수련의 길에 고생 있음이 아니라 생생세세 업력이 가로막음이로다”(홍음-인과) 저는 제가 겪는 고통이 모두 제 세세생생의 업력 때문이지 남 탓이 아니며, 다 제가 나쁜 짓, 틀린 짓을 너무 많이 해서 그렇다는 걸 알았습니다. 수련해서 업을 갚지 않고 어떻게 제고할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 말씀처럼 “마음 굳혀 소업하고 心性(씬씽) 수련하리니”(홍음-인과)가 되어야 진정으로 자신을 제고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이 보도원들에게 법을 풀어주시려 하여 우리는 수련생들에게서 올라온 질문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에 관련된 문제는 다 뺐고 중복되는 문제도 뺐습니다. 당시 ‘문예지창’에 관한 질문이 많아 제가 샤오쉬에게 대부분 빼자고 했지만 그가 동의하지 않아 그대로 올렸습니다. 제가 질문 하나를 냈는데, 나중에 ‘파룬따파의해(法輪大法義解)’ 중 “우주 중에는 완전히 같은 것이 있습니까?”였습니다. 이 질문은 지금 보면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고 철학 중의 ‘세상에 동일한 사물이 있는가’라는 문제의 재판(再版)이었지만, 사부님께서는 법리상에서 대답해주셨습니다.

9월 18일, 여전히 화창한 날씨에 지린대학 소강당, 즉 지린대학 이화루(理化樓) 7층에서 사부님께서 창춘 보도원들을 위해 법을 풀어주시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약 200명 정도의 보도원이 참가했는데, 신수련생 몇 명이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들어와서 사부님의 이번 설법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부님의 당시 설법은 겨냥성이 있었는데, 저는 이 점을 알았습니다. 수련생들이 제기한 많은 질문과 사부님이 말씀하신 일부 현상이 저와 관련 있었고, 사부님께서 제가 모르는 문제에 답해주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남불(男佛), 여불(女佛)의 성별은 수련인(修煉人) 육신의 성별입니까, 아니면 主元神(주왠선)의 성별입니까?”[파룬따파의해-창춘(長春)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라는 질문에서 사부님께서는 부처의 구분, 층차, 상태와 수련의 최종 목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또 “정법(正法)을 얻고 정과(正果)를 이루면 원만(圓滿)으로 여기는데, 그러면 저희가 어느 정도까지 수련해야만 비로소 원만한 것입니까?”[파룬따파의해-창춘(長春)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라는 질문에서 사부님은 정과(正果)와 수련 목표의 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점오(漸悟)하는 것인데 저희는 언제 점오상태에 들어갑니까?”[파룬따파의해-창춘(長春)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에서는 천목이 열려 볼 수 있으면 보고, 이것은 집착과는 별개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은 바로 저처럼 당시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의 관계를 바르게 놓지 못하는 보편적인 상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부님의 이번 보도원 설법은 보도원들이 향후 보도원 업무를 잘 수행하는 데 지극히 중요한 지도적 의의가 있었습니다. 이번 설법 후 저와 쉬 씨, 리(李) 씨 등 몇몇 수련생이 사부님 설법 녹음을 토대로 원문 그대로 문자로 정리해 사부님께 보내 수정받아 훗날 책으로 낼 준비를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그 후 창춘에 한동안 머무시며 각지 설법 녹음을 정리해 ‘전법륜’을 출판하실 준비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부님이 특별히 바쁘신 걸 알았고 사부님이 하시는 일은 누구도 도울 수 없기에, 이후 우리 누구도 사부님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이 바로 우리 곁에 계시고 이미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으니, 스스로 더욱 정진하고 실천하며 닦을(精進實修) 뿐임을 알았습니다.

루가 베이징에 배치된 후 저도 베이징으로 돌아와 계속 일자리를 알아봤고, 결국 국가검찰관대학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곳도 형식논리학과 철학 교사가 부족해 대학 측도 저를 받아들이기로 동의했고, 최고검찰원은 예외적으로 우리 부부가 같은 학교에 있는 것을 비준했습니다. 저는 1994년 말 정식으로 베이징으로 전근했고, 대학 지도부는 먼저 제 시범 강의를 듣고 바로 수업을 맡겼습니다. 제가 속한 연구실은 종합 연구실로 저까지 두 명이었는데, 당시 주임은 중앙당교에서 전근 온 사람으로 역시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혼자에 익숙했는지 침대, 전화, 샤워 시설이 완비된 사무실을 혼자 쓰고 있었는데, 제가 가는 걸 환영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처음 신고하러 가니 제 책상을 복도에 놔두고 사무실에 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새 직장도 순탄치 않겠구나.’ 저는 어딜 가나 심성을 닦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루가 화가 나서 억지로 책상을 실내로 옮겼고 주임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관할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베이징에 막 왔을 때는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며칠도 안 돼 모든 환경이 변했고 직장 사람은 낯설고 주위 수련생도 모르는데, 루는 제가 상경하자마자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저는 좀 멍해졌고 머릿속엔 늘 창춘 생각뿐이었습니다. 속으로 ‘사부님, 왜 저를 베이징으로 배치하셨습니까? 창춘이 얼마나 좋은데요.’ 한쪽의 정이 제거되니 다른 쪽의 정이 또 와서, 베이징이 너무 낯설고 창춘 지린대학이 좋고 사람이 익숙하다고 느껴, 결국 창춘의 눈이 다른 곳보다 더 하얗다고 꿈을 꿀 정도로 집착했습니다.

어떻게 심성을 닦아야 할지 몰라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집에서 몰래 울었고, 그 후에도 집에서 늘 괴로워하며 자주 울었습니다. 루가 저를 꾸짖기 시작했습니다. “수련할 거야 말 거야? 안 하려거든 속인으로 잘 살고, 하려면 제대로 해. 온종일 질질 짜긴 왜 짜!” 그가 꾸짖는 말이 맞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사부님께서 그를 이용해 저를 나무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 수련 상태가 좋지 않으니 얼른 조정하라고요. 나중에 한 노(老)수련생에게 전화로 묻고 그 댁에 갔습니다. 제 정신이 너무 긴장된 걸 보고 노수련생과 부인은 저를 데리고 자죽원(紫竹院) 공원에 가서 산책시켜주셨습니다. 수련하기 싫은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환경 변화가 너무 크고 폐쇄되어 어떻게 닦을지 몰랐고 그때는 너무 괴로웠습니다. 노수련생이 많은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괴로워서 남이 비웃는 것도 두렵지 않았고, 그때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있어 큰 위로와 계발을 받았습니다. 수련생들의 진심 어린 도움에 늘 감사드립니다.(계속)

 

원문발표: 2021년 4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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