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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 (7)

글/ 중국 대법제자 리리(李莉), 유편(遺篇)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 1994년 설이 지나 남동생의 병이 재발하여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이 왔다. 나는 기차를 타고 하얼빈 종양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재수술은 하지 말고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여 우리 가족들도 동의했다. 집에서 나올 때 나는 사부님의 책(당시 사부님의 첫 번째 책 ‘파룬궁’이 출판되었다)을 가지고 왔다. 기공을 연마하는 친구가 다른 기공 책을 선물하면서 남동생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했다.

남동생은 대수술을 두 차례나 받아 원래 모습이 아니었다. 호르몬을 먹어서 체중이 갑자기 절반 가까이 불었고 종양이 신경을 압박하여 몸 한쪽이 마비되어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나와 여동생, 올케가 번갈아 가면서 병간호를 했다. 아버지도 충격을 너무 심하게 받아서인지 아니면 너무 피곤해서인지 가끔 병원에 와서 보곤 했다. 나는 난을 넘는다고 생각하고 엄격히 자신에게 요구했다. 시간만 나면 책을 꺼내 읽었는데 대법은 나에게 무궁한 힘과 지혜를 주었다. 나는 매일 낙관적이고 평화로운 심태로 우울해 있는 가족들을 대했다. 나는 가족들의 피로를 덜어주려고 많은 일을 혼자 했다. 그리고 최대한도로 정과 좋지 않은 사상을 배척하고 머릿속에 법을 많이 담으려고 했다. 머릿속에 온통 법으로 충만하니 예전의 나와 아주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50킬로도 안 되는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었지만, 당시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도와줬어도 피곤을 몰랐다.

나를 본 가족들도 더는 우울해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내어 가부좌했다. 그리고 남동생을 부축해 앉히고 연공을 가르치고 파룬궁이 어떻게 좋으며 내 몸의 변화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 알려줬다. 남동생은 몸이 허약하여 잠깐 따라 하고는 바로 누워야 했다. 그가 말을 하지 않아도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책을 가져온 것이 생각났다. 마음으로 ‘두 권의 책을 가져왔는데 한 권은 법이고 한 권은 다른 책이다. 이것은 나를 고험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난잡한 책은 보지 말자! 나는 줄곧 사부님의 책을 보았는데 나의 변화는 전부 다 파룬궁을 수련하고 생긴 것이 아닌가? 불이법문의 문제가 또 나를 교란하는데 나는 절대 가지지 않겠다’라고 하면서 돌아가서 책을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문득 왜 남동생에게 사부님의 책을 읽어주지 않는가?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한번 다 읽어준 후 남동생에게 혼자서 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남동생은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그를 부축하여 앉히고 그가 읽기 쉽게 책장을 넘겨주었다. 그는 아주 진지하게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글을 적겠다고 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왜 나의 뇌에 종양이 생기고 왜 조상의 병이 유전되었는지 알려줄 수 있어?’라고 적었다. 우리 할아버지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당시에 대답할 수 없었다. 동생은 책을 읽었으나 여전히 병을 내려놓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풀지 못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가?

나는 창춘(長春)으로 돌아가서 수업해야 하므로 병원에서 오래 간호할 수 없었다. 내가 두 번째로 갔을 때 남동생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여동생들은 지쳐서 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들에게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여동생들이 간 후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보냈으나 나의 몸은 오히려 정상인보다 더 좋았다.

하루는 남동생을 부축해 의자에 앉히고 다른 물건을 잡으러 가는 사이 ‘쾅’하는 소리가 났다. 의자 주위에 넘어지지 말라고 여러 군데 막아놓았으나 남동생은 바닥으로 넘어져 머리를 박았다. 내가 뛰어가서 그의 머리를 들어 올렸더니 이마에는 혹이 나 있었다. 내가 그를 부축해 일으키려 했으나 너무 무거워서 일으킬 수 없었다.

나는 남동생의 수술 후의 상처를 보면서 아픈 동생에게 내가 상처를 보탰다는 생각에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내가 어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 어찌 울 수 있는가? 나는 단번에 눈물을 멈추었다. 그리고 옆 병실로 달려가 두 청년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내가 정에 흔들렸기에 그 관을 잘 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동생들이 나와 교대하러 왔고 나는 베이징의 집으로 돌아왔다. 벽에 걸려 있는 사부님의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눈물이 그렁해서 사부님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부님께서는 자상하고 자비롭게 나를 보고 계셨다. 사부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더 친근하게 느껴졌고 사부님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내 마음속에 셀 수없이 많은 것 같았다.

그때 관을 넘으면서 내가 정을 너무 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 나는 혈육의 정 때문에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고생하더라도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특히 자신의 친인에 대해 더 그러했다. 파룬궁을 수련하고 나는 바로 이 정이 자신을 해쳤고 정에 휘말려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의 설법에서 나는 ‘정이 바로 마(魔)’이고 이기적인 것이며 정에서 많은 집착심이 생겨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동생은 나를 도와 그에 대한 정을 제거하게 해주고 있고 나를 제고 시켜주고 있으며 내가 제고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강렬했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 ‘사부님, 저는 반드시 정을 내려놓을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내가 세 번째로 병원에 갔을 때 상황은 달라졌다. 나는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하면서 조금도 느슨하게 하지 않았다.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매사에서 법에 부합되게 했다. 우리 자매들이 온 힘을 다해 남동생을 간호하고 있을 때 고향 쑤이화(綏化)에 계시는 아버지가 신장병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에 사람이 없어 아버지 회사에서 사람을 구하여 간호하고 있다고 했다. 며칠 후 나의 고향인 하이룬시에서 소식이 왔는데 큰아버지의 작은아들도 병이 위급하여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큰아버지와 큰엄마는 아이 다섯을 두고 세상을 떠났는데 우리 아버지가 돌봐주면서 키웠다. 일부는 일하고 일부는 가정을 이루었다. 하얼빈시에 사는 이모는 자동차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쳤다. 정말로 화는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내가 그 마음을 내려놓는가 내려놓지 못하는가를 보고 그것들은 모두 나를 겨냥하여 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심성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일체를 내려놓고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했다.

남동생을 돌보면서부터 나는 줄곧 기차를 타고 하얼빈, 창춘, 베이징으로 분주히 오갔다. 내가 베이징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남동생이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추도식에 참가하라는 전화가 왔다. 나의 마음은 아주 평온했고 속으로 ‘가야 할 사람은 가야 정상이지!’라고 생각했다.

남동생의 일은 나에게 한 가지 도리를 깨우쳐주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친인들이 나의 곁을 한 명씩 떠나도 그들을 붙잡고 싶지만, 어차피 붙잡을 수 없다. 나도 수련하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나의 아들도 내 옆에서 고통스럽게 붙잡으려고 할 것이다. 사람에게는 수많은 고통만 있을 뿐 무엇을 남기려 해도 남길 수 없다. 수련하고 나서 사람이 고생스러운 것은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고생스럽게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사람이 근본적으로 집착하는 정을 반드시 끊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 깜짝할 새에 1994년 8월 중순이 되었다. 나는 수업하러 창춘에 돌아왔다. 수업하기 전에 쉬(徐) 씨 집으로 갔는데 쉬 씨는 며칠 후에 사부님께서 돌아오시는데 함께 마중 가자고 했다. 나는 아주 기뻤다. 줄곧 밖에서 돌아다니면서 많은 관을 넘느라 오랫동안 사부님을 뵙지 못했다. 공항에 가서 사부님을 마중하던 그 날, 나는 분홍색에 무늬 레이스가 달린 산뜻한 투피스로 갈아입었다. 멀리서 사부님께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나는 기쁘기도 하고 격동되기도 했다. 사부님께서는 나와 반갑게 악수를 하면서 언제 돌아왔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 한 주가 됐다고 했다. 우리는 공항에서 사부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부님께서는 옌지(延吉)에 가서 설법하기 전에 잠깐 창춘에 들리신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떠나기 이틀 전에 나는 밤을 새워 심득체험을 썼다. 흰 종이에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12페이지를 적었다. 나는 인생의 고뇌, 관을 넘은 과정과 관을 넘으면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내가 왜 이렇게 고달픈지 사부님께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두 마디를 적었다. “나의 사부님은 오로지 리훙쯔(李洪志) 사부님뿐이고 마음엔 오로지 파룬궁뿐입니다.” 파룬궁을 끝까지 수련하겠다는 다짐을 말씀드린 것이다.

우리는 공항으로 가서 사부님을 배웅했다. 공항 대기실에서 우리는 사부님을 에워쌌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부님 자신의 ‘노리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당시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점화해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몇 년 후에야 수련의 길에는 크든 작든 어떤 우연한 일도 없다는 것을 점화해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나는 심득체험 쓴 것을 드렸다. 사부님께서는 비행기 안에서 나의 심득체험을 읽으셨을 것이다.

(계속)

 

원문발표: 2021년 4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19/4216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