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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불성(佛性)’을 외운 소감

글/ 중국 산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전법륜2-불성(佛性)’에서 말씀하셨다. “선념(善念)이라고? 불교에서는 생각만 해도 곧 업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른바 선념이란 더욱 높은 표준에 서서 가늠해 보거나 眞(쩐)·善(싼)·忍(런)이란 더욱 높은 표준으로 보면 역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 단락의 법이 어떤 이치를 설명하는지 줄곧 깨닫지 못하다가 최근에 와서야 변화가 생겼다.

마침 요즘 한 가지 작은 일을 겪으면서 이 단락 법에 비춰 일을 처리할 때 개인 수련에서 정법(正法) 수련으로 변하게 됐다. 속인의 부정확한 행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명확한 인식을 갖게 됐다. 일은 이러했다.

나는 회사에서 회사 채소밭의 채소 종자 등을 구매하는 일을 맡고 있다. 회사 관리인이 해마다 종자와 화학비료를 좀 달라고 해서 종자 가게에도 데리고 갔지만 그는 사지 않고 회사 것만 공짜로 받으려 했다.

종자 비용이 10위안(약 1700원)에 불과해 예전에는 그와 따지지 않고 요구하면 줬고 상사도 동의했다.

하지만 ‘불성(佛性)’ 경문을 배운 후 이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대체 나의 무슨 관념을 건드렸을까? 예전에 나는 내 ‘선’(善)에 사람의 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감정이 상할까 봐 상대방의 나쁜 행위를 지적하기 불편했고, 작은 나쁜 일들은 그럭저럭 양보하며 인정했다. 큰 나쁜 일은 자기가 지위가 낮고 의견을 내도 주목받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면서 감히 관여하지 못하고 뒤에서 수군거리기만 했다. 언제, 어떤 일을 참아야 하고, 언제, 어떤 일을 참지 말아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 순간 내 이미지가 마치 ‘무골호인(老好人)’처럼 위엄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물었다. ‘내 마음이 고요해지지 못하는 것은 이익을 내려놓지 못해서인가? 이것은 내 이익과 관계없다. 그럼 그의 행위가 못마땅해서인가? 그는 확실히 덕을 잃었다. 이건 인연 관계인가? 사부님께서는 구세력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선의로 그의 문제를 지적해주면 안 되는가? 그가 덕을 잃는 일을 하지 말도록 완전히 그를 위해서 말이다.’

인정(人情)을 수호하는 관념을 버리고, 하자는 대로 순종하는 일 처리 방식에서 벗어나자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할 수 있고, 진선인(真·善·忍)을 실증하는 기점에서 문제를 볼 수 있게 됐다. 더욱 소탈하게, 단호하게, 선심이 있게 됐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1/4240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