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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수련생 “사존께서 날 일깨워 정진하게 하시다”

글/ 후베이(湖北)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90년대 생으로서 초등학교 때 법을 얻었다. 수련한 지 이미 15년이 된다.

어머니는 1999년 이전에 법을 얻으셨지만 나중에 중공사당의 박해로 수련을 포기하셨다. 그 이후 어머니의 몸은 병으로 점점 나빠지셨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은 어머니의 원신(元神)이 몸을 이탈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는 우리 집에 와서 사부님만이 어머니를 구할 수 있기에 파룬따파 수련으로 돌아오라고 권했다. 당시 수련생은 파룬따파 음악 ‘보도(普度)’와 ‘제세(濟世)’를 갖고 왔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보도’를 들었는데 그 감동과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와 어머니는 함께 ‘전법륜’을 공부했고 나는 어머니에게 수련을 포기하지 말고 반드시 견지하자고 격려해드렸다.

중학생 때 학교에서 진상을 알리다

내가 법을 막 얻어 수련할 때 현지에서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가 여전히 비교적 심할 때였다. 학교에서 수시로 대법을 모욕하고 비방하는 정치수업이 있었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도 중공이 대법을 모함한 허위사실을 배포했다. 나는 대법 책을 읽었기에 파룬따파가 수련인에게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사회에 이로운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국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대법을 모함할 때 나는 일어나서 전반 학생들에게 대법에 대한 내 인식을 말하면서 소위 말하는 ‘톈안먼 분신자살’의 거짓을 폭로했다.

당시 선생님은 급히 그 화제를 끝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그 기회에 세 명의 학우에게 삼퇴(중공의 당, 단, 대조직에서 탈퇴)를 시켜줬다. 당시 나는 내가 어린 대법제자라는 것을 명확히 알았기에 언제 어디서나 모두 반드시 대법을 보호하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내가 반에서 ‘9평 공산당’을 전파하는 것을 담임선생님이 발견하셨다. 내가 성적이 우수하고 성품이 좋았기에 1학기 때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지명해 반장으로 임명하셨다.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것을 알게 되신 선생님은 몹시 놀라면서 혼란스러워하셨다. 내 성적과 안위를 걱정하는 한편 내가 반의 다른 학생들에게 영향을 줄까 봐 걱정하셨기에 담임선생님은 늘 나를 교무실로 단독으로 불러서 서너 명 선생님들에게 소위 말하는 ‘사상교육’을 시키도록 배치하셨다.

나는 그 기회를 이용해 선생님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톈안먼 분신자살’ 가짜 안건을 말할 때 나는 류쓰잉(劉思影)이 기관지 수술을 받은 지 3~4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기자의 취재를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노래를 불러준 데 대한 의문점을 지적했다. 당초에 기세가 등등하던 생물 선생님은 듣고 나서 멍해지더니 사색에 잠기셨다. 담임선생님도 더는 나를 비판하지 않으셨다. 나는 선생님들이 속으로 그 문제의 진위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학 선생님은 내가 말하는 진상을 들은 후 나를 볼 때마다 “이 아이는 정말 좋은 아이예요”라고 다른 선생님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선생님의 명백한 일면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비록 학교 관련 기관과 선생님들의 압력을 받고 있었지만 그 해 모의고사에서 내 수학 성적은 학년에서 일등이었다. 수학 선생님은 내 머리가 이미 트여서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바로 붙을 수 있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중3 이후 학업이 더 많아졌다. 다행히 법공부에서 어머니는 여전히 나에 대한 요구가 아주 엄격하셨다. 매일 저녁 법공부를 마치고 책상 옆에서 내가 숙제하는 동안 함께 계셨다. 내가 숙제를 12시까지 하더라도 어머니는 옆에서 법공부하면서 함께 계셨고 줄곧 그렇게 견지하셨다.

나는 전 학년에서 5등이라는 성적으로 중점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중에 아래 학년 여동생에게서 들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는 늘 수업 시간에 날 언급하시면서 내가 매일 어머니와 함께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하고 저녁에 법공부를 했는데 시에서 가장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면서 모든 학생이 나를 따라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모든 것이 사부님과 파룬따파에서 온 것이란 걸 알고 있다. 내가 어떠한 압력을 받고 있든 사부님께서는 모두 내 옆에서 보호해주고 계신다. 몇 번이나 생명이 위험한 적이 있었지만 모두 사부님의 보호로 평안하게 넘겼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로 어머니를 잃지 않았고 고달픈 인생도 면하게 됐다. 파룬따파는 내가 성장하는 동안 공부와 생활에서 항로를 밝게 비추어주었다.

대학생 때 사부님께서 나를 일깨워 주시다

대학에 들어간 후 나는 어머니와 친척 수련생들이 있는 그런 환경을 멀리 떠났다. 그리하여 수련을 느슨히 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집착심이 생겼다. 한국 드라마, 소설, 인터넷 쇼핑의 나쁜 습관에 물들기 시작했고 안일함과 색욕심을 키워가며 대법제자의 사명을 잊어버렸다. 그 일로 어머니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 비록 밤이 깊어지면 나도 괴로움을 느끼고 후회했지만 각종 유혹 아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주변 수련생을 통해 나에게 “수련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하게 된다”고 점화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마치 희미한 물질이 나와 대법을 갈라놓은 것처럼 가족 수련생과 토론한 후 좀 깨어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또 속인의 물건에 흔들렸고 교란을 받았으며 도저히 법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서도 수시로 무감각하고 초조해했으며 휴대폰을 놓지 못했고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전히 잊었다.

친척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와서 내 상황을 보고 몹시 마음 아파하면서 “너의 이런 모습이 어떻게 구도를 기다리고 있는 너의 중생에게 떳떳할 수 있겠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나는 가까스로 분발했고 어머니와 함께 아침 연공을 시작했다.

첫날 아침에 발정념을 하고 나서 잠깐 잘 때 꿈속에서 나는 한 세계로 갔다. 그곳 산수는 수려하고 큰 바위들이 수림처럼 서 있었다. 나는 성문 입구에서 흰 천을 쓰고 흰옷을 입은 할머니를 만났고 할머니는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주 오래전에 그들의 왕이 더 높은 층의 신을 따라 세간에 가서 정법으로 악을 제거하러 가려 했다고 말했다. 만약 간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 왕은 그의 세계 중생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석림(石林) 광장에서 그들의 왕을 배웅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자 점점 더 큰 시공간 동굴이 생겨났고, 그들의 왕은 몸을 훌쩍 날려 거대한 날개를 단 백호로 변신해 동굴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당시 그들 모두는 헤어지기 아쉬워 통곡했다. 할머니는 거기에 앉아 있은 지 그렇게 오래됐는데 그들의 왕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거기까지 듣고 꿈속의 나는 이미 눈물범벅이 됐다. 은연중에 그 왕이 바로 나라고 느꼈다. 그런 고통과 슬픔, 내심의 감동으로 나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고 나는 꿈속에서 울면서 깼다. 그때 나는 대법제자로서 사람을 구하는 거대한 사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내 세계의 중생이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됐다.

그리하여 법공부를 강화하기 위해 나는 ‘전법륜’을 베껴 쓰기 시작했다. 내가 ‘전법륜’을 한 번 다 베껴 쓰자 마음이 차분해지고 안정된 것을 느꼈다. 세상의 유혹이 가볍고 옅게 변했고 점차 연기처럼 나와 멀어졌다. 법을 베껴 쓰는 과정에서 법에 대한 이해가 강화됐다. 신기한 것은 매번 내가 집착을 내려놓기 힘들고 고통이 억누를 때 내가 공책을 꺼내 법을 베껴 쓰기 시작하기만 하면 창밖의 먹구름이 가득하던 날씨는 바로 맑아졌고 한 줄기 햇빛이 유리창을 뚫고 내 공책을 비췄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빛으로 가득해졌다. 나는 사부님께서 줄곧 내 곁에서 나를 격려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반드시 집착을 제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베껴 쓰기의 좋은 점을 체험한 후 나는 또 ‘정진요지’, ‘정진요지2’, ‘정진요지3’을 한 번씩 베껴 썼다. 베껴 쓰는 과정에서 나는 마음을 수련하고 집착을 제거하는 중요성을 알게 됐고 대법의 층층의 내포를 깨닫게 됐다.

이전에 진상을 알리는 것은 저녁에 어머니와 함께 나가서 진상스티커를 붙이고 평소에 ‘9평공산당’, 진상 소책자 혹은 진상 CD를 배포하는 것이었다. 이후에 또 진상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때 게시판 주소나 지역사회 공고란 정보를 적어두었다가 등교할 때 차를 타고 한 바퀴 돌면서 진상편지를 우체통마다 넣었다. 당시 부쳐 보낸 진상편지는 상대방이 모두 거의 다 받았다. 우리 선생님, 같은 반 친구들 및 학교 책임자들은 모두 내가 보낸 진상 편지를 받았다.

이후에 우리는 또 진상 음성전화로 사람을 구했다. 그리하여 매일 저녁밥을 먹고 어머니와 함께 녹음 전화를 걸고 ‘홍음’을 외웠다. 어떤 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비가 오면 우리는 사부님의 시를 외웠다. “만리를 질주하며 요괴 진 쳐부수나니 흑수(黑手) 모조리 자르고 악한 신을 제거하노라 자욱한 안개 광풍 일 테면 일어라 한 줄기 산비(山雨)는 원정의 먼지를 씻어내네”[1]

2015년 장쩌민 고소에서 나와 어머니는 서로 협력해 현지 수련생들의 장쩌민 고소장을 정리한 다음, 주변 수련생들과 함께 인쇄해 우편으로 부쳤다. 이후에 연달아 배송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장쩌민 고소장을 부친 다음 날, 내가 시장에서 야채를 샀는데 사 온 수세미 한 줄기에 반짝반짝 빛나는 우담바라 꽃 두 송이가 활짝 피어 있었다. 나와 어머니는 그 수세미를 사부님 법상을 모신 탁상 위에 놓았다. 나중에는 수세미가 망처럼 됐지만 우담바라 꽃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나와 어머니는 신성한 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은 사부님의 격려임을 알았다. 그 맑고 성결한 우담바라 꽃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렸다.

사회에 나가 정진하며 착실히 수련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안정된 일자리를 찾았다. 일을 잘하기 위해 나는 7일 동안에 업무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전부 배웠다. 일하면서 나는 대법제자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타인을 위해 생각했으며 일에 부딪히면 겸허하고 참고 양보했다. 회사에서 연속 3번 승진했고 3년 연속 모범사원으로 선정됐다.

고령화가 심각해 대부분 직원의 기술이 낙후됐다. 회사 설비의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에 따라 회사 일부 고참 직원들은 스마트 오피스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는 회사의 젊은이로서 나와 상관없는 문제라 해도 누구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열심히 도왔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모두 아주 열심히 했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모두 마땅히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시간이 길어지자 동료들은 모두 나와 함께 일하기 매우 좋아했다.

한 번은 회사의 해외인증 아이템이 담당자 이직으로 보류됐다. 사장은 재삼 심사숙고해 그 항목을 나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 항목이 회사의 핵심 기술과 전문 외국어 능력에 걸려 있기에 일반 직종에서는 전문성이 부족해 감당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 소속은 행정업무여서 기술 방면에서 우세가 없었고 영어 실력도 4급이었다. 어떤 방면을 보아도 모두 감당할 수 없었다. 사장은 평소 내 업무태도와 능력을 인정하고 나에게 그 항목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하여 나는 사장에게 “최선을 다하겠지만 정 안 되면 회사에서 전문가를 찾아서 하세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 항목을 막 맡았을 때 나는 오리무중이었다. 나는 대리 판매업체가 제공해준 인증 요건과 견본 규격에 근거해 모든 서류를 준비한 다음 하나씩 번역했다. 그런 다음 해외 인증회사에서 심사를 받았다. 심사를 받은 후 20~30항목이 적혀있는 수정 건의서를 받았다. 그중에는 회사의 시스템, 제품 품질, 생산규범 등이 있었다. 나는 그것은 한 부서에서 완성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각 부서에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서마다 다른 시각을 갖고 있어 어려움이 아주 많았다. 나는 5개월 시간을 들여 그 항목을 완성했다. 동종 업계의 많은 전문 회사들은 1년이나 그 이상의 시간이 걸려도 결국 실패했다. 사장은 몹시 기뻐하면서 나에게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 20만 위안(약 3400만 원)의 항목을 회사의 인센티브로 계산한다면 나는 적지 않은 액수의 상여금을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 재무 등 방면의 원인으로 연말에 나에게 600위안(약 10만 원)만 주었다.

당시 기술사원이 외국에서 전문팀에 문의한 적이 있는데, 거의 인증 하나에 4천 위안의 가까운 자문 비용이 든다고 했다. 많은 동료가 회사에서 나에게 그렇게 한 것을 알고 투덜대면서 사장을 찾아가서 따지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는 수련인이 얻으려는 것은 수련경지의 승화이지 금전과 이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런 예를 드신 것이 생각났다. “어떤 사람이 그가 연공인(煉功人)임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당신들 연공(煉功)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데, 당신은 무엇을 가지려고 하는가?’ 그가 말했다. ‘남들이 무엇을 가지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가지겠다.’ 사실 그는 조금도 어리석지 않으며 상당히 똑똑하다. 바로 개인의 절실한 이익상에서 그는 곧 이렇게 대하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는 것을 중시한다.”[3] 내 가슴속에 기복이 있었지만 결국 담담히 내려놓았다.

행정업무를 담당하려면 회사 안팎에서 많은 사람과 만나야 한다. 지금 이 사회에서는 사례비나 촌지를 받는 일이 이미 다반사가 됐다. 만약 직무를 이용해 개인의 이익을 챙기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모두 정신이상이고 비정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대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할 줄 알기에 속인처럼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구내식당 구매를 담당하는데 많은 상인이 나를 통해 구내식당에 식품과 채소를 납품한다. 어떤 이는 은밀히 우리 집 주소를 묻고 어떤 이는 몰래 촌지를 주어도 나는 모두 거절했다. 이미 정해진 배송회사는 밥그릇에서 밀려날까 봐 명절 때면 나에게 물건을 보내려고 해도 거절했다. 그들에게 나는 수련하기에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일해야 하고, 남의 것을 공짜로 갖지 않을 것이며, 선물을 주고 주지 않는 데 따라 업무방식과 원칙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알려줬다.

직장이 안정된 후 나는 내가 배운 특기를 이용해 현지에서 법을 실증하는 기술 일을 맡아 하기 시작했다. 많은 노인 수련생이 우리의 격려로 밍후이왕 접속 방법을 배웠다. 나는 정기적으로 수련생들을 도와 시스템과 소프트웨어를 갱신했으며 수련생이 안전 조작을 규범화하는 것을 도왔다. 때로는 바쁘다 보면 조바심이 생기는데 가족 수련생이 기술을 의존하면 참을 수 없어 원망하게 된다. 그러다가 심성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아주 간단한 기술 문제에 부딪혀도 속수무책이 됐다. 매번 그럴 때면 어머니는 나에게 일깨워 주신다. “먼저 내려놓고 가서 법공부 해.” 법공부를 마치고 다시 가서 문제를 해결하면 대법이 주는 지혜가 끊임없이 나와서 물 흐르듯이 일이 순조로웠다.

자아를 돌파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중공 바이러스(우한폐렴) 기간에 나는 집에만 있었다. 어머니는 매일 바삐 보냈는데 주변 친척들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그들에게 아홉 글자 진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하셨다.

큰고모는 아파서 늘 병원에 입원하셨다. 이전에 어머니가 고모에게 진상을 수없이 알렸지만 듣지 않으셨다. 이번 중공 바이러스 기간에 어머니가 전화해서 고모에게 다시 진상을 알렸을 때 큰고모는 놀라면서 이전에는 우리 어머니가 말하는 재난을 믿지 않았지만 현재 적중했다고 말씀하셨다. 고모는 꼭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 날, 알게 된 것인데 고모의 요통이 줄곧 낫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염한 후 좋아져서 현재는 길을 걸을 때 목발 없이 걷는다고 했다. 주변 가족들은 듣고서 “파룬따파는 너무 신기하다!”라고 했다.

어머니가 조급해하시면서 사람을 구하는 것을 보고도 나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이 절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법공부를 하고 안으로 찾아 오랫동안 나만 위하는 사심이 있었기에 주변에 냉담했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전에 나와 사이가 좋던 친구, 학우,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 있는 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시각 나는 자신이 수련인답지 못하다고 느꼈다. 두려움과 이기심에 사람을 구하는 발걸음이 막혔다.

저녁 12시 발정념 할 때 눈앞에 용솟음치는 홍수가 나타났는데 모든 방이 잠겼으며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사방으로 도망갔다. 나는 그 장면이 사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제3장 공법을 연마할 때는 홍수가 하늘을 뒤덮는 광경을 보았다. 그때서야 나는 시간의 긴박함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현재 나는 서서히 가정 자료점 일을 하기 시작했고 달력을 만들고 인터넷돌파 카드, 진상 소책자와 진상 호신부를 만드는 것을 배웠다. 어떤 때 밖에 나가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직장에서는 동료에게 진상을 알렸다. 어떤 때 한 번에 똑똑히 알리지 못하면 시간을 내서 다시 알린다. 점차 주변의 사람들이 파룬따파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고 나중에는 진상을 받아 들이 수 있게 됐다.

올해 청명절에 나와 어머니는 외할머니 집에 갔다. 우리는 진상 호신부, ‘에포크타임스’ 신문과 진상 소책자를 가지고 한 집씩 배포했다. 거의 집집마다 수확이 있었고 중생들이 모두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날 오전, 우리는 모두 12명을 삼퇴시켰고 진상자료를 거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길에서 가다 만난 어린이들도 ‘안녕하세요!’라고 우리에게 인사했다. 사람들의 기대하면서 기뻐하는 눈빛을 보고 나는 내심 더없는 감동을 받았고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를 느꼈다.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대법 중에서 수련한 15년간 비틀거리면서 걸어왔는데 대부분은 내 사람 마음이 가로막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수련 중의 일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은 모두 좋은 일이고 오직 내가 수련을 견지한다면 반드시 성취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대법과 자신을 믿는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법으로 수련생들과 함께 용기를 북돋으려 한다. “대법제자, 당신들은 혼탁한 세상(濁世)의 금빛이며, 세인의 희망이며, 사부를 돕는 법도(法徒)이며, 미래의 법왕(法王)이다. 정진하라, 세간의 각자(覺者)들이여. 현재의 일체는 바로 미래의 휘황이다!”[4]

사부님께 엎드려 인사를 올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 ‘홍음2-정벌(征)’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스위스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3-축사(賀詞)’

 

원문발표: 2021년 4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4/18/4186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