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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청년, 정념으로 관을 넘어 수련의 의미를 명백히 하다

글/ 대만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02년부터 어머니를 따라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사찰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면서 불상을 보기만 하면 절을 했다. 그때 어머니와 함께 신을 믿기는 했으나, 신앙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나중에 힘든 일이 생기면 점을 보기도 하는 등 속인처럼 생활했다.

대법을 얻은 후 우리 집에는 큰 변화가 왔다. 집에는 원래 점쟁이가 준 검은 그림이 있었으나, 사부님의 법상을 모셔 온 날 떼어냈다. 그리고 사부님의 법상을 걸었더니 집안이 대뜸 밝아졌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 “집이 밝아진 것 같지 않아?”라고 했다. 그것은 우리가 대법에서 받은 첫 번째 느낌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법을 얻었기에 대법은 내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선 바로 사부님이시고 아이들을 아주 예뻐하시며, 내가 어리기에 장난을 쳐도 나무라지 않으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진정으로 대법을 인식하기 전의 내 느낌이었다.

그때는 어려서 대법이 좋다는 것만 알았고 수련의 의미를 몰랐다. 어른들처럼 어떤 계기가 있어서 대법 수련에 들어선 것이 아니기에 법 공부와 연공에 대하여 아주 신선하고 흥미롭다고 느꼈으며 잘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도 꿈속에서 일부 일들을 점화해주셨다. 나중에는 일찍 일어나야 하고 한 시간씩 ‘전법륜(轉法輪)’을 읽는 것이 힘들게 느껴져 지치기도 했다.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법 공부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엄숙한 얼굴을 하거나 사부님의 법으로 말하면서 “뒤처지면 어떻게 할 거냐? 바닥에 주저앉아 울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 등의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당시 겨우 8~9세인 나는 수련의 의미를 몰랐다. 다만 수련하지 않으면 버려질까 봐 걱정되어 수련에 대하여 압박을 느꼈고 배척하는 마음이 생겼다.

비록 이런 인상을 남겼으나,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매우 귀여워하셨다. 나는 아주 민감했기에 만약 수련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처음에 연공할 때 마(魔)가 와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 과정을 상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때는 정말로 무서워서 대법을 감히 접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법을 인식하게 되면서 그런 현상은 점차 사라졌다. 나는 줄곧 대법 환경에서 성장했는데 거기에는 어머니의 독촉과 대법이 준 깨달음이 동반했다. 우리는 편지를 부치고 수련생들과 함께 곳곳을 다니면서 법을 널리 전하고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렸으며, 전화하고 간단한 메시지를 보내는 등 각종 진상 항목에 참여했다. 나는 당시 재미있다고 느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주 감동적이다.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확고하게 수련하고, 내가 그 노정에 참여하게 한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이렇게 우리는 사부님의 보호 아래 성장하고 있다. 비록 여전히 적지 않은 관을 넘어야 하지만, 그런대로 평온하게 걸어오다가 2019년 4월에 거대한 관에 부딪혔다. 그러나 오히려 신적(神跡)을 목격하고 대법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목에 커다란 혹이 생긴 것이다. 어머니는 원래 몸이 좋았는데 많이 수척해지셨다. 당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줄곧 법 공부하고 발정념했으며 안으로 찾으면서 정상적인 생활을 견지했다.

나는 관을 넘는 기간에 연속 3일 동안 신기한 꿈을 꾸었다. 나중에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첫째 날, 꿈에서 집 문 앞이 물에 잠겼다. 나는 막대기로 물을 통하게 하고 문을 나서려 하였으나, 문밖은 이미 바다로 변했다. 바다에 몇 조각의 얼음이 떠 있었고 큰길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그 꿈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둘째 날, 꿈에서 나는 다른 공간의 생명에게 어머니를 박해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당당하게 내 어깨를 잡고 힘껏 흔들면서 “너는 법 공부했어? 연공했어? 수련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나는 “법 공부할 것이고 연공도 할 것이며 수련도 할 것이야!”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에 발정념할 때 내가 은수저로 혹에서 검은 물질을 긁어내고 있는 걸 보았다.

셋째 날, 일어나기 전에 꿈에서 한 사람이 나를 몸 안으로 밀면서 “너의 책임이야!”라고 아주 엄숙하게 말했다. 눈을 뜨고 보니 아침 5시 55분 발정념을 할 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깨닫지 못했고 이전에도 발정념을 그리 중시하지 않았기에 어머니 목의 혹이 갈수록 커지고 곪고 심지어 열이 나는 걸 보면서도 발정념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지 못했다.

바로 5월 13일 그날에 우리는 병원에 갔다. 그때 대법이 끊임없이 머리에 떠올랐다. 한편으로 대법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고, 두 가지 생각이 엉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느낌을 생각하면 아직도 괴롭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일체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정념을 확고히 하자는 생각밖에 없었다.

의사는 칼로 고름을 제거하고 또 몇 마디 말을 했다. 당시 나는 “괜찮다! 그것은 당신이 말한 것이고 나는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대법제자이고 사람을 구할 사명이 있다.”라는 일념만 있었다. 우리는 병원에서 한 달간 지냈고 내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대법이 내 마음속에 그토록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몰랐고 위험 앞에서 내가 대법을 그토록 믿을 줄 몰랐다.

그 한 달 동안에 어머니는 괴사조직을 제거하고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법 공부하고 연공해서 아주 많은 업력을 제거했다. 그리고 아주 큰 관을 넘었으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법 공부를 대량으로 하고 밍후이왕에서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읽는 과정에서 발정념과 밍후이왕의 중요성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 사부님의 대법과 수련생의 교류문장은 마치 맑은 물처럼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었다. 발정념의 중요성에 대해 아주 크게 승화하게 되었고 한 번 발정념하면 한 시간 했으며, 진정으로 발정념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체험하게 되었고 그 공간장이 깨끗해지는 느낌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웠으며, 마음은 평온했고 진정되었다.

우리가 관을 넘을 때 대법도 아주 많은 신기한 일을 펼쳐 보였다. 예를 들면 보통 사람들은 수술하고 마취제를 맞은 후 토할 수도 있고 허약하여 음식을 삼키지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마취에서 깨어난 후 평소대로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원기가 왕성했으며, 회복 속도도 빨라 의사도 의아해했다. 그 과정에서 나도 깨달은 것 같았다. 안으로 찾아 많은 집착을 찾아냈고 동시에 생명의 소중함과 수련인의 초상(超常)의 면을 느꼈으며, 대법제자 정체(整體)의 중요성에 대해 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

관을 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수련생이 도움이 되는 말을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위험 앞에서 수련생이 필요로 하는 것은 안으로 찾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구세력으로부터 사람을 빼앗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대법제자가 잘못한 것을 이유로 대법제자를 박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는 오로지 대법 사부님의 배치만 인정하고 그 외의 것은 모두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위기의 시각에 만약 수련생들이 정념으로 지지해주지 않고 오히려 수련생이 어떻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한다면 그것은 수련생을 밀어내면서 구세력에 “그가 어디에서 잘못했기 때문에 박해받는 건 당연하다.”라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 대해서 나는 아주 깊이 깨달았지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수련생들이 당시에 정념으로 지지해준 데 대해 감사할 따름이다.

이 경험으로 마음의 충격과 변화가 아주 컸다. 사부님께서 곁에서 보호해주고 계심을 느낀 것이 아주 많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 신기한 일만 예로 들겠다. 어머니가 수술을 받고 병실에 돌아온 후 나도 지쳐서 녹초가 되어 옆에서 쉬고 있었다. 내가 눈을 감는 그 순간 사부님의 법신이 노란색 가사를 입고 가부좌한 채 어머니 앞 상공에서 대수인을 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순간의 장면에 눈을 떴으며 그 후 멍해졌다. 정신이 들고 나서야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씀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온몸에 뜨거운 것이 흐르는 느낌이 들면서 더워지더니 정력이 충만해지셨다. 그리하여 졸지 않고 ‘전법륜(轉法輪)’을 공부했다. 그 후 어머니는 몸이 신속하게 회복되었다.

우리가 퇴원하고 집으로 온 그날, 나는 꿈속의 장면을 보았다. 원래 좋은 날씨였다가 비가 와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물에 잠겨 꿈속에서 본 것과 같았다. 원래 꿈에서 보았던, 바다 위에 떠 있던 것이 얼음이 아니라 길이었고 옆이 바다였는데 길의 일부가 물에 잠겼던 것이었다. 나는 이번 관에서 바다처럼 파도가 거센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남겨주셨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했고 모든 것이 안정되고서야 사부님 법상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그러고 나서, 이번 관에서 ‘수련이란 내게 무엇인가?’ ‘나는 왜 수련하려 하는가?’ ‘수련은 내게 무슨 의미인가?’라는 문제를 진정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대법을 인식하고 대법 속으로 걸어 들어간 시각으로 생각했다.

사실 그 관이 그렇게 크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2018년에 나는 흰색 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했다. 어려서부터 혼자여서 같이 놀 친구가 없었기에 그 고양이를 무척 귀여워했다. 수련하는 가정에서는 키울 수 없다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여전히 그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고 키우기 시작했으며, 잘 먹이고 잘 재우면서 인터넷에 올려 스타를 만들려고 했다.

친척 집에서도 흰색 길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와서는 서로 친구가 되게 하려고 두 마리를 함께 키웠다. 두 고양이는 성격이 아주 좋았고 귀여웠으나, 이로 인해 수련환경이 조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법 공부하고 연공할 때 그들을 피해야 하고 나가면 걱정이 되었다.

내가 이 관은 고양이와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다. 어느 날, 어머니와 내가 고양이 일 때문에 안으로 찾으려고 할 때였다. 마침 의사 선생님이 어머니의 검사 결과를 설명해주었다. 어머니의 병은 통상 위장에만 있고 목에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했다. 그러나 동물 배설물에도 이런 것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고양이를 키우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건 일반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수련인은 살생하지도 키우지도 말아야 한다.

꿈과 대조해보니 ‘너의 책임이다.’라는 말과 맞아떨어졌다. 그 모든 것은 원래 발정념의 중요성에 대해 별로 주의하지 않던 내게 틈을 타게 한 것이었고, 공간장에 너무 많은 사악의 요소가 쌓인 것이었다. 꿈과 대조해보니 바로 ‘당신은 수련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서 “이 난은 쌓일 수도 있는데, 이것이 많이 쌓이면 당신은 어떻게 넘을 것인가?”[1]라고 말씀하셨다. 게다가 나는 대법 수련에 대해 당연하다는 태도였고 어머니가 대법을 수련하여 대법 사부님의 보호를 받았기에 몸이 건강하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수련과 공간장 청리를 중시하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아주 컸는데, 그 관은 바로 나를 진정으로 일깨워줬다.

현재 그 관을 넘은 지 일 년이 되었고 그동안 여전히 많은 마음의 관이 있었다. 속담에 ‘상처가 아물면 아픔을 잊는다.’라고 한다. 잘 수련하지 못한 일면이 나타날 때면 나는 늘 나태해졌다. 그러나 수련은 바로 이런 것이다. 수련을 잘한 일면을 격리해놓고 다시 수련하게 한다. 현재 어머니와 나는 서로 다른 항목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달라진 것은 우리가 대법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중공(중국공산당) 바이러스는 법 중에서 수련하는 것이 정말로 소중하다는 걸 체험하게 했다. 다만 법을 얻은 지 18년이 되어서야, 방할을 맞고 나서야 진정으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아직도 여러 면에서 많이 부족한데 제자로서 정말 부끄럽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싱가포르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4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4/2/4228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