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수련생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일부 정체적으로 협력이 필요했는데, 협조하는 과정에서 나는 일부 사람 마음이 드러났다. 나는 지난 10년간 수련생 구출 항목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문제에 대해 ‘겸손’하게 수련생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사실 ‘겸손’의 배후에 내가 괜찮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이전에 안건을 진행해 성공한 적이 있고 비교적 많이 해봤으며 변호사와 접촉도 많이 해봤다. 그런데 지금 함께 하는 수련생은 예의가 없이 이렇게 말했다. “이건 좋지 않아요. 이렇게 하면 안 되죠. 동수님 생각은 전면적이지 않네요. 어떠어떠하게 해야죠. 동수님은 또 모 수련생과 협력하기 싫어하잖아요.” 사실 그녀가 말한 것이 모두 맞지는 않는다. 내가 그녀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하라고 했다.
나는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생각해봤다. 그 일 자체의 옳고 그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집착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음(忍) 속에 버림(捨)이 있나니”[1] 내가 이해하기에, 참음은 동시에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녀가 왜 나를 이렇게 대하겠는가. 내 집착심이 원인이 아닌가.
나는 안으로 자신을 찾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자주 함께한다. 그러므로 일부 인정상의 왕래가 있고 먹고 마시면서 일부 인정이 생겼다. 모르는 사이에 수련생 사이에 정이 생겼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늘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있고 그녀가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고 변호사를 만날 때 함께 가기 좋아했다. 또 한 가지 습관은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수련생은 전에 나를 아주 존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됐다. 또 구세력이 이러한 사람의 것을 이용해 수련생 사이에 간격을 조성했고 정체를 이루지 못하게 하고 교란하고 파괴하는 작용을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 사람의 어떠한 것을 섞든지 모두 극히 위험하다.”[2] 이런 문제를 찾은 뒤 나는 생각했다. 수련생에 대한 정을 내려놓고 정상적으로 왕래하고 어떤 사람도 의지하지 않는다. 나는 사부님이 계신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3]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해주신다. 그러므로 나는 신심이 충만하다.
집착심을 찾은 후 나는 평온하게 수련생에게 똑똑히 해석해 주었다. 그녀는 마지막에 180도로 변해 회신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 동수님이 저보다 더 경험이 있으시죠. 우리가 어떻게 협력해야 할까요?”
보기에 한 차례 모순이 생기려다가 이렇게 안으로 찾아 풀렸다. 우리 마음은 또 한데로 연결됐다. 진정으로 안으로 찾고 자신을 닦은 미묘함을 느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원용(圓容)’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뿌리를 캐다(挖根)’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1년 3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3/29/4227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