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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과 낭비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대법제자 중 특히 노년 대법제자는 대부분 절약하는 생활을 하며 먹고 입고 쓰는 것을 아낀다. 속인 이치로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이 알뜰한 것이며 근검한 살림살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수련을 시작했을 때는 집이 몹시 가난해 특별히 알뜰했다. 대단히 꼼꼼해 한 푼의 돈도 반으로 나눠 썼고 절약할 때는 한 푼도 쪼개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낭비가 심했고 특히 돈을 많이 쓰는 바람에 늘 이 일로 다퉜다. 그는 내가 너무나 쩨쩨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집이 부유하지 않으니 절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얼마 동안 남편은 시장에 갈 때마다 나를 불렀다. 일반인이 시장에 가면 한 번에 조금씩 사고 한두 번 먹을 정도만 사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셀러리를 살 때는 일반적으로 한 근이면 충분한데 그는 큰 묶음을 샀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두 줄기만 사면 우리가 충분히 먹을 수 있는데 그렇게 많이 사서 뭘 하려고요?” 남편이 받아서 말했다. “남는 건 버려야지.” 그는 곧 쓰레기통으로 가서 버렸고 나는 황급히 말했다. “하지 마요, 모두 돈 주고 산 거예요.”

다시 예를 들어 두부를 사면 일반적으로 한 모로 충분한데 그는 큰 판의 4분의 1을 샀다. 내가 그에게 그렇게 많이 사지 말라며 먹지 못하면 상한다고 하자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말했다. “상하면 버려.” 내가 다시 그에게 말했다. “그럼 그렇게 많이 사지 마요.” 그는 “당신은 뭐든 못마땅한 것 같은데?”라면서 단번에 ‘퍽’ 소리가 나도록 두부를 땅에 버렸다. 내가 황급히 말했다. “아이고, 당신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이건 모두 돈 주고 산 건데 왜 땅에 버리는 거예요?” 그는 내 말을 듣더니 단번에 두부를 발로 ‘콱’하고 밟아버렸다. “또 말해봐! 또 말해봐!” 나는 더 말해서는 안 되며 조바심이 입을 다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정말 아까웠다! 그래서 시장에 갈 때마다 이 일을 갖고 그와 다퉜다. 하지만 나는 수련인이고 항상 그와 그렇게 다툴 수 없었고 내가 닦아야 했다. 수련인 각도에서 이 일을 고려해 보면 분명 내가 틀린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왜 틀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 나는 머리가 아팠다. 우리 친정은 원래 부유하지 않았는데 알뜰하지 않은 남편을 만나 한 푼이 생기면 한 푼을 쓰게 됐으니 이 생활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그런데 갑자기 이건 속인의 이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법 속에서 닦아야 했다. 그렇다면 안으로 찾아야 하는데 찾기가 정말 쉽지 않았고 반나절을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이후 어느 날, 나는 법공부 중에 내가 남편을 눈에 거슬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하나의 관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알뜰하지 않고 생활을 하려면 절약해야 한다.’ 그가 내 이런 관념에 부합해야만 좋은 사람이었고 이런 관념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는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 이 관념이 나를 좌지우지한 것이었구나. 한 수련인으로서 우리는 속인의 관념으로 문제를 볼 수 없으며 마땅히 법의 각도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각기 운명이 있는 만큼, 누구도 누구를 책임질 수 없다. 당신의 친인이라고만 보지 말라. 이 세상에서는 당신의 친인이지만 내세에는 또 다른 어떤 사람의 친인일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생에도 다른 사람의 친인이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각기 운명이 있는 것이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하고자 해도 결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사람이 배치한 것이 아니라, 신(神)이 배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이 그들에게 그 무슨 고통이고 고통이 아닌 것을 남겨놓는 문제를 담론할 바가 못 되는데 이런 문제들은 일찍이 배치가 있다.”[1]

남편은 속인이며 사람의 일생은 모두 정해져 있고 일찍이 잘 배치된 것이다. 그의 일생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밥을 얼마나 먹는지, 채소를 얼마나 사는지도 일찍이 정해진 것이 아닌가? 사람의 기호에 따라 배치될 수 없고, 내가 좋아하는 절약에 맞춰 일생이 배치될 수 없는데 내가 얼마를 모으든, 내가 얼마를 얻든 불가능하다. 그것에는 모두 인연 관계가 있다.

이것을 깨닫고 나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바꾸지?’ 나는 아직 완전히 깨닫지 못해 시장만 가면 무서웠다. 그가 그렇게 많이 사는 것을 보면 아끼는 사람인 나는 마음이 아팠고 견디기 어려웠다! 견디기 어려워하는 이 마음을 대법으로 닦아야 했다.

나는 먼저 참아내야 했고 시장에 가도 더는 비싸다거나, 돈과 관련된 얘기나, 많다 적다 등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시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왔고 남편은 외출했다. 나는 내가 아까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 아까워하는 이 마음을 수련해버려야 했다. “장 선생님, 이리 오세요. 우리 남편이 산 채소를 다 먹을 수 없어요. 좀 드릴게요.” 나는 두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이웃에게 주었다. “이 선생님, 우리 남편이 너무 많이 사서 두부가 필요하다면 한 모 드릴게요. 청소부 아저씨도 한 모 드릴게요!” 이후에는 그렇게 남편이 많이 산 채소를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우리 이웃들은 항상 나를 고마워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아까워하는 마음을 내려놨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깨달은 듯이 말했다. “내가 채소를 이렇게 많이 사서 못 먹으면 상하겠지?” 그때 이후로 그는 먹을 만큼만 샀고 나에게도 많이 사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번은 내가 물었다. “왜 이렇게 적게 사요?” 그가 말했다. “그렇게 많이 사서 뭐 하게? 못 먹으면 버려. 당신은 정말 아낄 줄 몰라!”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는 다른 사람이 됐다. 나는 깨달았다. 그는 내 심성 제고 때문이었고 내 심성이 제고되니 그도 변한 것이었다.

절약은 중국인의 전통 미덕이며 사람의 도리다. 그러나 버림[捨]은 절약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속인의 득실에 집착하지 않고 이익을 중히 여기지 않는 법에서 수련해 낸 일종의 경지다. 한편 절약도 사람 관념의 일종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의 그 어떤 관념도 모두 장애이다. 나는 인류사회가 오늘까지 발전해 오면서 그것이 나타낸 휘황을 반대하지 않으며, 나는 또 인류가 오늘까지 발전해 오면서 인류사회에서 쌓아놓은 경험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수련자인 당신들은 반드시 사상적으로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보통의 속인, 그들은 이 휘황 속에 있을 수 있으며 그들은 사람의 관념 속에 생존할 수 있으나, 수련하는 사람인 당신들로서는 이런 후천적인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즉 내가 말한 이 이치는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어 수련하라는 것이다. 당신은 속인 중에서 생활하기에 당신은 속인과 같게 사업하고, 학습할 수 있지만, 당신은 사람의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2]

“왜냐하면, 수련자는 속인 중에서 쉽사리 관념을 형성하지 않으며 일체는 모두 법을 첫 자리에 놓고 법으로 미혹을 타파하며, 속인의 관념을 타파하고 법으로 일체를 가늠한다. 정념(正念)을 확고히 하고 법을 수호하는 외에 속인의 일은 하되 추구하지 말고 행하건 행하지 않건 모두 집착이 없어야 하며 고정 관념이 있어선 더욱 안 된다.”[3]

우리는 사부님의 이 부분 법과 대조하며 하나씩 깨닫고 있다.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어떻게든 법의 각도에서 사람의 관념을 제거하고, 사람 속에서 초탈해 나와야 한다. 우리는 사부님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이상은 우리 소모임이 법의 각도에서 공동으로 교류한 것이니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허스(合十)!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휴스턴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2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2/15/420828.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1/2/19/1910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