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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제자와 같이 있을 때의 수련 체득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제자의 작은 제고도 사존의 자비가 지켜주신 덕분입니다. 오랫동안 당문화(黨文化)에 잠겼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고 제고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사존께서 제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어린 제자(저의 외손녀)에게 저를 돕게 배치하셨습니다.

1. 자아를 놓아야 홀가분하다

저의 외손녀는 작년에 만 네 살이 됐습니다. ‘홍음’에 나오는 많은 시사를 외울 줄 압니다. 저는 외손녀에게 유유(悠悠)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외손녀는 자신을 ‘유유 아가’라고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저희 둘 사이에 모순이 생기고 대치 상황이 생길 때 손녀가 먼저 다가오면 곧 저에게 ‘유유 아가’라고 불러 달라고 합니다. 불러주게 되면 아이는 곧 제 말을 들어주곤 했습니다.

‘유유 아가’는 우리 집에 온 뒤 사소한 일로 자주 울음을 터뜨리곤 했는데, 끝이 없고 바닥에 드러누워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그때 저는 수련을 할 줄 모르고 화가 치밀어 원망하며 참았고, 참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대치하는 상황이 생겼고 저는 그 아이를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입니다. 유유는 기침하고 목이 다 쉬고 눈꺼풀까지 부었습니다. 매번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아이를 달래주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는 정말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집착심, 쟁투심, 자아를 지키는 등 이런 것들에 심하게 이끌렸습니다. 이제는 유유에게 “유유야, 정말 미안하다. 외할머니가 잘못했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더욱 사존께 깊이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제고하라고 있는 것인데 저는 오히려 사람 마음으로 대했고 기회를 또 한 번 놓쳤습니다.

한번은 제가 발정념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제게 와서 색연필을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즉시 화가 났습니다. 아이에게 “이건 교란하는 거야! 대법을 배웠는데 어쩜 이렇게 교란할 수 있니!”라고 훈계했습니다. 아이는 끊임없이 울었습니다. 저도 발정념을 못해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후에 그 일을 갚아주겠다며 사주기로 한 장난감을 사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쫓아냈습니다. “가, 너희 엄마한테 가! 여기 있지 마.” 저는 완전히 사람의 방법으로 아이를 대했고 아이는 한도 끝도 없이 울었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을 떠올리면 완전히 악하고 이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냥은 안 찾아 줄 거다. 내가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교란하려고만 해봐라.’

사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대법(大法) 일을 위해 더없이 좋고 더없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일까지도, 나는 모두 당신들의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고 당신들의 마성을 폭로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데 이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제고만이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1]

모든 집착(화, 고함, 보복, 공갈, 아이를 쫓아내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모두 저 자신이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덮어졌습니다. 그리고 한번 또 한 번 어린 수련생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유유가 집에 온 첫날부터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할머니, 제가 뭐하러 온 줄 아세요? 저는 대법을 얻으러 온 거예요.” 하지만 그날 밤, 법공부하자고 아이를 불러도 아이는 오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은 아주 괴로웠습니다. 원래 자기 전에 새로 배운 법을 외워야 하는데 제가 잘못한 탓에 어린 제자가 법공부를 그르쳤습니다… 저는 몹시 후회했습니다. 저는 꼭 잘해야 합니다! 다음에 꼭 잘해야 합니다!

어느 날 저는 아이에게 수공(手工)을 가르쳐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바빠서 밤 12시 발정념 시간이 다 되었을 때도 가르쳐주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하지 말고 내일 두 배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안 된다며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오늘 할머니는 주무실 생각하지 마세요.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2]를 외우세요. 할머니 혼자 외우세요. 열 번 넘게 외우세요.”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또 저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시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신용을 지키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와 수공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재미가 없고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고 또 새벽에 일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사랑과 미움, 전반 인류사회의 모든 것이 전부 이 정(情)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이 정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수련하지 못한다.”[3] “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3]라는 정에서 파생해 나온 것이 이기적인 것이며 즉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온갖 방법을 다해 어떻게든 자기 목적에 도달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바로 하려고 하는 것,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여기서 파생되어 나온 사상이라는 정을 닦아내겠다.’ 저는 마음을 내려놓았고 언제부터인가 잠을 잘 시간이라는 것을 더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같이 수공을 하는데 유유는 신경 써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의 태도는 정말 진지했습니다. 아이는 오직 열심히 하는 데에 집중했고 딴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자아’를 내려놓은 후의 가뿐함과 편안함은 이전에 경험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 ‘자아’가 없어지는 것은 이렇게도 행복한 일이구나!

2. 아이의 순진(純真)이 자기의 부족함을 비춰주다

네 살의 유유는 자주 저와 함께 전단을 배포했습니다. 아이가 바지에 한 번 오줌을 지렸는데 저는 다 젖은 솜바지를 만지면서 그만 나눠주고 얼른 집에 가서 바지를 갈아입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어떻게 해도 들어가지 않고 계속 나눠주는 것을 견지했습니다. 저는 안타까워하면서 또 한 번 추운지 물었습니다. “춥지 않아요. 춥지 않아요.” 아이는 대답하면서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2층 주택 앞에 왔는데 2층에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어 저는 1층에 놔두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계단으로 올라가 집주인에게 직접 전달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아이의 마음에 감탄했습니다. 다 젖은 바지를 입고 또 이렇게 마음을 써서 사람을 구하다니. 저 자신이 어떤 심태였는지 떠올려 보니 얼른 나눠주고 빨리 집에 가서 바지를 갈아입겠다고 생각했고 완전히 사람의 기점에서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집 앞을 지나는데 강아지가 크게 짖었습니다. 저는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면서 강아지가 있으면 나눠주지 말자고 했습니다. 뒤돌아보니 유유는 강아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유유는 강아지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며 진상 자료를 문 앞에 놔두었습니다. 강아지는 더는 짖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섭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유유는 강아지는 자기와 좋은 친구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네 살 아이보다 못했습니다. 강아지가 짖고 쫓아오는 것이 두렵고 주인이 나올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참으로 강했습니다.

한번은 어느 중학교에 가서 수련생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유유는 가방에서 진상 책자 두 권을 꺼내서 한 손에 한 권씩 들고 나눠주려 했습니다. 저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올라와 단지 주민들이 보는 것을 두려워했고 학교 경비원이 잡아갈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온갖 방법을 다해 아이의 손에 들고 있는 책자를 가방 안으로 집어넣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순수한 아이입니까. 아무런 후천적인 사람의 물질이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두려워하는 마음,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둘러싸여 진아(真我)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경우 정말로 자신이 이십몇 년을 수련해 왔지만 한 명의 아이보다 못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공원에 가면 유유는 늘 진상 전단을 몇 부 챙겨 친구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유유는 선생님이 좋은 일이 있으면 친구들과 나누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치원에서 유유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모든 친구에게 말합니다. 담임 선생님이 이 일을 알고 교감 선생님에게 보고했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딸에게 전화했고 딸은 무척 두려워했습니다. 저는 학교에 가서 교감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뵙고 진상을 알려드렸는데 20분간 이야기한 과정에서 그분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기뻐하며 배웅해주었습니다.

유유가 사람을 구하는 마음은 수시로 저를 감동하게 하고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저를 독촉했습니다. 아이는 자주 저에게 나가서 사람을 구하라고 일깨웁니다. 저는 더는 아이를 챙기는 것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았고 둘이 법공부팀이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 곧 법공부를 했는데 자기 전에 ‘홍음’을 외웠습니다. 또 등에 글자를 새겼는데 즉 손가락으로 법을 등에 쓰는 것으로, 법을 등에 새겨 마음에 기억하게끔 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어린 제자를 보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무릎을 꿇고 경배드립니다.

3. 관념을 바꾸어 밤 12시 이후에 법을 외우다

한 가지 관념이 늘 저를 통제했습니다. 바로 밤 12시에 발정념을 마치면 자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시간은 좋지 않고 귀신이 출몰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유 아가는 나중에 7~8일을 밤에 잠을 자지 않고(낮에도 자지 않았습니다.) 줄곧 새벽 1~2시까지, 제일 늦을 때는 새벽 3시 30분까지 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저는 너무 졸려 드러눕기만 하면 잠들었습니다. 조금만 잠을 잘 수 있어도 아주 행복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유유는 바로 주먹을 날리며 말했습니다. “잠을 자는 것은 행복한 것이 아니에요. 대법을 배우는 것이 제일 행복한 것이에요. 우리는 하늘에서 친형제였고 서로 도와야 해요. 얼른 법을 외우세요! 법공부 하는 것을 그르치지 마세요!”

아이는 생기가 넘치고 졸음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습니다. 왜냐하면, 새벽 연공 할 때 못 일어날까 봐 걱정해서(이 또한 집착입니다.) 스트레스가 아주 컸습니다. 유유는 정신을 차려 법공부를 하면 몸이 커질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이 말씀을 외웠습니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3] 하지만 못 일어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저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충분히 자지 않으면 낮에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했습니다. 저는 고통이 극에 달했으며 마음이 괴로워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습니다. 저는 힘겹게 이런 폐물들을 청리했습니다. (지금 보면 관념이 괴로워 발버둥 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 시사를 쓰셨습니다. “건곤을 다시 만들고 대궁을 바로잡고자 겹겹이 막는 저애를 돌파하네 정법은 낡은 먼지 씻는 것이 아니거니 동화갱신(同化更新)하여 대홍(大洪)에 진입하네”[4] 대충하면 걸어나갈 수 없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저에게 사람의 관념을 개변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은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고, 순서와 규정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하고 정해진 일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바로 저에게 이 천백 년 동안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깨라는 것입니다. 대법 책의 단락이 떠올랐습니다. “밝은 달이 가을바람과 함께하니 항아가 시 짓고 고쟁을 켜는구나 바람이 살랑여 풍경이 화답하니 하늘 선녀의 웃음소리 같구나 드넓은 만 리 장천 운해(雲海) 속 등불 같은 빛 한밤중에 천지를 밝혀주네 삼경이 지나도록 담소를 나누는데 달 아래 구름이 어른거리네 윤회 전전하면서 태어나 인간 세상 정처 없이 떠돈 것은 구도의 배에 오르기 위해서라네”[5] 저는 다시 못 일어날까 봐 걱정하지 않았고 자신의 일정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몇 시에 자야 하고 몇 시에 일어나야 하며 자신이 어떻게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 집착입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류 고유(固有)의 오랜 관념이 한 세트의 사업ㆍ사유방법으로 형성된 후에는 새로운 인식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 진리가 나타났는데도 그것을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배척한다.”[3]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동화하겠습니다. 깨닫자 아이가 잠을 자지 않는 상태가 멈췄고 사부님께서 도우시어 제자는 이 관을 넘었습니다.

한번은 우연히 사부님 법신의 눈이 벌건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애쓰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이성’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제자 중 정진하지 않는 사람, 극단으로 가는 사람은, 즉시 자신을 바로잡고, 진심으로 법공부하고 수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가장 위험한 중에 있기 때문이다.”[6] 사부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고통을 나는 다 알고 있으며 사실 나는 당신들 자신보다도 더 당신들을 소중히 여긴다!”[7] 저는 반드시 따라잡아야겠다고 묵묵히 결심했습니다. 아이가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저를 성취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십 년의 수련길에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1년 8개월 감금됐고 또 2년의 불법 징역을 당했으며 나온 후에 또 사오(邪悟)한 자를 따라 몇 년 동안 잘못된 길로 갔습니다. 낭비된 시간은 어떻게 채울 것인가? 더 많은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심지어 이런 배치를 교란이라고 깨달았습니다. 저의 정상적인 생활 방식을 깨기만 한다면 마가 교란하는 것으로 생각해 발정념하여 제거했습니다. 이를 좋은 일로 여겨 이 속에서 수련해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밤 12시 발정념을 마치면 저는 곧 작은 시계를 뒤집어 놓습니다. 시계를 보지 않고 한눈을 팔지 않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외우려는 것입니다. 보통 한 페이지를 조금 넘게 외울 수 있었고 다 외우고 시계를 보면 보통 2시나 조금 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알람을 5시로 설정하여 잠을 잤으며 5시에 5장 공법을 연마하고 6시에 발정념을 했습니다. 1~4장 공법은 기타 시간에 연마하지만, 가끔 게으름을 피워 제대로 연마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 7~8일의 고통스러운 시련이 없었다면 저는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힘들었을 겁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아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정말 마음속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부딪힌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당신이 오직 대법을 수련하기만 하면 모두 좋은 일인데, 틀림없다.”[8] 부딪힌 모든 고비와 어려움은 모두 사부님께서 제자를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밤에 법을 외우는 것은 좋은 점이 아주 많습니다. 이 시간에는 아무런 사람의 일에 걱정이 없고 환경이 조용해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간입니다. 특히 저는 세 살 된 외손자를 돌보는데 낮에는 마음을 가라앉혀 법공부를 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아이는 점심에는 잠을 자지 않고 밤에 아이가 잠들면 저는 졸려서 늘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그가 자면 저도 자고 12시까지 일어나서 발정념을 하고 이어서 법을 외웠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늘 저희에게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요구하시는데 저도 이 부분의 시간을 짜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관념을 바꾸어 중생을 구하다

예전에 저는 지지(吉吉, 유유의 남동생)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작년 겨울에 저는 딸을 대신해 유유를 등하교시키고 집에서 지지를 돌봤습니다. 두 살의 지지는 일어나자마자 애니메이션을 챙겨 봤는데 모두 외계인이 대전하는 주제였습니다. 이런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을 너무 해칩니다. 저는 곧 바꿔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틀었습니다. 아이는 울고 소란을 피우며 어떻게 해도 보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외손자가 근기가 아주 좋지 않다고 생각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이도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늘 저를 때렸습니다. 저에게 장난감을 던졌는데 하나씩 이어서 저에게 던졌습니다. 제일 오래 던진 것은 2분이었습니다. 아이는 늘 제가 안지 못하게 했습니다. 대부분 지지가 혼자 놀다 지쳐 소파에 잠든 후에야 제가 다시 그를 침대로 안아 옮겼습니다. 남편은 “지지는 왜 당신을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진 빚이라고 생각해 늘 억지로 참고 안으로 찾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딸이 시험 준비를 한다고 지지를 제게 보내왔습니다. 저는 관념을 바꾸어 생각했습니다. ‘지지가 여기에 오는 것은 대법을 얻으러 온 것이다. 나는 반드시 그를 선하게 대해야 하며 평소처럼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

그날 지지는 마침 제 맞은편에 앉아 저는 진심으로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사람이 된 목적은 대법을 얻기 위해서야. 여기에 왔으면 법공부를 하자꾸나.” 세 살의 지지는 제 말을 알아들은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날 이후 지지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지지는 매우 일찍 일어나며 보통 7시쯤에 일어납니다.) 바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애니메이션도 보지 않았고 그것을 잊은 듯하여 연일 7~8일을 이랬습니다.

아이의 전후 변화는 너무나 큰 것입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바르지 못한 관념은 중생을 해칠 것이고 중생이 구도 되는 것을 막을 것입니다. 관념을 바꾼 후 정념의 힘이 중생을 살릴 것입니다.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5. 사부님의 ‘물러선 자가 산다’라는 법(점화)이 나를 살리고 중생도 살렸다

다섯 살의 유유와 세 살의 지지가 함께 있으면 기쁠 때는 서로 쫓아다니면서 뛰어다니고 기쁘지 않을 때는 장난감 하나 때문에 싸웠습니다. 이럴 때 저는 곧 큰 소리로 외치곤 했습니다. “모두 조용히 좀 해 봐!” 유유는 할머니의 말은 안 들을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아이는 할머니가 좋은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 문화의 이런 명령하는 방식은 선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늘 아이들을 눌러놓으려 하니 아이들은 당연히 듣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아이인데 더욱 선한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또 한 번 저는 지키지 못해 유유에게 고함을 쳤습니다. 유유는 “할머니는 그만 좀 쟁투하세요. 아니면 할머니는 천국에 못 가실 거에요. 벌써 여덟 번이에요. 더는 기회를 주지 않을 거라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왜 늘 지키지 못하는 것일까요.

어느 날 지지는 남편과 놀러 나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지지는 바지를 입지 않은 채로 신발을 신었고 나갈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바지를 입히려고 하니 그는 어떻게든 신발을 벗지 못하게 했습니다. 바지통이 작아서 신발을 신은 채 결코 바지를 입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나가서 놀지 말거나 신발을 벗고 바지를 입은 다음에 나가서 놀라고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는 울면서 어떻게든 신발을 벗지 못하게 하면서도 나가서 놀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바지를 놓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더 아이를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더 심하게 울었습니다. 사부님의 법(점오)이 제 머릿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물러선 자는 산다.’ 저는 즉시 마음을 내려놓고 겨루려는 마음을 없앴습니다. 저는 바지를 다시 손에 들고 온화하게 지지에게 말했습니다. “나가서 놀자. 바지는 입어야지.” 저는 신발을 신속히 벗기고 바지를 입혔습니다. 아이도 울지 않고 나가서 놀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만약 제가 정말로 계속 대치하고 상관하지 않았다면 아이는 반나절을 울었을 겁니다. 정말로 그랬습니다. “한 걸음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이다.”[3] 자아를 내려놓으니 모순도 자연스레 풀렸습니다.

우리의 수련은 단지 자신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중생 또한 구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 모두가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 당신은 나를 구해야 한다고 하는데, 표현형식은 세간의 논리로 인식하는 그것과 같지 않다. 사람에게 부탁을 할 때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며 아주 겸손해야 한다. 당신이 나를 구해 주니, 내가 먼저 당신에게 감사드리고, 내가 당신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이런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보건대, 당신이 나를 구할 수 있으려면, 당신은 나의 층차에 도달해야 하고, 이 위덕이 있어야만, 당신은 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 위덕이 없고 당신이 나만큼 높게 도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나를 구할 것인가?”[9]

저는 깨달았습니다. 정법수련(正法修煉)에서 고비와 어려움에 부딪힐 때면 모두 중생이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잘 수련해 법의 표준에 도달해야 중생이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잘 수련하지 못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망쳤을지 모릅니다.

6. 당신이 선해지면 나는 말을 잘 듣는다

두 아이가 모두 저에게 와 저는 정말로 마음의 평형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딸에게 전화해서 네가 시험 준비를 한다 해도 아이 하나는 볼 수 있지 않냐고 말했습니다. 딸은 제가 자기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에게 한 명을 부탁한다고 하니 할머니는 유유를 택했지만 유유는 어떻게든 가지 않았습니다. 아이구, 두 아이 중 한 명도 가게 하지 못했으니 넘어야 할 관을 넘고 해야 할 고생을 하자. 사부님의 법을 떠올렸습니다. “사부가 한마디 더 하는데, 당신들의 매 순간은 모두 수련의 길 위에 있으며, 매 순간 모두 내가 당신들을 관리하고 있다. 스스로 교란을 찾아서는 안 되며, 최후 얼마 남지 않은 길을 잘 걷도록 하라.”[10] 사부님께서 관리하고 계시고 배치하고 계시니 저 자신에게 한가한 길을 배치하려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한 며칠을 생각하니 전동식 롤러 셔터가 한쪽은 높고 한쪽은 낮은 채로 내려오다 멈췄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제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한 것’을 일깨우신 것이 아닙니까? 새로 산 어르신용 휴대전화는 아직 사용할 줄 모르는데 두 아이는 손전등 기능을 켜서 이리 비치고 저리 비치며 아주 신나게 놀았지만 끌 줄을 몰랐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제가 ‘늘 타인의 문제점을 찾으려는 것’을 일깨우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이의 장난 앞에서 씬씽(心性)을 지키지 못하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가장 아끼는 침대보에 색칠하고 정수기 물을 온 바닥에 흘리고 세탁기를 빈 채로 작동시키고(아이들이 버튼을 누름) 북쪽 방 창문에 걸린 술을 전부 뜯어 바닥에 널어놓고 또 끈과 연결해서 목에 걸쳤습니다. 저는 정신이 없었고 아이들 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 저는 자주 화가 났으며 화를 내면서 아이들을 훈계했습니다. 어느 날 유유는 판지 하나를 가져오더니 저에게 ‘선하게 말을 한다’를 쓰고 하루씩 몇 번을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이는 수련인데 일반인의 일처럼 대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大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11] 저는 아이에게 좋은 말투로 말하지 않았고 훈계했습니다. 말투는 명령조였고 선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나대는 것을 보면 짜증 나고 그들이 저의 시간을 헛되이 쓰게 한다고 원망했습니다. 사실 이 과정은 바로 저에게 이런 것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에게 도리를 알려주지 않았고 절대적으로 따르라는 당 문화만 있어서 반드시 제 말을 들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아직 아이고 아이에게는 놀기 좋아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후에 저는 제 사상 반응과 심태, 말투에 신경 썼으며 아이들의 입장에 서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바로 얻기 위해 강요하고 압박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심란할 때 아이들이 쫓아다니고 떠드는 것을 보면 교란이라고 여겼고 기분이 좋을 때는 아이들의 장난을 보면 아이의 천성이고 천진하고 귀여웠습니다. 두 가지 심태에 결과도 달랐습니다. 모든 것이 모두 마음에 따라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유는 할머니가 선해지면 자기도 말을 잘 듣게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은사님이 어린 제자의 입을 빌려 저를 점화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마치 사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성자의 말에 따르면 착하기가 어린 양과 같도다”[12]

맺음말

원고를 쓰다가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습니다. 쓰는 과정에서 평소에 인식하지 못한 집착을 인식했습니다. 바로 이런 집착들을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수련생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진심으로 제게 상처받은 수련생들에게 사과를 드려 용서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더 간격을 두지 말고 함께 정진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을 완수하고 서약을 지킵시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인식의 한계가 있으며 단지 현재의 자그마한 인식이므로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재인식’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4]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건곤을 다시 만들다’
[5]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4-달을 보다’
[6] 리훙쯔 사부님 경문: ‘이성’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8]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9]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10] 리훙쯔 사부님 경문: ‘다시 방할(棒喝)하노라’
[1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청성’
[1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5-무엇이 신앙인가’

 

원문발표: 2021년 2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2/5/4174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