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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근본집착

글/ 미국 대법제자 후이천(慧晨)

[밍후이왕] 최근 ‘믿음’과 ‘근본적인 집착’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이 있어 여러분과 공유하고 교류하려 한다.

나는 수련하면서 줄곧 ‘믿음’의 내포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믿음’은 실제로는 보지 못하더라도 믿을 수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나는 수련하면서 신사신법(信師信法)이 수련의 근본이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이 ‘믿음’이 없다면 결코 수련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믿음을 해낼 수 있을까? 수련 중에서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기초로 해야 하는가? 예전의 나는 명확한 답안이 없었으나 최근에 일부 일 때문에 깨우침을 받아 믿음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사부님께서 “과거에 서양종교에서는 믿음을 말하고 동양에서는 깨달음을 말했는데,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 확고해야 한다는 것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말하는 ‘깨달음(悟)’, 그 상태는 바로 한 생명이 더 높은 경지로 동화될 때, 혹은 사부님께서 봉인된 우리의 선천적 특성을 열어 주실 때, 우리가 더 높은 경지의 진리를 자연스레 깨닫고 굳게 믿게 되는 것이다. 우리 생명의 그 한 부분이 이미 그 경지에 있으므로 그 경지의 진리를 자연스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이 역시 법에 녹아드는 체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갓 수련해 ‘전법륜’을 보았을 때 무궁무진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이 부분은 논리가 맞지 않는 것 같고, 저 부분은 내 관념과 다르다거나, 아니면 어느 부분은 앞뒤가 모순된다거나 하는 문제였다. 요컨대 무궁무진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 대량으로 법공부를 한 후에 그런 문제들이 다 없어졌다. 당초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았으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나는 모두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 문제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당시에도 이상하다고 느꼈다. 지금 보니 바로 법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내 생명을 승화시켜주시고 법이 나를 바꾼 것이었다. 내가 더 높은 경지에 있게 되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더 높은 법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 상태는 당연히 세간을 초월한 것으로서 오직 수련 중에 있기만 하면 사부님의 은혜를 통해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부님께 제도되는 과정이다. 대법 수련 중에서 이 과정의 가장 중요한 체현은 바로 우리의 법공부다.

사부님께서 ‘스위스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늘 말하지만, 나는 당신이 수련하여 제고할 수 있고 수련 중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법 속에 압축해 넣었다고 했다. 당신들이 비록 부동한 경지에 있지만 모두 내가 한 말이 얼마나 큰 무게가 있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아는가? 당신들이 얻은 그것에는 나의 얼마나 많은 것이 그 속에 용해되어 들어있는지를? (박수)”[2]

또한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이 한 부의 법, 그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있는가. 나는 나의 거대한 능력을 이 한 부의 법안에 넣었다. 그러므로 이 한 부의 법은 당신들에게 무엇이든 모두 해줄 수 있다.”[3]

사부님께서는 우리와 우리가 구하려는 중생을 대신해 산처럼 하늘처럼 거대한 죄업을 감당하신 외에, 바로 이렇게 법공부와 수련을 통해 우리를 끊임없이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해주셨다.

‘믿음’ 혹은 ‘깨달음’이 바로 생명이 끊임없이 우주 특성에 동화하는 과정이라면, 이 과정에서 수련자에 대한 요구도 계속 높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우리가 많은 지팡이에 기댈 수 있지만 최후에 이르면 모든 믿음은 생명이 진정으로 법에 동화된 데서 오며, 이렇게 해야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수련 초기에 사부님께서는 동방건강박람회에서 많은 사람에게 병을 치료해주신 것을 포함한 많은 기적을 펼쳐주셨는데, 그때 우리는 속인이나 마찬가지라 법과 연결될 수 있는 기초가 약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일부 ‘지팡이’를 주셔서 우리가 입문하도록 도와주셨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팡이’가 적어졌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지팡이’를 주시지 않는 것 외에 우리 자신이 예전에 만들었던 ‘지팡이’도 내버려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전에 우리는 일부 사람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관념과 대법 법리는 표면적인 관련성이 있었는데, 이런 관념을 우리가 인정함으로써 자신이 대법을 확고히 믿는다고 여겼다. 예를 들면 우리는 세간의 정치에 반드시 어떠한 구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여겼는데, 세간의 정치에 정의가 악을 이기는 표현이 나타나지 않자 곤혹스러워했다. ‘그는 하늘이 선택한 사람인데? 최후에 그는 왜 실패했을까?’ 일부 수련생은 심지어 이 일로 대법에 대해 미혹이 생겼다. 사실, 세간의 정치는 불법(佛法) 진리의 체현이 아니다.

나의 제한된 이해로 보자면, 대법이 제도함에 있어서 오직 사람의 마음을 구하는 것을 통해 그 마음을 개변시키지, 세간의 정치적인 힘이나 다른 힘의 펼쳐짐에 의존하지 않는다. 좀 더 명백하게 말하자면 그가 연임했다고 해서 대법이 진실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고, 반대로 그가 연임하지 못했다고 해서 대법이 진실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 두 가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지팡이도 버려야 한다. 예들 들어 일부 사람은 대법이 몸을 건강히 하는 데 기이한 효과가 있어 대법에 들어왔다. 현재는 당신에게 많은 수련인의 병업 표현이 속인과 같은 것을 보여주는데, 심지어는 세상을 떠난 이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 믿음의 기초가 동요되지 않았겠는가?

즉, 소위 ‘믿음’의 모든 잘못된 기초를 최후에는 다 제거해야 한다. 이런 정황에서 당신의 믿음의 기초가 도대체 어디에 놓여있는지 본다. 진정한 믿음, 표준에 부합된 믿음은 오직 생명이 대법에 동화해야 나오기 때문에 높은 경지의 우주 진리에 대한 인식과 확고한 믿음을 가져다준다. 그런 믿음은 외재적인 증명이나 버팀목이 필요 없는데 그것은 깨달은 생명의 본능이다. 그것의 표현은 결코 맹목적이거나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 자체가 바로 신의 가지를 받은 지혜의 승화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의 생명이 승화하는 진동을 느끼는 것보다 더 견실한 실증이 어디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나는 이런 ‘믿음’의 잘못된 기초가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근본적인 집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경문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를 복습해 이 점을 더욱 분명하게 인식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유럽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원문발표: 2021년 2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2/2/4194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