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농촌 출신으로 늘 진신진도(真神真道)를 찾던 중 1998년 5월 처음 대법을 얻었다. 그동안 각종 종교를 배웠지만 내가 찾던 것이 아니어서 어느 날 저녁 고뇌에 찬 마음으로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빌었다. “정법 수련을 찾기가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그날 밤 꿈에 많은 부처가 우리 집에 와서 식사하고 모두 떠났는데 그들이 무엇을 먹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중 한 부처가 서서히 ‘전법륜(轉法輪)’에 본 사존의 근영으로 변한 것을 보다가 갑자기 꿈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때. 스승님의 전신에서 하얀빛이 세 번 나타났다. 당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 한 사람이 ‘전법륜’을 가져와 나에게 파룬궁(法輪功)을 소개했다. 나는 그때까지 법을 배우지 않고 있었으므로, 그가 배우는 공이 어떤 것이고, 사부가 무엇을 책에 썼는지 알고 싶어서 책을 받았다. 처음 책을 펼쳐 사존의 근영을 보았을 때 사부님의 모습이 무척 낯이 익어 어디서 만나 뵌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갑자기 전신에서 흰빛을 발하는 사존의 모습이 또 현현했으며, 점차 전법륜의 사진 형상으로 변했다.
이것은 나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나는 전법륜을 통독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진신진도임을 알았다. 이어서 곧바로 다섯 가지 공법을 배웠으며, 법 학습과 연공을 한 지 며칠 만에 지병인 류머티즘과 바람이 불면 전신이 가렵고 오한이 나는 등 병원 치료로도 낫지 않던 만성 고질병들이 전부 깨끗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일절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건강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병이 없는 건강한 몸, 전신의 가벼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좋았다. 제자를 구도해주신 자비로운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지난 20여 년 동안 사부님께서 항상 홍대한 자비로 보호해주셨고, 법리로 점오해 주셨으므로, 나는 생사의 고험과 사람과 신의 선택 길에서 깊이 깨달았다. 굳건한 신사신법은 관을 넘게 해줬는데, 사존의 자비와 위대함은 무어라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7.20’ 이후 나의 수련 길은 굴곡과 어려움이 많았다. 세 차례 베이징에 가서 대법 실증을 했고, 공산 사당에 불법적인 판결을 받았고, 두 차례 가택수색을 당해 재산을 강탈당했다. 수련 중의 경험과 교훈은 한마디로는 다 설명하기가 어렵다. 박해 초기 수련생들에게 사부님의 경문과 진상 자료를 배포했고, 수련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자료점을 개설했으며, 지역의 협조인이 되었다. 이 기간은 나의 특수한 수련단계로서 심성제고 등 여러 방면에서 제고가 큰 시기였다. 오늘 그 시기에 겪었던 체험을 써내어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우리는 대법이 모함받고 대법제자가 박해당하던 초기에 사부님의 신경문을 볼 수 없었다. 중공 사당의 일언당인 언론매체가 대법과 사부님을 악의적인 모함으로 보도함에 따라 사람들은 모두 기만당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수련생들은 사당의 거짓말을 폭로할 방법도 자료도 없어서 초조하고 다급했다. 그때 시의 한 수련생으로부터 사부님의 신경문과 진상 자료를 가져가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즉시 받아왔고 수련생들에게 배부했다.
당시 임신 중이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가 힘들었으므로 그런 모습을 본 남편이 대신 시에서 받아온 경문과 자료를 수련생들에게 전해주는 일을 도와주었다. 자료를 전해주는 일이 며칠은 괜찮았지만 그런 일이 계속되자 남편은 두려워하게 되었다. 당시 마을마다 대법제자를 감시하는 사람을 파견하고 있었으므로 문밖출입을 할 때 항상 그들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남편도 더는 하지 말라고 했고, 수련생들도 자기 집에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남편에게 “대법 수련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는데, 대법이 박해를 당할 때 대법 수련자가 대법 일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당신이 안 한다면 나는 다시 천안문에 가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칠 것”이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남편은 내 결심을 보고 더는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협조자 역할을 하면서 수련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자료를 전달했다.
중공 사당의 대법제자 박해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환경도 긴장되었다. 어떤 수련생은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그 수련생에게 신경문과 대법 자료를 전달하는 방법을 천방백계로 신경을 써야 했다. 먹구름이 천지를 뒤덮어 환경이 사악할수록 수련생들은 모두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했다.
어떤 수련생 집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누가 가면 가로막으며 욕을 했다. 가족들 때문에 수련생이 신경문을 접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내가 직접 수련생에게 전해주었다. 그녀의 모친이 나를 보고 욕을 했다. 나는 그녀의 모친에게 오랫동안 진상을 알렸다. 그러자 “나는 너희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들이 박해받는 것이 두려워서 오지 못하게 했다”라고 말했다.
수련생 집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고, 길 양편에 키 큰 옥수수가 자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4킬로가 넘는 먼 길에 오직 나 혼자뿐이었다. 갑자기 무서웠다. 한참 걷고 있는데 뒤에서 전조등이 환히 비치면서 차가 오는 것 같아 급히 한쪽으로 피해서 차가 지나가도록 했다. 그런데 차자 지나가지 않는다. 뒤돌아보니 차는 없었다. 순간 나는 사존께서 보호해주시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사부님의 시를 외웠다. “중생을 제도하리라 품은 마음 스승을 도와 세상에서 행하네 나를 도와 法輪(파룬)을 돌리나니 법(法)을 이루어 천지간에 행하네”[1] 새로 신경문이 나올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주변 몇 개 마을의 수련생들에게 전해야 했고, 아무리 먼 곳이라도 최대한 빨리 수련생이 볼 수 있도록 늘 방법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몇 개 지역과 마을의 수련생에게 자료를 보내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필요한 만큼의 자료를 차로 운반해 집에 보관해 놓고 마을마다 다니며 전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힘들게 하면서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서 함께 법에서 교류한 후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즉 어느 지역에 교류회가 있다고 연락이 오면 나도 가서 참가하게 된 것이다.
사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당신들이 무엇을 하든지, 모두 자신이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거나, 대법을 위해 마땅히 어떻게 해야겠다, 또는 어떻게 해야만 이 법을 위해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모두 자신을 대법 중에 놓았는데, 당신은 마치 대법 중의 한 입자(粒子)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겼다.”[2] 나는 깨달았다. ‘나도 대법 중의 한 입자다. 무슨 일을 하든지 대법에 필요한 것이라면 나는 마땅히 가서 할 것이고 또 잘 하겠다.’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서 무엇을 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협조인이 된 것이다.
2001년 아들을 출산해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에서 자료를 받아오고, 한 달에 네 번 ‘밍후이 주보’을 수련생들에게 나눠줘야 하고, 법공부와 발정념도 해야 하고, 나가서 수련생들과 함께 진상 자료를 나눠주고 진상을 알려야 했다. 급히 집에 돌아와 아이를 돌보며 빨래와 식사준비를 해야 하는 등 온갖 집안일을 함께 했으므로 힘들고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 대법 일을 그만두고 싶었고, 다른 수련생을 물색해서 대신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사존께서 우리에게 일할 때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면 다른 사람도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아닌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뒷걸음친다면 그것이 대법제자인가? 그러나 내가 계속할 때 잘하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법공부를 할 때, 사부님께서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때는 마음을 써서 해야만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점화해 주셨다. 대법은 나에게 힘을 주었고 내가 굳게 견지해 나갈 수 있도록 해줬다.
시의 큰 자료점에 문제가 생겨 많은 수련생이 납치당했다. 시의 한 수련생에게서 차에 실려 있는 물건을 보관할 곳이 없으니 빨리 차를 가져와 실어가라는 연락이 왔다. 재빨리 한 수련생과 의논한 뒤 속인의 차를 빌렸고, 차주에게 진상 자료를 운반한다고 설명했다. 만약 일이 생기면 일체 책임은 우리가 진다고 말했다. 우리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만약 일이 생기면 속인은 우리가 그를 속였다고 말할 수 있고, 이는 대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에게 진상을 알려주자, 차주는 우리를 신뢰하고 차를 빌려줬다.
시에서 우리 집까지의 거리는 35킬로가 넘는다. 24시간 내내 경찰차가 순찰했고 서슬이 시퍼런 치안유지부대도 깔렸었다. 순찰차가 진상 자료가 보관된 수련생 집 앞을 지나간 뒤 우리는 재빨리 수련생 집으로 들어갔지만, 지금 짐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다음 날 새벽에 갈지를 상의할 때 수련생 가족이 “내일 아침 일찍 차가 많을 때 시내를 빠져나가라”라고 말했다.
나는 사존의 점화로 알고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는 휴식을 취한 뒤 법 공부를 하면서 사부님께 청을 드렸다. “저는 여성 수련생인데, 제가 할 수 있겠습니까?”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석가모니는 또 여제자가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을 연화색(蓮花色)이라고 불렀으며 역시 신통제일이었다.”[3] 사존께서 이미 저에게 신통을 주셨음을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12시 발정념을 마친 후 모두 잠시 휴식하고 3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그날 밤 꿈에, 하늘에 있는 입자가 보였는데 그 입자들은 대보살이었고, 무수한 입자, 무수한 대보살이 하늘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보니 꿈속에서 본 것과 같았다. 우리는 물건을 가득 싣고 보관할 장소를 향해 달렸다. 순찰차를 피해 복잡한 차량 행렬 속에서 순조롭게 시내를 빠져나와 수련생과 함께 안도의 숨을 돌렸다. 물건은 안전하게 목적지로 가져왔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진상을 똑바로 알리는 가운데 기다리지 말고 의지하지 말며 외재적 요소의 변화를 바라지 말라. 우리 매 사람은 모두 미래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매 사람은 단체 활동에 참가하는 외에도 모두 능동적으로 일을 찾아 해야 한다. 오로지 대법(大法)에 대해 유리하다면 모두 능동적으로 해야 하며, 능동적으로 해야 한다.”[4] 나는 매 수련생이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깨달았다.
큰 자료점이 파괴되어 우리는 시내 수련생의 도움을 받아 직접 실크스크린으로 진상 자료를 만들었다. 한쪽씩 그렸는데 앞쪽은 수월했지만, 반대쪽은 아주 힘들었다. 피곤하고 허리가 시큰거리고 등이 쑤셔 힘들었지만, 수련생과 함께 하룻밤에 1천 부 정도를 제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또 다섯 곳으로 나눠서 그리고, 현수막과 스티커를 붙이는 법도 배웠다. 몇몇 마을과 지역에서는 몇만 장이 필요했기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자지 못하면서 제작했어도 양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련생과 상의해서 등사기를 사 자료제작을 하기로 했다. 등사기는 전기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나는 등사기를 구매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협조하여 물품을 구매하고, 자료를 제작하면서 아이를 보살피고 가정일도 해야 했으며, 속인과의 대인관계도 유지하면서 수련생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야 했으므로 무척 바쁜 나날이었다. 그래서 매일 해야 할 일과 한 일을 메모로 기록했다. 하루 일이 끝나면 기진맥진해서 완전히 지쳐 있었다. 밤에 잠들기 전 어떤 일을 처리할 것인지, 어떤 일을 잘했고 잘 못 했는지를 생각하면서 준비해야 했으므로 법 공부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지역 수련생들이 더 많이 나가서 진상을 알리게 되었으므로 자료의 수요가 많아졌다. 당시에는 자료점이 많지 않았으므로 나는 자료제작을 책임지면서 자료를 여러 곳으로 배부하는 일까지 맡아야 했다. 설 연휴 때는 집마다 쉬기 때문에 진상 자료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으므로, 나는 바쁜 설맞이 준비보다는 진상 자료제작에 더 바빴다.
어느 날부터 법 학습을 해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법이 맘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는데, 여러 방면에서 교란이 왔다. 낮에는 온갖 일로 법 학습을 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매일 자정 발정념을 마치고 새벽 3시까지 법 학습을 한 뒤 잠들게 되어 연공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바쁜 농사철이 되면 더욱 바빴다.
그래서 법공부할 때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법을 베꼈는데, 바로 사부님의 말씀이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모두 정리해 좋은 것은 남기고 나쁜 것은 제거해 버림으로써 당신이 앞으로 수련할 수 있도록 보증하지만, 반드시 진정으로 대법(大法)을 배우러 온 사람이어야 한다.”[3] 그래서 나는 법을 베낌과 동시에 외우기로 했다.
법을 외무면서 더욱 많은 법리를 깨달았는데 통독할 때 이해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법을 외우면서 진정으로 “법에 기초해서 법을 인식”[6] 하게 되었다. 법을 외우는 것은 가장 좋은 수련상태를 보장해 주었다. 좋은 수련상태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더욱 잘할 수 있게 해준다.
이상은 수련과정에서 얻은 약간의 체득이다. 사존께서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내어 깨끗이 씻어주시고, 곤란에 부딪혔을 때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손을 이끌어 주셨다. 매 일보의 제고와 승화를 위해서 사존께서는 무량한 자비와 심혈을 쏟으셨다. 어떤 말이나 방법으로도 사부님에 대한 감은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가: ‘홍음-법을 돕다’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도항-북미 대호수지구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북유럽법회 전체 수련생에게’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干擾)’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원문발표: 2021년 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1/15/4168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