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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위하는 기점에 서서 대법 중에서 수련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은 노제자며 20여 년 수련의 길에서 많은 일을 겪었다. 지금 나는 몇 가지 감명 깊은 일을 수련생과 교류하고 사부님께 보고드리려 한다.

1. 안으로 찾고 심성을 수련하다

아내는 속인일 때 제멋대로 하고 따지기 좋아하며 화를 잘 냈는데, 나도 도량이 큰 사람은 아니다. 그 때문에 며칠에 한 번씩 다퉜다. 2006년 아내는 법을 얻었고 수련한 지 7, 8년이 되었지만 성격을 고치지 않았다. 특히 부모님이 우리와 함께 살게 된 후 아내는 늘 시부모와 다투었다. 나는 중간에 끼어 양쪽 시달림에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내가 참을 수 없는 한 가지 일은 아내가 법공부를 하면서 다투는 것이다. 1초 전에 법공부하다가 1초 후에 다투는데 다 다툰 후 또 책을 들고 법공부한다. 그래서 나는 다투는 원인은 그녀가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혹시 잘못하더라도 그들은 속인이며 어른이기에 용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수련인으로서 쩍하면 타인과 다투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격이 급하고 제멋대로이며 거짓 수련하는 것이 그녀에 대한 나의 제일 정확한 평가이다. 나는 잘못이 없는가? 아마 없는 것 같다. 언제면 끝나지? 지나친 바람을 갖지 말고 참자.

아내는 또 나의 부모와 다퉜다. 다 다툰 후 또 나에게 어머니, 아버지의 잘못을 하소연했다. 마치 큰 억울한 일을 당한 것 같았다. 나는 듣자마자 화가 났다. 그러나 겉으로는 부드러운 말투로 권했다. “당신은 시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며 그들과 다투지 말아야 해요. 사부님은 ‘물론 우리는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기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1]라고 말씀하셨어요. 효도, 효도, 무엇이 효도인가요? 거스르지 않는 것이 효입니다. 그들이 무슨 문제가 있으면 당신이 그들의 말을 거스르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없는 것이 아닌가요?” 아내는 즉시 태도가 돌변하더니 “더는 이 집에 있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하고 짐 보따리를 싸 집을 떠날 채비를 했다.

가출은 아내의 상습적인 행동인지라 나는 익숙해졌다. 그녀는 늘 친구 집이나 직장에 가 며칠 있다가 화가 가라앉고 내가 달래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문에 나는 아내를 막지 않고 계속 말했다. “당신은 안으로 찾아요! 착실히 수련해요!” 아내는 “나는 안으로 찾지 않겠어요! 나는 자신을 수련하지 않겠어요!”라고 한마디 던지고 머리도 돌리지 않은 채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화가 나면서도 어쩔 수 없어 ‘이것이 어디 수련인의 모습인가! 거짓 수련이며 전형적인 거짓 수련이다!’라고 생각했다.

그 후 한 달 넘게 갈등은 끊임없이 증폭되었다. 전화해도 아내는 받지 않고 문자를 보내도 답장하지 않았다. 나중에 아내는 아예 나를 차단했다. 그 후에 들으니 집을 임대해 오래 살 작정이라고 했고, 더 후에는 아내가 이번에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며 나와 이혼하겠다고 큰소리쳤다.

나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내가 부모 편을 들고 자신을 감싸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부모와 아내라는 저울 앞에서 부모 편을 좀 드는 것은 마땅하며 그것은 효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른이다. 또한 아내는 수련인이며 수련인은 수련인의 요구대로 해야 한다. 법으로 아내를 요구하는 것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닌가? 아내는 왜 알지 못할까?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지 몰라 나는 수련생과 교류했다. 수련생은 아내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시부모와 다투는 것은 옳지 않고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하며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자신을 찾아야 하고 내려놓지 못한 마음이 있는지 찾아보고 닦아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나와 아내에 대해 똑같다는 개괄적인 말이다. 나는 수련생이 아내를 말한 그 부분-그녀는 확실히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는 말은 인정하지만, 나를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고 적어도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들이 다투었는데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나보고 안으로 찾으라 하는데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그러나 안으로 찾으라는 것은 옳은데, 왜냐하면 그것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기 때문이다. 나도 안으로 찾으려고 했지만 찾지 못했다. 다시 말하자면 근본적으로 찾을 방법이 없었다. 찾기만 하면 아내의 옳지 않은 일이 바로 생각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러 해 전의 과거지사가 눈에 선했고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일도 사실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찾지 않으면 마음이 조용한데 찾기만 하면 바다를 뒤엎을 것처럼 격동되는데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찾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안으로 찾는 법리를 말씀하셨고 또한 우리는 모두 대법제자이며 가정을 마땅히 화목하게 돌봐야 한다.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1] 지금 모순이 끝이 없는데 수련 중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나는 애써 생각했지만, 방향을 몰라 하루하루 인내하고 생각했다.

포기하려고 할 때 한 갈래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사부님의 한 구절 법이었다. “한 수련자로서 닦는 것은 자신을 닦는 것이다.”[2] 그렇다. 수련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데 수련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늘 아내를 주시하고 그녀의 이것이 법에 있지 않고 저것이 법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모두 타인이 어떻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것이 수련인가? 타인의 옳지 않은 것만 찾는데 그것은 타인을 수련하는 것이다. 눈길을 돌려 자신을 보고 자신의 어디가 옳지 않으면 바로 잡는 것이 수련이다! 나는 수련을 한 지 10여 년이 되어서 오늘에야 수련은 원래 이런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처음부터 알려주신 것이다.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우리가 매일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안으로 찾지 않았다. 혹은 찾을 방법이 없거나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눈길을 타인에게 돌렸으며 이것이 우리가 안으로 찾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구우주의 이기적인 본성으로, 문제에 부딪히기만 하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책임을 타인에게 밀어버리고 자신을 수호하는 이것은 이미 본능이 되었고 자신은 느끼지 못한다. 법의 요구와 상반되어도 모른다. 이런 관념은 원망을 형성하고 물질이 형성되며 사상업이 형성되어 그것이 우리가 안으로 찾는 것을 저애한다. 나는 자신의 사상을 바로잡고 그것을 해체하겠다! 타인이 어떻든지 나는 자신만을 찾겠으며 이것이야말로 안으로 찾는 것이다!

내가 이 층 법리를 깨달았을 때 나는 이전에 필사적으로 찾던 사람마음, 집착이 뜻밖에 자동으로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 나는 부모를 너무 중하게 보았고 상처를 받을까 봐 두려워했는데 이것이 정(情)이다. 효도는 두터운 정이 아니며 이치를 중히 여겨도 효도할 수 있지 않은가? 과도하게 부모를 옹호하는 것은 무형 중에 아내에게 상처를 주었고 이것은 편애하는 마음이다. 아내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책임을 그녀에게 떠넘겼으니 이것은 이기적인 마음이다. 자신을 고치려 하지 않고 타인을 고치려고 하며 속인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하고 수련인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수련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이야말로 진정으로 수련이 차하다……

내가 진심으로 자신을 찾았을 때 기적이 나타났다. 어떠한 징조도 없는 상황에서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뿐만 아니라 기분이 매우 좋았고 마치 모순이 발생하지 않은 듯했다. 이것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데리러 가지도 않고 달래지도 않았는데 혼자 돌아온다?’ 이러한 선례는 없었다. 나는 놀랐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이것이 법의 위력이 펼쳐진 결과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단번에 안으로 찾는 현묘함을 체험했다. 안으로 찾는 것은 수련방법이며 안으로 찾는 것은 제일 빠른 심성제고이며 대법에 동화하는 제일 빠른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안으로 찾는’ 것은 법이며 그것은 업력, 패괴된 물질을 해체할 수 있고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안으로 찾는 것을 알게 된 후 나의 수련은 비약이 발생했고 아내의 변화도 매우 큰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 알았고 모순을 해결할 비결을 찾았다. 우리는 타인의 각도에서 문제를 생각하고 상대방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마음이 평화롭고 온화한 태도로 소통하는 것을 배웠고 모순이 풀렸다. 지금 우리는 화목하고 금실이 좋다. 아내는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 가정도 일찍 깨졌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에 감사드린다!

2. 신사신법,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다

우리는 현성(縣城)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시골에 출근한다. 내가 일하는 곳엔 수련생 세 명이 있으며 나까지 모두 네 명이다. 우리는 동료이고 거의 함께 대법을 얻었다. 99년 악당이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한 후 우리 네 명은 타격 대상이 되었다. 파출소와 직장은 우리에게 압력을 가했고 소위 ‘폭로 비판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두 수련생은 즉시 썼고 다른 한 수련생은 쓰지 않았지만 나에게 알려주지 않아 나는 후에야 그가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직장에서는 나만 쓰지 않았다고 속였다. 법리가 똑똑하지 않고 두려운 마음의 농간에 나는 마음을 어기고 그들 중의 한 부를 베껴서 대처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다년간 가슴속에서 지울 수 없었고 수치로 여겼다.

2008년, 2010년 ‘폭로 비판서’를 쓴 두 수련생은 40여 세의 젊은 나이에 병업 형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현지에 매우 큰 부정적인 영향을 조성했다. ‘폭로 비판서’를 쓰지 않은 수련생은 매우 안정되게 걷고 있다. 나는 수련생이 세상을 떠난 것은 그해에 쓴 소위 ‘폭로 비판서’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수련생도 이런 관점이었다. 아마 그해 대법을 배신해 구세력이 약점을 잡고 박해한 구실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이 관점이 법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동시에 희미하게 자신도 구세력의 박해를 당하지 않겠는가 걱정했다. 이 걱정은 옳지 않지만 나는 즉시 부정하지 못했다. 나는 박해를 당하면 안 되며 구세력이 예전 수단을 그대로 행하고 중생이 구도 받는 것을 저애하게 해선 안 된다. 그러나 이런 부정은 강도가 약하고 철저하지 못했으며 무력해 그것을 소멸하지 못했다. 단지 그것을 내리누른 것 같았다. 시간이 좀 지나 조심하지 않으면 그것이 또 나왔다.

2010년 나는 3, 4개월 동안 미행당하고 감시당해 매우 큰 압력이 생겼다. 후에 현지 국가안전보위부에 납치당했다.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나온 후 몇 년 동안 줄곧 정진하지 못했으며 또 어머니가 병환 중이어서 마음이 우울했고 수련을 느슨히 했다. 2014년 배가 아픈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잠시 가벼운 증상이 나타났지만, 후에 갈수록 심해졌다. 2015년에는 이미 심한 고통을 참기 어려웠고 토하고 설사하면서 몸이 급격히 여위었고 3~4개월 동안 살이 15~20kg 빠졌다. 현기증이 나고 밤새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얼굴은 핏기가 없었다. 그 기간에 나는 이 상태를 고치려고 분발했다. 예를 들면 법공부를 많이 하고 안으로 찾고 발정념을 하고 수련생들을 청해 발정념으로 도와달라고 했으나 모두 소용이 없었다.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몰라 힘들고 당황했다. 이때 사람마음, 부정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이 몇 년 동안 수련을 느슨히 해 신체가 속인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잘하지 못해 사부님께서 나를 상관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내가 정말 병을 얻은 것인가? 왜 이 증상이 갈수록 위궤양 같은가? 온통 헛된 생각만 했다. 그때 자신이 수련을 착실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깊이 느꼈고 수련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 다른 사람이 병업관을 잘 넘지 못했다고 늘 질책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병업관이 작았거나 혹은 길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에야 알았다. 병업이 심각하고 길어질 때 잘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나는 마음이 확고하지 못해 흔들렸다. 좀 있다가 마땅히 신사신법(信師信法)을 해 계속 난관을 넘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좀 지나면 차라리 난관을 넘는 것을 포기하고 병원으로 가 고통을 줄이자고 생각했다. 낙담하고 도움도 없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2015년 연말 나는 외지에서 운전면허 시험을 보았다. 자동차 연습장에서 갑자기 위가 한바탕 뒤집히더니 비린내가 나는 것이 목구멍으로 밀려와 토할 것 같았다. 당시 주위에 사람이 많아 억지로 참고 삼켜버렸다. 그 후 갑자기 현기증이 나더니 ‘펑’하는 소리만 듣고 넘어졌고 아무것도 모를 줄 누가 알았으랴.

사람들은 나를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120으로 전화했다. 얼마쯤 지났는지 나는 깨어나서 120을 거절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나는 괜찮으며 여관에서 휴식하면 괜찮아진다고 말했다. 여관은 6층인데 나는 거의 두 시간을 기어갔다. 방문을 열고 앉기도 전에 설사할 것 같아 급히 화장실에 가 반나절 일을 보았고 온통 시커멓고 끈끈한 것들로 보아 위출혈인 것 같았다. 일을 다 본 후 침대에 가려 했으나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변기에 주저앉아 잤다. 몇 시간이 흐른 후 좀 회복되어 침대까지 힘들게 갔다. 잠들었는지 아니면 기절했는지 이튿날 깨어났을 때 전날 밤의 어떤 기억도 없었다.

깨어나니 날이 훤히 밝았다. 나는 회복된 기회에 급히 차에 앉아 집으로 갔다. 아내는 내 얼굴과 이마 몇 곳에 멍이 든 것을 발견했다. 그제야 나는 전날 자동차 연습장에서 넘어져 얼굴을 다쳤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내에게 발생한 정황을 알려주었다. 아내는 좀 놀라고 두려워했다. 아내는 나에게 병원에 가겠는지 물었다. 당시 이상하게 ‘폭로 비판서’를 썼기에 구세력에게 박해 치사당한다는 염두가 또 올라왔고 심장이 ‘덜컥’하더니 더욱 자신이 없어졌다. 가보자. 지혈제를 처방받아도 좋고 무릇 난관을 뚫으면 더욱 좋고 난관을 넘지 못하면 구세력에게 육신을 빼앗기면 안 되고 사람들을 방애하면 안 된다. 사람은 정념이 부족하면 이렇게 문제를 생각할 것이며 또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낄 것이다.

원래는 병원에 가 지혈제만 처방받으려고 했는데 의사가 나를 놓아주지 않고 입원해야 한다고 요구할 줄이야. 그들은 위험을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는 입원했고 혈색소가 5g(정상인 15-20g) 남짓 남아 있어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수혈을 요구하자 나는 거절했다. 솔직히 말하면 3일 입원하였던 동안 마음이 아주 괴로웠다.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병원에 누워있으니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그래서 문제가 생겨도 의사에게 책임이 없다는 각서를 쓰고 일방적으로 퇴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동에 나의 누이, 여동생들이 놀라 크게 항의했다. 나는 만약 2주 정도에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상급병원에 가겠다고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2주가 지났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상1급 병원에 갔다. 의사는 위에 특대 궤양이 있어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갓 퇴원한 나는 이미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나는 절대로 입원해 수술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약을 지어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약을 먹었지만, 호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신이 아팠고 내장 전체와 허리, 등까지 아팠다. 저녁에는 화장실에서 선혈까지 보았다. 끈적거리고 붉고 비리고 거품까지 일었다. 매번 한 숟가락 넘게 보았고 30분에 한 번씩 밤새도록 배설했다. 나는 거의 녹초가 되었다. 아내는 놀라서 남몰래 울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병원에 갈까, 아니면 정념으로 난관을 돌파할까? 나는 생명의 관건적인 시각에 한 결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냉정히 자기 생각을 정리했고 정념으로 난관을 돌파하려고 결정했다! 자신을 사부님께 맡기자! 이 결정은 빠르지만 단호한 결정이었다. 심사숙고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대표하는 바르고 솔직한 결정이었다. 나의 내심 깊은 곳의 일종 각성이었다.

나는 갑자기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생각났다. “한 신선이 어찌 속인에게 병을 봐 달라고 할 수 있는가? 속인이 어찌 신의 병을 볼 수 있겠는가? (박수) (웃음) 이는 법리(法理)이다. 그러나 항상 표현됨이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강한 정념이 없고 잘 파악하지 못할 때 그러면 당신은 가도록 하라. 마음속으로 안정하지 못한 그 자체가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시간을 끌어도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체면을 위해 견지하는 것은 더욱 집착에 집착을 가하는 것이다. 이때 단지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혹은 병원에 가서 고비를 넘는 것을 포기하거나 혹은 마음을 끝까지 내려놓고 당당한 대법제자처럼 바라는 것도 없고 집착도 없이 떠나든 남든 사부의 배치에 따르는 것인데, 이 한 점을 해낼 수 있다면 바로 신이다.”[3] 그렇다. 약도 먹었고 병원에 입원도 해 보았다. 좋아졌는가? 속인병원에 의지한 결과 갈수록 심각해졌다.

지금 나의 머릿속에서 줄곧 망령처럼 사라지지 않는, 소위 ‘폭로 비판서’를 썼으니 박해 치사당한다는 관념, 나는 단번에 그것의 황당함을 간파하고 그것의 배후의 요소와 목적을 끄집어냈다. 구세력이 이렇게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사부님은 자비로워 매 대법제자에게 새 출발 할 기회를 주신다. 구세력은 결정할 수 없다. 하물며 나는 이미 엄정성명을 썼다. 그 관념은 절대로 나의 내심의 진실한 인식이 아니며 구세력이 나에게 강요한 것이다. 단지 내가 법리가 똑똑지 않아 구세력의 사유방식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무형 중에 그것을 인정한 것이다. 나의 인정으로 구세력의 박해를 초래한 것이다. 나는 마땅히 그것을 부정해야 하며 그것의 배후의 요소를 해체해야 한다.

나는 또 자신의 내심 깊은 곳에 사부님과 법을 믿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병원으로 가고 약을 먹고 입원을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아마 문제의 근원이며 모호해서는 안 된다. 나는 또 자신에게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죽으면 대법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이 두렵고 마음속으로는 생사에 대해 간파하지 못한 것을 숨겼다. 무엇 때문에 죽는 것을 생각하는가? 자신에게 사람마음이 없는데 누가 감히 대법제자를 박해해 죽게 하는가? 얼마나 큰 손해를 보았는가, 마땅히 깨달을 때가 되었다.

정념을 견정히 하자 비록 여전히 배설했지만, 마음이 안정되었고 자신이 괜찮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배설하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았다. 이튿날 아침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아내는 입을 열면 울까 봐 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평온하게 전화를 받았다. 동시에 아내와 내 생각을 소통했다. 그녀도 정념이 생겼다. 아침 식사를 한 후 아내는 몇몇 수련생을 불러 나를 도와 발정념을 했다. 점심때가 되자 마침내 피가 멈추었다. 여러 수련생은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했다.

이튿날 출근 시간이 되자 나는 차를 운전해 시골로 출근했다. 매형이 안심되지 않아 막았지만, 나의 태도가 견정한 것을 보고 가게 했다. 직장에 도착한 후 나는 마실 것을 마시고 먹을 것은 먹으며 할 것은 다 했다. 신체는 재빨리 회복되었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완전히 정상이 되었다.

3. 정체협조, 구도중생

법공부를 통해 나는 대법제자는 대법 정체의 한 작은 입자이며 신 우주를 조성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대법제자는 서로 관련이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다.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며, 당신의 일이 바로 그의 일이다.”[4] 매 한 대법제자가 수련이 어떻든지 다른 수련생과 얽힐 수 있는 동시에 정법의 노정에 영향 줄 가능성이 있다. 그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지 다른 수련생을 고려해야 하며 정체 협조해야 원용불패(圓容不破)한 정체를 형성할 수 있다.

사람을 구하는 항목에서 나는 주요하게 ‘후방근무’를 감당했습니다. 자료점에 소모품을 제공하고 다시 자료점의 자료를 법공부 장소 혹은 수련생에게 전달한다. 일하면서 나는 먼저 개인의 안전에 주의했다. 악에게는 자료점이 눈엣가시이다. 늘 자료점과 법공부 장소를 빈번하게 왕래하기에 부득불 안전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개인 안전은 단지 개인의 안전이 아니며 다른 수련생, 심지어 정체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기에 나는 안전에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주의하면 정체는 더욱 안정된다. 내가 잘하지 못해 수련생에게 안전 우환을 가져온다면 나의 잘못은 회피하기 어렵다. 나는 우리 이 작은 정체의 일부분이고 하나의 입자이기에 반드시 우리 이 작은 정체를 책임지고 절대로 생각 없이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여기에서 한마디 언급하려고 한다. 우리 어떤 수련생은 너무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휴대폰을 가지고 법공부 장소에 온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번 휴대폰 안전을 말씀하셨는데 그는 듣지 않는다. 여기에는 당연히 심성문제가 있으며 아마 이 방면의 법리가 똑똑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는 정체라는 관념이 없어 타인의 안전 각도에서 문제를 보지 않고 자신을 개인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편리함만 추구하고 타인 혹은 정체의 안전을 개의치 않는다.

그다음 나는 매우 주의를 기울여 수련생을 보호한다. 어느 날 저녁에 오토바이에 일남일녀 수련생을 태우고 시골에 가 자료를 배포했는데, 길 가운데의 양쪽은 가게여서 두 수련생은 각자 한 쪽의 가게를 책임지고 자료를 던져 넣었고 나는 길 중간에서 오토바이를 밀고 갔다. 뜻밖으로 남 수련생이 속인에게 발견되었다. 나는 급히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그를 데리러 가려 하는데, 내 뒤에서 누군가 “두 사람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가려고 해요. 빨리 쫓아가요!”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신속하게 떠났다. 한동안 달린 후 여자 수련생이 걱정되어 남 수련생에게 숨으라고 하고 다시 돌아와 여 수련생을 찾았다. 도중에 마주 오는 오토바이를 만났다. 나는 반복적으로 관찰했는데 보아하니 우리를 쫓아오던 사람 같았다. 그들을 보니 빈 차고 또 반대 방향인 것을 보고 나를 지나가게 했다.

나는 여 수련생을 찾았으며 또다시 되돌아와 남 수련생과 만나 세 사람이 함께 돌아갔다. 한동안 지나간 후 앞길에 등불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 우리를 쫓아오던 그 오토바이는 길옆에 멈추어 서 있었는데 아마 우리를 따라잡지 못하자 집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차를 타고 가면서 발정념을 했다. 그들 앞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우리에게 “당신들은 어디 사람이에요? 뭐 하는 사람이에요?”라고 물었다. 우리는 떳떳이 “부근에 살아요. 아무것도 안 해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의론했다. “그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세 명이지만 그들은 두 사람입니다.” 그들은 머뭇거리다가 우리를 지나가게 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만약 우리가 여 수련생을 버리고 갔다면 그들은 아마 우리를 따라잡았을 것이며 여 수련생을 데리고 갔기에 그들의 추격을 피했다. 그 때문에 수련생을 보호하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한 번은 몇몇 수련생과 함께 자료점을 옮겼다. 내가 한 가지 물건을 옮기려고 문밖을 나서자 한 사람의 행동이 수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나를 따라오면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다. 자료점을 이전하는 이유는 수련생이 어떤 한 사람이 고의로 소란 피우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수련생은 국가안전보위부가 감시한다고 의심했다. 보아하니 정말이었다. 나는 급히 나는 듯이 달려갔다. 한동안 달린 후 그 사람이 따라오지 못한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만약 이 사람이 정말 국가안전보위부 특무라면 아직도 방에 있는 몇몇 수련생은 정말 위험하다. 빨리 그들에게 통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돌아가는 것은 스스로 위험을 자초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수련생을 상관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하여 나는 다른 도로로 되돌아 가 방 안의 수련생이 떠난 것을 알고 다시 떠났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보안보위부 특무가 차를 운전하여 자료점을 깡그리 강탈해갔다. 다행인 것은 수련생이 납치당하지 않아 더욱 큰 손실은 피했다는 것이다. 수련생을 보호하는 것은 정체의 안정을 보증하는 것이다. 이 일로 나는 수련생의 신임을 얻었으며 수련생들은 나와 협조하기를 원한다.

일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만났다. 나는 원래 오토바이로 물건을 배달했다. 물건이 많으면 몇 번이나 오가야 하며 늘 밤늦게까지 바빴다. 간혹 비가 내리면 자료가 젖지 않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가 비를 맞는 것이 낫다. 나는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이 일을 하라고 배치하셨으니 잘해야겠다, 이 역시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수련생과 밤에 물건을 보내기로 약속하고 가보면 수련생이 집에 없거나 일찍 잠자리에 들어 헛걸음할 때도 있었다. 간혹 아내는 불평한다. 나는 “일선에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은 매우 고생해요. 아마 잠시 볼일이 있어 가거나 혹은 너무 힘들기에 이해해 줘야 합니다”라고 했다. ‘후방근무’는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며 마음을 다하는 것은 자신의 본분이다. 어떤 수련생은 의지하려는 마음, 혹은 두려운 마음이 있다. 원래는 하기 쉬운 일인데 우리에게 헛걸음을 시켜도 나는 귀찮아하지 않았다. 자료점에 일하는 것은 심리압력이 높으며 위험이 더 크다. 우리가 나서면 그들보다 안전하다.

많은 수련생은 법을 실증하고 구도 중생할 때 성취감, 자부심을 느끼는데 이것은 정상이다. 그러나 나는 거의 많은 느낌이 없는데, 나는 신성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상하게도 매우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신성하기에 조심하고 냉정하게 일을 처리하고 추호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일의 특징이 결정한 것일 것이다. 종합적으로 나는 일을 할 때 냉정함과 책임감이 더 큰데, 우리 공동의 노력으로 자료점은 매우 안정적으로 운행한다.

나는 또 많은 집착이 있으며 많은 사람마음을 닦지 못했다. 간혹 태만하기도 하고 나태하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의 보호, 수련생의 도움으로 갈수록 정진하고 쭉 원만할 때까지 정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유럽법회에 보내는 축사’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2-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11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11/30/4158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