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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기술 지원을 잘하고 끊임없이 심성을 닦다

글/ 랴오닝(遼寧)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정법수련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과 모순에 직면하거나, 마음에 혼란이 있을 때, 법에서 해결책을 찾아야만 비로소 바르게 걸어갈 수 있고, 창세주의 자비를 느낄 수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1. 두려움을 돌파해 기술지원을 하다

어느 해였던지 기억이 안 나는데, A수련생이 갑자기 저를 찾아왔습니다. “수련생의 컴퓨터가 고장 났는데 수리할 사람을 찾지 못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제가 도울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A는 제가 두려운 마음이 심해 여러 수련생과의 접촉을 꺼리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생도 마다하지 않고, 고장 난 컴퓨터를 자기 집으로 가져오거나 우리 집에 보내서 수리하게 했습니다.

그 시기 저는 법 공부를 적게 했기에, 정념정행(正念正行)과 정정당당하게 사람을 구하는 개념이 매우 모호했습니다. 그리하여 두려움을 돌파해 나가서 더 많은 수련생과 협력하기 어려웠습니다. A는 이렇게 비바람을 무릅쓰고 중간에서 협조하며 도왔습니다. 당시 저는 그녀가 기술지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큰 보호 우산 같다고 느꼈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수년간 그렇게 협력했고, A는 제가 정념이 조금 생긴 것을 보고 그제야 다른 한 수련생 B를 소개해줬습니다.

비록 당시 저는 B의 가정 자료점 환경에 적응이 안 됐지만 전심전력으로 사람을 구하려는 B의 헌신과 중생을 책임지는 마음 앞에서 못 본 척하고 떠날 수는 없었으며, 차마 수련생이 혼자서 이렇게 큰 자료점을 힘겹게 지탱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옆에서 함께 상의하던 A가 없었기에 자신을 어떤 위치에 두어야 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선택의 난이도는 바로 제 오래된 의존심이 충격을 받은 것이며 정말로 독립적으로 법에서 사고하고 선택해야 할 때가 됐던 것입니다. 저는 대법제자는 반드시 스스로 수련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저는 B와 함께 협조를 시작했고 벌써 7년이 됐습니다.

2. 사람을 구하는 수요에 기준을 두다

B와의 협력 기간, 그는 각종 진상 자료에 대한 요구가 비교적 엄격했습니다. 소모품 선택과 구매에서부터 인쇄, 제본, 표지 제작, 그리고 진상자료 포장까지, 어느 하나 ‘정익구정(精益求精, 훌륭한데도 더 훌륭하게 하려 함)’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처음 호흡을 맞출 때, B의 요구가 너무 높고 또 다른 사람을 강요하는 것도 있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어떤 부분들은 너무 세심하게 하면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록 B의 요구 기준대로 했지만 마지못해 따랐으며 은근히 불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진상자료에 대한 자신의 기준이 B와 비슷해졌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냐하면 B의 방식이 사람 구하는데 더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정교한 진상자료 그 자체가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며, 대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합니다. 정교한 진상자료는 더욱더 사람의 마음을 이끌어 보고 전하게 하며, 중생이 대법진상을 받아들이는 데 더욱 유리합니다.

다른 항목에 영향 주지 않는 전제하에서, 비록 돈과 시간을 좀 더 들였지만 중생이 진상을 받아들이고 구원받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바로 힘을 요긴한 곳에 쓴 것이며 사람을 구하는 효율을 높인 것입니다. 나중에 밍후이왕(明慧網)에서 발표한 각종 진상자료의 제작 기준도 부단히 높아졌습니다. 저는 높은 기준으로 진상자료를 제작하는 것이 올바른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을 구하는 효과를 기점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인식을 고집하는 것은 자아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갈수록 많은 수련생과 접촉함에 따라 저는 모든 수련생이 다 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체면 때문에 그 당시에는 제안대로 제작 방법을 변경했지만 제가 떠나기만 하면 다시 원래대로 했습니다. 또 일부 수련생은 아예 직설적으로 거부했습니다. 처음에 제 마음은 수련생들의 태도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수련생이 받아들이면 저는 더없이 기뻤고, 수련생이 적당히 응대하면 어쩔 수 없어 했으며, 수련생이 직설적으로 거부하면 저는 불쾌해서 교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 모든 이러한 생각들은 줄곧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게 하고 싶다’는 집착에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나중에 발생한 한 가지 일이 저에게 정체협조 중에서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의의를 깊이 느끼게 했습니다.

그 해에, 밍후이 진상 달력을 인쇄했습니다. 저는 한 수련생이 프린터 속성에서 색상을 맞추는 몇 가지 설정들을 모두 체크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렇게 인쇄하면 색상이 비교적 진하게 나옵니다. 이런 색상은 원래 파일에 있던 색상과 비교해 볼 때 차이가 아주 큽니다. 저는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설정들을 선택하지 않으면 원색에 더 가까울 수 있으니 더 예쁠 것입니다.” 수련생은 제 건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선택하지 않으면 색상이 너무 옅어 화려하지 않아 예쁘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양보하지 않아 교착상태에 빠졌고 다른 수련생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원래의 색상은 순수하고 고상하기에 수련생들은 꼭 원래의 색상을 좋아할 것이다. 물어보면 당신은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 수련생의 피드백은, 그들이 교외 장터에서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밍후이 진상 달력을 선물했는데, 그곳의 많은 중생이 짙은 색상이 새해 축하 분위기에 더 잘 맞는다며 색상이 짙은 표지를 더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결국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에서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주안점으로, 각 항목에서는 마땅히 각계 중생을 구하는 수요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 관념을 타파하고 구세력을 부정하다

몇 년 전, 우리 지역에서 불법적인 대규모 체포가 발생했고 저도 구금됐습니다. 당시 저는 비록 구속됐지만 되도록 그들에 따라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불법 수감 기간, 저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고 분석해봤습니다. ‘나가고 싶은 생각 하나하나가 사람 마음이 주도하는 것이 아닌가? 위사위아(爲私爲我)인 것은 아닌가?’ 저는 각종 사람 마음이 용솟음치는 것을 억누르려 노력했고, 자신에게 이 염두는 어떤 사람 마음이 통제한 것이고, 그 염두는 어느 집착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과거 수련에서 사람 마음과 집착을 비교적 많이 제거했기에 불법 수감 환경에서도 제 상태가 비교적 안정됐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소홀히 했거나, 질질 끌며 직면하려 하지 않거나, 자진해서 바로잡지 않은 욕망은 이때 아주 똑똑히 드러났는데, 충격을 받은 것은 주로 이러한 사람의 마음과 집착, 사람의 관념과 낮은 기준이었습니다. 저는 구세력은 이런 것을 이용해 틈을 타려 하며 사(私)를 위한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는 어떤 환경에서든 마땅히 청성(淸醒)함을 유지하고 자아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은 점차 안정됐습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저는 ‘무욕무구(無慾無求)’의 느낌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여태껏 있어 본 적이 없는 체험입니다. 그전의 강렬했던 모든 생각들, 특히 탈출하고 싶었던 생각은 그 순간 전혀 찾을 수 없었고, 마음은 홀연 완전히 비어 있었습니다. 저는 매우 신기했고 놀라웠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법의 요구를 생각하고 있을 때, 몸은 그곳에 있어도 이런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튿날 오전, 감방문이 열리고, 제 이름이 불렸으며 저에게 집에 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관에서 제가 깨달은 것이 법의 요구 기준에 도달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몸은 자유로웠지만, 불법 구금된 경험이 마음의 자물쇠로 되어 마음도 묶고 제 발걸음도 묶었습니다. E수련생이 자기 집에 와서 교류하자고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E도 기술 수련생이며 동시에 집에서 자료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E에게 “가고 싶지 않고 또 감히 가지 못하겠으며, 당신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E는 “오세요.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답장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수련생에게 너무 감사했고 그의 정념에 감동했지만 그래도 E의 집에는 감히 가지 못했습니다. E는 포기하지 않고 연달아 몇 통의 편지를 보내며 백화점에서 만나 이야기하자고 건의해 저는 승낙했습니다. 당시 저는 안절부절못하며 백화점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E는 차분한 말투에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이야기했습니다. 두 번째도 몇 시간 교류했습니다. E의 이성적인 교류내용은 마치 한 자루 망치처럼 제 마음속 자물쇠를 두드렸습니다. E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두 차례 긴 교류 후 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나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할 것을 다시 책임질 것이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는데 이렇게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제자로 말하면, 당신들의 수련이 제일위인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당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완성하지 못하며, 만약 당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사람을 구도하는 힘도 그다지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1]

저는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E와의 교류를 통해 저는 사람의 관념을 제 사상 중에 주입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제가 법 공부가 부족했기 때문이며, 특히 ‘전법륜(轉法輪)’ 이외의 기타 설법을 적게 배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많은 방면, 특히 정법수련에 대한 법리들이 분명하지 못함을 초래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사이트의 대법 경서 순서에 따라 한 권 한 권씩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배우고 있으며 줄곧 멈추지 않았고, 또 멈추고 싶지도 않습니다.

법 공부를 통해, 저는 불법 구금, 신체 박해, 경제 박해, 가정환경 교란, 핸드폰과 TV 등 전자제품 교란 등등을 포함해, 사악한 구세력이 어떤 표면형식을 연화하든, 그 사악한 목적은 바로 대법제자를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못하게 하고, 잘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세 가지 일을 잘하려는 의지를 동요시키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구세력을 철저히 부정하려면 우리는 언행에서나 사상 중에서 구세력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4. 사명을 맡고 자아 팽창을 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싶은 것은 기술항목 중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나타나는 자아 팽창 문제입니다. 많은 자료점 수련생들이 기술 수련생을 귀빈으로 대하기 때문에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 마음이 쉽게 자양되어 나옵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을 똑똑히 인식하고, 책임을 명확히 하며, 공을 탐내지 않고 수련생과의 관계를 바르게 놓는다면 자아 팽창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는 정체 중에 있으며 정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술 수련생은 상대적으로 적기에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기술 일을 한다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며 기술 일을 하는 것과 기타 항목을 하는 것은 실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우선 우리가 어떤 항목을 하든지 모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항목을 하든지 정법은 모두 표준이 있으며 누구도 특별히 예외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두 번째로 기술을 책임지면서 접하는 수련생 다수는 자료점 수련생과 자료를 배포하는 수련생, 직접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 휴대폰으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수련생들입니다. 또 집에서 밍후이왕에 접속하고, 정체에 협력해 발정념하는 수련생도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야말로 기술이 필요한 주체이고 기술 수련생은 이러한 주체 수련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련생들을 위해 일할 때의 마음가짐과 놓은 각도에서 모두 수련상태가 체현됩니다.

이를 깨닫게 되자 매번 수리와 보수 작업을 마치고 수련생들이 고맙다고 인사를 전할 때마다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수련생에게 말합니다. “우리의 연분은 모두 사부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우리 모두 사부님께 감사드립시다! 동수님이 항목을 잘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다만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직도 가끔 그들이 제가 기계를 수리하고 PC 유지보수와 기술을 가르치느라 고생한다고 여기면 저는 “동수님이 이 법기(法器)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다운로드하며, 소모품을 구매하고, 사람을 구하는 각종 자료를 인쇄 제작하며, 다시 진상자료를 중생의 수중에 쥐어주는 것도 아주 수고스러운 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때로 수련생이 약간의 돈으로 차비를 주려고 하거나 심지어 강요하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호의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런데 동수님은 진상 항목을 할 때 차를 타거나 소모품과 법기를 구입하거나 등등을 모두 자신의 돈으로 해결하는데, 저도 제 항목을 하면서 제 돈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제 경제 상황이 힘들어 이 돈을 받지 않으면 사람을 구하는 데 영향을 준다면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자 수련생은 더는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글에서 서술한 것은 단지 제 현재 층차의 인식일 뿐입니다. 법에 부합되지 않은 점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밍후이왕 제17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0년 11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1/21/4150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