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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없이 넓은 사부님의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여 년 걸어온 수련의 길은 한 사람의 성장과정과도 같다.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오늘의 성인이 되기까지에는 기쁨과 고통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수확이 많다. 그간의 많은 어려움과 고난은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복으로 연화해주셨는데, 사부님의 가없는 은혜는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고난의 인생

나에게도 지난날 주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생활이 있었다. 예쁜 얼굴에 학교성적도 좋아 선생님의 귀여움을 받았고, 학우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부모님은 오냐오냐하며 떠받들어주는 그런 시기가 있었다. 학교를 다 마친 후 고등학교 교사로 배치받고 근무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딸을 출산한 뒤 몸에 이상이 생겼다. 미열이 나고 등이 지끈지끈 아프고 사지가 무력한 증상이 나타났다. 병원의 검사 결과 폐와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지만 별로 큰 이상은 없는 것 같았고, 다만 통증과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러다가 머리도 아프기 시작했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났고 증상은 점점 심해졌으므로 매일의 생활이 힘에 부쳤다. 그런데 문제는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상태가 점점 심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매 시각이 너무 고통스러워 견디기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학교생활을 포기하고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치료를 위해 가족과 함께 타지의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뜻밖에 폐암으로 확진되었고, 이미 암세포가 왼쪽 폐에 완전히 퍼진데다가 심근염과 신경쇠약도 발견되었으며 심장박동도 너무 빠르다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남편은 믿을 수 없다면서 다른 큰 병원을 찾아다니며 양의와 한의에게 보였지만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고, 무슨 특효약도 없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의학적으론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지만, 나는 살고 싶었고, 기적이라도 나타나기를 바랐다.

남편의 의견대로 일단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치료비가 비싸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을 다 썼으나 증상은 낫지 않고 점점 심해져만 갔다. 남편은 모든 재산을 다 털고, 그것도 모자라면 돈을 빌려서라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몸도 잃고 빚까지 지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퇴원해 집에서 안정을 취하기로 했다. 집에서 스스로 약을 복용하고 주사를 놓았다. 기간이 길어지자 양쪽 엉덩이가 딱딱하게 굳어서 앉지도 걷지도 못하게 되었고, 점점 심해지자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와서 병수발을 해야만 했다.

상태는 점점 심해졌는데, 숨이 가빠져 말 한마디를 하려면 중간에 몇 번씩 끊어서 해야 했으며, 점점 가슴이 붓고 끊임없이 고통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등이 아팠는데 점차 가슴 전체가 고통스러워 잠조차 잘 수 없게 되었고, 처음엔 미열이었는데 점차 열이 오르면서 내리지 않았다. 늘 전기장판을 깔고 누워있었는데 높은 온도로 등에 화상을 입었어도 느낌이 없었다. 거기다가 식사도 하지 못하고, 잠도 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나는 완전히 절망상태에 빠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종일 누워서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행복했던 가정은 처참하게 변해버렸다.

남편은 매일 퇴근해서 나와 몇 마디만 하고는 돌아서서 눈물을 닦았다. 나는 겨우 30대 초반의 한창때였다.

대법이 생명을 구하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기적이 발생했다. 그날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1997년 정월대보름이 지난 어느 날, 대학동창이 책 한 권을 가져와서 나에게 주었다. 나는 “읽지 않겠다”고 말했다. 숨이 차서 헐떡거렸고,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워 정말 책을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 책은 동서고금의 모든 책과 다르다. 어떠어떠하게 매우 신기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도 않았고 보고 싶지도 않았으며, 그녀를 우매하다고 속으로 비웃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녀에게 “침대 머리에 놓으라”고 했다.

그날 어둠이 내리고 모두 잠이 들어 주위가 조용해졌지만, 나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고통에 시달리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동창이 한 말이 생각났고, 그녀가 놓고 간 책이 생각났다. 순간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전신에 흐름을 느끼면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전법륜(轉法輪)’ 책을 들었고, 신기하게도 책을 펼쳐 읽었다.

이상하게도 책을 읽을 때 매 한 글자가 모두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논어’를 읽고 바로 이어서 읽어 내려갔다. “온 인류사회는 모두 한 층차 중에 있다. 이 일보에 떨어진 것을 공능의 각도에서 보거나 혹은 대각자(大覺者)의 각도에서 보면, 본래 이런 생명체들은 마땅히 없어져야 했다. 그러나 대각자들은 자비심에서 그들에게 다시 한 차례 기회를 주려고 이런 특수한 환경, 특수한 공간을 구성했다. 하지만 이 공간의 생명체는 우주 중의 모든 공간의 생명체들과는 다 다르다. 이 공간의 생명체는 다른 공간의 생명체를 보지 못하고, 우주의 진상(真相)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미혹 중에 빠진 것과 같다. 만약 병을 낫게 하고 난(難)을 제거하며 소업(消業)하려면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수련하고, 반본귀진(返本歸真)해야 하는데, 이것을 각종 수련 중에서는 모두 이렇게 본다. 사람이 반본귀진하려는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이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불성(佛性)이 나왔다고 본다.”[1] “이런 장은 일체 바르지 않은(不正確)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신체는 마땅히 병이 없어야 한다. 병이 있다는 것은 바로 바르지 않은 상태에 속하기에 그것은 이런 바르지 않은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1]

‘그런가? 사람에게 병이 생기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살 수 있지 않은가?!’ 책 속의 글자마다, 구절마다 내 심령을 자극했고, 나의 모든 인생관을 뒤집어놓았다. 나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이 시간 가는 줄도 몰랐고, 병을 완전히 잊은 채 다른 세계로 빠져들었다. 남편이 자다가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에서야 머리를 들어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아쉬웠지만 다른 사람들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책을 덮고 불을 껐다. 그러나 잠잘 마음이 사라졌고, 마음속은 바다가 뒤집히는 듯이 격동과 흥분상태가 되었다.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자 나는 다시 ‘전법륜’을 받쳐 들고 단숨에 다 읽었다. ‘전법륜’은 죽어가던 나에게 생기를 넣어 주었다. 다 읽은 후, 단번에 정신이 또렷하고 기분이 상쾌했으며 몸에 생기가 넘쳐나 솟구치는 격동과 희열을 억제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동창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나를 보자 “다 나았어? 정말 잘됐어!”라고 외쳤다. 나는 그녀에게 책을 돌려주며 흥분해서 “다 읽었어. 나는 나았어. 확실히 신기해!”라고 말했다.

그녀가 다섯 가지 공법도 있다고 해서, 나는 기뻐하며 “배우겠다”고 대답했다. 전에 아버지를 따라 다른 기공을 배운 적이 있었으므로 기공이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시도 지체할 수 없이 배우고 싶었다. 그녀가 나를 데리고 다른 한 수련생의 집으로 갔다. 그분은 귀찮아하지 않고 아주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어서 그날로 연공동작을 거의 다 배웠다.

집으로 돌아갈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마치 누가 뒤에서 밀어주는 것 같아 제비처럼 날렵했다. 드디어 병중에서 병이 없는, 몸이 가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연공 동작을 배운 다음 날 점심시간에 침대머리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을 때 갑자기 예쁘고 반짝반짝 빛나는 둥근 것이 날아왔다. 나는 놀라서 뭐냐고 소리쳤다. 생각해보니 파룬 이었다. 아름답고 기묘한 파룬이 돌면서 신기한 금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서서히 멀리서부터 가까이 와서 나의 앞으로 날아왔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파룬 내부의 태극과 만자 부호가 신기하게 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파룬이 체내에 들어왔다. 나는 놀라서 단번에 일어나 앉았다. 너무 신기했다.

나는 그때부터 대법이 초상적이라는 것을 더욱 믿게 되었고, 연공에 공을 들여 매일 몇 번씩 연공을 했다. 어느 날 밤 아이는 잠이 들고, 남편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을 때, 나는 가부좌를 하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손이 없고 팔도 없으며 머리만 남은 느낌이 들면서 무섭기 시작했다. 몸이 없으니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할까? 그다음 머리도 없고 오직 사유만 남았지만 의식은 명료했고 거실의 TV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연공만 열심히 하고 법 공부를 중시하지 못했다. 그랬는데도 건강이 빨리 회복되어 기적처럼 살아났다. 나는 2개월 후 자발적으로 직장에 복귀했다.

사부님의 은혜를 입다

나는 수련생의 도움으로 서서히 법 공부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전법륜’과 사부님의 기타 저작들을 구입해 매일 읽었다. 반복적인 법 공부를 통해 우선 사람이 되는 도리를 알게 되었고, 수련의 도리를 알게 되었으며, 병이 생기는 원인 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법 공부를 통해 알 수 없었던 많은 문제들의 해답을 찾게 되었다.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이 층차를 돌파하고 진정한 수련에 들어서게 되었다. 우주의 특성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매일 법 공부를 했다. 모든 일을 법으로 대조하면서 가늠했다. 그러자 몸의 변화 외에 내심에서도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예전에는 늘 자신만을 생각하는 비교적 이기적이었으나 현재는 달라졌다. 매사에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2]고 요구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심신이 대법 중에서 끊임없이 정화되고 승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한번은 남편이 밖에서 술을 마시고 온 후에 이상하게 나에게 욕을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3]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남편과 싸우지 않고 심성을 지키겠다고 묵묵히 다짐했다. 그러므로 남편이 심하게 욕을 해도 못 들은 척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은 또 손찌검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일절 화를 내지 않고 반응하지 않았다. 남편은 화를 내면서 “왜 맞받아치지 않아?”라고 하면서 얼굴을 마구 때리다가 지쳐서 숨을 헐떡이며 멈췄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단 한 번도 맞받아치지 않았다. 억울했지만 속으로 사부님을 부르면서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내가 눕자마자 한 가지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단번에 파룬이 도는 것을 느꼈다. 아랫배 부위에서 신기하게 파룬이 아주 빠르게 도는 느낌이 들었고, 심신이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참으로 놀랍고도 기뻤다. 모든 억울함이 모두 사라지고 끝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내가 수련자의 심성을 지켰으므로 사부님께서 커다란 은혜와 격려를 주셨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가 어디로 가든지 매일 파룬이 신기하게 돌고 있었다. 특히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면 모두 파룬이 돌고 있었다. 나는 탱탱한 고무공처럼 정력이 왕성했고, 더욱 정진하고 노력했다.

매일 제시간에 출근하는 외에 저녁이면 법 공부 팀에 참가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연공장에 가서 연공 했다. 매번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수련생들과 함께 홍법(洪法) 활동을 하거나 교류회를 가졌다.

나는 사부님의 은혜 속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분부를 받들어 대법의 복음을 친구, 동료, 동창, 이웃, 고향사람들에게 전했다. 우리 지역에서 법 공부하고 연공하는 사람들은 전국의 다른 지역처럼 매주 배로 늘었다.

수련생들과 나 자신의 편리를 위해 남편의 동의를 얻어 우리 집에서 법 공부를 하고 집 부근에 연공장을 설립했다. 저녁에 수련생들을 불러 법 공부를 했고 아침엔 카세트를 가지고 거의 제일 먼저 연공장에 도착했다. 수련생들이 모두 오면 함께 연공을 했다. 법 공부를 하고 연공하는 것이 매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상이 되었는데 밥을 먹고 물 마시는 것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되었다.

수련의 길은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고 종종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어느 날 오후 학교에서 아이를 자전거에 앉히고 오는 길에 회사 정문 앞에(회사 일 때문에 도로를 건너 회사로 돌아가야 했음)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큰길에 차도 행인도 없었으므로 과감하게 회사정문을 향해 곧바로 돌진하여 큰길을 거의 건널 때쯤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질주해오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더욱 속도를 내어 회사정문을 향해 달리다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와 충돌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땅에 앉아 있었고, 딸아이는 내 옆에 서 있었다. 딸에게 “다치지 않았냐?”고 묻자 괜찮다고 했다. 내가 안심하고 일어서서 가려고 했을 때 오토바이를 탄 두 젊은이는 놀라서 말을 잃고 쳐다보다가 얼른 우리에게 다가와서 “누님,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어떻게 할까요? 병원에 갈까요? 고의는 아니었어요.”라고 했다. 나는 “고의가 아니라는 걸 알아요. 우리는 괜찮으니 그냥 가요”라고 말한 후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는데 자전거도 손잡이가 틀어진 것 외는 멀쩡했다. 나는 손잡이를 바로 잡고 회사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그 젊은이가 나의 길을 막으면서 태도를 바꿨다. “누님, 누님은 괜찮지만 우리는 다쳤어요. 봐요, 옷도 찢어졌어요. 오토바이는 새것인데 넘어져서 고장 났어요.”라고 했다. 내가 보니 확실히 그랬다. 그들의 옷에는 피가 묻었고 오토바이는 10미터 정도, 밖에 쓰러져 있었다. 그들 중 한 젊은이가 “누님, 우리 오토바이를 수리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200위안(한화 4만 원 정도)을 주시면 우리가 수리해도 되고요!”라고 말했다. 나는 더 생각하지 않고 돈을 그들에게 주었다. 그때 둘러서서 보고 있던 사람들은 거의 우리 회사 사람들이었는데 공평하지 않다면서 나에게 오히려 두 젊은이에게 배상해달라고 하라고 했다. 어떤 동료는 전화로 신고하려고 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만류했다. “우리 모녀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보호해주고 계십니다. 사부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그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다면서 혀를 찼다.

직장동료들과 상사들은 내가 죽을병에 걸렸다가 파룬궁이 구해줘서 살아났고, 복직할 수 있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파룬궁이 나에게 제2의 생명을 준 것이다. 그 교통사고를 통해 사람들은 “파룬궁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신기한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난을 없애주며, 사람의 도덕심도 승화시켜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장 동료들은 다시 한번 파룬궁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나의 영향으로 직장사람들은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동료가 책을 보았고 20여 명이 연공을 하게 되었다.

나는 또 한 가지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1998년 겨울이었다. 평소 딸은 수업이 끝나면 혼자 통학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문을 열어주었는데, 어떤 때는 내가 늦어 먼저 도착한 딸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딸은 문을 열 줄 몰랐고, 키도 없다. 그러나 그날은 공교롭게도 일이 있어서 날이 어두워서야 늦게 집으로 가게 되어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거의 도착해 살펴봤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딸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문 앞에서 기다리겠지 하며 성큼성큼 다가갔지만 딸은 보이지 않았다.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곳저곳으로 찾았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급한 마음에 전화로 남편에게 알렸다. 남편은 더 조급해하면서 학교로 찾아가 물어봤으나 “정상적으로 하교했다”는 대답 외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남편은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다. 날씨도 매우 추워 걱정이 되어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맘속으로 ‘사부님께 아이를 보호해달라고 청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집대문의 키를 열고 철문 안으로 들어갈 때 정신이 멍했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딸아이가 거실 소파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너 어떻게 들어왔어?”라고 얼른 물었다. 딸은 “한참을 기다려도 엄마가 오지 않고, 배도 고파서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머리로 문을 밀었더니 열렸어”라며 계속 간식을 먹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이건 철문이야, 어른들도 열지 못하는데 네가 어떻게 머리로 밀어서 열어?”라고 했더니, 딸은 계속 간식을 먹으면서 “몰라, 아무튼 내가 들어오고 싶어서 머리로 밀었는데 열렸어”라고 천진하게 말했다. 나는 감동하여 딸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딸은 또 머리도 아프지 않고 피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단번에 알게 되었다.

수련 중에서 나는 사부님의 자비가 없는 곳이 없고 사부님께서 극진하게 보호해주신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매번 어려움에 부딪혀 ‘산과 물이 가로막아 길이 없다(山重水複疑無路)’고 생각될 때 오직 마음을 조용히 해서 신사신법(信師信法) 하며 사부님의 요구대로 한다면 어둠 속에서 광명이 나타날 것이다.

불은호탕의 사부님 은혜를 입어 나의 인생은 귀착점이 생겼고 마음은 따뜻하고 안전하며 광명으로 충만했다. 아침저녁으로 법 공부를 하고 연공했으며 낮에는 바쁘게 보냈으나 체력과 정력이 충만하니 무엇을 하든지 모두 기쁘고 행복하다. 전에 심신이 얼마나 고달팠고,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든지 간에 이 생에서 대법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행운이며, 세상에서 가장 복이 있는 생명이다.

폭풍우

1999년 7월 20일 이후, 어둠이 중국대지를 뒤덮었다. 모든 신문, 라디오와 TV방송국 등 모든 언론이 천지를 뒤덮는 유언비어를 날조해서 대법을 비방하고 모함해 흑백의 시비가 완전히 뒤집혔다. 그러나 시종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하게 믿으며 동요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부님과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1999년 10월 어느 날 TV뉴스에서 몇몇 대법제자들이 체포되었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화면 속의 그들은 비록 수갑을 차고 있었으나 표정은 침착하고 평온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었으며, 모두가 진리를 견지하고 보호하고 있는 것에 대해 기뻤다. 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위해 바른말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나의 건강과 생명 등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다. 사부님과 대법이 악랄한 욕설과 공격을 받을 때 내가 어찌 나서서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진선인(真·善·忍)을 탄압하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재난이기도 하다!

수련생을 찾아가서 교류하여 우리 셋은 의견을 통일했다. 나는 곧장 집으로 가서 짐을 챙겼다. 딸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딸을 깨우려고 하지 않았는데 출발할 때 딸은 깨어나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내가 극구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7세 된 딸아이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확실히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딸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는 여행가는 것이 아니고, 고생하며 법을 보호하러 간다. 어쩌면 거기서 죽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딸도 목소리를 높여 “괜찮아요.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겁을 주려고 “만약 나쁜 사람이 총을 너의 가슴에 겨누고 쏘겠다고 해도 무섭지 않니?”라고 물었다. 딸은 “두렵지 않아요. 나도 대법제자예요, 나에게도 대법을 보호할 책임이 있어요. 나도 대법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요!”라고 엄숙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는 수 없이 딸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우리 일행 4명은 어둠을 헤치며 길을 떠났다. 그 당시 장쩌민 깡패집단이 전국의 거의 모든 경찰력을 동원하여 미친 듯이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었고, 베이징으로 가는 길을 전부 막았기 때문에 우리의 여정은 정말 큰 난관이 아닐 수 없었다. 중도에 납치되지 않고 목적지에 무난히 도착하기 위해 직행열차나 시외버스 대신 자가용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 걸어서 갔다. 가는 도중에 노상에서 숙식을 하며 강행군을 했는데 어떤 날은 하루 한 끼만 먹었다. 딸이 지쳐서 가지 못하면 우리는 번갈아 업고 갔다. 어린 딸은 너무 많이 걸어서 신발이 닳아서 구멍이 났다.

검문을 피해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톈안먼(天安門)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아주 빨리 사복경찰에게 납치되었다. 불법적으로 며칠 감금된 뒤 현지 공안에 인계되어 끌려 돌아왔다. 우리 셋은 형사(刑事)범으로 감금되었고, 나는 주동자로 지목되었다. 아이도 예외가 아니어서 몇 명의 악경(사악한 경찰)이 위협을 가하며 자백을 유도당한 후 아빠에게 인계되어 돌아갔다. 우리의 그 일은 현지신문과 TV의 머리기사가 되었고, 시에서는 비판대회까지 열었다. 비록 고생하고 수모를 당하기는 했어도, 나는 오히려 그전보다 마음은 훨씬 편해졌다.

베이징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생명으로 대법을 보호하려고 생각했고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었으며, 살아서 돌아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중공사당이 부정적으로 홍보했으나 사람들은 그런 박해 앞에서 감히 나서서 사부님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생활은 더는 평온하거나 온전하지 않았고, 폭풍우가 기승을 부렸다.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당하고 납치되어 감금되었으며, 거주지를 감시당했는데 세 차례나 불법으로 감금을 당했고, 한 차례 노동교양처분을 당했으며, 각종 고문과 모욕을 당했다.

불법적으로 감금되어 있던 6년 동안에 몸은 고문박해로 쇠약해졌다. 허리가 손상되고 하반신이 마비되어 혼자 생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비록 각종 혹형에 시달리고 온갖 고난을 다 겪었지만 우주 진리의 찬란한 빛은 언제나 내 마음을 비춰주고 있었다. 사부님의 위대하고 무량한 자비가 언제나 나의 심신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위험에 처하더라도 방향을 잃지 않았고 강한 신념을 가지고 정신적으로 지탱할 수 있었다. 나의 생명과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어떤 대가를 치르든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의 모든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적은 노력이라도 헛수고가 아니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다

대학생인 딸이 감옥에서 나를 업고 나와 차에 태웠을 때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가 단번에 나를 감싸고 있음을 느꼈다. 파룬이 내 주변에서 대단히 빨리 도는 것을 느꼈는데 미묘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날 딸은 나에게 ‘전법륜’을 줬다. 나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읽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읽으면서 눈물을 금치 못했다. 마치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나에게 설법해주시는 것처럼 나는 사부님의 그 친절하고 익숙한 목소리를 분명히 듣고 있었다. 글자마다 구절마다 모두 마음을 감동시켰다.

바로 그날, 내가 ‘전법륜’을 내려놓았을 때 하늘과 몸이 맑아지는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 몇 년 동안 마비되었던 몸이 단번에 일어섰다. 가족들은 그 모든 것을 보면서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렸다.

말하자면 정말 부끄럽다. 사실, 그때 감옥에 감금되기 전에 사부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에게 점화해주셨는데 나는 깨닫지 못했고 정념으로 사악의 안배를 타파하지 못해서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길로 가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참으로 어리석고 멍청했다. 그러나 감옥에서도 사부님께서는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점화해주셔서 깨닫게 하셨다. 처음에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밖에서 찾으며 사람마음으로 문제를 봤다. 시간이 지나면서 끊임없이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하고 자신에게서 찾는 것을 통해 수련 중의 누락을 찾았다. 박해받게 된 원인을 찾고 부족한 부분을 찾게 되었다. 만약 그 전에 알았더라면 감옥에 갇히지 않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세상에는 후회를 만회하는 약은 없다. 사악의 감옥에 그렇게 오래 있으면서 자신의 수련을 지체했고 중생구도를 지체하면서 시간만 낭비한 것이다.

수련생들은 내가 감옥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큰 관심과 도움을 주었고,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보충해주었다.

끊임없이 법 공부 하는 것을 통해 많은 도리를 알게 되었고 수련의 격차를 알게 되었다. ‘공산주의의 최종목적’ 등을 읽는 것을 통해 원래 공산사당이란 서방에서 온 유령이 원한과 각종 우주 저층에서 도태된 물질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무신론을 신봉(信奉)하는 당원, 단원, 대원과 공산사당에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붙어 있는데 그 근본적인 목적은 전 인류를 멸망시키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량한 중생을 구도하고 사전의 소원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과 자료를 프린트하는 것을 배웠다. 매일 세 가지 일을 하면서 멈추지 않았다.

한번은 사악이 블랙리스트에 따라 나를 납치하려 했다. 5~6명의 젊은 무뢰한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들이 문에 들어오려는 순간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발정념을 하기 시작했다. 또 사부님께 보호해주시고 가지해 주실 것을 청했다. 사악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발자국소리를 들었고, 남편이 지혜롭게 답하는 소리도 모두 똑똑히 들었다. 30분 후에 그들은 갔다. 남편은 그들이 화장실을 제외하고 모든 곳을 다 봤고 커튼도 열어보았다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일이 생기는 것은 원인이 있다. 이번에 자세히 안으로 찾아보니 오랫동안 남편에 대한 원망을 제거하지 못했기에 조성된 박해였다. 그 외에 사악에 대한 두려움, 최근에 일을 한다는 핑계로 법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고, 법 공부를 했어도 마음에 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비바람이 멈추지 않는 한 박해는 계속된다. 그러나 질척질척하고 험난한 이 길에서 사부님의 보호 아래 나는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즐겁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사부님의 가르침으로 수련이 제고되고 심성이 승화됨에 따라 대법 중의 한 입자로서 남을 위해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이 이 경지의 생명이고 일체는 모두 대법을 위한 것이고 무사(無私)한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사부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부님께서 그 과정 중에 제자가 원만하도록 해주시는 것이다.

관건적인 이 역사적 시기에 대법제자가 되었다면 각기 대법제자의 사명과 책임을 다해야 하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해도 중공사당의 거짓말에 속은 세인들을 구도해야 한다.

20여 년간 온갖 풍파를 겪었고, 세상의 온갖 마난(魔難)을 다 겪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살아있는 것이 바로 행복한 것이다. 만약 대법을 만나지 못했다면 벌써 이 세상을 떠나 우주 중의 고혼야귀(孤魂野鬼)가 되었을 것이다.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서 나를 법 중에서 다시 태어나게 해주셨고 한번 또 한 번 사악의 손아귀에서 구원해주셨다. 부단히 나의 몸을 정화해 주시고 생명의 층차를 제고시켜주셨다. 20여 년 이래 매번 내가 수련을 게을리할 때면 사부님께서는 각종 방법으로 점화해주셨고 내가 조금 정진할 때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수확을 주셨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세상에 온 생명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동물이 되고 식물이 되었는데, 모두 대법제자의 구도를 기다리고 있다. 당신들이 잘하지 못하면, 단지 당신들 자신이 잘하지 못한 것만이 아니라 당신들이 구도하려고 발원했던 그런 생명이 모두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당신들의 책임은 중대하며, 미래는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고, 우주의 수많은 생명이 모두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다.”[4]라고 말씀하셨다.

이 우주에서 천지개벽 이래 없었던 사존의 구도 중에서 대법제자는 반드시 잘해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불성무루’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0년 9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9/3/4088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