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린창칭(林長靑)
[명혜망] 고대 사람들은 맹세가 장엄하고 엄숙한 것이며, 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늘과 사람의 공분을 산다고 보편적으로 믿었다. 삼국시대 사람들은 낙수(洛水)를 성스러운 강으로 여겼다. 낙수의 물결은 반짝이며 고요하고도 깊었다. 물을 두고 맹세하는 것은 성스러운 물을 증인으로 삼아 약속이 허망하지 않고 맹세가 장난이 아니며, 어기면 죄가 되고 어기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서기 249년 정월, 사마의(司馬懿)가 고평릉 정변을 일으켰다. 이때 대장군 조상(曹爽)은 여전히 병권을 쥐고 있었다. 조상을 안심시키기 위해 사마의는 사람을 보내 “관직에서 물러날 뿐이다. 낙수를 두고 맹세한다”라고 전했다. 조상은 이를 사실로 믿고 정월 초열흘에 병권을 내놓았다. 이후 사마의는 식언하며 약속을 어겼고, 조상의 삼족 근 1000명이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조상을 처형할 때 그 일당과 삼족을 모두 멸했는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고모와 자매 등 시집간 여자들까지 모두 죽였다. 사마의의 표리부동함에 세상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경악했다!
조상 가족을 몰살한 후 사마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장남 사마사(司馬師)는 문무를 겸비했으나 48세에 요절했으며 후사가 없었고, 죽을 때 눈알이 안와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어린 아들 사마소(司馬昭)는 54세에 갑자기 사망했다.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司馬炎)이 진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칭했다. 사마염 사후 ‘팔왕의 난’, ‘영가의 난’, ‘석륵의 난’, ‘오호십육국 시대의 혼란’ 등의 전란이 잇따라 발생했다. 서기 420년 유유(劉裕)가 정권을 잡은 뒤 사마덕문(司馬德文)에게 선양을 강요했다. 서기 421년 사마덕문은 이불에 덮여 질식사당했고, 유유는 전국에 사마 씨 일족을 처단하라는 명을 내렸다. 낙수의 맹세가 있은 지 172년 후, 사마의의 맹세는 완전히 응보로 나타났다. 사마의는 조씨 가문의 뿌리를 뽑으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사마 가문이 거의 멸문지화에 이르렀다.
사마의의 영악한 계산은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그는 맹세가 그저 남을 속이기 위한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그의 계산대로 되지 않았다. 맹세는 자신에게 씌운 마귀의 주문이 됐다. 사마의가 맹세를 어긴 순간, 사마 가문의 운명도 그가 맹세한 대로 결정됐다.
맑은 낙수는 묵묵히 모든 것을 보았고, 고요한 낙수는 조용히 맹세를 들었으며, 천천히 흐르는 낙수는 구슬피 눈물을 흘렸고, 유유히 흐르는 낙수는 멀리 흘러갔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낙신(洛神)은 여전하고 낙수는 변함없다. 맹세는 장난이 아니며 맹세하면 반드시 실현된다는 이러한 교훈을 많은 사람이 이미 잊었다. 화하(華夏) 중토에서 많은 중국인이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등 조직에 가입할 때 중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장엄하게 선서했다. 이것은 바로 자신에게 무형의 저주를 걸어 중공을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맹세는 주문과 같아 반드시 응보가 따르며, 이를 해제하는 방법은 오직 폐기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바로 파룬궁수련자들이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사람들에게 중공의 모든 조직에서 탈퇴하라고 권하는 이유다. 중공은 스스로 유령이라 칭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기에, 악마에게 자신을 바치겠다고 맹세하는 것은 마귀와 함께 춤을 추며 악마를 위해 멸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성명하는 것은 마귀 주문의 구속을 풀고 정신적 굴레를 벗어던지는 것이며, 평안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방법이다. 이것은 어리석은 미신이나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적 자유를 되찾고 신체적 속박을 푸는 일이다.
1000여 년 전 사마의가 물을 가리키며 맹세하고 약속을 저버린 후 그 맹세는 자손들에게 응보로 나타났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여전히 독한 맹세로 자신을 저주하고 해쳐야 하겠는가? 깨어있는 당신은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 믿는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18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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