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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제자, 나는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0년대에 출생했다. 어릴 때 할머니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여 나는 대법을 접촉하고 대법의 신기한 이야기를 듣는 행운을 가졌다. 나는 너무 어려 당시 대법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 나이 든 후에도 대법의 심오한 의미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심으로부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인정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유감스럽게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할머니를 따라 함께 대법을 수련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나는 우주의 특성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2019년 8월 마침내 기연이 닿아 나는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외지에서 대학 다닐 때 졸업하기 전날, 사람들이 중시하지 않아도 되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치질이 나의 몸에 생겼다. 이 작은 치질이 내 인생에 가장 암담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겪게 할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초기 보조치료(좌약으로 완화)를 하던 데서 나중에 걸음도 걷기 어려워 종일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기에 생기가 전혀 없었다.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 검사했는데 검사 후 즉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후 처음에는 꽤 잘 회복되는가 싶더니 보름 후 이미 아물었던 상처에서 갑자기 안으로부터 끊임없이 고름이 나와 화장실에 가면 더 아파 견딜 수 없었다. 마지막에는 영문도 모르게 매일 점심때부터 미열이 나기 시작해서 밤이면 고열이 지속했다. 어쩔 수 없이 시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를 찾아가 검사했지만, 여전히 병의 원인을 찾지 못했고 가장 좋은 항생제로 잠시 열을 억제했다.

이 기간 할머니는 나에게 대법 책을 보게 하고 나와 함께 연공했다. 당시 오성이 나쁘고 게으름, 소극적인 사람 마음과 가부좌하면 아픔이 두렵고 요행을 바라는 등 사람 마음에 가로막혀 내심에서 우러나와 수련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내가 연공할 때 나의 몸을 청리해주셨다. 연공할 때 나타난 소업 현상(구토, 고열, 상처에서 분비되는 더 심한 고름)에 대해 입으로는 소업으로 말했지만 무의식중에 그것을 여전히 병으로 여겼다. 며칠 뒤 상처 옆에 또 큰 고름집이 자라나 나의 마지막 심리 방어선이 무너져 병원을 선택했다. 따라서 이번 대법 수련에 들어설 기연을 놓치고 눈앞에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며 대법과 점점 멀어졌다.

이 한 걸음을 잘못 걸어 계속하여 잘못 걸었다. 3개월도 되지 않아 나는 3번 수술하여(첫 번째를 포함하여) 원기가 크게 손상되었다. 이 기간 줄곧 발열 원인을 찾지 못해 의사마저 혈액 질환이 아닌지를 의심하여 어쩔 수 없이 혈액과에 이송하여 각종 검사를 했다. 마음에 거대한 압력을 감당했는데 결과가 정상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의사는 또 곤혹에 빠졌다.

마지막 수술 때 너무 갑작스러워 미처 막아 낼 수 없었다. 나와 가족은 상처에서 흘러내린 고름 때문에 열이 생긴 것으로 직감했지만 의사들은 예전의 경험과 검사, 회진에 근거하여 여전히 흘러내린 분비물은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여겼다. 부모가 여러 차례 의사와 소통해서야 그들의 경계를 불러일으켰다(항문 주위 농양으로 의심).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기에 많은 불확실한 요소로 인해 나는 ‘실험용 생쥐’가 되었다. 수술 후 마침내 열이 나지 않았지만, 상처 부위가 넓어(구멍 세 개를 팠음. 가장 큰 것은 달걀만큼 컸음) 안에서 밖으로 아물어야 했기에 회복 과정이 매우 느렸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번 약을 바꿀 때다. 먼저 상처에 집어넣은 거즈를 꺼내고(거즈가 상처에 붙었기에 빼내면 피범벅이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음) 다음 요오드를 적신 면봉으로 상처를 여러 번 문지른 후, 이어서 약물에 적신 거즈를 집어넣는다. 이 작업을 되풀이했다…….

나는 이 기간 늘 심신의 고달픔, 공포, 억압, 슬픔, 절망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거기에 수술 후 남은 일련의 후유증으로 인해 나는 초기 증상의 우울증에 걸렸다. 한참 지나서야 증상이 사라졌다.

몸이 ‘건강’해진 후 나는 다른 성(省)으로 일하러 갔다.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지만 갑자기 몸에 다시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이전 주치의가 여러 차례 진단한 후 크론병을 의심했다(원인 불명의 장염 증상의 질병, 치료하기 어려우며 평생 재발하는 경향이 있음). 이 병의 증상은 다른 두 가지(장 결핵, 궤양성 결장염) 와도 비슷하다. 치료하지 않거나 통제를 잘하지 못하면 합병증을 계속 일으킬 수 있다. 진정한 원인을 찾기 위해 약물 테스트 방법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여 일 약을 먹어도 여전히 미열이 있었고 합병증으로 다시 입원했다.

수술한 후에도 여전히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특수한 병세에 대해 의사들도 어려워했다. 다시 회진한 후 그중 한 의사가 나에게 가장 나쁜 결과(장 절단)를 알려주면서 나에게 우한의 전문가에게 예약할 것을 제안했다. 한 과의 간호사가 나의 병세와 비슷하여 나의 상황을 알아본 후 나에게 그녀의 주치의[우한 퉁지(同濟)병원의 전문가]를 추천하면서 당시 호르몬 요법으로 병세를 통제할 수 있었다면서 현재까지도 매일 제시간에 약을 먹고 우유, 해산물, 매운 음식을 가려야 하며, 잘 통제하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좀 낙담했다. 그러나 막막하고 무기력한 나와 가족은 그 전문가와 약속을 잡을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 기간의 어느 날, 할머니가 병원에서 나와 함께 있을 때 나에게 사부님의 이전에 쓴 ‘홍음(洪吟)’을 외우고 있다면서 나에게 듣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그중 몇 편을 외운 후 사부님께서 ‘2019년 뉴욕 법회 설법’에서 “사부의 초기 배치는 바로 금년에 박해를 끝내는 것이었으며, (뭇사람 열렬한 박수) 전후 20년이다. 비록 최후에 구세력이 개입하여 일부 일을 개변했지만, 화로를 땔 석탄마저 다 떨어지고, 이 불의 세기도 모자라, 이 일도 곧 결속하게 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더욱 잘해야 한다.”[1]고 말씀하셨다고 알려주었다. 당시 나는 놀랐다. 그날이 올 거로 생각했지만, 그러나 이것이 왔을 때 갑자기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서 할머니는 또 “사부님께서는 자비로우셔서 더 많은 중생을 구하려고 하신다.”고 말했다. 이 말에 나는 기분이 더 묘해졌다.

나중에 할머니가 ‘홍음5’를 가지고 왔다. 처음에는 거의 어머니가 읽고 내가 들었는데 나중에는 스스로 책을 들고 읽었다. 나와 어머니의 심금을 울리는 대목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눈물범벅이 되었다. 아마 기연이 닿은 것인지 사부님에 대한 감격의 마음을 품은 건지 아니면 더 높은 과학을 시험 해보고 싶었던 건지…… 이전에 줄곧 나의 수련을 가로막고 있던 그런 마음이 순간 사라져 집에 돌아가면 잘 수련해야겠다고 결심했다(병원에서는 연공하기 불편하여 낮에 ‘홍음’을 읽고 잠자기 전에 몇 편 외웠다).

그다음 며칠 사이에 보기에 우연한 일이 일어났다. 원래 어렵게 예약했던 검사는 빨라야 퇴원한 후 일주일 뒤이고 거기에 검사 과정까지 더하면 적어도 보름 이상 걸려야 했다. 이보다 더 빠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그 간호사는, 병원에서 그녀의 주치의(내가 예약한 의사)를 요청해 토요일 일련의 수술을 한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녀는 그 주치의의 일정이 꽉 차서 본원에서 회진할 가능성이 매우 작지만 나에게 시도해 보라고 알려주었다.

만분의 일의 희망을 품고 저번에 나를 도와 예약해준 그 사람에게 물었는데 그녀도 이번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내가 포기하려고 할 때 나의 주치의가 나를 도와 이 모든 것을 다 연락해놓았다. 회진 후 그 전문가는 장 결핵의 가능성이 크다면서 나에게 먼저 일부 검사 항목을 지정해주고 다음 치료 방안을 확정했다(다른 문제가 없으면 먼저 3개월 동안 결핵약을 먹고 그렇지 않으면 우한에 가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일주일 내에 검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다른 문제가 없어 나는 순조롭게 퇴원했다.

보기에 불가능한 일이 나의 몸에서 일어났다. 나에게 빨리 집에 돌아가 수련할 수 있도록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신 것이다. 사부님과 대법에 감사드림과 동시에 수련하려는 나의 결심이 더 확고해졌다.

2019년 8월 집에 돌아온 나와 어머니는 수련하기 시작했다. 처음 연공할 때 사부님께서 나의 몸을 청리해주신(토하면서 연공했음) 기억이 난다. 제1장 공법을 다 마친 후 나는 힘들어 견딜 수 없었다. 그 후 수차례 멈추고 쉬고 싶었지만 나는 견지하여 동작을 마쳤다. 잠깐 휴식한 후 제5장 공법, 정공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에게는 매우 두렵고 거부감이 드는 공법이었다. 반가부좌밖에 할 수 없었던 나는 다리가 높게 들렸고 심하게 아팠다. 정말 내가 업력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나는 갑자기 연공하는 과정이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진 걸 뚜렷하게 느꼈다. 다음 며칠 후 다른 소업 현상이 나타났다. 머리카락 끝에서 콩알 같은 땀이 흘러 정공을 다 연마한 후 온몸이 차갑고 떨렸으며 얼음 창고에 있는 것 같았다. …… 이런 현상이 한동안 지속했다.

퇴원할 때 의사가 반드시 제시간에 약을 먹어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고(3개월 견지해야 상황에 근거하여 판단할 수 있음) 항결핵 약물의 부작용이 크기에 좋지 않은 상황이 나타나면 즉시 내원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심으로부터 약을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일부 원인으로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후 나는 사부님께서 매일 나에게 신체를 정화해주시는데 나는 끊임없이 안에다 좋지 않은 것을 부어 넣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하여 마시지 않기로 했지만, 수련하지 않는 어른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나를 설득하다가 나중에는 심리적인 압력을 가했으나 내가 여전히 견지하는 것을 보고 먼저 약 복용을 한 달 중단해 보자고 말했다. 하지만 매일 체온은 재어야 한다고 하여 당시 나는 생각하지 않고 동의했다. 이렇게 하면 적어도 그나마 어른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일시적으로 나의 뜻에도 맞았다.

한 달이라는 기한이 되었을 때 나의 몸이 차츰 호전되는 걸 느꼈지만 매일 여전히 미열이 있었다. 어른들은(어머니와 할머니를 제외) 모든 기대를 약에 둔 것 같았다. 부득이 나는 억지로 약을 마셨다. 한 달이 지난 후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또 합병증이 재발했고 심하게 나타났다. 하루 만에 항문 옆에 메추라기 알만한 고름집이 생겨 화장실 가거나 걷기가 몹시 어려웠다.

이튿날 아침 연공할 때 나는 간신히 기어 일어났다. 연공 상태는 처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평소 매우 홀가분하게 했던 동작[제4장 공법 중의 ‘(두 손은) 발을 한 바퀴 감싸고 돈다(繞腳一周)’]을 할 때 표준적으로 완성할 수 없었다. 특히 마지막 정공을 할 때 처음부터 앉아 있기가 힘들었고 겨우 다 마친 후 침대에 쓰러졌다. 아버지는 내가 이전과 같은 것을 보고 기어이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겠다고 고집했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결정하라고 했다.

사람 마음과 관념을 가진 나는 고민하고 침착하지 못하다가 냉정해진 후 정념으로 대한 후에야 방금 생각했던 것은 모두 속인의 생각임을 알게 됐다. 나는 지금 수련인이기에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을 마땅히 버려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2]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내려놓는 그 순간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알았다.

이튿날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침에 연공할 때 전날보다 통증이 훨씬 가벼워졌다. 나중에 어머니는 나에게 그 고름집이 작게 변했고 가라앉았다면서 불가사의한 것은 파열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틀 지난 후 오후 체온을 잴 때 정상이었다(연속 1년 가까이 열이 나던 나는 갑자기 열이 나지 않았다). 다음 2, 3일에 고름집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부님의 가지로, 나는 마침내 이 병업 관을 넘었음을 알았다. 2개월 동안 병원에서 병인을 확진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완전히 나았다. 나를 수련의 길로 이끌고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신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11월에 3개월 약 마시는 시간이 다 되어(사실 한 달밖에 마시지 않았음) 주치의가 나에게 전화하여 검사하러 오라고 했다. 당시 그에게 나는 다 나았기에 우한으로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그때 우한에서 전염병이 곧 발발할 것을 몰랐다). 처음에 그는 약을 먹어 나은 줄로 알았다. 이어서 나는 고름집 에피소드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놀라며 이는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나는 검사하러 간 기회를 빌려 그에게 나는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알려주었다. 이런 신기한 일은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에 나타난 것이며 지금은 몸이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마음도 승화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또 그에게 대법 진상과 대법이 세계에 널리 전해진 성황을 말하여 마지막에 그도 다 이해했다. 이번 검사 결과에서 나의 친척, 친구들도 대법이 창조한 기적을 보았다.

끊임없이 법 공부하고 심성을 닦음에 따라 대법의 신기함이 다른 방식으로 나의 몸에 나타났다. 속담에 “강산은 변하기 쉬워도 본성은 변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과거에 나는 외부인에게 친절하게 대했지만, 가족에게는 성질을 부렸다. 이 나쁜 성격을 줄곧 바꿀 수 없었는데 수련한 후 나는 이 문제를 의식하고 그 순간부터 진정하게 ‘진선인’의 표준으로 행하리라 결심했다. 그때부터 나는 정말 가족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때론 일부 문제에서 가족과 견해와 의견이 맞지 않았지만 나는 사부님의 법을 생각했다. “진정한 수련은 곧 마음을 닦아야 하고, 안으로 닦아야 하며,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밖에서 찾는 것이 없다.”[2] “우리는 모순 앞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면 더없이 넓은 세상이라고 말하는데, 보증코 다른 광경이다.”[2] 모순은 신속하게 해결되었고 나의 마음도 점점 평온해졌다. 파룬따파가 나의 바꾸기 어려운 ‘본성’을 더 온화하게 변화시켰다.

이전에 나는 가부좌를 줄곧 두려워했다. 수련 중에서도 이 좋지 않은 집착심을 제거해야 함을 의식했지만, 그 과정에서 이 마음이 자꾸 반복해서 나왔다. 그 후 나는 사부님의 법을 생각했다. “수련 중에서 소업(消業)해야 하는데, 소업은 곧 고통이다. 어디 편안하고 편안하게 공이 자라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집착심을 어떻게 버리겠는가?”[2] 그렇다. 고통은 업을 없애는 것이다. 업을 없애야 흑색 물질이 빨리 백색 물질로 전환할 수 있는데 이것이 좋은 일이 아닌가? 나는 왜 아직도 두려워하고 항거하고 있는가? 사부님의 가지로, 점차 이 마음을 제거하고 4개월째 될 때 마침내 결가부좌를 했고 지금은 나도 결가부좌를 1시간 할 수 있다. 이런 수련 중의 신기한 일은 아직도 많다. 자신이 직접 걸어 들어와야 대법의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체험할 수 있다.

이 과정을 돌이켜보면 사실 어릴 때부터 커서까지 사부님께서는 나를 관여하시고 점오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줄곧 깨닫지 못했다. 아마도 이런 배치를 통해서야만 내가 확실히 각성하고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있었나 보다.

다시 한번 사부님과 대법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0년 6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26/4072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