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대법 수련의 좋은 점은 끝이 없다

글/ 캐나다 대법제자

[밍후이왕] 제가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한 그해에 대법에 대해 아직 확신이 서지 않고 마음은 호기심에 가득 차서 늘 노 수련생으로부터 무엇인가 알아내어 수련의 자신감을 키우려고 했습니다. 한번은 아침 연공할 때, 저는 한 80대의 할머니(1999년 이전부터 수련을 시작해 중공의 박해를 겪은 분)에게 “그렇게 많은 고난을 겪고도 여전히 수련하려 하시는데 이 파룬궁을 수련하면 도대체 어떤 좋은 점이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말해줄게요. 이 파룬궁의 좋은 점은 말하자면 끝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4년이 지났습니다. 할머니가 이 말을 하던 모습은 지금까지 또렷이 제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저도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으로 “파룬궁(法輪功)의 좋은 점은 말하자면 끝이 없어요.”라는 이 말을 검증했습니다.

제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맨 처음 시작하면서 혜택을 받았던 것은 저와 어머니의 관계가 개선된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연공을 배우는 것을 시작하지 않았고 ‘전법륜’을 막 다 읽어보았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줄곧 서로 잘 지내지 못했고 저의 어머니에 대한 태도는 매우 나빴습니다. 아이를 질책하듯이 자주 어머니를 질책했고 어머니가 성인답지 못하며 무슨 일이든 모두 잘하지 못한다고 원망했습니다. 이런 상태는 이미 몇 해 동안 지속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일을 기억할 수 있을 나이가 될 무렵부터 저는 자신에게 왜 이런 어머니가 있는지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종종 어머니가 낳은 자신이 아니기를 상상하곤 했습니다. 저는 이러면 옳지 않으며 제가 이렇게 어머니를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정서를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2015년 연말, 저는 어머니를 모셔와 캐나다에서 몸조리(어머니는 무릎 관절이 위축돼 거의 걸을 수 없게 됨)하게 했습니다. 저는 잘 효도해드릴 생각으로 금전적으로 어머니를 위해 지급하는 것에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생활하는 날들 속에서 저는 매사에 어머니가 눈에 거슬렸습니다. 우리 집의 어떤 물건도 어머니가 망가뜨리거나 엉망으로 만들까 봐 건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어머니가 이곳에서도 숨 막히고 울적하게 지내서 제 남편도 더 지켜볼 수만은 없어 “여보, 어머니를 모셔온 것은 행복하게 해드리려고 한 거잖아요. 당신은 어머니가 여기서 자신의 집처럼 느끼게 해야 해요. 어머니가 무엇을 하고 싶으면 하시도록 해야 해요. 자유로워야지요. 지금 당신은 어머니를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자신을 남과 같다고 느끼고 있는데 이건 당신이 효도하는 건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자신을 ‘고쳐야지! 고쳐야지! 반드시 고칠 거야!’라고 설득했습니다. 낮에 제가 어머니에게 잘 하지 못하면 밤에 후회돼서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이렇게 어머니가 오신지 첫 3개월 동안 저는 거의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상황과 마주하여 저는 몹시 곤혹스러웠고 도저히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상했습니다. 제가 ‘전법륜’을 다 읽은 후, 저와 어머니의 관계는 완전히 개선됐습니다. 어머니는 제 눈에 아이 같았고 저는 내심에서 우러나 어머니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제 말투도 온화해져 자주 어머니에게 머리를 감겨드리고 발을 다듬어드렸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눈에 거슬려 했던 어머니의 그런 모습조차도 이제 마음에 두지 않게 됐습니다. 저는 인내심 있게 어머니에게 우리 집 가전제품 사용법을 가르쳐드렸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각종 불평불만도 모두 구름 걷히듯 사라졌고 마음속에는 오직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뿐이었으며 이 몇 년 동안 제가 어머니에게 졌던 빚을 갚을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함께 법을 배우고 연공했습니다. 2개월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어머니의 퇴행성관절염도 조금씩 좋아졌고 위장염도 좋아졌습니다.

초기에 법을 얻은 저는 파룬궁이 이와 같은 신기한 작용이 있는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저를 여러 해 동안 곤혹스럽게 했던 문제입니다! 알고 보면 원래 이처럼 간단했습니다! 마치 갑자기 누군가가 가져간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서야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모두 업력이 가져온 것이므로 제가 노력한다 해도 업력에 저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비로우시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게 수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우리 사이의 업력을 청리해주셨으며 저와 어머니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개선된 것입니다.

제 남편은 십여 년간 주식 투자를 해왔습니다. 저는 남편이 고생스러워 보였습니다. 매일 낮에 출근했다가 밤이면 주식시장에서 밤늦게까지 지켜보며 여행을 가더라도 컴퓨터를 가지고 가야 했으며 마음을 전부 주식시장에 쏟았습니다. 저는 줄곧 남편에게 더 이상 주식 투자를 하지 말라고 권유했습니다. 남편은 제게 “이 주식은 바로 내 마약이에요. 평생 누가 내게 주식 투자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해요.”라고 답했습니다.

2015년 주가 폭락으로 남편은 몇십만 위안(약 몇천만 원)을 잃었습니다. 남편은 매우 풀이 죽어서 저는 또 기회를 빌려 남편에게 손을 떼라고 말렸습니다. 남편은 “당신은 내게 주식 투자를 하지 말라는 거요? 내가 잃은 이 돈을 어떻게 도로 가져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만두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제가 법을 얻어 수련한 후 대략 반년 만에 그는 자발적으로 제게 자신이 주식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주식시장의 돈을 전부 꺼내와 부동산에 투자했습니다. 남편은 말한 대로 행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는 주식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투자한 부동산에서 이익을 얻었습니다. 저는 이것은 신의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한 마약을 흡입하는 사람이 갑자기 끊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1] 오직 수련하는 사람만이 이 일체는 우리가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자신을 수련하고 심성을 제고하여 업력을 없앴을 때 주위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남편도 물론 수혜자입니다. 제가 수련한 이 몇 년 동안 남편의 정신이든 신체적인 상황이든 모두 매우 큰 제고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항상 보고 들어서 익숙하고 습관이 돼 있어서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작년에 집을 매매한 신기한 경험을 사람을 만나면 곧 말하곤 했습니다. 신을 믿지 않던 남편은 이것은 신이 도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새집은 올해 1월 10일에 금액을 지급해야 했습니다. 낡은 집을 팔아야만 새집의 비용을 지급할 금액이 생깁니다. 하지만 집을 시장에 내놓은 지 3개월이 지났고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새집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날짜가 매일 가까워져 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대출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나중에 대출 브로커는, 우리 딸이 금액을 자신이 지급한다는 증명서 한 장을 작성하고 서명하기만 하면 금액을 바로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와 딸은 모두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진(真)을 수련하는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우리는 할 수 없었습니다. 대출 브로커는 이것은 거짓을 꾸미는 일이 아니며 조금 다듬는 것이라고 거듭 설명하면서 돈의 출처가 듣기에는 은행의 요구에 맞는 것 같았지만 돈은 여전히 그 돈이었습니다. 제 남편은 마음이 매우 진중했습니다. 한 방면으로 남편은 우리 수련인의 일을 하는 원칙을 이해하였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몇십만 위안의 이익의 득실이었으며, 집을 팔지 못하고 대출도 하지 못하면 남편이 고생스럽게 3년 동안 바라던 새집에 살지 못하는 것으로, 수중의 이익도 잃게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아요.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다퉈서도 가져오지 못해요.”라고 위로했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사부님의 설법을 담고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되어 감에 따르고자 했으며 저는 집을 얻기 위해 이 거짓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대출은 이렇게 물 건너갔고 제 남편은 먹지 못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안한 나날을 한동안 보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마지막 관건이 되는 순간에 일에 호전의 조짐이 생겼습니다. 누군가 우리 집을 샀습니다. 게다가 거래 과정은 너무 순조로웠고 상대방은 집을 한 번 보고 바로 계약금을 냈습니다. 그런 다음 집을 다시 보러 오지도 않았고 아무런 별도의 요구사항을 제기하지도 않았으며 전반 거래 과정은 흠잡을 데 없이 완전무결하다는 의미를 보여줬습니다. 우리는 1월 9일에 낡은 집 비용을 받았고 1월 10일은 바로 새집 비용을 지급하는 날이었으며 하루라도 늦으면 안 되었습니다!

물론 신기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휴가도 매우 절묘하게 안배됐습니다. 여기서는 일일이 세세하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우주의 대법이며 오직 대법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의 심성을 수련하여 우주의 규칙에 순응하기만 하면 주변의 일도 자연스럽게 순조롭게 됩니다. 일에서 저는 대법 수련 이래에 더욱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저의 일은 5세 미만의 서양인 어린이 두 명을 돌보면서 그들의 일상적인 활동을 안배하고 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부모라면 다 알다시피 홀로 이 연령대의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압니다. 이 두 아이는 두 살 차이이며 한 명은 남자아이고 한 명은 여자아이입니다. 많은 경우 그들의 관심사가 다르며 종종 한 아이가 동쪽으로 가려고 하면 다른 한 아이는 서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한 아이가 이 게임을 하려고 하면 다른 아이는 소란을 피우며 저쪽 게임을 하려고 합니다. 잘 조율하지 못하면 그들은 시끄럽게 웁니다. 더욱 어려운 것은 그들에게 중국어로 말하는 것을 견지해야 합니다. 지금 많은 중국인의 아이는 집에서 중국어를 말하지 않는데 그들의 집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만 중국어로 이야기합니다. 수련이 제게 지혜를 열어줬기 때문에 더욱 많은 사랑과 인내심을 수련해냈고 제게 초범적인 체력이 생기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몇 년 동안 일이 마음 먹은 대로 순조로웠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매일 매우 질서 있고 즐겁게 보냅니다. 그들은 중국어도 매우 잘합니다! 큰 아이는 중 영문학교에 가서 취학 전 아동반에 다닙니다. 그는 중문 A반에 다니고 있으며 지금은 반에서 유일한 서양인 학생입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읽기와 쓰기 모두 잘 따라간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제게 학기가 시작됐을 때, A반에 세 명의 서양인 학생이 있었으며 그들은 모두 어느 정도 중국어 기초가 있어 처음에 모두 자신만만했으며 중국어를 잘해서 A반을 다녀도 문제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2개월이 채 안 돼서 두 아이는 모두 나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제게 이 말을 다 한 다음 기뻐서 어쩔 줄 몰라서 “아, 우리 아이는 반에서 유일한 서양인 학생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학교에 가서 면접 볼 때, 중국어 선생님은 이 노란 머리의 아이가 유창하게 중국어로 그들에게 서유기 이야기를 해주는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제게 그들 집에서 제게 돈을 얼마를 주어서 제가 아이들을 이렇게 잘 가르쳤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월급을 올려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얼마만큼의 월급을 준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마음을 기울여서 일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월급에 의존해서 격려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이다. 파룬따파는 제자가 어디에서든 좋은 사람이 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법 수련 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사회에서나 업무에서나 막론하고 모두 사람을 선하게 대하고 일을 할 때 타인을 위해 고려하며 많이 주고 적게 얻고 법의 요구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했다.’

저의 일은 전적으로 자율적입니다. 제가 일하는 동안 대부분 시간은 저와 두 아이만 있으며 그들 가족도 중국어를 아는 사람이 없어 아이의 중국어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 역시 제가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법이 제게 준 사명입니다. 대법은 홍전돼야 하고 중국어를 배우며 법을 얻는 것 역시 사부님께서 안배하셨습니다. 저는 이 두 아이가 법을 위해 왔다는 것을 깊이 믿었습니다. 저의 이 일도 사부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 때문에 제 눈에는 제가 돌보는 것은 두 명의 보통 아이가 아니라 그들은 미래의 대법 제자입니다. 저의 사명은 바로 그들이 법을 얻도록 기초를 잘 다져주는 것입니다. 업무의 목적이 다르니 결과는 당연히 다릅니다!

대법을 수련하는 좋은 점은 바로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의 사소한 일에 있으며 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물론, 수련한 후, 우리의 만사가 모두 순조롭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정법을 수련하고자 할 때는 곧 소업(消業)해야 한다. 소업은 바로 업을 소멸ㆍ전화하는 것이다. 당연히 업력은 말을 듣지 않아 사람에게는 곧 난이 있고, 장애가 있을 것이다.”[2] 수련인이 이런 이치를 알면 시련이 왔을 때 어떻게 가서 대응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법이 있고 사부님이 계시므로 법과 사부님은 바로 제 삶의 수련과정에서의 등불입니다! 오로지 엄격하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에 따라 수련하기만 하면 수많은 곤혹스러움과 문제는 법을 읽거나 연공하는 과정에서 깨달음 또는 계발을 받게 됩니다! 그 문제도 쉽게 해결됩니다.

사존의 자비롭고 고생스러우신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0년 7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7/15/4090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