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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을 닦아버리고 착실하게 수련하다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4살의 청년 대법제자입니다. 아홉 살 되던 해에 수련하시는 아버지를 통해 법을 얻었습니다. 대법에 대한 저의 깊은 기억은 열 살쯤 되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법회에서, 대법제자가 하늘나라에서 사부님과 계약한 후 사부님을 따라 인간 세상에 내려와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방영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중생을 구도하고, 서로 일깨워 착실하게 수련해 함께 천국으로 돌아갈 것을 맹세했습니다. 저는 ‘서약’ 화면을 보는 순간 더없이 충격을 받았고 오래된 제 기억이 깨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대법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저의 어린 시절 함께 수련했던 많은 친구가 대법을 떠나 더 수련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련을 포기한 적이 없지만, 한결같이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했고, 수련의 길도 굴곡이 많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항상 저의 잘못을 자비롭게 용서해 주시고, 끊임없이 개선되고 향상될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수련해 오면서 대법과 수련에 대한 저의 이해도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저는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수련생과 수련심득을 교류하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안으로 찾다

대법제자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는 것입니다. 비록 사부님께서 이미 아주 분명하게 이것이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라고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듣기에는 쉬워도 행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가장 하기 힘든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의 습관적인 사고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타인의 결점을 지적하기는 쉬우나, 자신을 대조해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부모님 사이에 반대의견이 있거나 수련생 사이에 충돌이 있는 것을 봤을 때 항상 마음속으로 그들이 심성을 잘 제고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때 자신도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잊어버렸습니다.

두 달 전에 저는 매주 한 번씩 하는 법 공부에 참여했습니다. 함께 읽는데 중국 수련생의 읽는 소리가 매우 고르지 못했습니다. 몇몇 수련생들은 빠르고, 몇몇 수련생은 느렸으며, 어떤 수련생은 한 가지 속도를 선택하여 속도를 통일시키려고 하였는데 목소리가 더욱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저는 열심히 따라가려고 했지만, 마음은 점점 불편해졌습니다. 이렇게 읽는 속도의 혼란은 연속 두 번 일어났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법 공부 온 수련생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설마 1초 동안만 멈춰서 읽는 속도를 조절할 수 없는가? 남을 위해 한번 생각해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저는 법 공부 시간 내내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저는 법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 전체를 허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법 공부가 끝나서 다 같이 교류할 때 저는 막 일어난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마침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무릇 당신 몸에 모순이 생기고 당신 여기에 나타났으며 당신들 사이에 나타났다면 틀림없이 당신과 관계가 있을 것이며 당신이 버려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다.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 나의 법신이 당신의 마음을 제거할 때 이 일이 그의 탓인지 아니면 당신 탓인지를 상관하지 않는다. 오로지 당신이 이 마음이 있기만 하면 그는 온갖 방법을 다하여 당신에게 모순이 나타나게 하며 당신에게 부족한 이 한 마음을 인식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아직도 거기에서 찾으며 이 일은 내 탓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한다. 혹은 당신들은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나는 법을 수호하고 있다고.”[1]

비록 다른 수련생들이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부님께서 저에게 어떤 것을 제고해야 할지 안에서 찾아보라고 일깨워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저와 직결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요사이 수련한 상태의 반영입니다. 저는 올해 시험이 적기 때문에 최근에 진상 알리기와 단체 연공에 더 많이 열심히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타성으로 인해 참가하지 않았던 것이 요 몇 주 연속으로 참가했다는 것에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저는 제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이 실제로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주말마다 진상을 알리려 나가고, 연공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태만해서 늘 늦게 다녔습니다. 저는 일어나는 것과 나갈 준비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제가 그곳에 도착할 때면 다른 수련생들이 이미 제1장 공법을 다 했거나 아니면 제2장 공법을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몇몇 수련생은 오지도 않는데 적어도 나는 참가 했다.’라고 생각하면서 흡족해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에 대한 저의 불평은 사실 반대로 저 자신의 더 많은 부족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 행동이 더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늦게 도착해 연공 대열에 합류하면 가부좌하고 정공을 수련하는 수련생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게 됩니다. 우리를 중시하고 있는 대중의 눈에는 인상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늘 늦게 진상을 알리는 장소에 도착했기에 언제나 연장자인 아주머니들이 무거운 책상과 진상판을 모두 진열해 놓은 후에야 도착했습니다. 제가 단체 법 공부를 중요시했지만, 지각을 자주 했으며, 어떤 때는 법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발정념을 하는 중간에야 도착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부끄럽고, 동시에 사부님께서 이 일을 통해 저에게 안으로 찾고 자신의 부족함을 보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저는 자신의 부족함이 항상 대조되어 깨우쳐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잘못을 나무란 후면 제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질투심이 있다고 비난할 때에 제 마음에 질투심을 갖고 있었으며, 수련생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잘못은 용서받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줄곧 내가 안으로 찾는 함의를 잘 알고 있다고 믿었으며, 자신이 갈등에 개입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이제 진정으로 안으로 찾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갈등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안으로 찾아야 한다’라고 간단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회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깊이 안으로 자신을 찾고 닦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질투심을 없애다

저는 끊임없이 수련하면서 저에게 질투심도 많고 생활하는 모든 면에 다 표현된다는 것을 점차 의식하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친구나 학우에게 좋은 소식이나 성적이 좋은 것을 들었을 때 마음으로부터 그들을 축하해주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들은 분명히 누군가가 도와주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의 수준에 어떻게 그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혹은 ‘나에게 준비할 시간이 그렇게 많으며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도 그룹 구성원들이 학교 과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과정에 저는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임무를 하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제 생각을 옮기거나 저의 노력 위에 궁극적인 찬사를 받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나쁜 것은 저의 이러한 질투심이 대법을 실증하는 프로젝트까지 미쳐 대법을 자진해서 도와주고자 하는 수련생들에게 저는 항상 거부감을 가지고 그들을 참여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참여시키면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그다음에 그들이 완성하기를 기다려야 하므로 차라리 저 혼자 하여 프로젝트 전체를 더 빨리 끝내는 게 낫다고 자신을 위한 변명을 찾았습니다.

실제로, 제가 다른 사람을 불신하거나, 다른 사람을 눈에 차 하지 않는 마음은 일종의 질투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으로 칭찬받기를 원했습니다. 저의 잠재의식 속에는 만약 수련생들이 제가 이렇게 잘하는 것을 보면 제가 능력도 강하고 수련도 잘한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아직도 이런 생각이 숨어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로 종종 혼자서 큰 임무를 떠맡으면서 스스로 충분한 수면과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제가 한 일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는 저는 또 참지 못하고 ‘이 모든 일은 내가 한 것이고, 내가 생각해낸 것이다.’라고 하거나 아니면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 나 혼자 밤낮없이 밤을 새워서야 겨우 끝냈다.’라고 자신을 과시했습니다. 누군가가 정말로 내게 저의 일을 묻거나 칭찬할 때, 저는 겉으로는 누가 이 일을 완성하고 누가 최후의 영예를 얻는가는 중요하지 않으며 프로젝트가 완성될 수만 있다면 좋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마음속으로 매우 신경을 썼습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내려놓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그가 입으로는 내려놓았다고 하지만, 사실 그는 전혀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에 해주기가 아주 어렵다.”[2]와 같았습니다. 저는 이 집착이 없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여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저는 이 집착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심지어 저 자신에게도 이 집착심은 없다고 말했는데 그 집착심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저는 최근에 법 공부를 많이 하면서 이런 나쁜 생각들을 잘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이 일어나려고 할 때 저는 즉시 그것들을 제거했습니다. 저는 질투심을 가지고 대법 일에 참여하는 것은 위험하고 파괴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大法)은 전 우주의 것이며, 작디작은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누가 대법(大法) 일을 하든지 모두 대법(大法)을 널리 전하는 것으로, 무슨 당신이 하고 내가 하는 것이 있는가. 당신들이 이런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래 천국에까지 갖고 가서 부처와 다툴 것인가? 누구도 대법(大法)을 도맡을 수 없다.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그 심리를 없애버려라!”[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질투심에 이끌려 신성한 대법 프로그램으로 저의 사람의 집착을 만족시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다고 집요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했기에 대법 프로젝트를 유능한 수련생들에게 할당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중생을 어떻게 더 잘 구하느냐에 집중하지 않고, 누구 이름으로 이메일을 보낼까 하는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썼습니다. 저는 부단히 법을 배우면서 이미 이러한 집착을 없애고 더 순수한 마음으로 대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수련생들과도 잘 지내고 있으며, 서로 협력을 잘해 효과도 좋습니다. 사실 당신의 생각과 행동이 질투와 원한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다른 수련생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질투심을 제거하는 것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느꼈습니다.

이제 저는 마음에 자극을 받는다고 느낄 때 즉시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자신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점진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알지만 저에게 끊임없이 점화해주시고 질투심을 진정으로 제거할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명리에 대한 집착을 닦아버리다

저는 대학원생으로서 항상 명성과 자기 집착에 대한 시련을 겪게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대학입시 때,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이 좋아 아주 좋은 치의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학교를 선택하기 전에 저는 의대로 해야 할지 말지 망설였습니다. 저는 저의 양호한 성적으로 틀림없이 합격할 것이고 모든 사람에게 제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예전의 많은 친구도 몇몇 치의학과에 입학한 것을 보고 저의 이전의 노력이 가치가 없었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중 제가 알고 있는 많은 친구가 학습 태도와 노력의 정도는 보통이고, 그들이 치과의사로 되려는 목적도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치의학과에 다닐 수 있다니? 결국, 모두가 비슷하다면 왜 그렇게 심혈을 기울이겠는가? 저는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저로 하여금 자신이 이들보다 특별해야 한다는 집착을 갖게 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의과대학에 가지 않은 것이 후회되고 화가 나기 시작했으며, 저는 보통의 치의학과 학생들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가 구강외과에 흥미가 생겼을 때 가장 엄격한 구강 레지던트 양성 절차를 살펴봤습니다. 4년간의 구강 레지던트 교육을 마쳐야 했고, 여기에 2년간의 의대의 교환 교육이 더해졌습니다. 그러면 저는 두 개의 의학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거의 2년 반 동안 저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제 인생의 다음 10년을 재배치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졸업 후 6년간의 교육 계획을 계획하려고 했을 때 낙담했습니다. 이것은 거대한 시간 투자가 될 것이지만 저는 이렇게 해야만 저의 사업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스위스 법회 설법’에서 중국에서 박사 학위를 전공한 학생의 예를 들었습니다. 이 학생은 학위과정의 마지막 단계였는데, 단지 일정 수의 쥐를 해부해서 실험을 마치면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그의 지도교수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금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는데 살생은 업을 짓는 것이기에 살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학위를 거의 손에 잡을 수 있었지만, 수련을 위해 자신의 학위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이 세상을 삶은 단지 명리를 위해서일 뿐이다. 그가 박사 학위를 받고 나면, 장래 좋은 직장과 전망(前程)이 있을 수 있고, 그의 봉급도 자연적으로 많을 것인데, 그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보통사람보다 높을 것이고 일반 사람보다 높을 것이다. 사람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은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가 이것마저도 가지지 않는다면, 그는 이것마저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한 젊은이로서 이런 것마저도 가지지 않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바로 생사마저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사람은 바로 이런 것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사람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수련의 경지가 사실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4]

저는 이 예를 읽고 진정으로 자신의 집착을 깨닫게 됐으며, 대법제자로서 저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제가 “일단 사람이 두각을 나타낼 때면, 흔히 명리적인 교란을 받기 쉬운데, 그는 남은 생애에 아직 먼 길이 있다고 느껴, 더욱 보람차게 해보려 하며, 한번 분투하여 속인의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한다.”[2]라고 하신 사부님의 말씀처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나도 보통사람들처럼 명리를 추구하기 위해 헤매고 있다면 어떻게 수련하고 어떻게 중생을 구할 수 있겠는가?’ 또 저는 사물을 보통사람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저는 늘 밤을 새워 공부하는 방법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려 하면서 적극적으로 법 공부와 연공을 착실하게 하지 않았으며 진상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서, 대법제자로서의 책임을 거의 잊어버렸으며, 수련에 정진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제 인생의 길을 바꾸는 데 집착했습니다. 사실 이것들은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하셨습니다. 남의 명망을 시기하는 것도 사리사욕입니다. 저는 심지어 앞으로 치과 의사가 되면 스스로 개업할 수도 있고, 편리하고 자유로우며, 더 많은 시간을 내어 진상을 알리고 대법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이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 제가 성취한 모든 것이 대법이 저에게 부여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인생의 진짜 목적은 인간 세상에서의 사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을 수련하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 성적이 좋은 것은 역시 대법을 널리 알리고 실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수련자로서의 진정한 목적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대법제자는 정체이다

저는 중공 바이러스의 전파로 모두가 격리되어 집에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낙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학교도 문을 닫았고, 환자를 보는 연습을 할 수도 없고,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늘 늦잠을 잤으며, 친구들과 언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 오랫동안 학교가 문을 닫으면 우리의 졸업 날짜와 이후의 레지던트 실습에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등등에 대해 많은 시간을 토론했습니다. 무기한의 가택 격리는 거의 우리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고 저는 중공 바이러스 대유행이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최근 경문 ‘이성’을 보고 난 후에 우리가 수련하는 도중에 일어나는 어떤 일도 우연이 아니기 때문, 현재 상황에서 수련자의 사고방식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언제 끝날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제가 가진 모든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더 부지런히 법을 배우고 연공해야 했습니다. 저는 다른 청년 수련생의 도움과 격려로 법을 배우고 연공하는 시간을 크게 늘렸습니다. 저는 이 두 달 동안 하루도 법 공부하지 않은 날이 없었으며, 매일 다른 청년수련생들과 함께 인터넷에서 적어도 한 강의를 읽었습니다. 이제, 저는 법에서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함의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과거에 법을 제대로 읽은 적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2년 전, 저의 수련 상태가 가장 안 좋았으며, 시련의 고비가 아주 많았는데 결가부좌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매우 난감하고, 누구에게도 말하기 거북했으며, 또 이런 상황이 발생한 원인을 깊이 파헤쳐 보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싱가포르 법회 설법’에서 제자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읽으면서 깨닫게 됐습니다.

“제자: 다리에 원래 상처를 입은 적이 있는데, 이미 결가부좌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근래 어떤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해도 결가부좌를 할 수 없습니다.

사부: 사실 당신은 어떤 원인이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하나는 법 공부에 정진하지 못했거나, 혹은 어떤 방면에서 잘못했음에도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거나,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닌가? 만약 당신이 오늘 일을 아주 잘하고 법에 부합한다면, 당신은 원래 10분밖에 할 수 없던 가부좌를 틀림없이 20분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많은 수련생이 다 이러한 체득이 있다. 사정은 또 절대적이지 않다. 다만 최근 한 시기 당신이 큰 업을 소업해야 할 때 이런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5]

“제자: 수련을 일 년 했는데 아직도 결가부좌를 하지 못합니다. 가부좌를 틀지 못할수록 조급해집니다.

사부: …그러나 수련인으로서 당신은 다리를 틀어야 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농담이 아니다. 수련인이 수련을 괜찮게 했음에도 다리를 틀지 못한다면 위의 보살도 입을 가리고 당신을 보고 웃는데, 정말이다…”[5]

저는 이 두 단락의 법을 다 읽은 후에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열심히 연공을 하기 시작했고, 점차 다시 결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집에 격리돼 있는 동안 온라인 단체 연공에 참가함으로써 마침내 한 시간 동안 정공을 할 수 있었고 매번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전에 자주 밤을 새웠기에 항상 늦게 일어났고 또 낮에는 좀 더 자야 했습니다. 이제 저는 일찍 일어나서 정념을 하고 이어서 두 시간 동안 연공을 합니다.

저는 지금과 같은 수련 상태에 도달할 수 있도록 격려와 도움을 준 수련생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수련을 한 이후로 지금까지 이렇게 착실하게 수련하는 상태에 도달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사부님의 보살핌과 다른 수련생들의 도움 덕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저는 이제 “대법제자는 정체(整體)”[6]라고 하신 사부님의 뜻을 진정으로 깨달았습니다. 이 중공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불안정한 시기에 이런 단체 법 공부와 단체 연공을 할 수 있는 환경에 큰 혜택을 입게 되었습니다. 모든 청소년 수련생들이 이 시간을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사부님의 홍음 3의 ‘오직 이 한차례를 위해’로 자신을 일깨우곤 합니다.

“정법은 시공을 초월한 급박한 것인지라
거대한 난에도 뜻 굽히지 않고
사악이 날뛰어도 길 잃지 않으며
먼지 쓸어내듯 악을 제거하네
제자들 대법의 길을 바르게 걸으니
천지에 빛 비춰 악을 모조리 제거하네
정진하는 법도(法徒)들 추위 속 매화이거니
만고의 간난신고 오직 이 한차례 위해서라”

비록 자신이 수련하면서 일부 방면에 많은 진척이 있지만 계속 향상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와 청소년 수련생들에게 함께 착실하게 수련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신 불은호탕에 감사드립니다.

여기까지 저의 제한된 이해와 교류였습니다. 만약 법에 맞지 않는 어떤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시정을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유럽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집착을 더 없애자(再去執著)’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싱가포르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3-조사(助師)’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3-오직 이 한차례를 위해’

(2020년 청년 대법제자 인터넷 법회 발언고)

 

원문발표: 2020년 6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2/4070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