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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하이 탕파방, 몇 년 전 먼위안 감옥서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칭하이 보도) 시닝(西寧)시 영어 교사이자 파룬궁 수련생 탕파방(唐發幫)은 여러 차례 잔인한 박해를 당하고 수년간 유랑생활을 했다. 2009년 9월 모함을 당해 칭하이 먼위안(門源) 감옥으로 납치됐는데, 박해로 사망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40여 세였다.

2014년 5월 한 파룬궁 수련생이 칭하이 민허(民和) 구치소로 납치돼, 칭하이성 ‘610’(공안, 검찰, 법원 위에 군림하며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이 배치한 악독한 경찰 천제(陳潔)에게 박해당할 때, 탕파방의 박해에 대한 일부 상황을 들었다고 한다.

2015년 9월에도 다른 파룬궁 수련생이 칭하이 둥촨(東川) 감옥 입감대로 납치당했는데, 악인이 위협하다가 “탕파방은 이미 먼위안 감옥에서 죽었다. 당신이 연마를 견지해도 오직 한 갈래의 죽음의 길밖에 없다”며 소란을 피웠다.

탕파방은 원래 시닝시 수전부4국 러자완(樂家灣) 초등학교 영어 교사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 진상을 알린 뒤 공직에서 해고당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해 탕파방은 4년이 넘는 기간 칭하이성 ‘610’의 잔혹한 박해를 당했고, 삼차 누계로 75일 동안 구류처분을 받았으며, 삼차 누계로 784일 동안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고 두 차례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탕파방은 베이징으로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1년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는데, 본래 2001년 2월에 해제돼야 했다. 그러나 파룬궁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는 이른바 ‘삼서(三書)’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노동교양소에 의해 불법적인 형기 연장을 당했다. 2001년 상반기, 칭하이 시닝시 둬바(多巴)진 노동교양소에서 탕파방과 리성시(李生璽)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현임 관리과 과장인 루신(魯昕)이 전 노동교양소 사람들 앞에서 ‘루스 리프식 수갑’을 등 뒤로 채우라는 명령을 내렸고, 두 사람은 강제로 뙤약볕 아래에서 가혹한 체벌을 받아야 했다. 장시간 동안 달리기를 시켰는데, 악독한 경찰은 달리면서 큰 소리로 ‘하나둘, 하나’를 외치게 했다. 결국 탕파방과 리성시는 기운을 다 소모하고, 각각 다른 독방에 갇혔다. 두 사람은 단식으로 항의했는데, 탕파방은 7일 후 위독해져 풀려났고, 또 엄격하게 관리하는 대대의 독방에 갇혀 있은 리성시는 당시의 대대장 천신샹(陳新祥)이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진행하려 하자 끝내 음식을 먹기로 했다.

2001년 12월 16일, 탕파방은 노동교양소에서 석방된 후 진선인(真·善·忍)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2월 28일 또 불법 구금을 당했다. 정월에는 둬바 노동교양소 5대대로 보내져 엄격한 관리를 당했다. 노동교양소에 들어간 후, 악독한 경찰은 욕설을 퍼붓고 구타했으며, 10만 볼트 전기 경찰봉 몇 개를 사용해 차례로 고문하고 두 시간 동안 전기 충격을 가했다. 그런 다음 또 탕 씨는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채 독방에 일주일 동안 감금됐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 재연: 전기봉으로 충격 가하기

이런 방식의 고문 학대를 항의하기 위해 2002년 4월 11일부터 탕파방은 단식을 진행했다. 악독한 경찰은 또 그를 1대대에서 3대대로 옮겼는데, 둬바 노동교양소에서 2년이 넘는 기간 탕파방의 심신은 상상하기 어려운 손상을 입었고, 박해로 생명이 위독해졌다.

칭하이성 610 경찰은 수차례 그의 친구 집과 직장에 가서 소란을 피웠다. 가족은 잔혹한 탄압을 당하며 극심한 정신적인 압력을 감당해야 했다. 어머니는 병에 걸려 위독해졌고, 아버지의 머리칼은 전부 하얘졌으며, 아내는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없었고, 자식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 후 탕파방은 줄곧 유랑 생활을 했다. 2005년 2월 21일(음력 정월 13일), 탕파방은 집에 돌아와 아내와 아이를 만났다가, 칭하이성 시닝시 공안국과 시닝시 펑자자이 파출소 경찰이 결탁한 납치를 당해 시닝시 국안국으로 끌려갔다. 탕파방은 ‘호랑이 의자’ 위에 묶여, 팔다리 모두 특별 제조한 쇠고랑에 채워졌다. 경찰들은 차례로 감시하며 24시간 동안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3일 후, 탕파방은 기적적으로 경계가 삼엄한 국가보안 건물에서 벗어났다.

酷刑演示:老虎凳
고문 재연: 호랑이 의자

2009년 9월 8일 낮 11시 30분쯤, 탕파방은 시닝시 청둥(城東)구 캉러난환로(康樂南環路) 교차로에서 시닝시 국가보안대대 사복 경찰에게 납치됐다. 당시 첩자들은 검은색 승용차 한 대를 타고 교차로 서쪽 편에서 오더니 몇 명이 뛰어내려 탕파방을 납치했다.

탕파방은 시닝시 얼스리푸(二十里鋪)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칭하이성 고급 법원에 모함당했다. 대략 2010년 창하이 먼위안 감옥 1감구 3분감구로 납치돼 박해당했는데, 사악의 세뇌를 저지하고 진선인의 믿음을 견지한 이유로 몇 달간 독방에 수감됐다. 하지만 탕파방은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먼위안 감옥에서 탕파방에게 진행한 박해에는 음식물 주입, 고음 확성기로 반복적으로 공산당을 찬양하는 오디오 방송 등이 있었다. 나중에 탕파방은 장기가 쇠약해져 칭하이 적십자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억울하게 사망하고 말았다. 그중 박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은 당시의 먼위안 감옥 1감구 3분감구의 개조를 주관한 부 지도원 궈(郭) 씨였는데, 그 후 그는 1감구 2분감구의 지도원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이미 응보를 당해 병이 도졌고, 몸조리하는 기간 정직 처분을 받았으며 2018년 먼위안 감옥에서 전출됐다.

탕파방이 칭하이 적십자병원에 있는 기간, 또 한 사람이 칭하이 610의 직접적인 배치를 받고 박해에 참여했는데, 그는 칭하이 거얼무(格爾木)시 강제 마약 중독자 재활원(원래 거얼무시 노동교양소임) 심리자문센터의 주임 천제다. 천제의 또 다른 신분은 칭하이성의 ‘파룬궁 수련생을 교육해 전향시키는 전문가’인데, 탕파방 역시 천제가 시닝에서 진행한 납치를 당했다.

 

원문발표: 2020년 6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6/27/4082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