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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제자도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많이 읽어야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예전에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는 것은 속인이 하는 것으로 여기고 별로 읽지 않았다. 법리상 대법제자도 읽어야 한다고 깨달았다. 처음에 단지 기계적으로 읽고 정념이 별로 없었다. 자신이 이미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속인은 왜 이 아홉 글자만 읽으면 병이 나을 수 있는지 생각했다. 먼저 쩐(眞), 싼(善), 런(忍) 이 세 글자를 생각했다. 기왕 그는 우주의 특성이라면 나는 어떻게 동화(同化)해야 하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법은 마치 피라미드 모양과도 같기 때문이다.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세 글자로 개괄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眞(쩐)ㆍ善(싼)ㆍ忍(런)이며, 각개 층차에서 현현(顯現)하면 극히 복잡하다.”[1] 그는 가장 높은 곳의 법이니, 그럼 각개 층차에서 그는 어떤 법리를 포함하고 있을까? 그래서 법 속에서 그것에 비춰 자기 일상생활에서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을 찾으니 점점 대법의 심오하고 끝이 없는 내포를 많이 깨달을 수 있었다.

밤에 자기 전에 마음을 가라앉힐 때도 읽고 나면 아주 빨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남편도 읽을 때 신체 변화를 느꼈다. 진정으로 이 아홉 글자 진언(眞言)의 위력이 비할 바 없음을 느꼈다. 우리는 우주의 최고 특성을 읽는 것이니 그는 사람에게 심성을 향상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늘 아홉 글자를 읽는 사람에게 자주 신적(神跡)이 나타나는 것이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를 체현한 것이다.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1]

나는 먼저 ‘진(眞)’을 해내야 한다고 깨달았다. 오직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도(道)를 깨달을 수 있다. 만약에 진수(眞修)하지 못하면 마치 수련생이 쓴 문장 ‘불진(不眞)의 슬픔’ 중에서 그 노년 수련생과 같다. ‘인(忍)’은 나에게 가장 어렵지만 층차를 많이 제고할 수 있다. 나는 성격이 좋지 않아 자주 사소한 일로 화를 참지 못한다. 며칠 전에 ‘인(忍)’의 의미를 좀 깨달았다.

우리는 시댁에 가서 집수리를 도와드렸는데, 시어머니는 침대를 밖으로 옮길지 말지를 놓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이 걱정돼서였다. 시어머니는 평소 자녀들에게도 반감을 사는 사람이었는데, 당시 나는 일하러 온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었기에 꾹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인(忍)’을 해냈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사람의 심성은 층차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의 심성 높이는 모두 다르다. 낮은 층차의 생명은 ‘진선인(眞·善·忍)’에서 멀고, 더 잘 참을 수 있거나 더욱 포용할 수 있는 생명은 우주의 특성에 더 가깝다. 내가 우주 특성과 가장 거리가 먼 그런 생명이 되어서야 하겠는가? 아니다! 나는 잘 참아서 높은 층차의 생명이 될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그를 미워하면 당신은 화를 낸 것이 아닌가? 당신은 참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眞(쩐)ㆍ善(싼)ㆍ忍(런)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선(善)은 더욱 있을 리가 없다.”[1] 이 중에서 깨달았는데, 참을 수 없다면 선(善)은 더욱 해내지 못한다. ‘선(善)’ 자의 구조를 보면 신전문화(神傳文化)의 깊은 뜻을 볼 수 있다. ‘양(羊)’처럼 온순하고 성질을 부리지 않으며 ‘입(口)’부터 실천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도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2]라고 말씀하셨다. 예전에 ‘전법륜(轉法輪)’ 중 ‘심성 제고’ 부분을 볼 때 어떻게 심성 제고를 하는지 보지 못했으나 지금은 법 외우기를 통해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업력의 전화(轉化)’ 중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업력 전화(轉化)와 지신의 층차제고 각도에서 이 이치를 인식하라고 하심을 깨달았고, ‘심성 제고’ 중에서는 우리에게 타인의 각도에서 고려하라고 하심을 깨달았다.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1] 완전히 타인을 위해 생각하는 것은 진정으로 대법 중에서 수련한 생명이다. 게다가 우리는 일반적인 층차에서 원만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높은 층차의 진(眞), 더욱 큰 자비심, 더 넓은 포용을 해내야 한다. 속인 중에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청성(淸醒)’

 

원문발표: 2020530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30/4070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