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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사부님께서 나에게 행복한 가정을 주셨다

글/ 광시(廣西) 장족자치구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9년 1월, 몹시 어려운 형편에 빠져있을 때 저는 친척의 소개로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진선인(眞·善·忍)’ 수련으로 반본귀진하여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는 불법의 정도(正道)를 걷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의 가정

대법을 수련하기 전, 저는 시댁에서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미칠 정도로 고통스러워 이혼하고 싶고, 죽고 싶었지만 모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 대한 저의 원한은 바다처럼 깊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시집온 지 석 달도 안 됐는데 남편은 늘 밖에 나가 친구들과 먹고 마시며 놀면서 집에 있는 날은 며칠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집안일에 대해 전혀 상관하지 않고, 저에 대한 관심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습니다. 집에서는 약 300평 정도의 밭농사를 지었는데 남편은 밭에 간 적도 없었습니다. 한의사인 시아버지는 늘 사람들을 도와 병을 치료하느라 농사일을 자주 할 수 없었고, 시어머니는 일 년 내내 몸이 좋지 않아 농사일을 거의 하지 못하셨습니다.

게다가 시부모님은 또 남존여비 사상이 있어 여태껏 남편의 잘못을 말하지 않고 또 일도 시키지 않아, 저와 세 명의 시누이만 매일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때 저는 임신을 하여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때만 집에 반나절 정도 누워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댁 식구들의 뒷말이 무서워 힘든 몸을 이끌고 자주 밭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고생하는 나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없었고, 괴로워하는 나에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여태껏 저에게 일전 한 푼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저를 속여 오히려 저의 돈을 가져갔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돈만 생기면 숨겼지만, 매번 그가 뒤져서 돈을 다 가져가 저는 생리대 살 돈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친정집에 갔는데 어머니는 아껴두었던 적은 돈까지 저에게 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장롱 속에 깊숙이 숨겨놓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또 뒤져서 전부 가져가 먹고 마시는 데 썼습니다. 30여 년 전의 그 적은 돈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적지 않은 돈입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몸보신하라고 주신 것인데 결국 또 제가 무일푼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큰아들을 낳았을 때 남편은 집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문 앞에 서서 코를 막고, 또 손바닥으로 끊임없이 부채질하면서 집안을 주시하다가 가버렸습니다. 우리 모자(母子)가 어떠한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작은아들을 낳은 후 남편은 진(鎮)정부에 가서 악당의 단(團)지부서기가 되어 이번에는 더 심했습니다. 평소 잘 차려입고 마을을 돌아다녔던 그는 이번엔, 양복에 가죽구두, 머릿수건에다 머리까지 반들반들하게 치장하여 마치 큰 관리 같았습니다. 월급이 있게 되자 남편의 술친구는 더 많아졌고, 출세해보려고 인맥을 쌓느라 집안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이 지경이 되자 저의 불만은 증오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막내아들이 한 살 남짓 되었을 때 남편은 또 진에 있는 폭죽공장의 판매과장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그는 우리 모자 셋을 데리고 분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농사일을 할 필요가 없어, 좀 더 잘 살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공장에 들어간 후 저는 작업장에서 일하고, 그는 밖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남편은 제가 지식이 없어 서명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저의 월급을 매달 전부 받아서 저에게 돈 한 푼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일만 하고 무일푼으로 밥만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많은 돈이 생기자 더 방탕해졌습니다. 매일 식재료를 사서 부엌에 두고 사라져 사람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온종일 밖에서 먹고 놀다가 도박으로 발전해 호텔을 세내고 내연녀까지 두었습니다.

그때는 80년대 말, 90년대 초였는데 마침 중공 사당(邪黨)이 ‘개혁개방’을 시작했습니다. 공안국과 파출소가 한패가 되어 도박장을 열었기 때문에 ‘매춘, 도박, 마약’이 곳곳에 범람하여 해를 끼쳤습니다. 관리와 경찰들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서로 앞다투어 첩을 두었습니다.

한번은 한 지인이 저를 보고 남편에게 속은 제가 불쌍하다면서 좋은 마음으로 저에게 남편이 밖에서 도박도 하고 또 내연녀까지 두고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쓰러질 것 같았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가 돌아오자 저는 바로 그와 말다툼을 하지 않고 그런 일이 있는지 침착하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노발대발하면서 저를 때리고 그런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더욱 그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남편은 두 번이나 제게 성병을 전염시켰습니다. 남편은 저를 속이지 못하자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악한 일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 용서해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속담에 집안 허물은 밖으로 소문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추한 병에 걸리면 남들 보기가 가장 창피합니다. 제가 스스로 이런 남편에게 시집갔는데 남에게 말할 체면이 서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지인은 이미 모든 것을 알아버렸으니…. 감히 병원 진료를 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을 불러 시아버지에게 가서 한약을 지어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려 고통스러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날마다 피눈물을 흘리는 굴욕 속에 원망으로 온종일 눈물로 얼굴을 씻었습니다. 저는 늘 비통해하면서 저의 기구한 운명을 한탄했습니다.

어느 날 원한이 치밀어 오른 저는 부엌칼을 들어 남편의 손가락을 내리찍으려고 하자 그는 놀라서 시댁으로 달려가 숨었습니다. 이 몇 년 동안 겪은 숱한 고생을 저는 하소연할 곳이 없었습니다. 시어머니께 하소연하면 시어머니는 제가 시비를 거는 거라고 하시고, 시누이에게 말하면 시누이는 제가 남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시댁 식구들의 눈에는 이방인처럼 보여 지금까지 제 말이 서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시댁 식구들에게 더욱 원한을 품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남편에 대한 희망을 철저히 버렸습니다. 그는 이미 도박과 계집질을 하여 가산을 탕진하고, 지금까지 우리 모자의 생사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집도 잃게 되었으니 이미 집 같지도 않았습니다. 이 집에 대해 조금의 희망도 품고 있지 않아 저는 그저 죽고만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제가 죽으면 아이가 계모 밑에서 고생할까 봐 저는 그와 이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가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이혼을 거부하고, 시댁 식구들이 알아도 이혼을 하지 못하게 할 게 뻔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절망한 저는 거의 미칠 것 같았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의 가정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었습니다! 1999년 1월, 몹시 어려운 형편에 빠져있을 때 저는 친척의 소개로 다행히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진선인(眞·善·忍)’ 수련으로 반본귀진하여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는 불법의 정도(正道)를 걷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저의 친정집에는 형제자매가 많았습니다.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하여 저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습니다. 공부를 적게 한 탓에 지금은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할 정도로 다 잊어버리고 또 표준어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들어 사실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 단체 법 공부에 참여했을 때 ‘전법륜’을 펼치자 저는 한 글자도 알지 못했습니다. 수련생이 저를 보고 “괜찮아요, 먼저 귀담아들으시면 사부님께서 도와주실 테니 천천히 글자를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수련생들이 읽는 것을 열심히 들으면서 책을 보았습니다. 수련생들이 페이지를 넘기면 저도 따라 같이 넘기고, 수련생들이 멈추면 저도 따라서 멈추었습니다. 수련생들이 법 공부하고 심득교류를 할 때 저는 자세히 들었습니다. 매일 저녁 저는 법 공부 팀에 가서 단체 법 공부에 참여했습니다. 매번 저는 두 손으로 대법 책을 들고, 공손히 들으면서 대법을 배웠습니다. 수련생들이 읽을 때는 표준어로 읽고, 심득교류를 할 때는 고향 말로 했습니다. 사실 저는 수련생들의 심득교류를 통해 대법이 어떻게 좋은지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들으면 들을수록 대법은 마음을 닦고 선을 향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이 기구한 것은 자신이 과거 생생세세에 나쁜 일을 하여 조성한 것이고, 또 나쁜 일을 많이 할수록 고생을 많이 하게 되며, 또 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 갚아야 하기에 전생에 한 짓이라도 이생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인과응보의 천리이며 우주의 법칙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선을 향해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저는 들으면 들을수록 대법의 법리가 너무 좋았고,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 한마디로 점점 더 듣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저는 평소대로 수련생들이 읽는 법을 듣고 있었습니다. 듣고 있는데 갑자기 제가 글자를 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진짜인지 아닌지 몰라 묵묵히 따라 읽었습니다. 법 공부가 끝난 후 저는 ‘전법륜’ 중에서 제가 아는 글자를 가리키며 읽으면서 이렇게 읽는 것이 맞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수련생들은 깜짝 놀라 “당신은 이미 글자를 알아 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모르는 글자가 많다고 하자 수련생들은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면서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날마다 더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한 달 후 저는 놀랍게도 수련생들과 같이 ‘전법륜’을 통독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 자신의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대법을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셔서 글자를 읽을 수 있고 문화가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행복하여 계속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완전히 기쁨 속에 잠겼습니다. 과거에 고생스러웠던 생각, 가슴에 쌓였던 원망, 머리에 맺힌 슬픔이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또 바다처럼 깊었던 원한도 거의 사라져 심신이 정말로 편안했습니다. 과거 늘 수심에 잠겨 활기가 없던 모습이 바뀌어 사람을 만나면 모두 웃는 얼굴로 대했습니다.

제가 날마다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꽃을 피우자 가족들은 정말로 제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하루가 다르게 정신이 좋아지면서 생기가 넘치는 것을 보고 정말로 불가사의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온 가족에게 파룬따파를 배워서 그런 것이라면서 파룬따파는 ‘진선인(眞·善·忍)’을 가르쳐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불법이고, 대법을 배우면 도덕이 고상한 사람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좋은 사람이 되어야 살길이 있고, 아이와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겨우 한 달 넘게 대법을 배운 저는 문맹을 퇴치해 글을 알게 되었고, 대법 책을 읽을 수 있어 지식이 있게 되었습니다.

온 가족은 제가 대법을 수련하여 변한 좋은 모습을 보고 정말로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시어머니와 시누이 셋, 그리고 남편까지 대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 여섯 식구는 기쁜 마음으로 법 공부 팀에 가서 대법을 배웠습니다.

과거에 이를 악물고 원망했던 시댁 식구들이 지금은 저와 같은 대법 수련생이 되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정말로 하늘이 내려준 복입니다! 대법의 위력은 크고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자비롭습니다!

대법을 배우면서 저는 남편의 잘못은 오늘날 사회의 기풍이 날로 나빠지고, 도덕이 타락하여 파괴된 사회 풍조에 오염되었기 때문이고, 그도 피해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이상 그를 원망하지 않고 그와 함께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싶었습니다. 남편도 나날이 좋아지면서 ‘매춘, 도박, 마약’에서 멀어져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의 몸도 정화되어 몇 달 만에 심신이 모두 건강해졌습니다. 이때 폭죽공장도 파산되어 저는 옷가게에 가서 옷을 팔고, 남편은 오토바이를 사서 손님을 태워 돈을 벌었습니다. 수입은 많지 않았지만, 남편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우리는 낮에 일하고, 저녁에는 법 공부하며 화목하고 평화스러운 완전히 새로워진 가정을 갖게 되어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박해를 받은 후 다시 꾸려진 가정

그렇지만 우리가 행복하게 법 공부하고 연공할 때 중공의 장쩌민 집단은 국가와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왔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온 천지를 뒤덮듯이 날조하여 대법과 사부님께 먹칠하고, 대법제자를 잔혹하게 탄압하여 우리가 법 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 일로 인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의연하게 걸어 나와 대법을 실증했습니다. 베이징에 가서 사부님을 위해 바른말을 하여, 두 번이나 현지 중공의 ‘610’(중공 장쩌민 불량배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전문 설립한 불법 기구)과 경찰에 의해 불법으로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를 받았습니다.

2005년, 저는 노동교양소에서 나온 후에야 남편이 집에서 경찰의 위협과 협박으로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압적인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점점 대법에서 벗어나 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려갔습니다. 막내아들은 대학에 합격해 입학을 눈앞에 두고도 학교에 갈 돈이 없어 저는 거의 미칠 뻔했습니다. 나중에 아이 이모가 좋은 마음으로 몇천 위안을 가지고 와서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큰아들은 또 타향에서 떠돌다가 도박에 손을 댔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심장이 칼로 에는 듯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대법을 배워 훌륭한 가정을 얻었지만, 중공 사당(邪黨)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우리 가정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다시 남편에게 돌아와 대법을 배우라고 권했습니다. 남편은 결국 진심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고 돌아와서 정말로 저와 함께 다시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대법을 배우자 바른 힘이 생겼고, 남편의 좋은 본성도 다시 나왔습니다.

우리는 다시 가정을 꾸려 아이들이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남편은 예전처럼 오토바이로 손님을 태워 돈을 벌었고, 저는 찻잎을 따서 돈을 벌면서 농사도 지었습니다. 우리는 주변 마을 이웃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당,단,대 조직 탈퇴)를 권했습니다. 또 틈틈이 선물을 사서 남편의 오토바이를 타고 친척 집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우리는 대법의 지도와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 아래 이 몇 년 동안 고생을 겪으면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환경을 점점 더 넓혀 나갔습니다. 접촉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모두 기회를 잡아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진선인’의 아름다움을 보고, 또 대법의 진상을 알고 나서 ‘삼퇴’를 했습니다.

우리는 중공의 거듭된 박해를 제거해 우리의 삶도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아이들도 분발했습니다. 큰아들은 도박을 끊고 정당하게 일을 하여 돈을 벌었고, 막내아들도 대학을 졸업한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하였으며, 저와 남편도 한 회사에 임시직으로 일을 합니다. 온 집안의 수입이 점점 늘어가면서 이전에 남에게 빚진 돈을 다 갚았습니다. 아이는 멋진 차를 샀는데 시간이 나면 집에 와서 우리와 함께 식사도 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4층짜리 새 건물 하나를 더 지었고, 며느리를 맞아 손녀까지 생겼습니다. 작년에 마음에 드는 새집에 이사하여서 화목하고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저와 남편은 시간대를 겹치지 않게 출근하여 집에서 번갈아 가며 손녀를 돌보고 일과 집안일에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지금 저는 일하면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 저에게 무(無)에서 유(有), 쓴 것에서 단 것까지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대법을 주셨고, 지혜와 건강을 주셨으며,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능력과 집안 가득히 좋은 사람을 주셨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아 계속 수련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돌아오셔서 한자리에 모이는 그날을 기다리며 자신을 더욱 잘 닦아 나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0514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14/4050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