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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법 중의 내포를 나에게 보여주시다

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법을 얻은 지 22년 됐지만 법공부를 할 때 늘 집중이 되지 않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또 곤마(困魔)도 끊임없이 교란해 마음속으로 괴롭고 초조했다. 사부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전법륜』을 읽을 때 사상이 전일하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하며 수련 중에 전념하지 못한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같으며”[1]라고 말씀하셨다.

법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아 갈등이 생기면 안으로 잘 찾지 않았다. 안으로 찾는다고 해도 근본을 찾지 못해, 문제에 봉착하면 모두 밖으로 보았다. 가족에게도 불만이 많아 원망심도 매우 심각했다. 따라서 심성도 여전히 제고하지 못해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오랫동안 많은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특히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 줄 몰랐고, 타인에게 명령식으로 말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요구하는 이런 강렬한 마음은 자신이 버려야 할 집착심인데 전혀 몰랐다. 스스로 많은 괴로움을 당해 억울했지만, 이 집착심을 제거할 줄 몰랐다. 또 다른 집착심도 아주 많았다. 지금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心性(씬씽)이 여러 방면에서 모두 제고되어야만”[2] 한다는 법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수련은 절대 대충 해서는 안 되며 대법 수련은 아주 엄숙한 것이다!

남편이 이렇게 저렇게 잘해야 이 가정이 좀 더 나아지고, 또 아이도 잘 돌볼 수 있고, 집안일도 좀 분담하면 내가 시간을 좀 내서 법공부를 더 할 수 있다고 늘 생각했다. 어쨌든 남편에게 항상 요구가 있었는데 속인에게 많이 집착하는 것 같았다.

2019년 말, 설 전날에도 나는 초과근무를 했다.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다하지 못해 빨리 끝내고 바삐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이 무슨 설날 음식을 만들었을지 생각했다. 집에 들어서자 테이블 위에 접시 두 개가 있었는데 남편과 아이는 이미 먼저 밥을 먹고 각자 자기 방에서 핸드폰을 보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말로 분통이 터졌다. 그 당시 안으로 찾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정말로 집에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를 생각하자 갈 수 없었다. 화가 잔뜩 나서 남편에게 몇 마디 하자 그도 화를 내며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아이에게 화풀이하려고 아이 방에 가서 금방이라도 손찌검을 할 태세였다. 서둘러 그를 막자 그도 나를 밀었다. 아이가 이 상황을 보자 그는 잠시 그만뒀다. 나는 즉시 아이의 방문을 잠그고 마음속으로 ‘설날에 이게 무슨 짓이지’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이러지 않았는데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며칠 동안 안으로 찾아봤더니 타인에게 요구하는 마음이 아직도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을 바로잡은 후 수련인은 속인에 대해 어떤 집착심을 품고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이 있으면 모두 부딪히는 중에서 제거해야 하고, 또 숨겨진 많은 사람의 관념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생생세세의 윤회는 이번 생을 위한 것인데 이 관건적인 시각에 왜 이렇게 사람 마음을 버리기 어려운지? 사부님의 시 ‘끊다’가 생각났다. “수련은 어렵지 아니하나 마음 버리기 어렵노라 그 많은 집착 어느 때나 끊을꼬 고해(苦海) 끝없음을 모두 알거늘 의지 확고하지 못하면 고비는 산과 같나니 어이 속세를 벗어나랴”[3]

올해 4월 초 어느 날, 한 친구에게 진상을 알리고 돌아온 후 ‘전법륜’을 들고 제1강 “부동(不同)한 층차(層次)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2]를 외웠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게 되어 다시 이어서 계속 외웠다. 마치 사부님께서 나에게 제고될 때가 됐으니 더욱 높은 요구가 있어야 하고, 새로운 표준이 있어야 한다고 알려주시는 것 같았다.

내 층차에서 ‘방할(棒喝)’, 이 두 글자를 보았는데 이것은 나에 대한 방할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표준이 너무 낮아 조급해하시는 것 같았다. 다시 ‘방할’하지 않으면 천만년의 기다림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스스로 깨달으라는 것이다.”[2] 착실히 수련해 안으로 찾아야 한다. 무슨 일이나 모두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늘 다른 수련생을 찾아 의논하면 안 된다. 내 신변에 늘 수련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의존심이 있으면 안 되기에 모두 자신에 의거해 깨달아야 한다.

“몇백 년이나 지났지만, 어떤 사람은 지금도 선종의 이치를 한사코 부둥켜안고 놓지 않는다.”[2] 돌이켜보면 수백만 년이 지나갔고, 윤회 중에 인간 세상의 온갖 단맛과 쓴맛을 다 보았다. 힘들게 사부님께서 전한 대법을 만났는데 나는 사람의 것을 죽어라 안고 놓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바로잡지 않았다. 이 몇 구절의 법을 통해 갑자기 펼쳐진 법리는 전부 당시 내 상태를 지적하신 것이다.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에서 개공개오(開功開悟)한 후, 단번에 여래 이 층차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그는 49년간 내내 법을 전하는 중에도 자신을 끊임없이 제고(提高)했다.”[2] 사부님께서는 나를 ‘방할’해주신 후 또 내가 끊임없이 제고할 수 있도록 자비스럽게 격려해주셨다. 이 짧은 단락의 법을 통해서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법리의 내포를 펼쳐 보여 주셨다.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끊임없이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부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법을, 오직 그를 지키며 수련하면, 무엇이든 모두 얻을 수 있는데, 그건 틀림없이 그렇다. 그러므로 오직 여러분이 진지하게 배운다면, 내가 말한 것과 같을 것이다.”[4] 정말로 내 경험은 내가 대법 중에서 느낀 몇 마디에 불과했다. 대법 중에서 깨달을 수 있는 법리는 무한해 나는 마음속으로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 만약 더욱 많은 층층의 법리를 볼 수 있다면, 정말로 오묘하기가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사부님의 은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크다는 수련생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항상 잘하지 못해 제고될 기회를 많이 놓쳤지만, 내가 잘 닦은 신(神)의 그 일면은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걱정해주심을 느낄 수 있었다. 늘 사부님만 생각하면 말없이 눈물이 흐르곤 했다. 내가 잘하지 못하면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고, 내가 잘하게 되면 기뻐하실 것이다. 사부님이 생각날 때 사부님의 시를 외웠다. “미친 사악 4년 돌풍에 키를 단단히 잡고 항로를 잃지 않았네 대법제자는 마난을 겪으며 중압(重壓)에도 의지 변치 않았네 사제는 정을 따지지 않나니 부처의 은혜 천지를 녹이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5]

사부님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2-끊다(원곡)’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2-사도은(師徒恩)’

 

원문발표: 2020528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5/28/4064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