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전기 플러그가 마침내 꽂히다-내가 법을 얻은 체험

글/ 중국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아버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5세 때 나를 광동의 큰아버지 집으로 보냈다. 큰아버지 집은 광동의 명찰(名刹) 남화사의 맞은편에 있었다. 나는 유치원에 다니던 몇 년간은 절에서 지냈다. 아주 어렸을 때 큰아버지가 나에게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수련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수련한 이후 한 번은 꿈을 꿨는데 내가 어느 사찰 입구에 가자 안에서 스님 한 분이 나와서는 나에게 “이곳은 남화사요. 시주(施主)님은 5백 년 전에 여기서 수행했지요.”라고 했다. 나는 꿈을 깼는데 꿈속에서 나의 불연(佛缘)을 알려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에 간 후 나는 혼자서 자주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의 신비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깊이 생각했었다. 물론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중학교에 간 후 ‘오비(奧秘)’라고 하는 잡지 한 권을 보게 됐다. 그 속에는 사전 문명(史前文明)과 외계인 등 초자연적인 현상이 적혀있었는데 나는 그 내용에 깊이 빠져들었고, 생명과 우주, 다른 공간에 대한 사고를 더욱 계발시켰다. 그때는 80년대 중반이었고 온 국민 사이에는 기공 열풍에 한창이었다. 나도 따라서 몇 가지 기공을 연마했으나 모두 겉모양의 것이고 기를 연마하는 낮은 것들이었으며 수련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했다.

대학에 간 후 친한 고교 친구 한 명과 자주 왕래했다. 그는 혜근(慧根-타고난 지혜로움)이 좋아 불법(佛法)을 숭배했고 항상 나를 데리고 사찰을 돌아다니며 신선을 찾고 도를 찾았다. 나에게 일부 불교 서적을 권했기에 나는 점점 불도(佛道) 수련에 대한 얕은 인식이 있게 됐으며 신불(神佛)의 존재를 더욱 굳게 믿었다.

한 번은 동창과 내가 우리 지역의 유명한 사찰인 소각사(昭覺寺)에 가서 참배했다. 절에는 사람이 넘쳐났으며 불당 앞에서는 향을 피우고 있었지만, 이 신도들을 보고 있으려니 오히려 기쁘지 않았고 마음이 씁쓸했다. 부처에 대한 신앙과 경건함은 부처가 세간의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일심으로 도에 전념한 내면의 숭경과 자신의 집착을 끊임없이 정화한 것에 대해 나타나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부처와 보살은 ‘구하면 반드시 들어주며’, ‘출세하고 돈 벌고, 아들 낳고 진학을 도와주는 것으로 모두 변했는가?’ 이렇게 생각하자 이상한 향기가 났는데 보살이 나를 칭찬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근기가 있고 이상(理想)을 가진 젊은이라 하더라도 대학을 졸업하고 일하게 되면 날로 미끄러진 세상 기풍에 따라 표류하게 된다. 큰 염색 항아리 같은 속인 사회의 영향에서 견뎌내지 못하며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일하고 돈을 벌며, 어떻게 두각을 나타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서로 속고 속이며 아옹다옹하게 되어 금방 순진함을 잃게 된다. 음주, 호색, 탐욕과 노여움에 물들고 먹고 마시고 방탕에 빠져 온갖 짓을 하며 심지어 경제적인 분쟁으로 파출소까지 간다. 사회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고, 좋은 일 나쁜 일 속에서 많은 업을 빚지만 그래도 자신은 사회 발전에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96년 중국 설에나는 남방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도시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우연히 길 난간에 ‘파룬포파(法輪佛法-법륜불법)’라고 쓴 아름다운 금색 글자의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봤다. 그 옆에서는 몇 사람이 은은한 음악에 맞춰 연공을 하고 있었고 동작은 편안하고 느슨했다. 이것은 내가 처음 접한 대법제자의 홍법 활동이었으며 나는 호기심을 갖고 그들이 연공하는 것을 바라봤다. 사부님께서 심혈을 기울이신 배치로 이튿날 나는 공교롭게 서점을 돌아다녔고 무심결에 책꽂이에 있는 ‘전법륜(轉法輪)’을 보게 됐다. 전날 본 ‘법륜불법’이 생각나서 나는 즉시 구매했다.

집에 돌아오자 기쁜 마음으로 ‘전법륜(轉法輪)’을 받쳐 들고 읽기 시작했다. 보니 정말 커다란 깨우침을 주는 것 같았으며 이 책이 너무 좋았다. 수년 동안 풀지 못했던 인생 문제와 우주의 오묘함과 신비 등 머릿속의 많은 의문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덕(德)과 업(業)은 무엇이고, 실(失)과 득(得)의 관계는 어떠한지 알게 됐으며 졸업 후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해서도 사색해 보게 했다.

다시 노동하던 남방 도시로 돌아와 차를 타고 여기저기 연공장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찾지 못했고 점차 이 일을 내려놓게 됐다. 대법과 만날 기회를 찾지 못했다.

1년 후, 당시 자신의 상황에 대한 실망과 불만으로 나는 자신에게 변화를 희망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베이징의 대학에 가서 영어를 공부해 자신을 충전하고 싶었다. 영어를 잘 배워 더 나은 외국 기업에서 일하고 싶었다. 베이징행 열차에서 뜻하지 않게 적극 홍법(洪法)하는 한 중년을 만났다. 나는 흥분해서 그에게 “당신이 말하는 파룬궁을 알고 있으며 마침 연공장을 찾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집은 베이징에 있었고 내게 베이징 대학 연공장 주소를 알려주며 도착하면 꼭 연공장을 찾으라고 거듭 당부했다. 나는 두말없이 승낙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당시 내 머릿속은 어떻게 영어를 잘 배워 이후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학교에 가서 등록한 후 자신이 연공장을 찾겠다고 승낙했던 사실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베이징에서 공부하는 1년 동안 계속 연공장을 찾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내가 법을 얻게 하려고 고심(苦心)하여 배치해주신 두 번째 기회마저 이렇게 나를 한번 스치고 지나가 버렸다.

또 1년이 지났다. 영어연수 과정이 끝나고 청두(成都)로 돌아와 원하던 대로 비교적 만족한 직장을 찾았다. 이제 됐다! 마침내 뜻대로 됐고 공명을 추구하는 인생행로에서 한번 분투해 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고생스러운 수련은 오래전에 이미 잊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고등학교 친구가 다시 찾아왔는데 의외로 이번에는 그가 나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전하려고 온 것이 아닌가! 2년 전에는 내가 ‘전법륜(轉法輪)’을 한 번 읽고 바로 그에게 이 공법을 추천했었다. 하지만 당시 그는 불교를 경건하게 믿고 있었고 여러 가지 기공도 연마했기에 별 신경은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파룬궁이 청두(成都)에서 점차 발전함에 따라 그의 고모 등 친척의 인도하에 그는 지금까지 연마하던 각종 기공을 내래놓고 확실하게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그는 내가 혜근(慧根)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내가 수련하지 않는 것을 애석해했다. 그래서 항상 나를 마음에 두고 일심으로 나를 수련으로 이끌었다.

이번에는 오히려 내가 망설였다. 도대체 수련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나도 대법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전법륜(轉法輪)’을 처음부터 끝까지 딱 한 번 봤을 뿐인 데다 이사하면서 책을 잃어버렸고 대법에 대해 매우 감성적인 인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 내가 정말 연공 한다면 마음이 불안정할 것이고 어렵게 좋은 일자리를 찾았는데 다시 마음이 분산될 것이다. 물론, 당시 나의 최대 의문은 이 법이 과연 사람을 환골탈태하게 하고 심성을 진정으로 제고되게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의 고민을 알아채고 ‘파룬따파(法輪大法)가 바수(巴蜀-四川의 옛 이름)에 있다.’라고 하는 책을 나에게 가져다주며 읽어보라 했다. 이 책은 그곳 수련생의 수련체험이었다. 책에서 생생한 수련 이야기를 읽었는데 모두 법을 얻은 후 어떻게 심신에 이익이 있었고, 도덕 품성이 어떻게 제고됐는지의 실제 사례였다. 그중에서 은행의 대출담당 직원이 법을 얻은 후 더는 뇌물과 돈 봉투를 받지 않았다는 수련체험은 나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이익을 보면 얻고, 공짜가 있으면 가졌으며, 도덕적 자질은 계속 미끄러져 내심으로는 고통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벗어나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이 공법은 진짜 내심에서부터 한 사람을 바꿀 수 있었는데 정말 고덕대법(高德大法)이 아닌가! 하지만 마음만 그랬을 뿐 그가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하며 고생하는 걸 보고는 질질 끌며 수련할 결심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오성이 부족한 나에게 결국 대법 수련으로 들어오게 한 것은 이어 발생한 한 가지 일 때문이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가 전화로 식사 초대를 했다. 식탁에 요리가 가득했고 술이 세 순배 돌자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데리러 가야겠다고 했다. 그러나 자전거가 없었기에 내 것을 빌려 타고 갔고 나는 식당에서 이제나저제나 올까 초조하게 기다렸다. 날이 어두워져 안 지 얼마 되지 않는 이름도 모르는 이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제야 나는 사기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전거를 잃어버린 것은 놔두고라도 그를 대신해 돈까지 내야 했는데 정말 이중으로 손해를 입었다.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가다 나도 모르게 대법 수련을 권했던 동창 집으로 가게 됐다. 있었던 일을 그에게 한 번 설명하고 위로받을 수 있기를 바랐으나 의외로 그는 대충 위로해 주고는 대법의 법리로 하나하나 나를 일깨워주기 시작했다. 더는 억울해하지도, 고민하지도, 미워하지도 말라고 하며 모순에 부딪히면 먼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라고 했다. 자신을 돌아보니 얻고자 하는 사람 마음이 있었기에 사기당했다. 여기에는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 사심(私心)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상의 인연 그리고 실(失)과 득(得), 덕(德)과 업력(業)의 관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상처받은 마음은 조금씩 평온해졌다.

그가 나에게 이 모든 것은 대법의 법리와 수련 중 얻게 된 지혜에서 온 것이라고 말하자 나는 다시 한번 크게 감동했다. 그렇다, 사실 이런 것 모두 ‘전법륜’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법리이다. 하지만 당시 수련하지 않았던 나는 전에 책에서 봤던 이런 법리를 깡그리 잊어버렸다. 오직 진정하게 수련하기만 하면 한 사람의 세계관이 이처럼 본질에서부터 바뀔 수 있고 아울러 높고 깊은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어떤 음성이 나의 심령 깊은 곳에서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번에는 기연을 다시 놓쳐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다. 나는 동창에게 “지금부터 시작하겠다. 나는 수련하겠다!”하고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동창이 내게 건네준 ‘전법륜’을 받쳐 들고 공손히 무릎 꿇고 진지하게 금생에 대법을 수련하겠다고 소원을 표명했으며 끝까지 수련하겠다고 했다.

밤이 이미 늦었지만 나는 동작과 공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가 내게 가부좌를 가르쳐줬다. 몹시 아프긴 했지만 나는 그래도 이를 악물고 반가부좌를 하고는 시범을 따라서 수인(手印)을 하며 조용히 가부좌를 배웠다.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수인을 끝냄과 거의 동시에 수만 개의 아주 작은 것이 신체 안에서 매우 빠르게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발가락 끝에서 시작해 점점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아랫배로 올라오고, 다시 명치(가슴)까지, 그리고 정수리까지 올라왔다. 갈수록 많아지고, 빨라지고 강해졌는데 온 신체를 둘러쌌다. 저리기 시작하자 호흡도 급해졌는데 당시 나는 갑작스러운 체내의 반응에 어리석게 대처했다. 처음에는 최대한 견지했지만, 당시 오성(悟性)이 모자랐기에 나중에는 점점 불안해졌고 사부님께 “사부님, 그만하겠습니다. 그만하겠습니다.”하고 마음속으로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돌던 것들이 모두 ‘쏴’하고 왔던 대로 다시 위에서부터 아래로 단번에 전부 사라졌고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중에야 이것은 사부님께서 파룬을 내보내 신체를 정화해 주심과 동시에 나의 오성과 인내력을 고험한 것임을 깨달았는데 왜 잠시 더 견지하지 못했는지 한스럽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마치 이 전기 플러그처럼, 꽂기만 하면 전기가 통하는 것과 같다.”[1]하고 말씀하신 바와 똑같았다. 그날부터 시작했는데 즉, 1998년 12월 24일 밤 기연(機緣)이 마침내 무르익게 됐다. 우둔한 나는 두 번이나 대법을 지나쳐 보내고 사부님을 걱정하시게 했다. 드디어 세 번째에 기회를 붙잡게 됐으며 진정하게 대법 수련으로 들어오게 됐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11 –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원문발표: 2020517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5/17/4064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