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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 속에서 대법의 신기함이 나타나다

글/ 후난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보통 파룬따파 수련자이며 올해 74세다. 1997년 9월 기쁘게 법을 얻었고 지금까지 22년이 됐다.

수련 전 나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심하게 앓았는데 해마다 발작했으며 그때마다 통증이 그치지 않아 앉아서 밥도 먹을 수 없었다. 매번 병원에서 10여 일 치료해야 했으며 고통이 아주 심했다. 나는 담배와 술에 중독돼 담배는 하루 세 갑을 피웠고 술도 매일 마셔야 했다. 담배와 술을 끊으려 시도해봤으나 아무리 결심해도 끊을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여러분에게 권한다. 정말로 수련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금부터 시작하여 당신은 담배를 끊도록 하라. 보증코 당신은 끊을 수 있다.”[1]라고 하셨다. 마음속으로 ‘나는 진정으로 수련하려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 순간부터 더는 담배를 피우지도 술을 마시지도 않게 됐다. 담배와 술 중독이 그렇게 심했지만 수월하게 끊어버릴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이 대법의 위력임을 깨달았다.

연공한 후 여러 해 동안 나를 괴롭혔던 류마티스 관절염도 나았고 평소 쉽사리 화내던 성격도 온화해졌다. 아내가 내 변화를 보고 곧장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다. 아내도 편두통, 담관 결석, 추간판탈출증 등 각종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수련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다 사라졌다. 22년 동안 한 푼어치 약도 먹지 않았고 길을 걷고, 계단을 오르고, 물건을 드는 것도 젊은 사람보다 더 잘했다.

딸들은 우리 부부의 신체와 심성 등등의 변화를 보고 우리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지지하고 도와주며 사악 앞에서도 언제나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의 좋은 점을 말했다.

지금 나는 건강하며 자손도 많다. 내가 가장 기쁘고 위안이 되는 것은 어떠한 심한 박해를 당하더라도 집안의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지금까지 동요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2000년에는 딸이 나를 도와 사존께서 발표한 ‘심자명(心自明)’ 등 신경문을 다른 수련생에게 보내줬다. 나는 진상 자료를 만들었는데 세 딸이 지지해주고 기술과 자금을 도와줬다. 바쁠 때는 며느리와 손자도 와서 도와줬다. 큰며느리는 회사 앞에서 일하는데 항상 진상지폐를 썼으며 문 앞이라 장사가 잘됐다. 그들의 친구가 집에 오거나 밖에서 만나게 되면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 3대 조직에서의 탈퇴)하게 했다. 큰아들네는 손자가 둘 있다. 큰손자는 올해 18살인데 몇 년 동안 쭉 사존의 법상 앞에서 문안을 드리며 향을 피워 올린다. 밖에서 사부님을 모욕하고 대법 표어와 그림에 먹칠한 것을 보면 그는 방법을 생각해 그것을 제거해버릴 수 있었다. 그는 ‘홍음(洪吟)’ 외우기를 좋아하며 학우 몇 명을 삼퇴하게도 했다. 또 12세 된 손자도 ‘홍음’ 외우기를 좋아하는데 법회 교류문장을 들으며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하게 하는데 벌써 수십 명이나 된다. 그의 학습성적은 언제나 10등 안팎이다. 다른 네 명의 손자도 ‘홍음’을 외우고 있고 학교에서는 진상지폐를 쓰는데 진상지폐가 없으면 나에게 만들어 달라고 한다.

1. 조사정법(助師正法) 중의 신기한 일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정상적이던 내 생활은 하루 밤사이 파괴됐다. 여러 차례 파출소에 불려가 심문을 받았으며 사존의 보호로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2000년 11월 박해로 나는 유랑하게 됐으며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세 개 도시를 전전하며 여섯 번이나 이사했다. 2001년 4월 17일 사악한 경찰은 우리 집을 압류했고 아내(수련생)는 파출소로 끌려갔다. 경찰은 나에게 적어도 수련생 한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대면 우리를 집에 보내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협력하지 않았다. 이틀 후 아내는 집에 돌아갔으나 나는 구치소에 1개월간 수감됐다. 나는 안에서도 범죄자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들은 “여기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온 적이 없는데 원래 파룬궁은 이렇게 좋군요. 장쩌민은 너무나 나쁩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 꼭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구치소 과장을 포함한 감옥 경찰에게 ‘톈안먼 분신자살’은 조작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고 또 “집에 돌아가 잘 수련하시길 빕니다”라고 했다. 사존의 보호와 가지(加持)로 모든 일이 흐지부지됐고 최후에는 정념으로 구치소를 나올 수 있었다.

2002년 말, 나는 아들이 결혼해 독립한 도시로 왔는데 그때부터 일정한 거주지가 있게 됐다. 아들이 있는 곳에 와서도 진상을 알리고 중공의 거짓말에 속은 세상 사람을 구했는데 모든 진상자료는 고향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이 기간에 택배회사에서 두 차례나 자료가 발각됐으나 내 지혜로 집으로 가지고 올 수 있었다.

2006년 수련생의 도움으로 나는 대법 진상 자료의 제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련생과 협력하며 기술 수련생의 도움으로 자료점은 지금까지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다. 나는 이미 각종 자료의 제작방법을 잘 익혔으며 우리 집 주변의 법공부 팀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는 데 필요한 수요를 충당하고 있다. 내 심성도 진상 자료 제작 과정에서 제고가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을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와 떼어놓을 수 없다.

2. 내 이름을 말했으나 원망도 원한도 없다

2010년 새해 탁상달력과 벽걸이 달력을 만들려고 한창 준비하며 A3 인쇄기를 한 대 샀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는데 내가 사는 주택단지의 한 수련생이 외지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납치돼 세뇌반에 갇혀 박해를 받았다. 주택단지 책임자가 그녀를 집으로 데려오려고 갔는데 그녀에게 “이후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마세요. 우리 단지에도 자주 이런 자료가 있던데 당신이 했지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이 수련생은 “우리 단지에 연공하는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책임자는 누구냐고 물었고 그녀는 내 이름을 말했다.

내가 사는 단지는 중앙에서 직접 관리하는 한 직장 기숙사인데 나는 거기 직원이 아니다. 집에 있는 자료점이 교란받지 않게 하려고 나는 단지 내에 나를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내게 아주 친절하지만 진상을 알고 삼퇴한 친한 몇 사람 외에는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을 모르게 했다. 어느 날 오후 6시경, 친구가 내게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고 하며 누군가가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라고 일러바쳤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하며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이튿날 오전 단지의 경비원이 내 아들을 만나 상황을 파악하려고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느냐고 물었다.

아들이 “아버지는 이전에 병이 있었는데 연공한 후로 다시는 아픈 일이 없습니다. 아주 건강하며 70세가 다 돼 가지만 겨울에 눈이 내려도 오토바이를 타고 시장에 가서 찬거리를 사 오십니다. 아들이 되어서 연마하지 못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당신들이 고발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후 안전에 주의하면 당신들에게도 우리 집에도 다 좋은 일이지요”라고 말했다.

아들이 집에 돌아와 나에게 잠시 모든 장비와 책, 자료, 소모품을 다 옮기라고 했다. 나도 그의 집에 머물 수 없게 됐다. 나는 내 거처로 돌아왔고 아내와 날마다 발정념하면서 아울러 사존께 가지를 청했다. 발정념 때 주택단지 경비원의 주원신(主元神)과 소통하며 ‘대법을 파괴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꼭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고 그에게 말했다. 나는 ‘꼭 그를 구하겠다. 이전에 그에게 진상을 알리지 못한 것은 이기적이었으며 나의 잘못이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열흘 넘게 지나갔다. 아들의 친한 친구가 출장에서 돌아오자 아들은 이 일을 친구에게 말했다. 이 젊은이는 진상을 아는지라 전 가족 세 명이 모두 삼퇴했다. 그가 아들의 말을 듣고 그날 밤으로 경비원을 찾아갔다. 상부에 아직 보고하지 않은 것을 알고 그는 경비원에게 “파룬궁은 좋은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 단지 사람 모두가 그 노인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되며 그러면 응보를 받게 됩니다. 사람을 해치지 않아야 좋은 미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돼 경비원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해야 한다. 그 뒤로 나는 다시 주택단지로 되돌아갔고 점차 그 경비원에게 접근할 수 있었는데 그에게 진상을 말하고 아울러 삼퇴를 도와줬다. 경비원은 진정으로 진상을 알게 되자 아주 기뻐하며 나에게 감사했다. 나는 “감사하려거든 우리 사부님께 감사하십시오”하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 경비원에게 진상 자료를 보내주는 데 그는 보기 좋아한다. 한바탕 풍파가 이렇게 사존의 보호하에 잠잠해졌다.

나는 나를 일러바친 수련생을 원망하지 않았으며 이는 사악의 박해이고, 탁상용과 벽걸이용 진상 달력을 만드는 일을 교란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나를 안타깝게 한 것은 진상 자료를 만들 적합한 장소가 없어진 것이다.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하고 안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찾으며 자신을 바로잡았다. 내가 알기로 우리 지방에는 당시 나 혼자만이 밍후이 진상 달력을 제작했는데 매년 달력이 부족했고 또 외지 수련생까지 있었다. 이전에 외지 수련생은 우리 지방에 와서 달력을 가져가야 했다. 문제점을 찾아내자 나는 먼저 몇몇 수련생에게 달력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처음엔 몇몇 수련생 모두 달력 만들기 어렵다고 하며 소모품을 어디서 사는지도 몰랐다. 나는 탁상달력, 벽걸이 달력 제작 기술을 다 가르쳐준 후 설비와 소모품 사는 것을 도와주며 어디서 사는지 알려줬다. 이후로는 그들 스스로 살 수 있었다. 돈이 없는 수련생에게는 돈을 주며 도왔다. 이렇게 나는 세 명의 현지 수련생과 두 명의 외지 수련생에게 달력 제작법을 가르쳐줬다. 나 스스로도 아내가 사는 곳에서 탁상달력과 A3 벽걸이 달력을 만들었다. 최근 일 년간 우리 지역에서 제작한 탁상달력과 벽걸이 달력은 이전의 두 배를 초과했으며 수련생들의 수요를 만족시켰다. 사악의 박해는 철저히 허사가 됐다.

3. 심성을 제고해 용량을 키우다

나는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컴퓨터용품 시장에 가서 진상 자료를 만드는 소모품을 사는데 왕복 두 시간 걸린다. 한 번 충전으로 보통 두 번 갈 수 있다. 2015년 어느 날에 오토바이 충전량이 갑자기 부족하다고 표시됐는데 한 번 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배터리가 오래돼 교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 시간이 지나도록 나는 깨닫지 못했다. 한 번은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문득 깨달았다. 이는 사부님의 점화 아닌가? 전동차 배터리가 충전되지 않은 것은 용량이 적다는 것 아닌가? 나는 제고해야 하고 용량을 확대해야 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오토바이와 소통하며 말하기를 “고맙다. 나는 꼭 집착을 찾아내 용량을 키우고 심성을 제고하겠다. 너도 용량(충전량)을 키우도록 하자”라고 했다. 그 뒤 3일도 되지 않아 배터리가 원래의 충전량으로 회복됐고 나와 다시 2년을 함께 했다.

올해 2월 어느 날, 가스보일러 밑에서 물이 샜다. 산 지 겨우 1년 남짓 됐고 바닥 난방과 온수를 사용하는 데 쓴다. 나와 아내는 보일러를 사용할 줄 모른 데다 아들과 며느리는 해외여행을 가 집에 없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수련하는 사람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는 방법이 있을 뿐이었는데 안으로 찾으며 자신을 바르게 하고 나서 보일러에게 진상을 말했다. 발정념으로 보일러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깨끗이 제거하며 정상으로 회복되게 하고 대법제자의 정상적 생활을 교란하지 않도록 했다. 10분쯤 지나자 보일러는 새지 않았고 정상으로 회복됐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사부님께서 만물은 모두 영체이며 일체가 법을 위해 온 것이라고 하신 법리(法理)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4. 사부님 은혜는 갚을 수 없다

법을 얻기 전 우리 집은 다섯 식구에 수입은 겨우 밥 먹는 정도였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비교적 부유한 열네 식구의 대가족이다. 이전에는 직장인들 모두 나중에 작은 회사를 차렸었는데 지금 우리 회사는 이미 규모가 커졌다. 처음에는 건물도 없었으나 지금은 여덟 채의 건물에 500㎡가 넘는 사무실을 갖고 있고 소형차 한 대 없던 데서 지금은 여섯 대의 소형차가 있다. 가족 모두 평안하고 화목하게 지내며 이익 문제로 다툰 적 없고 서로 돕고 양해할 수 있다. 두 아들에 딸 하나와 며느리 둘에 사위 한 명, 모두 여섯 명이 회사에서 요직을 맡고 있으며 각기 장점을 갖고 있다. 그들 모두는 바르게 돈을 벌며 바른 마음으로 공평하게 거래하고 조류에 휩쓸리지 않으며 돈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회사 직원들은 비교적 안정돼 있고 회사의 발전도 비교적 빠르다.

22년 수련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평범하지만 충실했다. 나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고, 관용하며 참고 양보하면서 일에 부딪히면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 그것을 제거했다. 사악이 어떻게 광풍을 몰아쳐도 사존께서 우리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시기에 넘지 못할 관이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많은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했는데 예를 들면 게으름, 원한, 이기심, 의타심, 색욕, 질투심 등인데 어떤 때는 작은 일도 뜻대로 하지 못하고 말투가 선량하지 못한데 수련인답지 못하다.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정진실수(精進實修)하며 사부님 말씀을 따르고 후회하지 않도록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며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사명을 완수하며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을 닦아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우리의 가장 큰 행복은 위대하시고 자비로운 사부님의 보호가 있다는 것이고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우주의 신들도 부러워하는 정법시기(正法時期)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20년 조사정법 중에 우리 전 가족은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하에서 평온하게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언제나 제자를 보호하고 계심을 알며 구원받은 생명의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대법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되도록 빨리 진상을 알고 빨리 사당(邪黨)의 모든 조직에서 탈퇴해 좋은 미래를 선택하기 바란다.

이상은 개인적인 깨달음이니 법에서 벗어난 곳이 있으면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1214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14/3965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