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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 장애를 뚫고 무일푼으로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다

글/ 후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8년 9월부터 대법을 수련했다. 1999년 ‘7.20’부터 장쩌민 깡패 집단이 파룬궁에 대해 전에 없는 비방과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잔혹한 박해와 탄압을 발동했다. 이십 년의 비바람 속에서, 진정한 대법 수련자는 굳은 의지와 반석 같은 마음으로 마난 속에서 대법의 초범함과 위대함,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정념의 가지를 실증했다. 여기에서는 내가 무일푼으로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실증한 경험을 적으려 한다.

1999년 12월 중순에 나는 자신이 일이 있어서 외출하게 되어 아홉 살 난 아들을 돌봐달라고 고향에서 시부모를 모셔왔다. 나는 집안의 모든 일을 잘 안배하고 직장에는 휴가를 냈다. 당시 박해가 계속 악화되었기에 나는 수련하지 않는 남편에게는 편지만 써두고 두 수련생과 함께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기 위해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한 수련생이 우리의 일정을 우리 가족에게 알려주어 곧 가족들은 나를 현에 있는 오빠 집으로 데려갔다. 아버지, 둘째 언니, 둘째 형부도 달려왔다. 아버지는 “네가 이렇게 죽을 길을 찾아가는 것보다는 우리 부녀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는 것이 낫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눈에서 불꽃이 튀도록 내 뺨을 세게 때려 내 얼굴이 부어올랐다. 가족들은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을 보고 가더라도 신분증을 만들어야 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또 다른 수련생이 나와 함께 베이징에 갈 수 있기를 기다리면서 신분증이 완성되는 대로 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가족들은 둘째 올케와 둘째 언니를 나와 함께 보내려 했으며, 멀리 광시(廣西)에 있는 여동생도 쫓아오려고 했다. 그때야 나는 수련은 내 개인의 일이고, 일반 사람들은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나는 일반 사람에게 좌우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으로 사부님께 청을 드리고 안배를 구했다. 가족들은 24시간 나를 지켰다. 오빠네 집은 단독 4층 건물인데, 그날 내가 다락방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으러 올라가는데 둘째 언니가 따라 올라왔다. 그런데 널어놓았던 옷들이 보이지 않았다. 시골에서 책을 많이 읽은 적이 없는 둘째 언니는 현의 방위를 잘 알지 못하는데 신기하게도 갑자기 “너 당교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라고 말했다. 당시에 나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뻤다. 이것은 틀림없이 사부님께서 보통 사람의 입을 빌려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주시는 것이다. 평소에 북경으로 가는 방향은 반대 방향이었다. 곧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둘째 언니는 오빠 집에 기르고 있는 고양이를 보자 “쥐를 못 잡았어! 못 잡았어!”라고 했다. 나는 오늘 밤 자시(子時)가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배치한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연거푸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그때 나는 내가 인간의 호법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갈아입을 옷이 사라지고, 몸에 지니고 있던 돈도 아버지가 다 가져가셨고, 신분증도 없지만 수련인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며, 비록 돈 한 푼 없어도 꼭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겠다.’ 마음을 정하니 기분도 상쾌해졌다. 아버지를 모시고 식구들과 함께 마작도 하고, 그들이 편안히 잘 수 있도록 직접 야식을 만들어 드렸다. 그날, 둘째 언니와 올케가 한방에서 자고, 아버지와 둘째 형부가 한방에서 잤다. 남편과 내가 한방에서 잤으며 오빠는 거실 소파에서 잤다. 이렇게 사부님의 가지를 받으면서, 나는 잠깐 자고 일어나 조용히 세수를 마치고, 오빠의 눈을 피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와 침착하게 집을 나섰다.

깊은 겨울밤은 바람이 살을 에는 듯했고, 30대 중반의 여자가 텅 빈 길을 혼자 걸으니, 좀 겁이 났지만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제자를 지켜주셨다. 때때로 내 앞의 위쪽에 채색 띠가 방향을 안내해 주었고, 벽에 글이 나타나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려줬으며, 하늘에서 무수한 유성이 끊이지 않고 북방으로 흘렀다. 특히 기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마치 겁내지 말고 서두르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바로 사부님께서 곁에 계셨으며, 항상 제자를 지켜주셨다. 감격의 눈물이 멈추지 않고 나의 얼굴을 적셨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사부님, 아무리 어렵더라도 제자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제 몸의 살점도 달갑게 바치겠습니다.”

갑자기 큰길 가운데 머리가 보이지 않는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이 길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었다. 나의 머릿속에 대법의 법리가 나타났다. “온갖 고생 다 겪고 두 발로 많은 마귀를 밟고 섰노라 입장(立掌)하니 건곤이 진동하고 거대한 부처 하늘에 우뚝 섰노라“[1] 나는 날쌔게 한걸음에 지나갔다.

걷다가 달리기를 반복했는데 갈증이 극에 달해 목구멍에서 연기가 나는 것 같아 괴롭고 괴로웠다. 사부님! 제자가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때 ‘수마관(水磨關)’이라는 세 글자가 눈앞에서 어른어른했다. 내가 건너야 할 관문이다. 반드시 건너야 한다. 법을 외우고 외웠는데 나도 모르게 갈증이 사라졌다.

얼마나 멀리 갔는지, 얼마나 오래 달렸는지, 땀으로 속옷까지 흠뻑 젖었고, 안개와 서리에 겉옷을 적셨으며 머리까지도 흠뻑 젖었는데 날이 점점 밝았다. 배에서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났다. 무일푼이라 가게에서 아침밥을 구걸했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전법륜’에서 특정한 환경에서 벽곡 할 수 있다고 하였으니 나도 잠시 벽곡하자고 생각하자 신기하게 배고프지 않았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나는 이미 후난의 작은 현에서 후베이까지 걸어왔다. 베이징에 가려면, 차를 타고 후베이성 우창에 가야만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가 있다.

강변 나루터에 도착해서 나는 한구(漢口)의 차에 올랐고, 여비를 좀 빌려고 했는데, 아무도 주지 않았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내가 깊이 잠들었는데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면서 내가 차를 잘못 탔다고 알려줬다. 베이징으로 가려면 우창(武昌)으로 가는 차를 타야 하며 그 차가 이미 배에 올랐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나는 쏜살같이 배를 향해 달려가 배에 뛰어올랐는데, 그 뱃사공이 소리쳤다. “올라왔어요. 올라왔어요. 떠나요!” 나는 이것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부름임을 알았으며,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배에서 우창으로 가는 차를 찾았고 기사에게 문을 열어 달라 해서 차에 올랐다. 나는 그들에게 “제가 하는 일을 가족들이 이해하지 못해 저의 돈을 몽땅 가져갔어요. 당신들이 저를 우창으로 데려다주는 좋은 일을 하시면 저는 한평생 당신들에게 감사드리겠어요. 당신들은 꼭 복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운전기사와 차 안의 승객들은 모두 나에게 바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으며, 내가 나쁜 여자가 아닌 것 같으니, 가족들이 몹시 마음을 졸일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또한 나에게 집에 가는 차비를 주려고 했다. 나는 그들의 호의에 감사하여 “저는 베이징에 가서 꼭 해야 할 일을 한 후 곧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마음씨 착한 운전기사는 나를 우창으로 데려다주었다. 기차역까지 아직도 좀 더 가야 한다. 나는 구두를 신고 10시간 넘게 걸어 두 발이 닳아 껍질이 벗겨지고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심장을 찌르듯이 아팠고 얼굴까지 부은 채 절뚝거리면서 걸었다.

오는 길에 사부님께서는 나를 끊임없이 깨우쳐 주시고, 사람의 관념과 인간의 집착을 없애 주셨다. 기차 대합실에서 우연히 수련생을 만났다. 60대의 이 수련생은 처음으로 베이징에 갔을 때는 남편에게 잡혀서 집으로 돌아와 남편이 가죽 채찍으로 때려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 이번은 두 번째로 베이징에 가는 것이다. 수련생은 편의를 위해 옷가지를 가지고 나오지 못했지만, 물건을 한 보따리 갖고 왔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수련생도 돈이 얼마 없어서 차표 한 장 사기에도 모자랐다. 나는 인간의 호법신은 아무도 볼 수 없고 표도 필요하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수련생을 도와 가방을 메고 차에 오를 때 승무원은 나에게 몇 명인가 묻기만 하고 차에 타라고 했으며, 차 안에 두 좌석은 특별히 우리 둘을 위해 마련된 것 같았다. 경찰직원들이 차 안에서 반복해서 신분증과 차표를 검사했지만 내 앞에 와서는, 멈추고 검사하지 않았다. 나는 여경의 휴대전화를 빌려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신기하게 돈 한 푼 없이 베이징에 와서 수백 수천의 대법제자들과 함께 피와 눈물의 장으로 그 오래된 신성한 서약을 지켰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시사: ‘홍음(洪吟)-대각(大覺)’

 

원문발표: 202043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4/3/4018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