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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를 삼퇴시키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한 전염병으로 인해 우리 직장은 설날 이후 계속 출근이 연기됐다. 처음에 나는 기뻐했다. 평상시 출근으로 바빴기에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시간이 부족했지만, 이제 출근하지 않아 시간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얼마 가지 못했다. 주택단지 정문 출입통제가 갈수록 심해져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했고 수련생과 단체법학습과 교류·토론도 할 수 없게 됐다.

내가 단체법학습에 참여한 지는 2년이 채 못 되는데 갑자기 수련생을 보지 못하게 되니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고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나중에 밍후이왕에서 전염병이 도는 기간에도 마찬가지로 중생구도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봤는데 나에게 깨우침이 아주 컸다. 나는 몇몇 진상 간행물을 정리했는데 매 호에다 다시 밍후이왕에서 다운로드한 ‘겁난(劫難)을 넘기는 방법’ ‘아홉 글자 진언(眞言)의 이야기’ ‘세상을 구하는 묘약’ ‘유백온(劉伯溫)의 비문’과 ‘삼퇴(공산당 3대 조직에서의 탈퇴) 카드’ 등의 자료를 끼워 넣어 매일 나가서 배포하려고 준비했다. 그러나 효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지 않는데다가 어떤 주택단지도 들어갈 수 없었다. 길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으며 길가에 서 있으면 큰길 이쪽에서 저쪽 끝을 볼 수 있을 만큼 차도 사람도 없었다. 채소 시장과 슈퍼마켓에 가서 바깥에서 몇 차례 배포했지만 역시 효과가 좋지 않았다. 지금은 사람마다 서로 위험을 느끼기에 사람 사이의 간격도 스스로 적당한 거리를 둬야 한다. 게다가 경찰차도 많아 보였고, 옷소매에 붉은 띠를 두른 사람도 많아 좀 두려웠다.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평상시는 시간이 없어 자료를 많이 배포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시간이 있지만 나가서 배포할 곳이 없게 됐다.

나중에 직장에서 교대근무 통지가 왔다. 내 근무 차례인 날 텅 빈 사무실에 앉아 나는 밍후이왕에서 수련생들이 써낸 모든 문장을 반복해서 여러 번 읽고 마음에 새겼으며 진상 알리는 데 좋은 자료는 선별해 인쇄했다. 사이가 비교적 좋은 동료에게 연락해 직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거주하는 단지에 확진자가 발생해 전체 주택단지를 엄격하게 경계하는 상태라 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는 좀 실망했는데 평소 좋은 기회가 많이 있었지만, 아직 진상을 알리지 못해 두려운 마음이 컸다. 자책하며 몇몇 일들을 정리했다. 오래지 않아 누군가 문을 두드리더니 오랜 동료가 들어왔다. 그는 지금 우리 부서에 없지만 우리는 같은 층에서 근무한다. 그는 회의가 있어서 들렀다고 했다. 우리는 두어 마디 말을 나눴고 그는 곧 갔다. 당시 나는 의식하지 못했으나 그가 가고 나서 갑자기 ‘왜 그에게 진상을 말하고 삼퇴하도록 하지 않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사람을 보내주신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되자 나는 재빨리 생각을 정리하고 그의 성격을 고려해 잘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조용히 발정념을 시작했다.

10분 후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오라고 연락했다. 그가 오자 먼저 그에게 “유백온(劉伯溫)의 비문”을 말했다. 그는 깜짝 놀랐다. 다음으로 우리는 현재의 전염병에 대해 토론했는데 중국 정부의 전염병 처리 방식과 국내 매체의 숫자 보도에 대한 편파성도 토론했다. 그는 비교적 국내 매체를 믿기에 나는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며 그와 같은 인식을 정립했다. 그것은 과학이 어떻게 발달했더라도 위난(危難) 앞에서 인류는 어찌해도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과, 중국인은 예로부터 신불(神佛)을 신앙했으며 겁난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신불에게 보호를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다른 공간의 존재를 믿도록 천천히 이끌며 그의 무신론을 타파하고 그에게 “머리 석 자 위에 신령이 있다.” “사람에게 일념(一念)이 생기면 천지가 다 안다”라는 유신론(有神論) 관념을 수립해 줬다. 교류하면서 나는 계속 발정념했고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요청했다. 마지막에 그가 삼퇴하도록 할 때 그는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흔쾌히 응낙했다. 우리 직장은 기관조직에 속하기에 그 당시 나는 대법 진상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고 기다렸다가 기회를 봐 단독으로 진상을 말하거나 우편으로 진상 자료를 보냈었다.

이 동료에게 탈퇴를 말한 이후 나는 자신을 갖게 됐다. 동료 앞에서 말하기 어려워하고 곤란해 했던 이전의 심리가 없어진 것을 느꼈다. 이번 전염병은 속인에게 매우 무섭고 불안을 느끼게 했는데, 평상시 명예를 구하고 이익을 추구하던 마음을 많이 누그러지게 했고 또 그렇게 조급해하지도 않게 했다. 이전에 사람들은 생활이 매우 편안하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생명이란 어떠한 보장도 없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이는 마침 우리에게 진상을 알리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게다가 사무실에는 사람도 없기에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면 된다. 사람마다 호흡을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를 두려워하는데 당신이 그들에게 평안을 지키게 해주라. 그들 하나하나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회는 천년에도 만나기 어렵다.

그 후 며칠 계속 직장에 나가서 평소 잘 아는 사람과 사이가 좋은 사람에게 진상을 말하고 탈퇴를 말할 수 있었다. 어제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오늘 당직 근무자가 늘 나와 사이가 좋지 않던 그녀임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전에 우리 관계는 매우 불편했고 한동안 서로 말하지도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가 뒤에서 나를 나쁘게 말했으며 그녀 말을 믿는 사람들도 덩달아 나와 말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나는 정신적 우울감을 느꼈으며 정말 직장에 있을 수가 없었고 더 출근하기도 싫었다.

나중에 수련생의 도움으로 법학습을 통해 점점 심리적 장애에서 벗어났으며 자신을 개선하여 일할 때의 말투를 바꾸고 선한 마음으로 대하자 다른 동료들과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오늘 당직인 그녀와는 그다지 좋아지지 못했고 아직도 관계가 냉랭하다. 새해 전에 그녀가 다른 사람과 다투려는 것을 마침 내가 보고는 두 시간가량 말렸고 결국 그녀는 다투기를 포기했다. 그 이후 우리 관계는 다소 좋아졌지만, 이전에 냉담하고 쌓인 원한이 오래돼 나는 아직도 그녀를 경계했다. 그래서 오늘 그녀가 당직인데 가서 말할까 말까를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기회인데 말하자. 어쨌든 우리는 화해했지 않은가. 어쩌면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와 무슨 인연인지 20년 가까이 동료로 일해왔지만 서로 냉랭하고 꼴 보기 싫어했다. 나중에 내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그녀와 말하지 않게 됐을지도 모른다. 엊저녁 잠들기 전 나는 그녀를 향해 발정념하며 그녀 배후의 모든 사악한 요소를 해체하고 그녀가 진상을 알고 삼퇴하도록 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일어나자 좀 망설여졌는데 수년간 그녀의 처세하는 태도를 생각해 보니 질투심과 명리를 다투는 마음이 아주 강해 누구도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됐다. ‘그녀가 내 말을 들을까? 다른 사람에게 나에 대해 애먼 소리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혼란해져 가지 않기로 했다. 이때 밖에서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렸고 창문과 방문이 덜거덕거렸다. 일기예보를 보니 큰바람이 분다고 했다. 전염병 때문에 버스도 많이 다니지 않아서 한동안 나는 전동차를 타고 다녔다. ‘직장은 또 아주 먼 길인데 가지 말자. 날도 추운 데다 그녀는 또 그런 사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 않으려고 나는 계속 구실을 찾았다. 요 며칠 밖으로 나돌기만 하고 법 학습을 지체했는데 나는 가지 않겠다. 만일 그녀가 듣지 않거나 허튼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계속 이런 생각이 들자 정말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아주 심란하고 난감했는데 사부님 법상 앞에 와서 사부님을 뵙자 울고 싶고 부끄러웠다. 결국에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저는 그래도 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직장으로 가는 길에 나는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느꼈는데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것처럼 억울해했다. 마음속에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음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원한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미디어플레이어에 저장된 ‘득도(得度)’ ‘감로(甘露)’ ‘감은(感恩)’ ‘등귀도(登歸途)’ ‘회귀로(回歸路)’ ‘연화송(蓮花頌)’ 등의 가곡을 자주 듣는 방법으로 자신의 선념(善念)을 일깨웠다. 자전거를 천천히 몰고 가곡을 들으며 가는 길에 자신의 인생 노정을 회상해 봤다. 법을 얻기 전 자신의 생활은 흐리멍덩하고 무지했으며 업을 짓는 것이었고, 법을 얻은 후로는 여러 해 동안 단체법학습에 참여하지 못해 수련이 고독했고 방황했으며 도움도 얻을 수 없었다. 나중에 사부님의 배치로 단체법학습에 참여하게 됐고 마침내 법 가운데서 이성(理性)과 감사(感恩)와 승화(升華)에 용해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대법이 나에게 준 것은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보답할 수가 없지 않은가! 마음속에 쌓인 원한도 내려놓지 못하겠는가? 무슨 두려울 것이 있는가? 내게는 사부님이 계시지 않는가! 생각하니 눈가가 촉촉이 젖었고 바짝 정신이 들었다.

직장에 도착하자 그녀가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먼저 앉아서 발정념을 했다. 잠시 후 그녀가 내게 말을 거는 것이 들렸고 나는 그녀를 청해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우리는 거의 두 시간 얘기했는데 국내외의 전염병 상황을 그녀는 나보다 더 잘 알았고 계속 내게 말했다. 나는 들으면서 발정념을 했으며 이후 얘기는 자연히 신앙으로 옮겨갔다. 그녀는 신(神)을 믿었으며 신불(神佛)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신이 나를 배치해 그녀의 근심과 어려움을 해소해 주라고 했는데 이는 나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나는 듣고 깜짝 놀랐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빌려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계속해서 홀가분하게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예언을 말하자 그녀는 전적으로 믿었다. 그다음 삼퇴(공산당 3대 조직으로부터의 탈퇴)를 제기했고 계속 발정념하며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다. 그녀가 처음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흔쾌히 탈퇴했다. 일체가 마무리되자 마침 퇴근 시간이 됐다. 우리는 서로를 축복하며 직장을 나왔는데 마치 허물없는 친구 같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자전거 타기가 즐거웠으며 직장에 나올 때의 무거운 기분은 큰 감동으로 대체됐다. 마음속으로 하나하나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내게 이런 기회를 주시고, 사적인 것을 위하고 화내는 것으로부터 뛰쳐나오게 해주셨으며, 돌파하여 위로 향상하게 해주셨다.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음엔 우는 것을 누군가 볼까 봐 두려웠지만 생각해 보니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법제자는 사부님의 보호가 있어 전염병도 두렵지 않기에 여전히 나와서 사람을 구할 수 있으나 속인이 밖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울고 싶으면 실컷 울자. 사부님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품고 돌아오는 내내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시련 속에서의 연마를 통해 나는 어떤 때라도 기회를 붙잡아 사람 구하는 일을 잘해야 함을 깨달았는데 매번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설 전에 나는 설 연휴 기간에 몇 군데 지방에 가서 진상을 알리려고 계획했으나 기회를 잡지 못했다. 또 이전에는 사부님께서 주신 기회를 두려움으로 인해 장악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몹시 후회된다. 이번 전염병 역시 대법제자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더욱 정진하지 않으면 정말 기회가 없게 된다.

이상은 자신의 깨달음으로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0226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2/26/4017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