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선(善)으로 원망을 풀다

글/ 지린(吉林)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9년에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장쩌민과 중국공산당의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잔혹한 박해 속에서 나는 대법을 확고하게 지키면서, 피비린내 나는 박해 속에서 악당에 굴복하지 않아 거의 생명을 잃을 뻔했지만 걸어 지나왔다.

내가 결혼한 후 시어머니는 내가 못마땅해 여러 방면에서 나를 괴롭히며 툭하면 욕을 하셨다. 악당의 박해를 받는 동시에 가정에서도 시어머니의 학대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나와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물과 불처럼 서로 화합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출로를 찾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시동생과 형님 등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모두 난관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다. 사부님께서는 매사에 남을 배려하는 더욱 좋은 사람이 되도록 나를 가르쳐 주셨다. 난관이 아무리 크더라도 대법에서 닦기만 하면 모두 넘을 수 있다. 아래에 내가 어떻게 이 가정이라는 마난 관(關)에서 걸어 나왔는지를 말해보려고 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수련 전의 일인데 나와 남편은 작은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였다. 그때 나는 임신 중이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일찍 집에 돌아가는 바람에 가게 문을 닫을 때 시아버지는 나를 삼륜차에 태워 집에 데려다주었다. 이때 큰비가 내려 우산도 없고 우의도 입지 않은 나는 비에 흠뻑 젖어 부들부들 떨었다.

집에 도착한 후 나는 배가 아파 밥도 먹지 않고 드러누웠다. 밤에 또 열이 나서 밤새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남편은 출근하면서 나보고 집에서 잘 휴식하라고 했다. 너무 힘들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는데 시어머니는 아침 7시가 넘어 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자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도저히 참다못해 일어나 옷을 입고 이불을 갰지만 정말로 너무 힘들어 밥도 먹지 못하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드러누웠다.

시어머니는 내가 집에 있는 것을 보고 또 옷과 이불을 빨면서 “너는 내가 이불 빠는 것을 보고 이불을 비틀어 짜주면 안 되나? 허구한 날 놀고먹기만 하니!” 하면서 또 욕하기 시작했다. 매우 내성적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태껏 욕을 해 본 적이 없고, 싸움도 해 본 적이 없으며. 늘 남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말대꾸를 할 줄 몰랐다. 나는 억지로 일어나 시어머니와 같이 이불을 비틀어 짰다. 양쪽 끝을 잡고 비틀어 짜기 시작했는데 시어머니가 힘을 한번 쓰자 내가 휘청거렸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힘을 좀 쓰면 안 되니? 정말로 쓸모가 없네!”라고 하면서 쉴새 없이 욕을 하셨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겨우 다 비틀어 쥐어짰다. 시어머니도 욕을 거의 다 하여, 나는 침대로 돌아와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마음속으로 사람이 산다는 것이 정말로 너무 어렵구나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너무나 많은데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이겨 냈다. 오랜 시간이 지나자 시어머니에 대한 나의 원망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마음속으로 “시어머니가 늙으면 나는 부양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로 시어머니를 부양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이제 시어머니가 늙으면 내가 어떻게 대하는가를 한번 보자!”라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선을 행해야 한다

나는 대법을 수련한 후 여러 번 박해를 받았다. 불법으로 노동교양소에 있을 때 두 아이가 너무 어려 엄마를 부르며 울었지만, 시어머니는 전혀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 마음씨가 선량한 시아버지는 화가 치밀어 올라, 내가 돌아왔을 때 이미 뇌졸중에 걸려 입원했다가 얼마 안 있어 돌아가셨다.

남편은 다섯 형제인데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얼마 안 있어, 막내 시동생이 검사결과 심각한 심장병을 앓고 있어 병원에 입원하였다. 의사는 검사한 후 수술을 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이때 나의 언니는 막내 시동생이 나의 애들을 너무 미워하는데 특히 나의 아들에게 항상 발길질한다고 했다. 그때 나의 아들은 겨우 네 살이고, 딸은 열 살이었다. 어느 날 딸은 나에게 “엄마. 막내 삼촌은 날마다 동생을 때리고 욕해요.”라고 했다. 딸은 또 울면서 아빠에게 그와 동생을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는데 아빠는 엄마가 집에 없고, 또 아빠가 새벽 2시 넘어 가게에 가야 하기에 어린 우리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래서 딸은 자기가 동생을 돌봐주고 밥까지 해줄 수 있다고 했는데 아빠는 딸이 너무 어려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딸은 아빠에게 마음을 놓으라면서 이미 다 컸기 때문에 동생을 돌봐줄 수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딸의 간절한 부탁에 남편은 마지못해 그들을 집으로 데려주었다고 했다.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 돌아오자 나는 박해로 인해 힘이 없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또 데려올 수 없어 막내 시동생에게 부탁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막내 시동생은 나의 앞에서 아이에게 발길질하고 또 아이의 뺨을 때리기까지 하였다. 나는 너무 놀랐다. 원래 나의 언니와 딸이 말한 것이 모두 정말이었다! 나의 앞에서까지 이렇게 하는데 아무도 보지 않을 때는 그가 어떻게 아이를 때리고 욕을 하였겠는가! 나는 감히 상상도 못 하고 눈물을 막 흘렸다. 내가 여러 번 박해를 당했는데 우리 아이도 집에서 이런 학대를 받을 줄은 정말로 생각하지 못했다.

막내 시동생이 수술해야 하는데 시아버지가 없어 시어머니는 돈을 대지 않았다. 또 남편은 집에 있는 돈을 전부 시아버지 병에 썼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상관하지 않았다. 이때 남편은 돈을 빌려서 수술해주자고 나와 논의했다. 만약 돈 때문에 수술하지 못해 죽게 되면 그는 한평생 후회할 것이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일찍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자기 동생이 어떻게 자기 아들을 대하는지 보지 못했지만, 나의 언니와 딸, 나는 모두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를 수련성취하여, 모든 방면에서 남을 배려하라고 가르치셨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막내 시동생과 따지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빌리세요, 돈이 없으면 또 벌 수 있지만, 사람이 죽으면 영원히 다시 살아날 수 없잖아요.”라고 했다. 수술에 많은 돈을 썼지만, 막내 시동생은 결국 사망했다.

두 아이는 비록 어리지만 어릴 때부터 나를 따라 수련했다. 막내 시동생의 죽음은 석자 머리 위에 신령이 있고, 신이 인간의 모든 것을 관장하며, 선악에 보응이 있어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연상하도록 하였다. 한 인간도 반드시 선을 행하여야 하는데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원한을 처음으로 해결하다

시아버지와 막내 시동생이 사망했지만, 남편은 또 형님 네 명과 누나 한 명이 있다. 이들은 각 방면에서 모두 우리 집보다 조건이 훨씬 좋았지만, 누구도 시어머니를 모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효자인 남편은 나의 동의를 받고 시어머니를 우리 집에 모셔왔다.

시어머니를 누구도 모시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마음이 괴로워 매일 굳은 표정으로 날마다 트집을 잡아 나를 욕했다. 남편은 계속 나를 잘 대해 주었지만 내가 다시 잡혀갈까 봐 내가 돌아오면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하게 주시하고 있어, 나는 날마다 몰래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심성이 제고되지 못해 시어머니가 욕을 하면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사부님의 법이 이렇게 크고, 올바른데 내가 왜 대법에 정확한 위치를 주지 못하는가 생각했다. 정말로 마음이 절실하면 이뤄진다고 사부님께서는 대법에 대한 나의 확고한 마음을 보시고 나에게 기회를 주셨다. 다음날 시어머니가 또 나를 욕해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 우리 가게에 갔다. 남편은 내가 늦게 온 것을 보고 몇 마디 말을 했는데 나는 억울하여 눈물이 막 쏟아졌다. 하지만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정정당당하게 집에서 수련하려고 남편에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는 못 살겠어요. 집에서 날마다 욕을 먹고, 여기서도 욕을 먹고…” 그러자 남편은 집에서 누가 욕을 하는지 물었다. 나는 “집에 또 누가 있겠어요?”라고 말을 하고, 문밖으로 나가자 남편은 몇 걸음 쫓아와서 나를 잡아당기면서 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집에 가지 않고 근처 공원에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되자 남편은 가게 문을 닫고 나를 찾아와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나는 두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허락하면 돌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가게 근처에 셋집을 하나 얻어 내가 낮에는 당신과 함께 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셋집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두 번째는 집에서 공개적으로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겠네.”라고 했다. 나는 그렇다고 하면서 이렇게 좋은 대법에 내가 정확한 위치를 주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남편은 오랫동안 생각하더니 “두 번째 요구는 허락하지만 다른 수련생들과 연락하는 것은 안 돼요.”라고 말했다. “검은 소굴에서 나온 후 아무것도 없는데 수련생들과 연락을 못 하게 하면 내가 어떻게 법공부를 하나요?”라고 말하자 그는 한발 물러서면서 “그럼 한 명하고만 연락을 해야 해요. 당신이 박해받을 때 내가 이 몇 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요? 아빠 엄마 노릇을 하면서 또 당신 때문에 얼마나 걱정했다고, 아침 일찍 가게에 나가 장사 준비를 하고, 물건도 팔아야 하고…”라고 말하면서 사내대장부가 울기 시작했다.

맞는 말이다! 몇 년 동안 내가 여러 차례 박해를 받을 때마다 남편과 아이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나는 남편을 위로하면서 앞으로 안전에 주의할 것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 나는 꿈을 꾸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3층까지 직진해 올라갔는데 각층 마다 배추와 대파가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후 나는 배추와 대파가 무슨 뜻인지 깨닫지는 못했지만, 사부님께서 내가 옳은 일을 하였다고 격려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두 손을 합장하고 나에게 정정당당한 수련환경을 만들어 주신 사부님께 감사를 드렸다.

수련환경이 있게 되자 나는 기뻐 울고만 싶었다. 나는 사부님께 “사부님, 저는 마침내 이 관을 넘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진수(眞修)제자가 되어 절대로 사부님과 대법에 먹칠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합격된 대법제자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부터 나는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예전처럼 나를 욕했다. 내 앞에서 욕하든 뒤에서 욕하든, 어떻게 욕을 해도 나는 시어머니에게 잘 대했다. 나는 대법제자의 선(善)을 닦아내어, 시어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노인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법 속에서 자신을 바로 잡았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우리 집에 손님으로 왔는데 시어머니는 생각밖에 수련생 앞에서 나를 욕했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1]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 잘못했는가? 나는 관을 넘지 못하고 친정 올케에게 전화하여 일의 경과를 말했다. 수련생인 올케는 “형님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선을 행한 것이 아니라 겉으로 선을 행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누구도 모시지 않는 시어머니를 내가 그렇게 잘 대해 주는데 오히려 늘 나를 욕해!”라고 하자 올케는 “형님, 그것은 증오심이고 또 평형되지 않는 마음입니다.”라고 했다.

전화를 내려놓고 나는 이 진선인(眞·善·忍)을 어떻게 수련해 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느 날, 내가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요리할 때마다 시어머니는 뒷짐을 지고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 하고 나면 내가 만든 요리가 돼지죽 같아 도무지 먹을 수 없다고 손가락질하며 나를 욕하면서 또 이 몇 년 동안 내가 모두 남편을 속였다고 말했다. 평상시 요리에 기름이 적으면 “기름이 그렇게 적어 어떻게 먹느냐!”, 기름이 많으면 “기름에 요리를 담가서 먹느냐!”면서 손가락이 나의 이마에 닿을 정도로 말을 했다. 나는 눈물이 막 쏟아졌다. 마음속으로 이때까지 나의 부모도 나를 이렇게 욕하지 않았고, 내가 또 시어머니한테 빚진 것도 없는데 무슨 이유로 나를 이렇게 욕하지? 하고 생각했다. 겨우 요리를 다 하고 나서, 나는 방에 들어가 이불로 머리를 감싸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울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에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다. 대법과 사부님은 만능이 아닌가.” 나는 일어나서 법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전법륜(轉法輪)’을 펼치니 사부님의 자비롭고 상냥한 눈빛을 보여 또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억울해서 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해, 진정한 선을 수련해내지 못해 울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날마다 이마가 터지도록 절을 하고 향을 한줌 한줌 피운다 해도 역시 소용없다. 당신은 진정으로 당신의 그 마음을 착실하게 수련해야 한다.”[2] “수련 중에서 실제로 모순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할 때, 아마 이 두 가지 정황이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전생에 남을 잘 대해 주지 않은 적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말한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왜 이전에 남을 그렇게 대했는가? 당신이 당신의 그때 일을 모르고, 이 한평생에 그 한평생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안 된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모순 중에서 업력의 전화 문제가 연관되기 때문에, 실제로 대할 때 우리는 마땅히 높은 자태여야 하며 속인과 같아서는 안 된다.”[2]

나는 두 손을 합장하고 사부님의 점오(點悟)에 감사를 드렸다. 내가 어느 한 생, 어느 한 세에 시어머니에게 좋게 대하지 않아, 이 시대에 시어머니가 나에게 이렇게 대하는지를 말할 수 없다. 안으로 찾자 근본적인 집착을 찾아냈다. 나는 정에 너무 집착하고 원망하며,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이런 마음을 닦아 버려야 법 속에서 제고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번 시어머니가 대상포진에 걸려서 나는 정성껏 약을 발라드렸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바르는 것을 보고 그는 감동했다. 약을 바를 때마다 바닥에 떨어진 약을 닦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정성껏 닦았다. 시어머니는 무안해서 바닥을 닦기가 너무 힘드니 약을 바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시어머니가 빨리 나아 고생하지 않으시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시어머니를 부축해서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시켰다. 매번 목욕할 때마다 나는 돈을 아껴, 내가 10위안(약 1,700원)을 쓰고, 시어머니에게 30위안을 썼다. 옷 갈아입는 칸이 너무 추워 시어머니의 건조한 피부에 먼저 와인을 발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함께 목욕하는 아줌마들은 모두 내가 시어머니의 딸인 줄 알고 있었지만 나와 시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아줌마가 시어머니에게 당신의 딸인지 묻자 시어머니는 며느리라고 했다. 그러자 아줌마들은 “정말로 복이 많네요, 어느 생에 얼마나 큰 덕을 쌓아 이렇게 좋은 며느리를 얻었나요!”라고 하면서 나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착하냐고 물었다. “저는 진선인(眞·善·忍)을 닦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한 아줌마는 “신앙이 있으니 참 좋네요.”라고 했다.

마침내 돌파하다

원래 자신이 선한 마음을 닦아내어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개선되고 갈등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서 나는 계속 닦아야 했다.

넷째 시동생은 혼자 한 달에 45,000위안(약 748만 원)을 벌 수 있어 돈이 있었다. 최근 나에게 2000위안(약 33만 원)을 주면서 시어머니의 용돈이라고 했다. 나는 이 돈을 모두 시어머니에게 주었다. 퇴직금이 없는 시어머니는 명절에 자식들이 준 용돈밖에 없었다. 효자인 남편은 남들이 얼마를 드리면 그도 얼마를 드려 시어머니는 미안해서 돈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 받으세요, 손에 돈이 있어야 먹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지요.”라고 했다.

둘째 아주버님과 형님은 한 달에 1만 위안(약 170만 원)을 벌 수 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1전 한 푼도 드린 적이 없었고, 큰 아주버님은 더구나 소소한 물건마저 시어머니께 사드린 적이 없었다. 형님네 집도 매달 1만8천 위안(약 300만 원)을 벌지만, 이 몇 년 동안 시어머니에게 1천 위안(약 17만 원)밖에 주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우리 집에 16년이나 있어 나는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이미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한번 시어머니는 온 가족 앞에서 나를 욕했다. 나는 말을 늦게 하기에 시어머니가 열 마디 할 때 한 마디도 못했다. 한번은 내가 화가 나서 기절까지 했는데도 시어머니는 여전히 발을 구르며 욕을 해, 넷째 시동생이 시어머니를 모셔갔다.

넷째 시동생 집에서 반년도 있지 못하고, 우리가 집을 사자 또 시어머니를 우리 집에 모셔왔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여전히 나에게 끊임없이 듣기 거북한 말로 욕을 했다. 남편은 너무 심한 욕을 하는 것을 보고 통제할 수 없어, 그의 형님과 누나에게 전화하여 어머니가 아무 욕이나 다 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겠는가 했다. 시어머니는 나를 욕하면서 “이 집은 우리 아들 집이니 너는 여기서 행패를 부리지 마라!”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 이혼해도 이 집은 절반씩 나눠야 해요!”라고 하자 시어머니는 “생긴 모양을 봐라. 벌어들인 게 뭐가 있느냐?”라고 했다. 이때 나의 딸은 차마 들을 수 없어 나와서 말했다. “왜 늘 우리 엄마만 욕해요? 이렇게 오랫동안 누구도 할머니를 모시지 않고, 부양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 어머니가 할머니를 모시고 부양했어요, 할머니가 매일 우리 어머니에게 듣기 거북한 말로 욕하는데 너무 사람을 업신여겨요!”

넷째 시동생이 먼저 와서 상황을 보고 “어머니, 좋은 말을 하면 안 되나요. 무슨 욕을 그렇게 하셔요!”라고 하자 시어머니는 “너희들은 한통속이 되어 나를 업신여기는구나!”라고 하면서 울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둘째 아주버님과 형님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나는 마중하러 나갔다. 이것은 예의 문제다. 나는 나가서 둘째 아주버님과 인사했다. 잠시 후 다른 형제들도 연이어 다 왔다. 둘째 아주버님은 논의해서 시어머니에게 셋집을 얻어드리자고 하면서 이 집은 우리 집이기 때문에 우리의 의견을 물었다. “저는 할 말이 없어요, 형님들이 돈을 얼마 내면 저도 얼마를 낼 거에요.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랫동안 계셨다고 형님들이 한 푼도 내지 말라는 것은 아니고, 제가 얼마를 내면 얼마를 내셔요.”라고 내가 말했다. 바로 이때 시누이가 시어머니 방에서 나오더니 내 코를 가리키며 “이렇게 하면 시어머니를 쫓아내려는 것이 아니에요?”라고 했고 시어머니도 방에서 나와 나를 욕했다. 나의 남편도 화가 나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고, 나도 심성을 지키지 못하고 “당신들은 이 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나의 옷만 가질 거에요.”라고 말하고는 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따라왔지만 나는 방문을 잠갔다. 그러자 남편은 “바보짓을 하지 마시오, 당신은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는 사람이오.”라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이때 나는 통곡하는 사람처럼 울었는데 법공부와 연공을 생각할 겨를이 있었겠는가!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부탁했다. “제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이 왜 이렇게 고달프게 살아야 합니까?” 그때는 이지가 분명하지 못해 완전히 법에 있지 않았다. 모두 사람의 생각으로 사람의 말을 했으니 정말로 괴로운 나머지 자신이 완전히 살길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편은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는 “당신은 법공부를 해야 하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때 둘째 아주버님이 들어와서 남편에게 “내가 좀 할 말이 있으니 너는 먼저 나가거라.”라고 했다. 남편이 나간 후 둘째 아주버님은 “제수씨가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 어머니는 제수씨 집에서만 지낼 수 있어요.”라고 했다. “아니에요, 모두 한 번씩 모셔봐야 그 기분을 알아요. 나 혼자만 감당하게 하지 말고요. 저는 정말로 참을 수 없어요.”라고 하자 그는 “나는 적게 벌지만, 집사람은 많이 벌어요.”라고 했다. 둘째 형님은 교사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말은 또 설득력 있게 잘한다. 둘째 형님이 들어와서 나는 “둘째 형님, 어머님을 한 번 모셔 보지요. 모두 회의에서 사람당 100위안(약 1만7천 원)을 내기로 했는데 형님이 내지 않겠다고 하면 제가 형님 대신 200위안을 낼게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어, 나는 “300위안을 낼게요.”라고 했다. 또 고개를 가로저어 “400위안을 낼게요.”라고 말했다. 그는 “동서가 돈을 얼마나 많이 주든 나는 시어머니를 모시지 않겠어요.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기만 하면 아이 아빠는 자기 어머니 말만 듣고 저와 싸움할 것이니 나는 모시지 못하겠어요.”라고 했다.

이때 거실에서 듣고 있던 시누이가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연세가 많으신데 이렇게 많은 자식 중에 셋째 형님보다 더 잘 모실 수 있는 사람이 없나요”라고 했다. 그러자 넷째 형님은 “아가씨는 시비 여하를 따지지 말고 셋째 형님을 욕하면 안 돼요. 어머니가 셋째 형님을 욕하기 시작하면 온종일 듣기 거북한 말로 욕해요. 그래도 셋째 형님은 수련하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거예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아요. 아가씨는 와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욕을 해대는데 나는 셋째 형님처럼 그렇게 인내심이 없어요. 얼마나 수양이 있어요. 아가씨는 그렇게 심하게 하지 말아요. 조금도 이치에 맞지 않아요. 나는 모시지 않겠어요!”라고 했다. 그들은 서로 다투다가 잠시 후에 모두 갔다.

남편이 방에 들어와서 나는 “어떻게 해결했나요?”라고 물었는데 그는 돈에 연관되자 모두 가버렸다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 이제 12일이 있으면 10월 1일이니깐 명절을 쇠고 다시 가면 안 되겠냐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다.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부님의 진수 제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내가 이렇게 시원스럽게 대답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나는 내가 사부님의 진수 제자가 되겠다고 하면서 오늘 내가 사람 마음으로 일을 벌였고, 법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조성했다고 했다.

다음날 시어머니는 방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남편이 불러도 나오지 않자 그는 나에게 식사하러 나오시라고 어머니를 불러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시어머니 방문 앞에 가서 “어머니, 식사하러 나오세요.”라고 연거푸 몇 번을 불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내 목소리가 왜 나오지 않는가 말했다. 남편은 내가 너무 긴장한 탓일 거라고 했다. 며칠째 시어머니가 나오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아침 일찍 나갔는데, 아마 먹을 것을 사러 나가셨던 것 같았다.

이때 나는 생각했다. 시어머니가 이렇게 앙심을 먹은 것은 모두 내가 수련을 잘하지 못하고 법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세가 많으신 시어머니를 배려하지 않으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렇게 많은 자녀가 모두 모시지 않으니 시어머니 마음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나는 수련인이다. 왜 그의 각도에 서서 생각하지 못할까? 이것은 사심과 이익지심 때문에 조성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사무아, 선타후아를 수련해내어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고 요구했는데 나는 그렇게 하였는가? 내가 시어머니께 상처를 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반드시 잘하고, 법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겠습니다. 사부님, 안심하십시오.” 시어머니가 돌아온 후 나는 용기를 내어 불렀다. “어머니, 나와서 식사하셔요!” 이번에 나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시어머니를 불렀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늘 이런 말을 하는데, 한 사람이 자신의 어떠한 관념도 가지지 않고 남과 말하면서 남에게 그의 결점을 지적하거나 그에게 무엇을 알려준다면, 그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것이다. 당신 자신의 어떠한 요소가 없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심지어 당신 자신을 위해서 아무런 보호도 하려 하지 않으며, 당신이 정말로 선의로 남을 좋게 하려 한다면, 어떤 사람이든 그는 정말로 당신의 이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3]

이번에 나는 진선(眞善)으로부터 나와 두 번째로 불렀을 때 시어머니는 “잠시 후에 나가겠으니 먼저 먹거라.”라고 대답했다. 나는 마침내 시어머니를 위한 이 걸음을 내디뎠다. 나의 가슴이 뛰고 다리가 떨렸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했다. “사부님, 저는 마침내 돌파했습니다. 사부님과 법에 의지해서 저는 걸어왔습니다. 법이 없었다면 이 집도 완전한 집으로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10월 1일, 시어머니의 자녀들은 휴가 때 모두 왔다. 내가 주방에서 반찬을 준비하고 있는데 시누이가 들어와 나를 덥석 안아주며 “미안해요, 내가 상처를 주었어요, 내가 잘못했어요.”라고 하면서 계속 나에게 사과했다. 나는 “내가 수련을 잘하지 못해서 그래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에요.”라고 했다. 그는 앞다투어 “올케의 잘못이 아니에요, 누구와도 비교할 사람이 없이 수련을 참 잘했어요.”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나보다 수련을 잘하는 대법제자가 너무나 많아요, 저는 앞으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할 거에요.”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여러 번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찾으면서 법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아 지금은 시어머니가 나를 좋게 대한다. 먹는 것까지도 나를 생각하면서 나를 도와 밥까지 한다. 누군가 노크하면 그는 먼저 사부님의 법상이 있는 방문을 잠그고 나서, 다시 문을 여는데 그는 나를 보호할 줄 안다.

완벽하게 행복한 집을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20년 동안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사악의 박해하에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나를 위험과 재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나는 수련을 할 줄 모르던 데로부터 수련할 줄 알게 되었고, 안으로 찾을 줄 모르던 데로부터 안으로 찾을 줄 알게 되어, 더듬더듬 오늘까지 걸어왔다. 20년이 지나서야 나는 자신을 수련할 줄 알게 되었다. 나는 법 속에서 진선인을 수련해 내어 나와 시어머니, 시집 가족들의 오래된 원한을 풀었다. 그중에 사부님께 얼마나 많은 폐를 끼쳐 드렸는지 모른다.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어렵다. 오로지 정진하여 많은 사람을 구해야만 사부님께서 마음 놓으시게 해드릴 수 있다.

사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저를 도와준 수련생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싱가포르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19년 12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2/12/39654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