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프랑스 어종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밍후이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돼 어머니의 소개로 밍후이 항목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번역만 하다가 얼마 뒤 교정에 참여했습니다.
수년간 밍후이 일은 이미 생활 일부분이 되어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밍후이 글을 읽고 번역하고 교정합니다. 저는 전 세계 대법제자가 모두 연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 밍후이왕 일은 마치 대법제자라는 정체의 맥박을 짚고 있는 것 같고 마치 몸이 원자로에 있는 것 같습니다.
16년간 밍후이왕은 제가 가장 힘들 때마다 난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저를 제 생명의 본질과 연결시키고 다시금 이어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큰 비통에 잠겼습니다. 1년 후 심득체험 한 편을 읽었습니다. 한 중국인 청년이 중국에 살았을 때는 대법을 수련하는 어머니 곁에서 성장했고 캐나다에 와서는 수련에서 다소 느슨해진 한편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어느 날 사부님의 설법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아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걸까? 나도 내 위치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수련인인가, 아니면 수련인의 아들인가? 이 글은 바로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나는 수련인인가, 아니면 수련인의 딸인가? 저는 명백하게 선택했습니다. 더는 비통함이 존재할 곳이 없었고 일종 따뜻하고도 강력한 느낌을 받았으며 마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자아를 버리다
처음 밍후이 일을 할 때는 영문에 따라 프랑스어로 완벽히 번역하도록 요구받았습니다. 저는 한 글자, 한 구절을 똑같이 번역하기가 싫었습니다. 당시 찬성하지 않았고 매우 거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밍후이 글을 볼 때도 매우 거부하는 심리가 있었습니다. ‘이는 프랑스어가 아니다. 전혀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 없지 않은가?’ 등등이었습니다. 이런 부정적 사상이 제 두뇌 속에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 항목에서 떠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번역과 관련된 일화
수련 초기에 저는 프랑스어 ‘전법륜’이 번역이 잘 안 됐다고 여겼습니다. 어떤 구절은 동사가 없거나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 없었는데 어쨌든 제가 봤을 때 잘된 프랑스어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번역판이 출판됐을 때 저는 아주 격동됐습니다. 마침내 수준 높은문자들을 볼 수 있었고 번역이 더욱 잘됐습니다.
어느 날 무슨 원인인지 컴퓨터를 켜고 클릭했는데 이전에 번역된 판본이 떴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번역이 잘 안 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대법이 사람에게 펼쳐 보이는 것은 내포이므로 어떤 판본이든지 모두 좋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법에 있는지 없는지였습니다.
이 작은 일에서 저는 마땅히 집착을 내려놔야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는 번역을 멋있게 하려는 집착이 있었고 ‘봐라, 얼마나 잘했는가’라는 식으로 이 일에서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했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무엇이 자아를 내려놓는 것인지 더욱 명백해졌습니다.
점차 저는 자기를 위해 하던 데에서 밍후이라는 사이트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글자마다 구절마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저의 자아가 폭로되고 시험을 겪었으며, 저의 그 뿌리 깊은 집착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는 마음, 자기가 하는 일을 타인이 봤으면 하는 마음, 자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른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 등등입니다. 지금은 제가 교정했거나 번역한 문장이 괜찮을 때 단지 조용히 즐거울 뿐, 제가 잘했다는 것을 통해 자아 가치를 실현하는 듯한 감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교정이나 번역을 통해 우리 사이트가 더욱 완벽해지고, 밍후이왕이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작용을 더욱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질투심을 버리다
저는 질투심이 단계적으로 폭로됐습니다. 층차마다 조금씩 질투심이 있어서 버려야 했는데, 매번 제거하고 나서는 더는 생각하지 않다가 그다음 층차에서 또 나타났습니다. 어떤 때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나중에야 그것이 질투심의 농간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제가 수련에서 봉착한 첫 번째 관이었으며 그 후로 제고하는 과정에서 조수와도 같이 한 번 또 한 번 밀려 나왔습니다.
질투심은 그렇게 쉽게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각종 방식으로 표현됐습니다. 쟁투심은 그 표현 중 하나입니다. 이 심득체험을 쓰면서 저는 ‘쟁투심’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았습니다. 사전에는 ‘한 팀에서 몇 명의 구성원이 같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적대시하고 경쟁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 팀에 어떻게 적대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어떻게 경쟁상대로 될 수 있단 말인가?
쟁투심은 제가 우리 팀의 일을 할 때 반영됐습니다. 저는 다른 동료보다 많이 교정하고 싶어 했으며, 간혹 다른 동료가 교정한 글이 꽤 많을 때면 게재할 문장 개수에 도달했는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그들보다 교정한 글이 많은지 살폈습니다. 지금 저는 다른 사람이 해낸 수량을 보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고 단지 제가 해야 할 바를 합니다.
저는 제가 다른 정황에서 쟁투심을 완전히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발정념을 하는데 그 당시 우리 팀 협조인 수련생이 생각나더니 즉시 강자아(姜子牙: 강태공)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왜 강자아가 떠올랐는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질투심을 말씀하실 때 강자아를 언급하셨지. 그럼 그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저는 발정념을 마치고 ‘전법륜’ 제7강의 강자아가 언급된 사부님 말씀을 펼쳤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옛이야기를 하나 하자: ‘봉신연의(封神演義)’ 중의 신공표(申公豹)가 강자아(姜子牙)를 보니, 늙고 또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원시천존(元始天尊)은 강자아에게 봉신(封神)하게 했다.”[1]
저는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그가 일을 어떻게 잘못했건, 그가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 어떻게 잘못됐건,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할 때 어느 정도로 수준이 낮건 저는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문제를 보는 처지가 잘못돼있었습니다. 순간 제 마음속에서 모든 원망이 완전히 녹아내렸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 단락의 법을 통해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이런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우리 어종의 협조인은 최선을 다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그가 지닌 국한성 및 그의 신의 일면에 대해 제 역할은 부정적인 생각을 산생(産生)하는 것이 아니고 저로서는 그를 돕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홀가분하게 변했고 더는 그와 쟁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경쟁 상대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였습니다. 그에게는 그의 역할이 있고 저는 제 역할이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법에서 깨우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축하카드 번역
축하카드를 번역하는 기간은 우리 팀에게 매우 특별한 시각입니다. 편집, 고정 스타일, 이미지 처리 등 기술적 어려움을 다 극복하면 저는 마음속으로 큰 희열을 느낍니다. 전 세계 대법제자는 매년 네 차례 사부님께 축하카드를 보내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 인사말은 매우 감동적이고 감격스럽게 합니다. 대법제자의 숭고한 경의를 대표합니다.
어떤 때는 밤늦게까지 아주 집중해서 하지만 제 마음속 깊은 곳은 희열로 가득 차고 이 항목을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최근 축하카드 번역을 하는데 저는 그런 인사말들이 바로 저의 손끝에 있는 것을 느꼈는데, 어떻게 번역하려는 생각도 없었지만 이미 번역됐습니다. 제자들의 감격, 확고한 신념, 감사, 깊은 존경이 제 손끝에서 흘러나왔는데 정말로 매우 신기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이 현상을 관찰하면서 계속해서 제가 할 일을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저의 교류문장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은 길고도 짧습니다. 친애하는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우리 수련환경의 특수성 때문에 우리는 서로 수천 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거리 역시 우리의 힘이라고 여겨집니다. 전 세계 어디나 밍후이왕을 위해 일을 하는 대법제자가 있으며 우리의 사명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밍후이왕을 주시고 저희를 지켜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9년 5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발언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5/21/3876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