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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이 비치는 행복한 집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은푸(恩普)

[밍후이왕] 저는 1998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그해 3월의 어느 날, 어머니가 저를 보러 왔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으며 성격이 나쁘고 화를 잘 냈습니다. 결혼한 후 시어머니와 자주 싸웠고 몸은 더 나빠졌습니다.

대법을 수련해 명리를 담담히 보다

어머니는 저를 보러 오시면서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가져왔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얻었는데 볼 시간이 없어 가져왔다며 먼저 보라고 했습니다. 한 번 보니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책속의 법리는 제 인생중의 미혹을 풀어주어, 마음에 두 개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저는 이미 여러 해 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온몸에 병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번에는 볼수록 정신이 나고 볼수록 보고 싶어, 아주 빨리 한 번을 다 보았습니다. 저는 세계관이 철저히 변해, 사람에게 왜 병이 생기는지, 왜 그렇게 많은 재난이 발생하는지 알았습니다. 사람이 사는 진정한 목적은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眞, 원래의 본성으로 돌아가다)이었습니다. 천서(天書)를 얻었다는 것을 알고, 저는 그때부터 진선인(眞善忍) 대법에 따라 하며,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언행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했습니다.

저는 영어 개인교사입니다. 처음에는 이웃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며 제게 가르쳐달라고 했는데 아이의 성적이 뛰어나게 좋아져, 다른 이웃들도 다 아이를 제게 보내주어 학원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대법이 지혜를 열어주어 새 학생이 오면 공부를 못하는 원인을 바로 보아낼 수 있어, 저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과 소통했습니다. 대법에서 알아낸 법리라 학생들은 제가 말한 도리를 금방 알아듣고 받아들였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파악했고 또 제가 재미있게 가르쳐주니, 아주 빨리 영어를 좋아해 성적도 따라서 올라갔습니다.

성적이 올라가니 학생들의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제게서 한동안 공부하고 나서 아이들이 예전에는 집에서 부모와 대화가 없거나 자주 화를 냈는데, 아이들 성격이 밝아졌다고 학부모들에게서 전화가 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약해서 자주 병이 났는데 아픈 횟수가 줄었다고 알려준 학부모도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것은 모두 제가 대법을 수련해 아이들이 혜택을 본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성적이 광고가 되어 저의 학생은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다른 선생님은 파닉스만 가르쳐주고 200위안(한화 약 3만원)을 받지만 저는 50위안(약 8천원)만 받았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부모님은 직장인이 많아 돈을 벌기가 쉽지 않은데, 학비를 비싸게 받으면 많은 학생이 교육과정을 다 마치지 못합니다. 비록 그때 우리 집도 형편이 어려웠지만 저는 줄곧 학비를 올리지 않고, 사부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곳곳에서 타인을 위해 생각했습니다.

몇 년 후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철거되어 우리는 방을 얻어야했습니다. 동창이 알고 진에 아파트를 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손에 쥔 돈이 없어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 동창은 길에서 제 남편을 만나 또 그 말을 했습니다. 남편은 마음이 움직여 아파트를 보러 갔습니다. 사겠다고 결정하지도 않았는데 친척들이 알고 돈을 준비해주었고, 일부는 대출을 받아서 사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사부님 저는 돈을 빌려서 집을 사기 싫습니다.’ 하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네가 이 몇 년간 적게 받은 학비로 아파트를 사고도 남는다.”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다른 곳에 있는 집을 팔아 집값을 다 갚고 또 10여만 위안(약 1660만원)이 남아 저축을 했습니다. 이후에는 갈수록 돈이 많아졌습니다. 이것은 대법을 수련해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도 복을 받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남편이 대법 책을 보호해 어렸을 때부터 난 흰머리가 검게 변하다

저는 1999년~2000년 사이에 베이징에 청원하러 세 번 갔고 세 번 감금되었습니다. 남편은 거대한 압력을 무릅쓰고 파출소에 가서 저를 풀어달라고 했고 구치소, 노동교양소에 저를 보러 왔으며 물건을 사주었습니다. 경찰과 610 직원이 남편에게 저와 이혼하라고 하니 남편이 “저는 아내의 신앙 문제로 이혼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아내가 힘겨울 때이니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습니다. 만약 아내가 싫어진다면 누가 권하지 않아도 저는 자연히 이혼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대법 책을 내놓으라고 하니 “우리 집 형편을 좀 보세요. 아예 책을 사지도 못합니다.”라고 둘러댔습니다. 사실 남편은 모든 대법서적을 친척 집에 숨겨놓았습니다.

2001년 저는 자유를 회복하고 대법서적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저는 매일 대법 책을 보며 다 보고나면 책상에 내려놓았는데 몸만 돌리면 없어졌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대법 책을 가져갔어요?” “내가 치워 놓았어요.” “또 봐야 되는데 왜 자꾸 치워요?”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대법 책을 보호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모릅니다.” 이 일을 회상하니 눈물이 막 떨어지려고 합니다. 저는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줄곧 우리를 보호해주셨다는 것을 알고, 동시에 남편의 그 선량한 마음을 보았습니다.

한번은 시댁 작은집에 가니 사촌 동생이 남편의 검은 머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형님, 염색했어요? 머리가 어떻게 검게 변했어요?” 그제야 저는 생각났습니다. 남편은 원래 흰머리가 많았습니다. 10여년이 지났지만 남편의 머리는 여전히 검고, 자세히 보아야 아주 조금 흰머리를 볼 수 있습니다. 대법 책을 보호해 남편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남편이 직장을 옮기려고 생각하니 세 번이나 이루어지다

처음 네 번의 정시 발정념할 때 오전 6시 정념시간은 아이가 아침을 먹고 학교 가는 시간이라 거의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직장을 옮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성공하면 아이에게 아침을 해먹이고 출근할 수 있는데, 그러면 저는 오전 6시 발정념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기점은 아이를 위하고 제 발정념을 위한 것이니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 과연 정말 성공했습니다.

2007년에 아이가 외지에 가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남편은 외지에 방을 얻고 저에게 가서 아이와 함께 있으라고 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남편은 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현지 경찰과 주민위원회에서 수시로 우리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기 때문입니다.

외지에서 아들과 함께 있는 5년 동안 남편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직장의 허름한 소파에서 잠을 잤는데, 밤에 기차와 철도 레일이 부딪치는 소리는 귀청이 떨어질 듯 요란했습니다. 매주 또 외지로 우리를 보러 왔고 출근하는 날에는 동이 트기 전에 멀고먼 기차역으로 떠났습니다. 다행히 다시 한번 직장을 옮기는데 성공했습니다. 원래는 저녁 근무를 했는데 밤에 눈도 깜빡이지 못하게 지켰으며 발견되면 벌금을 물어야했습니다. 남편은 직종을 바꾸고 싶어 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또 성공했습니다. 이번은 1년에 한 달만 일이 있고 남은 시간은 한가했습니다. 게다가 낮에만 일하고 토요일, 일요일은 쉬고 월급도 그대로 꼬박꼬박 주었습니다.

직장을 옮기기 전에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매달 월급 50위안이 깎였는데 상급에서 정한 인원수가 있어, 임무를 완수하려고 지도자가 매달 남편의 월급을 깎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싸움이 날 것 같았지만 남편은 성실하고 선량했기 때문입니다. 남편도 처음에는 갈등하며 지도자를 찾아가 말하려고 해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해 곳곳에서 진선인에 따라 하니, 온몸의 병도 없어지고 마음도 밝아지니 얼마나 좋습니까. 당신도 진선인에 따라 하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재물은 누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잃지 말아야 하면 돌아올 것이고, 얻지 말아야 할 것이면 우리는 가지지도 않습니다.” 남편은 더는 그 일을 마음에 두지 않고 갈등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계속 깎였습니다.

하루는 그 지도자가 남편에게 풀을 뽑으라고 시키고, 남편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서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저를 원망하지 않으십니까?” 남편은 그의 뜻을 알고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가서 말했습니다. “이 문제를 저는 높은 곳에서 봅니다. 저는 무서워서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도 쉽지 않습니다. 제 월급을 깎지 않으면 누구 것을 깎겠습니까? 다른 사람 것을 깎으면 싸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매월 50위안 적게 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냥 집에서 50위안 적게 쓰면 됩니다.” 지도자는 감동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했습니다. 그때부터 더는 남편의 월급을 깎지 않고 각종 명목으로 물건도 주었습니다. 한번은 남편에게 전자레인지를 주었는데 그때 막 유행할 때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서로 갖겠다고 했지만 지도자는 남편이 매번 시험에서 A를 맞는다고 말했습니다.

2016년 남편은 다시 한번 직장을 옮기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때 남편은 이미 두 가지 좋은 일자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철도국에 출근하는 것이고 하나는 영업하는 일이었습니다. 남편은 만약 직장 옮기는데 성공한다면 하루 출근하고 이틀 휴식한다며, 일도 힘들지 않고 청소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출근도 할 수 있고 영업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바르게 하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아주 순조롭게 직장을 옮겼고 예전보다 월급이 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적지 않았습니다. 2017년 말, 한 달은 1만여 위안(약 166만원)을 받고, 또 한 달은 8천여 위안(약 133만원)을 받아 남편 자신도 놀랐습니다.

남편이 화학비료 영업일을 하고부터 줄곧 대법수련생을 고용했습니다. 비료가게에도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을 고용했고 그들은 손해를 보게 한 적이 없습니다. 남편은 말했습니다. “대법을 믿는 사람은 믿음직스럽습니다. 그들과 함께 지내면 힘들지 않습니다.” 남편은 수련생에게 기회가 있으면 진상도 알리라고 허락했지만 이지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남편은 자주 저와 마음을 나누고, 저는 대법에서 깨달은 이치를 남편에게 말합니다. 장사는 경제 이익과 관련되고 지금의 사람은 도덕 최저표준을 넘어서서 이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이익과 양심을 선택할 때가 오면 반드시 양심을 선택해야 합니다. 양심은 덕행이고 어떤 것도 이것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무엇을 시작할 때 단번에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이 사람의 도덕적 깊이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돈을 갈수록 많이 벌고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지만, 어떤 사람은 잠시 돈을 벌었으나 곧이어 불행한 일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덕행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는 덕이 근본입니다.” 남편도 늘 말합니다. “저도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안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고 변해야겠습니다.” 남편을 아는 수련생이 남편을 “도를 닦지 않지만 이미 도중에 있다”고 말합니다.

대법이 아들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다

막 법을 얻었을 때 아들은 6살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법공부하고 아이만 보면 되었습니다. 아이는 놀면서 같이 듣고 알아들었습니다. 1999년에 사악이 대법을 박해할 때 제가 아이에게 “누가 중생을 위해 감당하고 있나요?”라고 물으니 “사부님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해야겠다고 하니 아들은 “제 세뱃돈을 가져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무고하게 감금되었다가 돌아오니 아들은 제가 보고 싶어 몰래 이불속에서 울며, 할머니와 아빠가 보지 못하게 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한번은 학교 도덕 시간에 분신자살을 말하며 대법을 비방해, 아들이 손을 들고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온몸에 화상을 입었는데 어떻게 붕대로 감을 수 있나요?” 선생님은 말문이 막혀 황급히 수업을 마쳤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아들 성적이 좋은 것을 보고 공청단원(이하 단원)에 가입시키려고 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고 선생님이 즉시 제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선생님 집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선생님의 부모님도 만나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한번은 선생님이 아들에게 단비를 내라고 해, 아들이 단원이 아니니 내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즉시 너를 단원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고 아들은 “돈은 드릴 수 있으나 단원에는 가입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고등학교 들어가서 아들은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항상 칠판을 깨끗이 닦아놓고 저녁에는 맨 마지막에 교실에서 나가며 창문을 잠갔습니다. 이웃에 중점반 선생님이 사는데 아들 품행을 보고 마음에 들어 아들에게 과외를 해주었습니다. 아들이 잘 따라하지 못해도 이웃 선생님은 아들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졸업할 때 선생님은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했고, 저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대학 다닐 때 아들은 어려운 학생을 도와주고 지도원선생님이 수업자료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아들은 ‘정치면모’ 란에 단원이라 적은 내용을 모두 정정해달라고 선생님께 여러 번 요청했고, 선생님은 하나하나 다 고쳐주셨습니다.

지금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비료공장에 배치되어 영업을 책임지고 15여만 위안(약 2500만원)짜리 차도 얻었습니다.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우리 집을 부러워합니다. 아들은 취업을 했고, 남편은 정식 일자리가 있으며 또 영업을 해 부수입을 벌고, 저는 영어 학원을 합니다. 이것은 정말 사부님의 은혜가 가없이 넓고 커(師恩浩蕩) 우리 집에까지 널리 비쳤습니다.

 

원문발표: 2019년 1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7/3729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