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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글/ 산둥 대법제자

[밍후이왕] 매 호의 “밍후이주간”을 진지하게 열독하면서 수련생의 문장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자신과의 격차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한 편의 글을 보고 나면 저는 이 문장 속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자신에게 물었고, 자신이 개선해야 할 부분과, 수련생이 언급한 문제가 나에게도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법에서는 어떻게 말했는지, 스스로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수련생이 쓴 것은 자신이 최근에 깨달은 것이기도 했으며, 수련생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것 같았습니다. 어떤 때는 수련생의 강대한 정념에 크게 울림을 받아 스스로도 힘이 넘쳤고, 또 어떤 때는 수련생의 선량함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며 자신도 많은 마성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오늘 자신이 수련 중에서 깨달은 점을 써내어 수련생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수련과정에 단계적 총결이기도 하며, 법에 부합되지 않는 곳은 수련생분들이 법을 지도로 삼기 바랍니다.

수련 중에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수련 과정은 집착을 내려놓는 과정이며, 수련과정을 회고하면서 마난(魔難) 속에서, 모순 속에서 한 번 또 한 번 깊이 자신을 찾고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마음인가? 이는 어떤 관념과 생각이 옳지 않았는가? 무엇 때문에 이 관념이 있는가? 이 관념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나의 출발점과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미워하는가?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수련하는가? 무엇 때문에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왜 집착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걱정하는가? 나는 대법을 무엇으로 생각하는가? 무엇이 사람인가?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는가? 많은 것들이 나의 사고(思考)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많은 문제들을 내면으로 찾는 중에서, 대법의 점화 속에서 다양한 층차의 답안을 찾아냈습니다. 사람의 관념은 제거되고 있고, 정념이 증가되고 있습니다. 자신도 스스로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나는 무엇 때문에 수련하는가? 무엇 때문에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집착하는가? 나는 대법을 무엇으로 간주했는가?’ 하는 것은 저에게 가장 많이 물어본 문제입니다. 최근에 이러한 문제에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우선 ‘나는 무엇 때문에 집착하는가?’에서 제가 이해한 것은 세상의 온갖 고초를 겪으면 본능적으로 고통을 배척하고, 달콤하고 행복한 것을 추구합니다. 자신의 명(名), 이(利),정(情)이 만족을 느꼈을 때,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을 때 또는 바라지 않던 것이 뜻밖에 실현되었을 때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고 편안했는가를 느꼈습니다. 이러한 느낌을 추구하고 줄곧 이런 행복함을 느끼고 싶어 했고, 모든 일에 제가 마음먹은 대로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아마도 제가 집착하는 이유이고,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동기부여가 된 출발점일 수 있으며, 일체의 나를 둘러싼 근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또한 저의 생명이 아래로 떨어진 원인이고 생명이 돌아가지 못하는 원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또 집착을 내려놓으려 하는가?’를 이해한 것은 현실이 저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제가 생각에 집착한 것은 흔히 일방적인 것으로서 가져야 할 것과 갖지 말아야 할 것, 와야 할 것과 가야 할 것은 당연히 저의 집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집착은 미혹의 세상에서 정의 작용 하에 사람의 얕은 견해와 사리에 어두운 무지(無知)로 조성된 것입니다. 특히 무신론, 진화론, 약육강식(弱肉強食)의 주입 하에 사람들이 한사코 포기하지 않으려는 유일(唯壹)한 기로가 되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여 집착은 소용이 없으며, 어떠한 일에 지금까지 자신의 집착에 따라 발생하여 발전하고 결과를 맺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표준은 무엇일까요? 대법은 미혹의 세상을 포함하여 우주의 다양한 층차를 창조했습니다. 대법은 각기 다른 층차에서 생명을 창조했고, 이 만사만물은 대법의 가늠 속에 있습니다. 대법이 표준이며 대법이 최종 결정을 합니다. 대법은 생명이 하는바(所為)에 따라 상응하는 보응(報應)을 내리며, 누구도 벗어날 수 없으며, 모두 자신의 인과응보를 감당해야 합니다. 생명이 운명을 바꾸려면 오직 자신의 사상과 행위를 개변하고, 대법의 지도에 따라 사상과 행위를 개변해야만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진정으로 수련해야만 비로소 그의 인생행로를 개변할 수 있다.”[1]

이제 저는 적극적으로, 스스로 집착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사부님께서 저에게 1위안을 주신다면 저는 ‘왜 1위안 10전이 아니지? 무엇 때문에 그는 5위안이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부님께서 저에게 고생을 하라고 하시면 왜 저는 행복하지 않은지 가서 묻지 않을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배치해 주신 생활환경은 저의 수련장소입니다. 집, 차, 돈 등등은 모두 법이 저에게 사용하라고 준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물질을 손에 들지도 않았는데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생명은 자신의 인생행로를 배치할 능력이나 자격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행로를 배치할 능력이나 자격은 더더욱 없습니다. 수련과정에 구세력의 교란과 파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구세력은 사부님의 권고를 듣지 않고 대법을 표준으로 삼지 않으며, 대법을 이용하여 그것의 목적을 이루려고만 합니다. 위층에서 아래층을 소멸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합니다. 저는 사부님의 제자입니다. 수련의 길을 걸은 그날부터 구 우주, 구 세력, 낡은 신의 관할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것들의 나에 대한 일체 박해와 병업 형식의 교란이나 자유를 잃거나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하는 등 각종 형식의 박해와 방해를 나는 법의 요구에 따라 승인하지 않고 정념정행(正念正行)하여 깨끗이 청리 한다!

법을 지도로 삼고 표준으로 삼을 때 진정한 법의 힘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법의 힘이 있게 되자 어떠한 집착심도 담담해 졌습니다. 저는 집착심에도 힘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배후의 다양한, 각 층차의 사랑(愛), 미움(恨), 정(情), 원수(仇), 마(魔)가 그것을 강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법의 힘이 주도작용을 일으키므로 법을 제1위에 놓고 법을 지도로 존사경법(尊師敬法), 신사신법(信師信法)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유일한 사상이 될 것입니다.

생명이 생성(產生)된 초기에는 분명히 법의 다양한 층차의 표준에 부합되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때는 필히 대법을 제1위에 놓았을 것이고, 그때의 언행은 분명히 대법의 표준에 따랐을 것입니다. 그때의 법은 마음속에서 지고무상 했을 것이며, 그때의 생명은 분명히 순수하게 선(善)하고 깨끗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오랜 세월에 몇 차례나 윤회 했는지,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업을 빚었는지 모릅니다. 생명은 법과 점점 멀어 졌고, 그러다가 이번에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대법을 각 층차에 전하셔서야 생명은 구도될 희망이 있게 되었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돌아왔습니다. 대법은 새로이 마음속에 뿌리 내렸고, 분명 다시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오염된 부분은 모두 제거해 버리고 오로지 깨끗하고 순수함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사부님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 때문에 집착을 내려 놓는가?’ 나의 모든 집착은 법을 제1위에 놓지 않은 표현입니다. 모두 이기적인 것으로 법과 실랑이를 벌이려 하는 표현이고, 법을 존경하지 않는 표현이며, 사악에게 이용당하여 그것이 목적을 달성하려는 약점이 될 것입니다. 법 앞에서 오로지 본분을 지켜 일체를 법에 따라 하고 생명의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대법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자신에게 한 번 물어 보아야 합니다. 대법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대법을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사람 마음을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예를 들면 건강, 또는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등등) 아니면 정말로 법에게 신성한 위치를 주었는지? 대법이 마음속에 도대체 얼마나 큰 무게로 차지하고 있는지? 모두 스스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7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7/21/3712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