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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한국 대법제자가 중국어를 독학하고 법을 외운 이야기

글/ 한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문장을 쓰기에 앞서 우선 제19회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경축드리며, 밍후이왕을 통해 수련체득을 교류할 기회를 주신 사존의 은혜에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밍후이 일을 하며 자연스레 중국어를 배우다

저는 2000년 10월 무렵, 19살(만 17세)의 나이에 친오빠를 통하여 대법을 얻게 되었고, 2004년 초, 우연한 기회에 매체에서 교정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번역문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중문과 일일이 대조해야 했기에, 사전을 찾는 일이 많아져 조금씩 단어들을 터득했으며, 어떻게 번역이 되는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저는 일부 간단한 문장을 번역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비교적 쉽고 짧은 문장을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중문 지식이 부족해 많이 할 수는 없었습니다.

몇 년 후, 저는 호기심에 중문 ‘전법륜’을 펼쳐보았습니다. 당시 저는 중문 원서를 사 놓기만 했지 감히 읽을 줄 몰라 전혀 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뜻밖에도 ‘전법륜’의 반 정도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서를 배울까 잠시 생각했지만, 중국어의 발음을 전혀 모르기에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 두꺼운 책을 어느 때에야 다 배워낼 수 있겠는가. 그래, 한국어로 배워도 역시 법공부다. 한국어로도 충분하다. 배우지 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다시 중문 ‘전법륜’을 펼쳐 보았고, 뜻밖에 예전보다 아는 글자가 더 많아졌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나는 ‘너무 아깝다. 내가 이렇게 많이 알게 되었는데, 원서를 배우지 않는다면 너무 아깝지 않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에는 견딜 수 없는 간절함으로 결국 원서를 배우기로 하였습니다.

첫 시작에 저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막상 배우기로 했는데, 그럼 어디에 가서 배울 것인가. 작은 소도시라 마땅한 학원도 없고, 설령 학원이 있다 해도 경제적인 사정이 좋지 않아 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저 혼자만 수련하고 있기에 다른 중국인 수련생을 찾아 가르침을 청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읽는 법은 배우지 않고, 눈으로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만 배우자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며 행복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저는 ‘전법륜’을 베껴 쓰기 시작했습니다.

‘전법륜’을 베껴 쓰다

저는 ‘전법륜’을 베껴 쓸 때,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판 ‘전법륜’을 하나하나 대조했습니다. 처음에는 글자 한 개를 한 번에 쓸 수 없어 몇 번을 반복해서 봐야 겨우 한 개 따라 썼습니다. 6cm 정도 되는 두꺼운 사전을 사서 궁금한 단어들은 찾아보았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사전을 찾는 속도가 빨라지고 때로는 펼치면 바로 나왔으며, 혹은 사전을 몇 장만 넘기면 단어가 나왔습니다. 저는 사존께서 저를 도와주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抄写《转法轮》的照片
‘전법륜’을 베껴 쓴 사진

법을 베껴 쓰는 과정은 역시 씬씽(心性)수련의 과정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때도 이렇게 장시간 펜을 들고 필기해본 적이 많지 않았기에 법을 베껴 쓰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가 손목이 아프고 손가락뼈마저 뻑뻑해지고 다 아팠습니다. 하지만 저는 집에 있을 때는 줄곧 ‘전법륜’을 베껴 쓰기를 견지했습니다. 두꺼운 종이 사전을 쓰려니 많은 시간이 들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중국어도 전자사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아무 사전이나 하나 골라 샀습니다. 알고 보니 이 전자사전은 중국어 학습자들 사이에서 가장 좋기로 유명한 사전이었는데, 사존께서 저에게 가장 좋은 사전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전자사전 안에 단어의 발음을 들을 수 있는 기능이 있어 저는 호기심에 몇몇 단어들을 찾아 발음을 들으며 흉내를 내보곤 했습니다. 법을 베껴 쓰는 일이 마무리되어갈 쯤, 문득 ‘눈으로만 보고 이해하면 뭘 할 것인가, 소리 내어 읽지 못하면 너무 답답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저는 드디어 발음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저는 ‘전법륜’ 한 권을 다 베껴 쓰자마자 바로 중국어 발음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어로 법을 읽다

처음 시작에 두려운 마음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나를 가르칠 선생님이 없는데, 어디에 가서 배울 것인가.’ 평소 알고 지내는 교포 수련생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싶었지만, 줄곧 ‘이러면 수련생의 시간을 빼앗게 돼. 수련생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야. 차라리 혼자 배우는 게 나아.’라고 생각해 저는 독학을 결심했습니다.

잘 배울 수 있을지 두렵던 그때 저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나에게도 중국어를 가르쳐주실 분이 계시잖아. 사존님이 나의 중국어 선생님이시다.’ 이 생각이 떠오르자 저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 어떤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해도 어디 우리 사존님만 하겠는가. 사존께서 나를 가르쳐 주실 텐데. 내가 틀리게 배우겠는가? 설령 틀려도 사존께서 반드시 바로 고쳐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수시로 중국어의 기본 발음을 훈련하면서 동시에 ‘전법륜’을 읽어나갔습니다. 한 번 법을 베껴 쓴 경험 덕에 내용을 전보다 많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조그마한 수첩 몇 권을 사서 모르는 단어를 기록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으며 ‘전법륜’의 페이지 숫자를 수첩에 똑같이 표시하고, ‘전법륜’ 매 페이지의 모르는 단어와 발음, 성조, 사전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전자사전을 찾으며 기록했습니다. 처음 시작에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수첩이 새까맸습니다. 저는 속인의 공부 방식처럼 특정 단어를 깜지를 써서 외우지는 않았습니다. 외워지면 외워지는 대로 외워지지 않으면 외워지지 않은 대로 천천히 읽어 나가기만 했습니다. 저는 중국어를 배우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법공부를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初学简体字时,第一次整理的手册,不认识的词汇密密麻麻。
처음 간체자로 배울 때 정리한 수첩. 모르는 어휘가 가득하다

어떤 단어는 십수 번 사전을 찾아도 여전히 성조나 발음이 헷갈렸습니다. 저는 내가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사전을 찾았습니다. 하루는, 사전을 찾자마자 어느 한 단어가 제 신체를 관통해 급속히 신체 내로 쏘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동시에 두뇌는 마치 망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고, 두뇌는 매우 청성하고 명석해졌으며 마음은 광활해졌습니다. 이 단어는 순식간에 제 온 신체에 퍼져나갔고, 마치 에너지가 체외로 확대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 분명 알았습니다. ‘이 단어는 이제 완전히 기억했어. 다음에 다시 만나면 나는 분명히 이 단어를 기억하고 있을 거야.’ 물론, 이것은 후에 진짜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단어를 수첩에 기록하는 과정에서 일부 단어가 저와 간격이 있음을 느꼈는데, 이 단어들이 바로 반복해서 찾아도 기억할 수 없는 단어들이었습니다. 간격이 없어지면 비로소 기억에 남았습니다.

从新学正体字时再次整理的手册。当时除了圆圈外,其余的都变成已知的了,现在已不需要这些手册了。
번체자(정체자)를 새롭게 배우면서 다시 정리한 수첩. 당시, 동그라미 외에는 이미 다 아는 단어였고, 지금은 이미 수첩이 필요 없다

발음을 배우는 과정 중에 나는 몇 가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제가 중국어를 너무 유창하게 하는 꿈이었습니다. 발음도 굉장히 정확하고 말 속도도 빨랐습니다. 이 꿈은 후에 또 한 번 반복해 꾸었습니다. 저는 이를 사존의 점화라고 인식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이전 어느 한 생에 중국 사람인 적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중국어 지식이 0에서 100을 향해 공부해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100이 갖추어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전생에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했든지 모두 우주 중에 기록이 남는데, 내가 전생이 중국인이었다면, 그때의 중국어 역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단지, 이번에 한국인으로 태어났기에 (중국어 능력이) 잠겨 있거나 어느 깊은 공간에 눌려 있을 뿐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전생의 기억을 사존께서 장악하고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중국어를 배워가면서 사존께서 저에게 열어 줄 것은 열어 주시고, 보충해야 할 것은 보충해주신다고 느꼈습니다.

비록 발음에 대해 두려움은 버렸지만, 뒤이어 시간에 대한 강한 집착심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때에 이 두꺼운 책을 읽을 수 있게 될까. 저는 마음이 조급해져 잠잘 때, 밍후이 라디오를 들으며 잤는데, 하루는 또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저와 똑같이 생긴 이가 등장했고, 그는 “나는 너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중국어였습니다. 더 빨리 말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매우 빨리 말했는데, 속인의 언어 같지 않았고, 마치 새가 아주 빨리 지저귀는 소리 같았습니다. 제가 너무 놀라자 그는 다시 느린 속도로 말을 하기 시작했고, 또 제게 “너는 딱 이 수준이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너는 완전 초보야. 내가 네 수준에 맞춰 가르치는 것이니 욕심내지 마라.’라는 뜻임을 알았습니다. 이어서 “時間是老師(시간이 스승이다)”라는 중국어가 ‘웅웅’거리며 하늘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그는 “나는 비록 너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항상 너와 함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은 시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사존의 점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자연히 다 해결된다는 점화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사존의 ‘9일 강의’를 조금씩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몇 달 만에 ‘전법륜’을 한 번 읽었는데, 도중에 저는 번체자(정체자)를 새롭게 배웠습니다. ‘전법륜’을 이렇게 한 번 읽은 후로 비교적 유창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느린 과정이었지만 오히려 매우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단어를 정리하는 데 수첩을 여러 권 썼지만, 지금은 이미 수첩이 필요 없습니다.

‘전법륜’을 외우다

오래전에 저는 한국어로 법을 외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1 강의를 채우지 못하고 중단되었습니다. 하루는 법을 익숙히 외우고 밭에 나가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법을 외웠습니다.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저는 소리를 내어 법을 외우고, 사람이 있으면 소리 없이 법을 외웠습니다. 그런데, 익숙히 외우던 부분이 갑자기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크나큰 정신적인 고통을 느꼈고, 얼굴마저 찌푸려질 정도였습니다. 마치 두뇌가 백지가 된 것 같았습니다. 저는 기어코 생각해내려 했고, 한참이 지난 후, 갑자기 법이 떠오르며 제 신체 내의 거대한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벽 너머 중생들이 북 치고 장구 치며 축제가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아주 생생한 감각이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눈물을 흘렸습니다. 중생이 기뻐하자 저도 극도의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당시 저는 중생의 영원한 안위와 행복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저의 신체가 없어도 좋고, 중생들이 저의 존재를 몰라도 좋았습니다. 오직 의식만 남아서 그 의식이 마치 중생을 보호하는 막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약속했습니다. ‘내가 반드시 이 법을 다 외워서 돌아갈게. 오직 중생들을 위해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습니다.

이번에 중국어로 다시 ‘전법륜’을 외우려고 할 때, 마침 이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일찍이 법을 외우지 않은 것이 참 후회스럽고 참으로 통한스러웠습니다. 저는 이 약속을 잊었지만, 사존께서는 오히려 잊지 않으시고, 제가 중국어로 법을 읽을 수 있게 되자 이 일을 생각나게 하시어 다시 법을 외우게 하셨습니다. 저 역시 법을 외우고자 하는 갈증과 간절함이 매우 커졌습니다.

처음 시작에 저는 에누리 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외국인이니까 중국인 수련생처럼 그렇게 높은 요구로 법을 외울 수는 없다. 조금만 요구를 낮추어서 한 문장씩만 외워서 바로바로 넘어가도 꽤 괜찮은데, 이러면 견지하기가 비교적 쉽다.’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불편했고, 자신에 대한 요구가 너무 느슨하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제가 법을 외움에 있어서 중국인 수련생과 결코 구별이 있을 수 없으며, 법의 요구는 동등하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한 단락씩 외워내기로 했습니다. 한 문장을 외우고, 그다음 문장을 외운 다음에 다시 두 문장을 연결해 외우고, 세 번째 문장을 외운 다음에 다시 앞 두 문장과 연결해 외우는 방식으로 했고, 최종적으로 한 단락을 반복해 외웠습니다.

법을 외우는 과정 중에 신기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사존께서 “사람이 염불함에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염(念)해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대뇌의 기타 부분이 모두 염(念)해 마비됨으로써 아무것도 모르며, 일념(一念)이 만념(萬念)을 대체하여, ‘아미타불’의 매 한 글자가 눈앞에 모두 나타날 수 있다.”[1]고 하셨습니다. 한번은 한밤중에 방에 앉아 가부좌하고 눈을 감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내 온 신체가 다 집중하여 법을 외우자고 생각했습니다. 매 한 단어에 집중하여 법을 외우자 법의 매 구절이 내 신체로 쏘아져 들어와 온 신체에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온몸의 세포가 다 법으로 충만해졌고 마치 이 에너지가 체외로 확대된 느낌이었는데, 법을 외우는 의념만 남고 마치 신체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곧 눈앞에 지금 외우고 있는 구절이 금색으로 나타났습니다. 언젠가 또 한 번은 눈앞에 두꺼운 석판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마치 칼로 깊이 새긴 것처럼 매 글자가 입체감이 있었는데, 외우는 심도가 깊어지고 마음이 고요해질수록 석판에 새겨진 한자의 획이 하나하나 서서히 금색으로 변해갔습니다. 석판에 한자가 빼곡했는데, 바로 전부 ‘전법륜’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석판을 뒤집자고 생각하자 순식간에 석판이 뒤집혔는데, 한국어판 ‘전법륜’의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석판을 반복해서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었습니다. 자세히 보려고 눈을 움직였는데, 곧바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쉬움에 다시 보려 했지만, 다시 보려 해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반드시 법을 끝까지 외우겠다는 신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한번은 새벽 4~5시 사이였습니다(북경시각 3~4시). 법을 외우다 벽에 기대어 졸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쿠쿵’ 하는 거대한 울림이 울렸는데, 마치 진동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이곳에서 직접 울린다면, 이 우주가 폭발하고도 남을 정도의 위력이었습니다. 저는 놀라 잠에서 깼지만, 마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고, 눈도 뜰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늘에서 2~3초 정도 아름다운 음악이 울렸습니다. 음악이 멈추자 또 하늘에서 웅장한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네 개의 글자를 말했는데, 저는 그 발음을 똑똑히 알아들었고, 다시 되새길 수도 있었지만, 눈을 뜬 후에는 오히려 한 글자도 흉내 내어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그 네 글자의 의미만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법을 외우다 졸음에 빠진 저를 매우 엄하게 꾸짖으시는 의미였습니다. 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는데,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목소리가 사라져서야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한동안 멍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네 글자가 중국어인 줄 알았지만, 결코 중국어가 아니었으며, 속인 중의 그 어떤 언어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중국어와 아주 약간 비슷할 뿐이었습니다. 네 글자의 내포는 너무 풍부하여 속인의 언어로는 결코 번역해낼 수 없었고, 저는 사존께 너무 면목이 없었습니다. 어느 시간에 법공부를 하든지 또 얼마나 피곤하든지를 막론하고, 법공부하기 위해 책을 들었다면, 집중하지 못하는 그 어떤 이유도 사실은 다 핑계고, 오직 ‘일심불란’[1] 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사존께서 단체 법 암기 환경을 주시다

저에게는 한 가지 몇 년 동안 넘지 못한 관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화 진상 플랫폼에서 법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양 사람은 외향적이어서 외국어를 금방 배우고 스스럼없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동양인은 굉장히 내향적이어서 부끄러워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제가 바로 이 내향적인 성격의 전형입니다. 저는 너무 긴장되고 두려워 감히 마이크를 켜지 못하고, 그저 듣기만 했습니다.

지난해, 저는 다시 그 프로그램을 설치해 법공부하고 싶어졌습니다. 여전히 혼자 법을 외우고는 있었지만, 진도가 아주 느렸고, 견지하기가 힘들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항상 법을 끝까지 외우고 싶은 소망은 간절했습니다. 저는 사존의 설법에서 보았던 창춘 수련생들이 단체로 법을 외웠다는 그 환경을 항상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같이 외울 수련생을 찾을 수 없어 단지 이 소원만 가지고 있을 뿐,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저는 수련생의 도움으로 이 플랫폼을 새롭게 설치했고, 저는 뜻밖에 단체로 법을 외우는 방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법을 읽는 데 참여했습니다.

첫 시작에 극도의 두려움이 일어나 크게 심호흡을 했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반드시 이 관을 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차례가 다가오자 입이 바싹 마르고 온 신체가 사시나무 떨리듯 극심하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붙잡고 있는 손마저 덜덜 떨렸고, 마치 오한이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어이 읽었습니다. 목소리도 덜덜 떨렸고 두통이 생겼습니다. 제가 무엇을 읽는지도 모른 채 읽었습니다. 이렇게 한 번을 넘어가자 다음 차례에는 좀 나아졌고, 세 번째에는 완전히 정상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상태는 지금도 가끔 반복되지만, 매번 넘어가고 있으며, 예전처럼 소심하여 읽지 못하는 상태는 없습니다. 설령 긴장되더라도 과감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7년 8월경, 법 외우는 어느 방에 혼자 있을 때, 한 수련생이 제게 함께 법을 외우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밤 시간대에 법을 외우는 팀이라 밤의 시간이 자유로운 제에게는 아주 적격이었습니다. 그들은 제7 강의를 외우는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은 새롭게 제1 강의를 외우고 있습니다. 단체로 법을 외우고 싶어 하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사존께서 제자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꿈에 한 수련생이 제게 “단체 법공부에 좀 나와.”라고 했습니다. 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단체 법공부에 충실히 참석하는데, 수련생이 왜 어찌 이런 말을 하는지 의아했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아보았고, 장기간 법공부의 ‘형식’에만 치중하고 질량을 홀시 하는 상태가 나타났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평소 저는 다른 사람이 법을 읽거나 외우고 있을 때는 제 차례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 차례니까 당신이 당신의 것을 읽고 외우는 것이며, 내 차례가 아니니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단체법공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혼자 법공부하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빨리 외우려고만 집착했는데, 수련생이 어느 한 단락의 앞부분을 외우고 있으면 저는 혼자 마음대로 뒷부분을 외우면서 결코 수련생과 속도를 맞추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수련생이 외우는 동안 저는 다른 일을 하거나 머리는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었고, 자세도 엉망이었습니다. 저는 법공부에는 당신 차례, 내 차례가 없고, 우리 모두 정체로 함께 공부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단체로 법을 외우는 우리 팀의 한 수련생이 장기간 졸음 마에 시달리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매 사람이 3번씩 외우는데, 때로는 그 수련생 혼자서 5~6번 읽거나 외우고도 그 자신은 오히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내가 외울 횟수가 줄어든다며, 불평불만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것은 자신의 것을 조금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수련생이 설령 횟수를 초과해 더 많이 외우더라도, 저는 마땅히 그녀를 위해 더욱 기뻐해야 합니다. 수련생이 심하게 졸 때는 저도 매우 괴로웠고 자꾸만 그녀를 탓하는 말이 하고 싶었는데, 최근에는 저 역시 졸음에 빠지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제가 수련생을 도와 이 난을 넘지 않고 수련생 탓만 하니 저에게도 같은 문제가 나타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졸음에 시달리며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제야 저는 이 수련생이 장기간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런데도 단체 법 외우기를 견지하는 것이 매우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이 난을 넘어가려 애쓰는 수련생에게 관용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련생을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며 이곳에서 수련생과 속도를 맞추어 법을 외웠습니다. 이 관은 수련생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넘어야 할 관이라고 여겼습니다. 저는 이 마당을 순정이 하고 수련생을 도와 정념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쪽에서 수련생과 함께 외웠기에 제가 외우는 횟수가 절대 줄지 않았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이 단체 법 외우기 환경을 너무 소중하게 여깁니다. 이미 7개월 정도가 지났기에 매일 밤 이 법공부 팀에 참여하는 것은 이미 습관으로 굳어졌습니다. 비록 때로는 집착과 게으름에 빠져 빠뜨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집중을 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최대한 참여하려고 노력하며, 하루 빠지게 되면 마음이 편치 않으며 다음 날 크게 후회를 합니다. 이후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 잡고, 사존께서 고심하게 안배해주신 이 환경을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저는 많은 수련생이 이미 법을 외우고 있지만, 아직 법을 외우고 있지 않은 수련생이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그러한 수련생들과 사존께서 말씀하신 법을 함께 배우고자 합니다. “나이가 많거나 기억력이 좋지 못한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 능력이 있거나 젊고 기력이 왕성한 사람들은 모두 이 책을 외워야 한다. 아마 내가 제출한 요구가 너무 높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지역에서 많은 수련생이 모두 아주 익숙하게 외웠다.”[2]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밍후이왕을 통해 수많은 노년 수련생이 법을 외우는 문장을 보고 매우 탄복합니다.

제가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이미 서른이 지나 있었습니다. 처음 발음을 배우고 사전을 찾으면서 한 글자 한 글자씩 ‘전법륜’을 배워나갈 때, 1~2페이지를 배우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것은 고행이었으나 그때 저는 오히려 고행인 줄을 몰랐고, 속인 중에서 생활하면서 유일하게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전법륜’을 유창하게 읽을 날을 상상하면 즐겁고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견지할 수 있는 정념을 사존께서 주셨다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알고 있습니다. 사존께서는 나의 접수 능력을 고려하시어 천천히 단계를 높이셨고, 어느 순간, 돌아보니 자신이 법을 외우고 있습니다. 사존께서 이 제자를 위해 많이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법을 실증하는 목적으로 이 문장을 썼습니다. 제가 굽은 길을 걸을 때마다 사존께서는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저를 바로 잡아 다시 대법에 끌고 들어오셨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사존의 은혜에 머리를 조아려 감사를 드립니다. 허스!

바르지 못한 곳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 ‘전법륜’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 ‘파룬따파의해-4.베이징(北京)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회의에서 말씀하신 정법(正法)에 관한 의견’

(밍후이왕 2018년 ‘세계파룬따파날 경축’공모)

 

원문발표: 2018년 5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5/11/3651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