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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각성하는 선량한 사람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4월, 나는 불법으로 체포되어 징역5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는 두 번째였고 처음에는 3년의 노동교양을 선고 받았다.

내가 신체와 정신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박해를 받은 노동교양제도는 2013년에 사라졌다. 비록 중국공산당의 사악한 박해정책은 여전히 개변되지 않았지만 세인들은 서서히 각성해서 최대한 대법제자를 돕고 보호한다. 아래는 내가 직접 겪은 일들이다.

나는 구치소에서 매일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치면서 구치소 경찰들과 수감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말했다.대법이 좋다고 외칠 때 아무도 나를 제재하지 않았고 묵인으로 지지했다. 나는 죄수복을 입지 않았고 집에서 보낸 옷에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적어서 입었는데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파룬따파는 좋습니다”가 적힌 옷을 입고 대법을 실증했다.

나는 감방 벽에 모기향 재로 커다랗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적었다. 당직 경찰에게 영향을 줄까봐 미리 그에게 벽에 아홉 글자를 적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글자를 적을 때 수감자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모기향 재로 쓴 글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졌지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는 수감자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구치소에서는 수감자 수에 따라 완두콩을 가리는 일을 시켰다. 나는 말했다.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데 아무런 죄가 없어요. 나는 일을 하지 않겠어요.” 그들은 나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매번 다른 사람들을 도와 완두콩을 가렸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게을러서 일하기 싫어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불법 감금과 나에게 씌운 죄를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경찰은 평상시에 수감자들이 일상적으로 다른 사람의 돈과 물건을 더 차지하는 것을 보고도 상관하지 않았지만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수감자들에게는 내 물건을 차지하거나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불법재판이 열리기 전에 같은 방뿐만 아니라 다른 방의 수감자들까지 나에게 법률서적을 주면서 무죄변호를 충분히 준비하라고 했다. 불법개정 전에 구치소 소장은 말했다. “만약 당신이 고향 사람들에게 진상편지를 쓴 것 때문에 판결을 받는다면 나도 공산당이 사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11개월 후 나는 감옥으로 보내졌다. 나는 여전히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치면서 죄수복을 거부했다. 교도관은 나를 격리실로 데려가서 연공을 했다는 이유로 수갑과 족쇄를 채웠다. 얼마 후 그들은 나를 감방을 감독하는 죄수와 같은 방을 쓰게 했다. 나는 수감자들에게 “나는 하루에 두 시간씩 두 번 연공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밤낮으로 번갈아 가며 보초를 서서 내가 연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내가 발정념을 하고 법공부를 할 때에도 보초를 섰다. 수감자들은 주동적으로 이전 수련생이 두고 간 경문을 건네주면서 사악한 환경에서 내가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오랫동안 수갑과 족쇄를 차고 연공을 하다 보니 서서히 몸에 증상이 나타났다. 악성빈혈, 위장장애, 역류성 식도염 등이 생겼고 식도에는 용종이 생겼다. 박해를 폭로하고 저지하기 위해 나는 교도관에게 병원검사를 받게 해달라고 말했다. 교도관은 상부의 압력으로 인해 나를 단속했지만 오히려 나를 위해 주도적으로 건강검진을 신청했다. 외부 병원의 가장 유명한 주임의사를 모셔 와서 나를 검진하게 했고 내가 다리에 쥐가 났을 때에도 마사지를 해주었다. 감옥의 병원은 내 몸 상태를 고려하여 매일 설탕물 계란을 공급하였고 수감구역에서는 자신들의 돈으로 연뿌리 가루를 사서 나에게 먹였다. 수갑과 족쇄를 장시간 채우지 않기 위해 교도관은 청소나 감옥의 벽을 보수하는 등의 가벼운 일을 나에게 시켰다. 상담하러 갈 때도 그들은 나를 쪽걸상에 앉히지 않았다.

이런 일들은 수련생들이 오랫동안 진상 알림을 견지한 덕분에 세인들이 진상을 알고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진상을 알리는 것을 여태껏 멈추지 않았고 어디서나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전했다.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우리 지역의 610 주임은 두 번이나 찾아와서 몇 백 위안의 생활비를 주고 운전면허증을 교체해주었다.그 기회를 이용하여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내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 주임은 두 번이나 찾아와서 나에게 돈을 주었다. 비록 나의 생활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주지는 못했지만 내가 그 후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여러 번 도와주었다. 내가갇혔을 때어머니는 몇 번이나 610에 가서 나를 풀어달라고했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차로 어머니를 마을 입구까지 모셔다 주었다.

우리 마을에서는 매년 민병들에게 돈을 나눠준다. 이치대로라면 감옥에 간 사람은 몫이 없지만 나도 돈을 받았다. 전화를 해서 어머니에게 받아가라고 했는데 한 번도 적게 준 적이 없었다.

수년간의 박해 속에서 사부님의 보호로 나는 오늘까지 걸어왔다. 진상을 안 사람들의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선행들이 나에게는 커다란 지지와 격려가 되었고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것이고, 갈수록 많은 중국 사람들이 각성할 것이라고 믿는다.

 

원문발표: 2018년 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1/24/3599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