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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사위아(爲私爲我)의 마음을 없애야만 법을 실증할 수 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어디 기와 기 사이에 제약작용이 있는가? 기는 전혀 병을 치료할 수 없다.”[1]라고 말씀하셨다.

납치됐던 우리 지역 수련생이 나오게 되자 나는 기뻐하며 허튼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를 만나게 되면 내가 변호사와 함께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해 하마터면 금방 찾은 직장을 잃을 뻔했다고 말해야지. 그를 만날 기회가 있을까? 그는 아마 영원히 모를 거야. 몰라도 괜찮아. 어차피 나는 명을 구하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허튼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이건 명을 구하는 마음이 아닌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가? 내가 이것 때문에 이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이 몇 년간 수련 중에서 줄곧 어떻게 ‘나(我)’와 ‘사(私)’를 닦아버려 무사무아(無私無我)에 도달할 건지를 중시했다. 만약 박해를 해체하거나 정념으로 도와줄 때 목표를 어느 수련생, 어느 일에 두고 자신이 한 일(수련생을 돕는 일)을 정법과 연계시키지 못한다면, 그에 대한 박해가 사실 법에 대한 박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지 못한다면 사실 사부님의 정법 배치를 교란하게 된다. 이러면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도와주는 게 되고 이 일은 당신과 그의 일, 혹은 모두와 그의 일이 되어버린다. 이게 바로 이기적인 것이다. 자신을 강조하거나 자기를 안에 넣으면서 ‘내가 그를 위해 무엇을 했다’라고 생각하면 바로 ‘나(我)’가 있고 ‘사(私)’가 있는 것이다.

작년에 박해 받은 한 수련생을 위해 변호사를 찾을 때 이 수련생이 법에 대한 인식과 확고함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전의 심성 같았으면 이런 수련생을 도우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에 관련해 당시 몇 명 수련생이 납치됐을 때 현지 세인들 속에서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일으켰고 게다가 속인 가족들이 대부분 대법을 배척했다. 이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웠다.

재판 전, 나는 이 수련생을 도와 변호사를 찾았다. 이 수련생에게는 부부인 가족 수련생이 있었다. 변호사 비용에 관해 그들 중 한 사람은 본인들이 부담하겠다고 했고 한 사람은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명확히 말했다. “당신들이 원하지 않으면 내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그 어떤 부정적인 생각도 없습니다. 내가 변호사를 찾는 것은 당신 가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주로 이 일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일으킨 부정적인 영향을 만회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진상을 모르는 다른 가족들이 구도되기를 바라서입니다.”

결국 법정에서 내가 바라던 결과가 나타났다. 원래 대법에 대해 아주 배척하던 속인 가족들이 법정에서 소리를 질렀다. “알고 보니 파룬궁은 죄가 없네!”

만약 우리가 생각을 납치된 수련생을 돕는데 둔다면 그러한 협소한 생각 자체가 바로 누락이다. 어려움에 처한 수련생의 상태에 이끌릴 수 있고 심지어 ‘헛돈을 들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구출 과정에서 이해득실을 따질 수 있는데 당신이 법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를 위한다고 생각하면 이 사람이 어떠한 지, 그리고 돈에 관한 문제와 연관된다. 이러면 자신의 생각을 갖게 되고 자신의 판단과 방법이 있게 된다. ‘나(我)’의 관념이 있을 때 사(私)가 생기고 이미 기(氣)와 기(氣) 사이 제약 작용이 없는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초범적인 표현이 있을 수 없고 심지어 입으로 업을 짓거나 부정적인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당신이 생각을 어느 개인을 돕는데 둔다면 그에게 잘못이 있거나 업이 있거나 그가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때 구세력이 틈을 탈 것이다. 당신은 그의 매듭을 풀어줄 수 있는가? 오직 개인 득실을 초월해 조사정법하고, 기점을 낡은 우주의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잡으며, 사람을 구도하는 대법제자가 박해 받아서는 안 되고, 사악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을 때 효과적으로 사악을 제거하고 박해를 해체할 수 있다.

진정한 우리의 생명은 법을 위해 온 것으로 오직 법을 실증해야만 한 일체가 비로소 의의를 갖게 된다. 반년 넘게 나는 자신이 한 것과 법이 나에게 준 것이 정말 비례를 이루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신체가 엄청난 박해를 받고 있을 때 수련생이 함께 변호사를 만나러 가자고 하거나 수련생 가족과 함께 공안·검찰·법원에 가서 진상을 알리러 가자고 하면 모두 마다하지 않았고 부르면 바로 갔다. 많은 경우 정말 더 이상 지탱하기도 어려웠지만 매번 돌아올 때는 온몸이 홀가분해졌다. 나는 다만 움직이기만 했지만 얻은 것은 인간세상에서 조사정법할 수 있는 육신에서 체현됐다. 신체가 엄중하게 박해 받았을 때 나는 자신의 경지가 아주 낮고 진정한 대법제자 표준과는 너무 멀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경지를 제고하고 내 체계 내의 생명들을 모두 구도하고 싶었다. 공안·검찰·법원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수련생을 구출할 때 한 것은 조금밖에 안 되지만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원하는 것을 주셨다.

사부님께서 주신 것을 생각하면 오직 이 말만 하고 싶다. 내 생명에는 오로지 사부님과 대법만 있고, 내가 찬양하는 것은 오로지 사부님과 대법이며, 내가 하는 것은 오로지 법을 실증하기 위해서다!

자아에서 벗어나면 사람의 관념, 애호, 득실에 이끌리지 않고 생명이 존재하는 의의를 깨닫게 된다. 그럼 협소한 생각과 따지는 마음이 없어지고 차츰 일체를 통찰하고 관용할 수 있게 된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1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29/3572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