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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자신을 닦은 후 일가족에게 나타난 변화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성질이 불같은 아버지가 계셨다. 나 역시 고집이 세 아버지 말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기에 늘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수많은 원망을 품고 있었고 꼭 이 집을 떠나겠다고 맹세했다. 이후에 중등 전문학교에 합격해 집에서 400~500리 떨어진 도시에 배치를 받았고 거기에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의 성격은 아버지보다 더 심해 1분도 수양을 지키지 못했다. 제 마음대로 하면서 가족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나는 날마다 화를 냈지만 단속할 수 없어 온몸에 병이었다. 게다가 아이가 어려 정말 무기력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아 괴로움에 시달렸는데 그야말로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됐다.

이후에 심신을 지탱하기 어려웠고 신체 또한 약물에 과민반응을 보여 남이 하는 기공을 따라 했다. 아무것도 몰랐고 어느 기공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면 가서 배웠다. 몇 가지 부체공(附體功)을 배워 온몸이 병투성이가 될 정도로 비참해졌지만 오히려 남의 병을 치료해주러 다녔고 얼굴이 새까맣게 됐다.

우연한 기회에 동료에게서 ‘전법륜’ 한 권을 빌렸다. 본 후 자신이 예전에 연마한 것들이 모두 부체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부체공을 모두 버리고 파룬궁을 배울 준비를 했다.

1. 한 차례 큰불이 나를 일깨워주다

당시 오성이 너무 낮아 ‘전법륜’을 한 번 읽은 후 회사 사무실 서랍에 넣어두었다. 당시 더 이상 부체공을 연마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 알았지 ‘전법륜’의 더욱 깊은 내포에 대해서는 전혀 보지 못했다.매일 집안 살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다. 하지만 이 책이 나를 보호해줄 거라는 직감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전법륜’ 책을 청하고 얼마 뒤, 한밤중에 우리 회사에 큰불이 났다. 우리 회사는 대형마트인데 안에는 온통 상품이고 거기에 가연성 상품도 아주 많았다. 모두 불에 타고 불길이 거셌는데 1층부터 5층까지 온 건물 기둥이 무너질 정도였다.

며칠 뒤, 건물 안에 타지 않은 장부가 있는지 보험회사에서 확인하러 왔다. 내가 보험회사 스텝과 함께 안에 들어가 보니 너무 비참했다. 전 상품이 다 타서 온통 폐허가 돼버렸다.

내 사무실이 5층에 있기에 나는 머리에 젖은 수건을 두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에 돈과 물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보니 사무실마다 물건이 타서 잿더미로 됐다. 동료가 사무실에 둔 금목걸이, 금 장신구도 큰불에 타 작은 금덩이가 되어버렸다.

내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사무실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고 다만 문만 타서 없어졌을 뿐이다. 사무실 안의 모든 사무용 책상, 서랍장 등은 완전하고 손상이 없었다. 다만 어디를 만져도 모두 손이 뜨끈뜨끈했을 뿐이다. 나는 흥분해서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제 사무실의 ‘전법륜’ 책이 이 방을 보호해주었어요.” 하지만 그때 나는 수련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화재가 발생한 후 진정으로 파룬궁을 수련하겠다고 결심했다. 갑자기 신체가 끊임없이 떨리기 시작하고 춥고 열이 났으며 저녁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연속 며칠, 창밖에 ‘흰 토끼’ 같은 것이 보였는데(이후에 부체공을 연마해 불러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음.) 계속 내 몸에 달라붙으려 했지만 오지 못했다. 이때부터 고해에서 몸부림치던 나는 운 좋게 법을 얻었다.

2. 가족이 궁지에 처하게 되자 안으로 찾으라고 자신을 강요하다

법을 얻어 수련한 후, 나는 큰 소업을 여러 차례 했지만, 사부님의 보호 아래 모두 지나왔다. 하지만 신체는 남들처럼 온몸이 홀가분한 것이 아니라 늘 극도로 팽팽했고 특히 머리가 업력공(業力球) 같았다. 머리가 단단히 조였고 끊임없는 괴로움에 시달렸다. 심할 때는 머리에서 ‘탁, 탁’하는 소리가 계속 났다. 정공을 연마할 때는 얼굴이 비뚤어지고 목 안도 딱딱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은 파룬궁에 대해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두 번이나 공산당에 의해 4년 남짓 불법으로 교도소에 갇혔다. 감옥에서 나온 후, 신체가 더 악화됐지만 줄곧 연공하면서 목숨을 이어갔다. 불법으로 교도소에 갇혔을 때 남편은 다른 여자와 살았고 아이를 별로 관계하지 않아 아이가 끊임없이 친척 집을 떠돌아다녔다. 교도소에서 나온 후 나는 돈 한 푼 없었고 회사도 진작 나를 제명했다. 당시 상황에서는 회사에 출근하기 어려웠다.

내가 4년 남짓 억울한 감옥살이를 할 때 남편은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다. 나의 지인을 만나 내 얘기만 나오면 곧장 욕을 퍼부었다. 나 역시 그를 떠나고 싶었기에 그보고 이혼하자고 했고 겉으로 볼 때 남편 역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기에 이에 동의했다. 내 처지가 아주 어려워 아이는 자연히 남편이 맡게 됐다. 당시 이런 일들을 할 때 생각한 것은 온통 ‘나’뿐이었고 그들을 구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후 아주 오랫동안 나는 전 남편과 아이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우연한 기회에 남편과 아이의 처지가 아주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편은 교통사고가 났고, 싸움하는 등으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었기에 손해배상을 지불했다. 밖에서 1백만 위안(1억 6천 5백만 원)이 넘는 빚을 졌고 내가 아이와 통화할 때 내 전화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나에게 아주 반감을 갖고 아는 척하지 않았기에 전혀 얘기할 수 없었다.

끊임없이 착실하게 수련하면서 나는 자신이 가족 이 부분에서 대법제자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잘 닦지 못했기에 그들을 구도하기란 더욱 어려웠다. 나는 속으로 그들을 구도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사부님께 빌었다.

아이가 혼자서 외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고 싶었지만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이때 머리에 ‘아들이 곧 죽게 되고 이미 막다른 골목까지 갔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컴퓨터 바탕화면에 아들과 다른 사람이 계약한 계약서가 나타났고 위에 주소가 있었다. 나는 기차표를 사서 외지로 갔고 거기에서 아들이 세 맡은 가게를 찾았다. 하지만 가게 문이 닫혀 있어 물어보니 아들이 며칠 넘게 오지 않았다고 했다.

한참을 기다리자 아들이 왔다. 나를 보더니 표정이 굳었고 상대하기 싫어하면서 뭘 하러 왔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네가 걱정되지만, 연락이 안 돼 이렇게 찾아왔어.” 그가 사는 집에 가보니 짐 외에 땅바닥은 온통 빈 술병으로 가득했다. 먹을 게 뭐가 있냐고 묻자 그는 아무것도 없다며 며칠 동안 밥 먹지 않고 술만 마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살고 싶지 않으니 죽기만 기다린다고 했는데 그 처지를 보니 참 가슴이 아팠다. 이어서 나는 밖에 나가 먹을 것을 좀 사 왔다.

그때도 나는 무엇이 수련인지,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몰랐다. 아들은 잠자는 외에 날마다 게임방에 가서 게임했고 생각이 완전히 비뚤어져 있었다. 오직 대법 법리만이 그를 개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들 마음이 평온할 때 나는 자발적으로 그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보고 대법을 받아들이고 대법만이 그의 운명을 개변시킬 수 있다고 알려주자 그는 즉시 사정없이 말했다. “설사 당신 말이 사실이고 내가 벌을 받을지언정 나는 당신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특히 한 수련생이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하는 것을 보더니 즉시 나에게 주었던 열쇠를 빼앗으면서 나보고 즉시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이것을 보고 정말 너무 괴로웠고 이튿날 오전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5장 공법을 마친 후 졸음이 와서 침대에 가서 잤다. 갑자기 꿈을 하나 꾸었는데 꿈에서 아들 문 앞에 아이스 바가 한 무더기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 이때 두 사람이 케이크를 들고 밖에서 들어왔고 나보고 기어이 남아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성이 모두 류(劉)씨였는데 한 사람은 중등 전문학교 때 친한 친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전 남편의 친한 친구였다. 나를 극진하게 대해주면서 나보고 떠나지 말라고 했다. 이때 나는 깨어났고 이건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보고 남으라고(留→劉) 하신 것이고 ‘아이스 바’는 얼음이 석자 두께로 얼었기에 녹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며 ‘케이크[蛋糕, 역주:當高(마땅히 높여야 한다)와 발음이 유사]’는 나보고 제고하라는 뜻이었다.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고 식사를 마친 후 나는 가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고 아들 역시 말하지 않았다.

이어서 10여 일 거기에 있었다. 나는 더는 아들을 개변하려 하지 않았고 시간이 있으면 나가 진상을 알리고 돌아와 법공부를 했다. 자신의 수련에 아주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착실히 법공부를 하고 법리에서 제고하는 것이었다.

10여 일 후, 아들이 계속 게임만 하는 것을 보고 지금 내가 단속할 수 없기에 시내로 돌아가 아이 아빠와 의논해 아이를 우리 옆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차에서 내려 곧장 아이 아빠에게로 갔는데 몇 년이나 보지 못했던 아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열정적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이때 마침 전 남편이 밖에서 돌아왔고 나를 보더니 말을 꺼내기도 전에 격노해 펄쩍 뛰었다. 주방에 가서 식칼을 들고는 나를 죽이겠다고 했다. 아이 할아버지가 정신없이 달려가 한 손으로 아들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 뺨을 때렸다. 아이 할머니 역시 기를 쓰고 아들을 잡아당기면서 나보고 얼른 도망가라고 했다. 그들 집에서 나온 후 머리가 어지러워 정거장을 지난 것도 모른 채 버스에 앉아있었고 오래 지나서야 겨우 집에 돌아왔다.

집에 온 후, 사부님 법상 앞에서 무릎 꿇고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사부님께 물었다. “제자는 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나요? 정말 잘 닦고 싶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꼭 앞으로 나아가고 싶고 그들을 구도하고 싶습니다. 사존, 저를 점오해 주세요.”

이튿날, 나는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게 됐다. 수련생 남편은 예전에 수련생을 때리고 욕했으며 하루 종일 밖에서 도박이나 하고 빈둥거렸다. 하지만 이후에 수련생이 자신을 개변하고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자비롭게 남편을 대하자 결국 남편은 완전히 달라져 좋게 변했다. 열심히 법공부를 하면서 나는 자신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됐다.

여러 해 수련하면서 나는 줄곧 ‘자기’ 중심적이었다. 협소하게 ‘수련’을 이해했는데 ‘내 수련’이 가장 중요하고 그 누구도 내 수련을 지체하거나 영향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수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내 수련에 영향 주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리며 배척하고 멀리했다. 수련에서 극단으로 나아갔다.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포함해 기점이 모두 ‘이기적(私)’이었기에 수련에서 늘 문제가 나타났다. 가족 관계에 있어 그들이 내 수련을 위해 왔고 그들에게서 나타난 문제는 모두 나와 관련 있다는 것을 더욱더 생각지도 못했다. 그들은 나의 거울로서 그들을 보면서 자신을 찾아야 했지만 나는 안으로 찾지 않았고 자신을 닦지 못했다. 절망하는 그들을 보면서 정말 정신을 차렸고 그제야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했다. 아주 많은 사람 마음을 찾아냈다.

나는 뼛속부터 전 남편을 무시했다. 그래서 그가 무엇을 하든 모두 한심하다고 여겼고 아들을 포함해 모두 이렇게 생각했다. 이는 가장 전형적인 질투심이 아닌가?! 내가 자신을 닦을 줄 모르고 그들을 마음에 안 들어 할수록 구세력은 중생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 내가 계속 자신을 닦지 않는다면 구세력은 그들을 한 걸음 한 걸음 궁지로 내몰 것이고 그들을 망칠 것이다. 이러한 시련을 통해 나는 내 수련이 대법과 엄중하게 빗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질투심이 이토록 엄중하니 수련원만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갑자기 나는 가족, 아이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지 못하고 자신을 잘 닦지 못했기에 중생을 이 지경까지 내몰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나는 자신을 닦는 데 공을 들였다.

그 후 아들은 또 베이징에 가려고 했다. 나는 즉시 밖으로 보면서 그가 어디에 가든 잘하지 못할 거라는 관념이 나왔고 또 그를 하찮게 보았다. 이때 나는 즉시 이 일념을 붙잡고 그것을 해체했다. 정중하게 내 머릿속의 낡은 관념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내 중생들은 모두 대법에 동화되고 구도 받기 위해 온 것이며 사부님께서 그들을 지켜주고 계신다. 자식과 가족 일체는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실 것이고 구세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누가 손을 대면 누가 죄를 짓는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가족을 거울로 삼았고 그들을 구도하는 것을 기점으로 삼았다. 그들에게 어떤 문제가 나타나든 즉시 자신에게서 찾았고 그들이 한 일체에 대해 원망하거나 나무라지 않고 묵묵히 잘 대해주고 보충해주었다.

오랫동안 아들은 우리 도시에 있든 없든 모두 나에게로 오지 않았고 나도 그런데 이미 습관이 됐다. 그해 아들은 베이징에서 돌아와 나를 보러 왔다. 내가 그에게 “이틀 뒤 외할머니에게로 갈 거야.”라고 하자 아들은 “어머니, 올해는 가지 마세요. 다른 일이 없으면 나는 여기에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때 갑자기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1]는 말을 깨닫게 됐다. 오랫동안 그렇게 빌어도 오지 않던 아이가 내가 자신을 바로잡으니 오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왔다.

아들은 이미 서른 몇 살인데 예전에 연애할 때 모두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고 성사되지도 않았다. 어느 한 번, 아들은 떠났다 며칠 뒤에 와서 기뻐하며 나에게 말했다. “어머니, 연애상대를 찾았는데 아주 좋습니다. 금방 대학을 졸업했고 그녀는 어머니를 만나 뵙고 싶다고 합니다.” 내가 관념을 개변하니 중생들도 모두 올바르게 변했다. 이 사이 아이 할아버지는 새집으로 이사를 갔고 그들이 살던 집을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반년 뒤 아들은 결혼하겠다고 했다. 아이 아빠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아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결혼식에 내가 갈까 말까?” 그러자 아이는 아빠와 의논한 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 후 어느 날 전 남편이 왔다. 그에 대해 여전히 우려가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고만 했다. 하지만 더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마음을 완전히 그를 구도하는데 두었다.

이번에 왔을 때 그는 완전히 변했고 진심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이에 대한 관심에 고맙고 전심을 다해 우리를 도와줘서 고마워. 이번에 아들 결혼식은 완전히 당신 위주로 하고 외할머니 집안 식구들, 당신 수련생들도 모두 참가하라고 해.” 하지만 수련생에 대해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이렇게 말했다. “당신 수련생들에게 남에게 당신들의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알려줘.” 기회를 이용해 나는 또 진상을 좀 알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웃으면서 떠났다.

아들 결혼식 며칠 전, 머리가 너무 아팠고 정말 참기 힘들었다. 엄중할 때에는 머리가 끊임없이 흔들거렸고 표정도 아주 고통스러워 보였다. 어떻게 이 모습으로 아들 결혼식에 참가하고 대법을 실증한단 말인가? 어느 날, 아들 옷을 사는 문제로 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고 내가 뭘 해도 잘못한다고 나무랐다. 그러면서 나보고 아들 결혼식에 참가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전화를 내려놓은 후 나는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했고 어디가 법에 부합되지 않는지 찾아보았다. 당시 정말 너무 억울했지만, 자신을 수련인이라 여겼고 사부님 말씀을 떠올렸다. “수련 중에서 실제로 모순을 대할 때, 다른 사람이 당신을 좋지 않게 대할 때, 아마 이 두 가지 정황이 존재할 것이다. 하나는, 당신이 전생에 남을 잘 대해 주지 않은 적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말한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왜 이전에 남을 그렇게 대했는가? 당신이 당신의 그때 일을 모르고, 이 한평생에 그 한평생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안 된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모순 중에서 업력의 전화 문제가 연관되기 때문에, 실제로 대할 때 우리는 마땅히 높은 자태여야 하며 속인과 같아서는 안 된다.”[1]

나와 남편이 생생세세 수많은 악연을 맺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예전에 말다툼하고 싸울 때 그는 자신이 복수하러 왔다고 말했고 우리가 함께 있을 때는 정말 원수 같았다. 금생에 대법을 만났기에 이런 악연이 대법 속에서 선해(善解)될 수 있었다. 예전에 어떻게 그를 해쳤는지 모르기에 지금 그가 나를 어떻게 대해도 나는 모두 수련자의 마음으로 그를 대할 것이다. 나는 이런 일념을 내보냈다. ‘우리 예전의 악연이 모두 대법 속에서 선해되도록 하겠다.’

그날 밤에 발정념할 때 에너지장이 특별히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끊임없이 발정념하다 이후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몰랐다. 깨어나 보니 새벽 한 시가 넘었고 몸이 땅바닥에 엎드려있었는데 머리에 큰 혹이 났다. 흘러나온 침이 얼굴을 다 덮었지만, 머리는 단번에 가벼워지고 그렇게 괴롭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또 나를 도와 예전의 목숨 빚을 이런 방식으로 그들에게 갚아주셨다. 그 후, 아이 아빠는 다시는 나에게 결혼식에 참가하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결혼식에서 아이 아빠는 정말 열정적으로 우리 가족과 수련생을 맞이했고 아주 기뻐했다. 그들 가족도 나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특히 이후에 내가 경찰에게 소란 받았을 때 시동생은 직접 파출소에 찾아가 상황을 물어본 후 제때에 소식을 전해주었고, 큰고모는 나를 대신해 손자를 보살펴주었다. 아흔 되는 시아버지는 시름이 놓이지 않아 직접 음식을 사다 내가 있는 곳에 갖다 주었다. 나를 아주 관심하고 이해해주었으며 존경했다. 예전의 적대시, 무시, 배척하고 대립하던 태도가 전부 사라졌다.

그들 중에는 진상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아직 진상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대법의 홍대한 자비가 꼭 그들을 구할 수 있고, 얼음을 녹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련자의 행위가 바로 진상으로서 자신을 진정한 수련자로 여기고 안으로 닦고 찾으며 은혜로 원한을 갚아주려 했다. 중생은 모두 구도받기 위해 왔고 대법제자와 관련 있는 가족들은 특히 그러하다. 나는 그들이 모두 대법 속에서 구도될 거라 믿는다.

3. 자신을 닦아 고난에서 벗어나다

2016년 설날, 손자가 태어났다. 며느리는 갓 인테리어한 방에 냄새가 나서 살 수 없다며 나에게로 왔다. 아이를 낳을 때 나는 마침 경찰에게 소란을 받고 있었다. 이유는 내가 현지 세뇌반을 해체하는 항목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당시 분위기가 아주 사악했는데 불법으로 일부 수련생을 붙잡았고 성에서는 날마다 사람들이 와서 회의를 열었다. 많은 경찰이 사악에게 통제되어 나쁜 일을 했다. 경찰이 우리집에 와서 문을 두드리자 나는 집을 떠나 임시로 세를 맡아 살았다.

설 전날, 나는 집에 돌아왔다. 도착하니 아들 식구가 마침 이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 표정이 이상했다. 그들에게 “여기에 있기로 하지 않았어? 왜 이사를 하는 거니?”라고 묻자 며느리의 어머니는 “아이가 웁니다.”라고 말했다. 며느리에게 “아이에게 대법이 좋다고 말해줘.”라고 하자 며느리는 외면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끌고 갔다. 서둘러 재빨리 이사를 갔는데 표정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확연히 느꼈다.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도 모른 채 혼자 집에서 설을 보냈다.

섣달 그믐날 한밤중에 아들은 노발대발하며 집에 들어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이걸 잘못하고 저걸 잘못했으며 그들에게 폐만 끼친다고 원망하고 나무라며 이후 다시는 그들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조용히 안을 찾는 한편 아들을 조종하는 사악한 요소를 해체했다. 말하고 나서 아들은 화를 내며 떠나갔고 여전히 영문을 몰랐다.

30분 뒤, 아들은 다시 돌아왔고 나에게 무릎 꿇고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나는 물었다. “설 대목에 대체 어찌된 일이냐?” 아들은 나에게 자초지종을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아이가 한동안 저녁마다 계속 울었는데 아무리 달래도 효과가 없었다. 며느리는 점쟁이 말을 믿고 나 때문이라고 원망했다고 했다. 말하고 나서 아들은 재삼 나에게 부탁했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들은 지금 전혀 도리를 따지지 않으니 아이를 보지 말고 이젠 거기에 가지도 마세요.”

아들이 떠난 후 나는 조용히 자신에게서 찾았다. 한동안 경찰에게 소란을 받아 자체 공간이 깨끗하지 못하고 법공부와 발정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왜 점쟁이를 불러왔을까? 나는 자신이 예전에 점을 치는 책을 보고 늘 사람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과 관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에 손자에게도 이름을 지어주려 했지만, 며느리가 필요 없다고 해서 그만두었다. 이 부분이 법에 부합되지 않고 게다가 불이법문(不二法門)이지 않는가. 내 머릿속에 아직도 예전의 것들이 남아있고 수련한 후 비록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엄숙하게 대하고 제거하지 못했다. 사악은 이 잠재된 집착을 이용해 빈틈을 탔고 시비를 일으켜 중생 구도를 가로막았다.

이어서 나는 자신의 수많은 문제를 찾아냈고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때는 이미 심야 12시가 되어 먼저 발정념을 하려고 했다. 한참 하다가 갑자기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것 같았고 그 후 아무것도 몰랐다. 깨어나 보니 이미 새벽 1시가 넘었다. 머리는 침대 머리 빈틈에 끼었고 아래로 축 처졌는데 경련을 일으킨 것 같았다. 업력으로 구성된 내가 또 하나 죽었고,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또 한 차례 목숨 빚을 갚아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수련을 시작한 후 이런 일이 여러 번 발생했다. 내가 예전에 얼마나 많은 업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업력으로 구성된 내가 이미 여러 차례 죽었다. 매번 모두 사부님께서 구해주셔서 살아났다. 금방 법을 얻었을 때 나는 늘 울었다. 지금에야 그건 생명의 명백한 일면이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셨는지 보고 너무 감격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에게 얼마나 많은 집착이 있든 모두 사악한 요소가 아들 가족의 구도를 가로막는 구실이 될 수 없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구도할 것이다. 얼마 지난 후 나는 물건을 사서 아들집에 다녀왔다. 처음에는 그들은 표정이 아주 차가웠다. 특히 설 때, 맛있는 음식을 한 상 차렸지만, 누구도 나에게 권하지 않았다. 그들이 아이를 보지 못하게 했기에 보지 않고 물건과 함께 두어 마디 관심의 말을 해주고는 떠나왔다. 돌아올 때 마음이 참 서글펐다. 평소 남이 잘 대해주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남이 차갑게 대하자 마음이 크게 움직였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나는 자신이 왜 이토록 괴로워하는지 찾아보았다.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허영심, 자존심 이런 마음이었다. 평소 이미 아주 강했는데 예전에는 피하거나 에돌아갔기에 아주 많이 쌓여있었다. 수련의 시간이 이렇게 급박한데 더 이런 마음을 키우거나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 응당 버려야 하고 기점을 그들을 구도하는데 두어야 한다. 갈 때마다 물건을 좀 사 들고 갔는데 그들은 진상을 모르는 속인이기에 그들을 구하려면 그들의 집착에 맞춰야 한다. 차츰 그들은 나를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 않았다.

4~5월 어느 날, 그들 집에 갔을 때 안사돈이 말했다. “아이가 우는 것은 배가 아파서였습니다. 병원에 가서 약을 좀 갖고 와 먹이니 이제는 울지 않습니다.” 이때부터 그들은 나에 대한 금지령을 취소했고 아이도 안게 했다. 더 이후에는 내가 가는 것을 아주 환영했고 이미 그들과 아무런 간격도 없게 됐다. 나는 그들 기분을 봐 가며 적당히 진상을 알렸다. 지금 사돈 내외는 나에 대해 아주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며 설날 때, 나를 그들 집에 부르기도 했다. 평소 그들 집에 가면 안사돈은 며느리에게 말한다. “점심때 시어머니가 오시면 꼭 밥을 해드려라. 시어머니는 하루에 세 끼를 드셔.” 그래서 매번 갈 때 점심만 되면 며느리는 조용히 밥과 반찬을 준비해 올려놓았다.

이후에 아들, 며느리는 외지로 갔다. 안사돈이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 나도 될수록 한 주에 몇 번 더 가 그녀의 부담을 덜어주려 했다. 안사돈은 내가 하는 일을 많이 이해해주었고 될수록 내 시간을 빼앗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하는 일이 바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번은 손자가 고열이 나서 나는 아이 앞에서 한 번 또 한 번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웠다. 저녁에 안사돈보고 아이에게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들려주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음량을 낮춘 후 사부님 설법 녹음을 저녁마다 손자에게 들려주었다. 최근 나는 그 집에서 모시는 부체의 위험성을 안사돈에게 알려주었다. 비록 아직 버리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을 구하려는 소원이 있고 자비로운 행동으로 그들을 감화시킬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체가 사부님의 배치와 구도를 따를 것이다.

난세의 연원과 원한, 증오로 얼기설기 얽힌 중생들을 구하려면 오직 대법의 표준에 따라 해야 한다. 나는 시시각각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선해(善解)에 관한 법을 기억하고 있다. “그럼 도대체 누구의 죄라고 말해야 하는가? 내가 말한다면, 누구의 죄도 아니다. 우주의 성주괴멸의 특성 중에서 중생은 바로 이러할 것인데, 그것은 우주의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하고 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일체 생명을 선해하는 것이다! 누가 누구의 빚을 졌든지 막론하고, 누구도 더는 받으려 하지 말라. 왜냐하면, 누구나 모두 죄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 그 빚을 받으려고 하지 말며, 서로 간에 모두 정법 속에서 선한 보답으로 그것을 해결하고 미래로 나아간다면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열렬한 박수) 중생은 반드시 좋아할 것이고, 모두 기뻐할 것인데, 이것이 바로 내가 당초에 하고자 한 것이었다.”[2]

이번 대륙 대법제자 인터넷 수련교류법회에 참가하면서 내가 써낸 것이 너무 미약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약한 변화가 예전의 나와 비교하면 여전히 천지개벽의 변화가 아닌가? 만약 예전에 이런 일에 부딪혔다면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무엇이 대법제자로 하여금 이 모든 시련을 넘을 수 있게 만드는가? 바로 대법이다. 무엇이 대법제자의 흉금을 끊임없이 넓혀주어 참기 어려운 일도 참아내게 하고, 선으로 원한을 풀게 만드는가? 오직 대법이다.

대법이 제자의 일체를 구해주었고 대법이 제자에게 일체를 주었다. 제자는 오직 사부님 말씀을 듣고 사부님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수련은 사람 마음을 닦는 것이고 자신을 닦는 것이다. 문제가 있을 때, 모순이 있을 때, 곤란과 불공평한 대우가 있을 때 여전히 자신을 찾아 안을 향해 볼 수 있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수련으로, 비로소 끊임없이 제고할 수 있고, 비로소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으며, 비로소 원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3],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비로소 대법제자의 사명을 잘 완성할 수 있다.”[4]

위대하신 은사님의 자비로우신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3년 대뉴욕지역 법회 설법’[3] 리훙쯔 사부님 경문: ‘대만법회에 보내는 축사’[4] 리훙쯔 사부님 경문: ‘남미법회에 보내는 축사’

(밍후이왕 제14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17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1/11/3562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