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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으니 길이 자연히 넓어지다

글/ 허난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7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한 노제자로 금년에 70세다. 나는 수련 중 모순에 부딪쳐 안으로 찾은 옅은 체험을 써내 사존께 보고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1. 법공부 소조에서 문제에 부딪혀 자신을 찾다

우리 법공부 소조에 남성 수련생 한 분이 있는데 표현이 매우 독특하다. 단체로 법공부를 할 때 마음대로 말하여 수련생들에게 영향 주고 말하기 좋아해 누가 말하든지 간에 가로챘다. 게다가 말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자기 말만 하고 다른 사람은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 법공부 할 때 수련생이 의문이 있으면 늘 자신이 깨달은 법리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한다. 나는 눈에 거슬려 했고 여러 번 지적해 주었지만 그는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몇 번은 나와 논쟁까지 했다. 이런 상황이 1년 넘게 지속됐다. 이후에 논쟁하지는 않았지만 이 수련생에 대한 관념이 바뀌지 않아 기회를 봐서 진상팀 수련생을 빼내 이 법공부 소조에서 나왔다.

이후에 사부님의 경문 ‘대만법회에 보내는 축사’를 배우고서야 깨달았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수련은 사람 마음을 닦는 것이고 자신을 닦는 것이다. 문제가 있을 때, 모순이 있을 때, 곤란과 불공평한 대우가 있을 때 여전히 자신을 찾아 안을 향해 볼 수 있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수련으로, 비로소 끊임없이 제고할 수 있고, 비로소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으며, 비로소 원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1]

이 단락을 배우고 갑자기 확 트였다. 그 수련생의 표현은 바로 나의 거울이 아닌가? 안으로 자신을 찾는 것은 자신을 찾으라는 것인데 나는 왜 그의 표현을 보고 그렇게 반감하고 불편해했는가? 이 거울은 정확하게 자신이 그와 같음을 비춰냈다. 뚜렷한 과시심, 쟁투심이 똑같이 존재했지만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었다.

매우 부끄러웠다. 사존의 가르침에 송구했고 수련생에게 미안했다. 어떻게 하지? 법공부를 많이 하고 과시심과 쟁투심, 독선적인 마음을 깨끗이 제거하자. 나는 깨달았다.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은 나의 선천적인 생각이 아니라 당문화의 오염이고 후천적으로 형성한 관념이며 진실한 내가 아니다. 나는 연속 며칠 발정념을 강화해 나의 것이 아닌 더러운 것을 철저히 해체하고 깨끗이 제거했다. 수시로 머릿속에서 뛰쳐나오는 바르지 않는 생각을 배척하자 내 공간장이 점점 순수하고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존께서는 내가 잘못을 고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기회를 배치해 주셨다. 우리 진상팀 수련생은 다시 원래의 법공부 소조로 갔다. 법공부 소조에서 나는 그 수련생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제거하고 그의 장점을 많이 보며 자비롭고 인자하게 대했다. 서서히 그 수련생도 심성이 올라오고 수구(修口)에 주의했다.

2. 진상팀에서 수련생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다

2015년부터 나는 A수련생과 함께 진상을 알렸는데 지금까지 2년이 됐다. A수련생은 나보다 한 살 위다. 그녀는 1999년에 법을 얻었고 매우 확고했다. 두려운 마음이 적고 어려움을 잘 견디며 온화하고 선량했다. 자신의 어려움과 다방면에서 오는 저항, 마난을 완강하게 극복하고 세 가지 일을 잘 견지했다. 나는 매우 탄복했다. 우리는 매일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고 자료를 배포하며 진상스티커를 붙였다. 서로 격려하고 교류하고 법을 외웠는데 효과가 매우 좋아 수련생들의 인정을 받았다.

2016년 2월, B수련생이 우리와 함께 진상을 하겠다고 했다. 당시 나는 별로 달갑지 않았다. B수련생에게 두려운 마음이 있어서 번거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련생들이 서로 협력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사존께서 요구하신 법이 생각났다. 그녀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법에 부합되지 않기에 허락했다. 그런데 보름도 지나지 않아 A, B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는 중에 납치됐다. 비록 재빨리 정념으로 돌파해 나왔지만 필경 두 수련생에게 일정한 상처를 조성했기에 B수련생은 법공부 소조를 떠났다.

이번 교훈을 종합하면서 나는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2] 자신을 대조해 보니 B수련생에게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녀에게 두려운 마음이 있기에 번거로운 일을 야기할 수 있다고 여겼다. 결국 정말로 번거로운 일이 생겼다. 사실 수련생이 가져온 번거로운 일이 아니라 나의 바르지 않는 일념, 부정적인 사유가 수련생에게 번거로운 일을 가져다 준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진상팀에 C수련생이 왔는데 80여 세에 매우 정진하는 노년 수련생이었다. 우리 셋은 협력을 매우 잘했다.

1년 후, 즉 올해 3월 D수련생도 우리와 함께 진상을 하겠다고 했다. 당시 소조에 이미 3명이 있는지라 더 증가하면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D수련생 스스로도 두려운 마음과 의심이 있어서 늘 차와 사람이 뒤를 밟고 감시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그녀와 함께 했지만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과 관념을 개변하지 못했다.

얼마 안 되어 A, D, C 세 수련생이 한 차로 진상 알리러 갔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쫓겨 고발을 당했다. 경찰차까지 출동했는데 매우 위험했다. 다행히 사존 법신의 가호 하에 무사했다. 얼마 후 또 신고전화가 있었고 그들의 차량을 붙잡고 놓지 않았지만 역시 사부님의 보호 하에 위험에서 벗어났다.

사건이 지난 후 나는 안으로 찾아야겠다고, 자신의 사람 마음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에게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깊게 찾지는 않았다.

이후에 D수련생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했고 여전히 두려운 마음과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늘 사람과 차가 뒤를 밟는다고 해서 팀원들은 마음이 불안정했고 사람을 구하는 효과에 영향을 주었다. 어쩔 수 없이 D수련생에게 우리와 헤어질 것을 권했다.

그런데 어느 한번 단체 법공부가 끝나고 발정념 한 후 D수련생은 또 말없이 우리와 함께 했다. 이번에 나는 깜짝 놀랐다! 사존께서 우리에게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으라고 하셨다. 나는 말로는 안으로 찾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여전히 밖으로 보고 있으면서 안으로 찾지 않았다. D수련생의 두려운 마음, 의심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생겼다. 이는 그녀 자신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진상 팀이 함께 제고하고 전체적으로 승화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소조 수련생은 모두 자신을 찾고 관념을 개변하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해 좋지 않은 생각을 깨끗이 제거했다. 관념을 개변한 후 자발적으로 D수련생을 찾아 함께 진상하러 가자고 했으며 그녀를 도와 발정념을 해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교란을 깨끗이 제거했다. D수련생은 아주 빨리 상태를 개변하였고 의심과 두려운 마음이 점점 적어지고 정념도 점점 충족해졌다. 진상 알림에 매우 주동적이고 홀가분했으며 효과도 매우 좋았다. 한번은 일보러 나갔다가 단번에 5명을 탈퇴시켰다. 이전에는 이런 일이 거의 없었다.

최근에 우리는 상의했다. 네 명이 한 팀이 되어 진상을 알리면 효율에 영향을 끼치고 자신도 모르게 수련생 간의 정이 자생한다. 그리하여 두 팀으로 나뉘어 한 조에 2명씩 진상을 알리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행동도 편리하고 효율도 높아 사람을 많이 구할 수 있다.

법공부 중에 나는 깨달았다. 수련은 곧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개변하려고 한다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뿐이다. 오직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찾고 자신의 사람의 마음과 관념을 제거해야 진정한 수련이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대만 법회에 보내는 축사’[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7년 9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9/30/3543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