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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미국 공군 훈련소에서 대법을 실증하다

/ 로스앤젤레스 대법제자

[밍후이왕](경축 5.13 밍후이 특집 원고) 2012년 미국에 온 후 나는 보호 신청을 제출했고 2014년 초 신분 보호를 취득했다. 그 후 2017년 초, 순조롭게 미 공군 기초군사훈련소를 졸업한 후 정식으로 미국 공군 1등병이 됐다.

2016년 하반기, 수련생에게서 영주권 소유자 중 38세 이하면 입대 신청해 미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군은 세 가지 부류, 즉 전일제 현역 군인, 비 전일제 예비군, 비 전일제 방위군으로 나뉘는데 나는 비 전일제 예비군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영어권 환경에서 생활한 적이 없었기에 미군에 참가하는 것은 나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주류사회에 법을 알리며 진상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예비군은 훈련을 마친 후 계속해 매체에서 전일제로 일할 수 있기에 나는 미 공군 예비군을 신청하기로 결심했다.

병사 모집 장교와 면담할 때 나는 자신이 중국에서 파룬따파를 수련했다는 이유로 박해 받은 경험을 얘기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신앙자유의 권리를 위해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문제는 물어보지 않고 내 신청을 승인했다. 이 사무실은 해마다 신병을 몇 십 명만 모집하는데 왜 이렇게 적은지 묻자 그는 미국에서 공군 선발은 백 명 중 한 명을 고를 정도라고 했다. 이 말은 사실인데 응시자가 진정한 미 공군이 되려면 시험과 신체검사 외에 적어도 두 달 동안 진행되는 폐쇄형 기본 군사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체력, 심리소질, 지식수준, 책임감, 인품과 수양 등 각 방면에서 기준이 아주 높다.

미국 5대 병종(兵種) 입대 훈련은 거의 비슷한데 목적은 훈련병들이 합격된 전문 군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훈련환경과 내용은 20세 안팎의 건장하고 우람한 미국 젊은이에게도 극히 도전적이다. 이 환경에서 신경이 매우 예민해지는데 훈련을 받고 향수병의 고달픔을 참아야 하는 외에 수시로 각종 원인 때문에 교관의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한다. 각종 기준에 미달되면 강등됐고 심지어 반복 강등돼 훈련을 받았는데 이는 시시각각 훈련병을 압박하는 다모클레스의 칼과 같았다.

대법제자로서 미군의 훈련 환경은 별로 큰 정신적 부담을 주지 않았지만 체육 성적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걱정됐다. 나는 비교적 많은 나이에 입대했고 다른 훈련병들에 비해 나이가 배나 많았다. 게다가 한 번도 체육 단련을 하지 않은 전형적인 나약한 서생 타입이었다.

입대를 앞두고 얼마 전 매체에 있을 때 한국의 발 교정 전문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내 두 발을 관찰하더니 당신은 족궁(足弓)이 비교적 평평해 쉽게 피로해지고 달리기나 원거리 도보가 적합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입대 며칠 전, 나는 자신의 달리기 속도를 테스트해보려고 연속 32마일 가까이 달렸는데 넷째 날 오른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는 미 공군 훈련소에 왔다.

나의 입대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복지나 국적 취득에 관해 물었다. 나는 답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 방면에 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나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내심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무엇 때문에 입대하는가? 개인의 명리정? 아니면 더욱 잘 조사정법하기 위해서인가? 답안은 당연히 후자였다.

내 오른 다리는 갓난아기 때 숯불에 덴 적이 있었고, 대여섯 살 때 마차에 깔린 적이 있었다. 이후 수련 전 늘 이유 없이 간간히 아팠고 법을 얻은 그 해에 개에게 물린 적도 있었으며 지금 또 무릎이 아팠다. 하지만 나는 의념이 똑똑했는데 빚을 갚든 구세력의 교란이든 그 무엇도 내가 조사정법하는 것을 교란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병영 식당에는 테이블마다 다른 좌우명이 있는데 당시 나는 글귀를 보았다. ‘오직 세 가지만 너 자신이 완전히 지배할 수 있다. 바로 너의 생각, 느낌과 신앙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를 빌어 나를 일깨워주신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구세력의 배치가 필요 없고 대법제자의 풍모를 보여줄 것이다. 내 목숨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내 미래 역시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길이라면 반드시 걸을 길이 있을 것이고 그것도 분명히 가장 좋은 길일 것이다.’

이후에 무릎이 아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달리기가 빨라졌고 달릴수록 더 편했다. 이는 절대적으로 대법 힘의 체현이지 훈련 강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 같은 반 전우 중 젊은 청년 5명이 다리와 발이 아파 훈련을 중단했고 더욱 많은 전우들이 다리와 발이 아파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시종일관 그 어떤 약품도 사용하지 않았고 휴가를 내 휴식하지도 않았다.

입대 3일 후, 800명 가까이 되는 신병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대장과 상교 사령관이 차례대로 얘기했는데 대대장은 우리에게 공군에 입대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어떤 사람은 더욱 좋은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 했고, 어떤 사람은 대학 학자금을 면제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는 자신이 중국에서 당한 박해 경과를 간단히 얘기하면서 자신이 공군에 입대한 이유는 사회에 보답하고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자 대대장은 칭찬해주었다.

기본훈련 기간, 훈련병들은 하루 동안 개인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첫날부터 날마다 저녁 불을 끈 후에 가부좌했고 아주 빨리 온 침실의 50여 명 전우들은 내가 가부좌하고 연공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더 많은 정보를 문의했다.

내 맞은 편 침대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온 열정적이고 명랑한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나만 보면 늘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앞으로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일으켰는데 이는 사부님의 배치셨다. 병영에 들어가기 전 나는 진상 편지를 한 통 썼고, 몇 부 인쇄해 몸에 지니고 다녔다. 하지만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어떻게 남에게 말해야 할 지 몰랐다. 이 전우는 진상편지를 읽은 후 아주 감동을 받았고 늘 직접 다른 전우에게 어서 와서 장의 편지를 읽어보세요라고 말했다.(군대에서는 성만 말하고 이름은 부르지 않음)

첫 주, 대대장과 사령관은 우리의 입대 목적이 뭔지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고 하면서 만약 우리가 졸업하지 못한다면 모든 꿈이 수포로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교관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소감을 얘기하지 않았고 합당한 기회를 찾으려 했다.

우리 반을 책임진 여성 교관 로버트슨 사관은 온 중대에서 엄격하기로 소문났고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그녀의 엄격한 요구 때문에 일부 훈련병들은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고 한 훈련병은 나에게 난 로버트슨 교관이 싫어요. 그녀는 너무 냉정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싫어한다면 실제 상황은 당신이 마음속 다른 하나의 자신, 혹은 자기 생명의 다른 부분을 싫어할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말했다. 그와 옆에 있던 훈련병은 좀 생각해보더니 이치가 있다고 했고 이와 비슷한 일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훈련소에 들어온 넷째 주, 어느 날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을 때 로버트슨 교관은 내 앞으로 달려오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 자네는 왜 물을 계란 위에 부었나?” 나는 놀라 멍해 있다가 재빨리 해석했다. “제 지식과 경험에 의하면 찬물을 계란껍질에 부으면 껍질을 까기 쉽습니다.” 그녀는 비록 내 해석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날 가만두지 않았다. “자네가 물을 계란 위에 부었다는 것은 자네가 마신 물이 두 컵이 안 된다는 뜻이다.”(여기에는 끼니마다 물을 반드시 두 컵 이상 마셔야 한다는 규정이 있음) 그는 나보고 물을 또 한 컵 가져다 마시라고 하면서 경고를 한 번 주었고 나는 이 일이 이렇게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이틀 후 그녀는 나를 사무실로 부르더니 그녀가 쓴 자료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 사건 때문에 이번 주 시험에서 나에게 ‘U'(불만족) 처분을 주겠다고 하면서 나보고 문장 한 편을 쓰고 아래 문제에 답하라고 했다. 만약 내가 물을 너무 적게 마셔서 죽었다면 교관과 사령관이 어떻게 내 부모님에게 설명드릴 것인지 말이다.

전우들은 듣고 나서 이건 별것 아닌 것을 크게 만든다며 나를 위해 걱정해 주었다. 비록 다시 돌아가 훈련 받는데는 따를만한 고정적인 관례가 없지만 만약 두 번 U처벌을 받는다면 다시 돌아가 훈련 받을가능성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걱정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았다. 한 방면은 안으로 찾아보았는데 교관이 물을 너무 적게 마셨다고 지적한 것을 수련에 비추어 보면 법공부를 너무 적게 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고, 다른 방면으로 이것은 진상을 알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교관에게 쓴 글에서 나는 그녀가 내 잘못을 바로잡아 준데 감사를 드렸고 나와 전우들의 교류도 함께 나누었으며 교관 및 전반 기본군사훈련 과목에 관한 개인 의견도 적었다. ‘제가 보기에 미 공군 기본군사훈련, 특히 로버트슨 교관의 풍격은 중국 고대 도교가 제자를 가르치는 방식과 아주 비슷합니다. 그들은 제자를 부모가 자식 대하듯이 사랑하지만 수행 방면에서는 지극히 엄격히 요구합니다. 이것이 그들 법문의 계승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문장 마지막에 나 개인 이력에 관한 편지 하나를 따로 첨부했다고 하면서 왜 처음부터 그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는지도 적었다. 동시에 이렇게 프로답고 엄격한 교관들의 훈련 하에 제때에 순조롭게 졸업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내 글과 진상편지를 읽은 후 교관은 특별히 나를 찾았다. “당신이 겪은 부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또한 우리 업무를 인정해주어 나 역시 스스로 긍지를 느꼈습니다. 당신은 리더 자질을 많이 갖추고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얘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없네요. 당신에게 이 방면 훈련이 필요하기에 오늘부터 당신을 우리 반 대리 반장(Acting Dorm Chief)으로 임명합니다.” 그야말로 반전이었다.

군사훈련기간 훈련병은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말하면 안 되지만 인연 있는 사람을 구도하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나를 위해 세밀하고 교묘한 배치를 해주셨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반 전체 전우들이 진료소에 정기 검사를 받으러 갔지만 나는 약속이 있어 이튿날에야 갔다.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옆에 한 흑인 젊은이가 결가부좌해 나는 즉시 그에게 파룬따파를 소개해주었다. 그는 매우 관심을 보이면서 연락처를 남긴 후 자료를 가지러 오겠다고 했다. 그는 다른 중대에 속하고 그 역시 단체 신체검사 시간을 놓쳐 일부러 서둘러 왔다고 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는 전혀 만날 기회가 없었고 말할 기회는 더욱이 없었을 것이다.

맨 처음 샌 안토니오 공항에 도착한 후 병영으로 가려고 기다릴 때 같은 줄 다른 편에 얼굴에 웃음을 띤 백인 아가씨가 앉았다. 이후에 주둔지 운동장, 식당 혹은 어디에 수속 밟으러 갈 때 늘 그녀와 만났지만 자발적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 방면은 군대 기율 때문이고, 다른 방면은 예쁜 여자와 말하는 게 두려웠다. 다섯째 주 일요일, 나와 열 몇 명 전우는 온 종일 식당 청소를 책임지게 됐는데 그 아가씨도 그 중에 있었다. 왜 항상 그녀와 만나게 될까? 진상을 알려야 하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다들 앉아 휴식할 때 그녀 옆에 자리가 하나 빈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감히 거기에 앉지 못했는데 여색이라는 이 마음이 말썽을 일으켰다. 이때 몸, , 생각은 모두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가까이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 얼마 뒤 그녀는 화장실에 다녀왔고 돌아오니 원래 자리와 옆자리에 모두 사람이 앉았다. 내 옆자리가 빈 것을 보고 곧바로 나에게로 오더니 자기 이름이 정의(Justice)’라고 알려줬다. 맙소사. 말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래서 대법의 아름다움과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알려주자 그녀는 아주 열심히 들으면서 많은 질문을 했다. 정말 사부님의 고심한 배치에 감사드린다. 훈련 과정 중, 여러 부서 간에 정기 회담이 있는데 훈련병과 스텝 사이 대화 시간은 오직 몇 분밖에 안 된다. 매번 이 몇 분 안 되는 시간에 나는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흔히 업무를 처리하면서 내 얘기를 듣거나 나에게 질문했다. 마지막에 모두 만약 다른 군인이 기다리지 않는다면 나는 이 화제에 관해 당신과 계속 얘기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졸업 후, 주둔지 마트에서 나와 동기 졸업한 대만 여성을 만났는데 그녀는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고 중국에서 박해 받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하면서 어떻게 아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 직업 코치 어르신이 저에게 알려주셨어요. 그는 저에게 중국에서 온 한 남성이 신앙 때문에 구치소에서 박해 받은 적이 있다고 했고 저는 당신 일거라 추측했죠. 그는 훈련소 강도가 당신에게는 식은 죽 먹기일 거라 했어요.” 당시 몇 분간 대화에서 내가 이 코치에게 그렇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거라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고 게다가 그는 살아있는 매체로 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의 배치와 격려에 감사를 드린다.

전우들과 함께 있을 때 말할 기회만 있으면 나는 최대한 화제를 진상 알리기로 돌린다. 예를 들면 전우들은 흔히 내가 기껏해야 스물 대여섯 살로 보인다고 하면서 왜 이렇게 젊어보이냐고 물으면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다. 늘 전우들이 나보고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데 그럼 나는 중국에서 태어났고 중화전통문화를 사랑한다고 알려주면서 중국공산당이 전통문화를 망치고 인민을 박해했다고 알려준다. 또 흔히 상대방 직업을 물어보는데 그럼 나는 예비군이고 군대에서 일하는 외 다른 직장도 있는데 이 두 직장은 모두 사람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독립적인 매체가 사회의 공정성을 유지하는데 일으키는 중요한 의의를 알려주면 그들은 아주 공감하면서 관심과 동시에 탄복한다.

많은 전우들이 수련문화와 파룬따파를 더 많이 알고 싶어 해 나는 수련생보고 대법 책과 전단지를 여러 부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이 긴장한 훈련 중 짬짬이 많은 전우들이 대법 책의 일부 내용을 읽었다. 어떤 전우는 졸업 후 한 권을 주문해 자세히 읽겠다고 했고, 어떤 전우는 그가 줄곧 정신 방면의 신앙을 찾고 있었다고 말했다.

덴버에서 온 한 젊은이는 주둔지를 떠나기 전 마지막 주에 한 침실에서 지냈다. 소조 토론 때 그는 열렬히 토론했고 논리사고 능력이 아주 강했다. 정신과 신앙 방면에 관해 우리는 저녁마다 단독으로 아주 오래 동안 교류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비록 가족들의 신앙을 존중하지만 줄곧 종교를 초월한 정신적 가치를 찾고 있었다고 했다. 예전에 여러 번 혼자 높은 산까지 올라가 조용히 가부좌했고 만물에 영혼이 있는 신기함을 느끼기도 했었다. 제한된 시간 내에 그는 전법륜의 일부 구절을 읽었고 깊이 공감했다.

훈련소를 떠나기 전, 나는 전법륜파룬궁을 주둔지 도서관에 기부했다. 스텝은 나를 도와 20부 대법 전단지를 입구 게시판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배치했는데 더욱 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이 이로서 대법을 알게 될 거라 믿는다.

졸업 전 시험에서 나는 문화성적이 92점 우수(온 반에는 우수가 10)였고, 체육성적이 89.9(합격선은 75)였다. 여러 반 간부는 일제히 나를 전반에서 유일한 최우수 졸업생(Warthog Warrior)으로 추천했고, 중대 사령관과 수석 교관(First Sergeant)은 내 상장에 친필로 서명했다. 교관은 졸업 성적 고과표에서 나를 높게 평가했다. ‘장은 의지가 확고하고, 근면하고 자각적이며 동료를 훨씬 초월하고 여러 사람들을 격려해주었기에 온 반의 모범이자 귀감이 됐다.’

나는 이 일체가 사부님의 가지와 대법의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과거 내가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 영어를 잘 배웠더라면, 만약 내가 집착과 장애를 더 많이 극복하고 더 활발했더라면 진상을 알릴 기회가 더 많았을 것이다. 오로지 계속해 수련하고 제고해야만 보충할 기회가 있게 된다.

공군 학위 수여식은 몹시 성대했고 수천 명 가족들이 현장에 와서 축하해주었다. 말로는 졸업이라 하지만 사실은 입문의 시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법이 언제 끝나든 내가 해야 할 것은 모두 최선을 다해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고 조사정법하는 것이다.

원문발표: 2017512
문장분류: 수련교류>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대법을 실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5/12/3468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