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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생의 가장 정확한 선택

글/ 중국 파룬따파 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7년 봄에 파룬따파 수련을 하게 됐다. 비바람 속에서 나는 너무도 많은 것을 겪었고 수확 역시 아주 많다. 금생에 파룬따파를 만난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대법을 수련하게 된 것은 내 금생에서 가장 정확한 선택이다.

성과급을 잘못 계산한 후

2004~2005년도 직장에서 임금개혁이 있어 성과급이라는 것이 추가됐다. 다시 말해 매 사람에게서 매월 100위안을 덜어내고, 또 직장에서 일부분을 내서 연말에 작업량과 사업 실적 등에 따라 등급을 나눠 발급해준다는 것이다. 일반 직원은 모두 자신의 이 100위안을 조금 더 돌려받을 수 있다. 그 해 나의 사업 성질과 내용에 다소 조정이 있었다. 연말 때 지도부의 요구대로 따르면 나의 성과 급료는 평균수에 따라 계산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있는 부서 지도자는 작업량 통계표를 작성할 때 이 일을 홀시해 성과급료를 발급할 때 내 것은 가련할 정도로 적게 주었다. 1년 동안 고생했지만 이윤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 돈을 내야 했다. 나는 이 일을 발견한 후 제때에 책임자에게 상황을 반영했고 그도 실수를 승인하면서도 고치려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으므로 고치기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는 말이, 이 몇 해 동안 우리 사이 관계도 무척 좋았으니 내가 당신의 이 몇백 위안을 가진 셈 치자고 했다. 나는 그가 고치려면 반복적으로 지도자를 찾아가야 하므로그가 자신의 영향이 나쁠까 봐 두려워하며, 지도자와 동료들에게서 체면을 잃을까 두려워한다는 것을 보아냈다. 자신의 체면을 위해 나에게 고쳐주지 않겠다고 하니 나는 속으로 정말 억울했고 화가 났다. 평소 그의 사업을 지지해주고 도움과 이해를 해주었던 일을 생각하고, 이 1년 동안 사업에서의 고생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이 분노를 삼킬 수 없었다. 비록 몇백 위안이라고 하지만 이건 그래도 ‘이치’인 것이다.

이 기간 사부님의 법이 때때로 내 머릿속에 나타났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런 모순과 마주쳤을 때 우리는 우선 마땅히 냉정해야 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우리는 선의(善意)로 해명할 수 있으며, 사정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모두 관계가 없다. 그러나 당신이 너무 집착하면 역시 안 된다. 우리가 만약 이런 번거로움과 마주칠 때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투고 싸우지 말아야 한다. 그가 이렇게 한다고 당신도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바로 속인이 아닌가? 당신은 그와 마찬가지로 다투고 싸우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당신은 마음속으로 또 그를 미워해서도 안 되며 정말로 그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그를 미워하면 당신은 화를 낸 것이 아닌가? 당신은 참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眞(쩐)ㆍ善(싼)ㆍ忍(런)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선(善)은 더욱 있을 리가 없다.”[1],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연공(煉功)함에 높은 표준, 더욱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1]

여기까지 생각하니 내 마음은 서서히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보통사람이 아니라 나는 수련인이다. 나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이 일을 처리해야 한다. 젊은이는 사업에서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올해 갓 부서 주임으로 발탁됐으므로 사업을 잘해보려 하고 지도자와 군중 속에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을 것이다. 내가 만약 이 일로 그와 다툰다면 확실히 그에게 주는 영향이 나쁠 것이다. 그의 명성을 위해, 앞으로 사업에서의 조화를 위해 내가 참자. 더는 이 때문에 따지지 않았다.’

나의 자태는 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길에서 만나면 멀리서도 친절하게 아는 체 한다. 이 일은 이렇게 지난 셈이다. 재미있는 것은 후년 성과급 평가에서 내 점수가 유달리 높아 이전보다 몇 백 위안이나 더 많아진 것이다. 정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면 우리 수련인은 마땅히 더욱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1]

90여 평방미터 집을 포기하다

고향에 정원이 있는 집 한 채가 있는데 방이 네 칸이다. 20여 년 전에 부모님께서 집을 나눠주셨다. 나와 남동생이 각기 두 칸을 갖고 정원을 절반씩 나눴으며 아울러 증서를 작성했다. 이 몇 년 동안 줄곧 부모님께서 사셨다. 2010년 낡은 마을을 개조하게 됐다. 우리는 외지에서 사업하고동생은 현에 출근했으므로 이 철거 이주하는 일은동생이 때가 되면 우리에게 소식을 알려주기로 했다. 이를테면 서명이라든가 돈을 내는 등을 제때에 우리에게 통지하기로 했다.

사실 철거 이주 전에 우리는 마음속에 타산이 있었다. 아파트 한 채를 분양 받는다면 동생에게 줄 것이고, 만약 두 채를 분양 받는다면 그가 고르게 하자. 어쨌든 한 집안 남매니까. 결과적으로 철거 이주하고 보상금 발급, 집 선택 서명 과정에 줄곧 소식이 없었다. 몇 번이고 물어도 그는 모두 아직 안 됐다면서 아직 어떻게 분양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집을 다 분양하고 남들이 모두 집에 입주했을 때에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집은 진작 다 분양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책대로 하면 우리 이 정원은 모두 크고 작은 두 개의 아파트로 나눌 수 있는데 큰 것은 140평방미터이고, 작은 것은 90여 평방미터다. 문제는 이 집 두 채가 모두동생 이름으로 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일을 듣게 됐을 때 내 머리는 대번이 부풀어 올랐다. 그래도 속으로는 천진하게 생각했다. 그럴 리 없지. 친 남매라면이렇게 하지 않을 거야. 이 일로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동생과 상의했다. 그는 먼저 하나하나 이유를 대면서 집을 마땅히 그에게 줘야 한다고 했다. 하나하나 밝혀진 후 그는 태도가 급변하더니 다른 사람으로 된 것 같았다. 당신들과 이치를 따질 것 없이 이 집 두 채가 모두 그의 것이라는 것이었다. 80여 세 아버지도 마침내 이 일을 알게 됐다. “그 아이가 이 집 두 채를 혼자 가지려 하는구나.” 아버지는 그날로 우리에게 증서를 작성해 주고는 그의 태도를 표명하면서동생의 행위를 동의하지도 승인하지도 않는다고 했다.(왜냐하면 이 집 문서는 아버지 명의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상하고 억울해 증오심이 극에 달했다. 이 몇 년 동안 그를 그렇듯 돌봐주고관심하며 부모님께 돈이 필요할 때면 늘 내가 앞장섰던 일이 생각났다. 그러나 그는 지금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변했단 말인가? 양심이 없구나. 가족 형제들과 친척들 모두 화가 치밀어 방법을 찾아주며 도와줬다. 이 일 때문에 나는 변호사를 찾았다. 이런 분가 다툼은 영수증이 가장 유력한 증거라고 했다. 당신 집안 어르신이 아직 얼떨하지 않을 때 얼른 그를 고소하면 승소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또 한 번 고통스런 갈등 속에 빠졌다. 소송하면 집을 찾아올 수 있다. 어쨌든 90여 평방 새 아파트로서 판다면 몇 십만 위안은 갈 것이니 말이다. 우리 월급쟁이로 말하면 적은 돈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지금 아들에게 집을 사줘야 하겠는데 집값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자면 80여세 늙으신 아버지가 법정에 나가서 증인을 서야 한다. 모두 친남매인데 아버지께 어떻게 이런 상황을 직면하게 할 수 있겠는가?

솔직히 말해 동생도 거짓말을 했으니 우리에게 미안할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이렇게 연세가 많아 우리 몇 집에서 돌아가며 봉양해야 한다. 아버지가 만약 그들의 미움을 사게 되면 그들이 봉양할 차례가 됐을 때 체면이 설 수 있을까? 더 말하면 친남매가 법정까지 간다면 비록이치가 있다 해도 이 역시 좋은 일은 아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주저하고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내려놓을 수 없어 몹시 괴로웠다.

그리하여 나는 힘껏 법 공부를 했다. 서서히 나는 냉정해지기 시작했고 더는 여기에 파고들어 문제를 보지 않게 됐다. 이 집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것으로서 원래부터 우리 것이 아니다. 지금의 권리는 아버지께서 쥐고 있어 집을 되찾아 전부 누구에게 주고 싶으면 누구에게 준다. 이 집이 없다고 해도 우리 역시 집이 없어 노숙자가 된 것도 아니지 않는가? 아들에게 집을 사주는 것도 우리가 어느 정도 도울 수 있으면 어느 정도로 돕는 것이다. 우리는 더는 동생과 다투지 않고 또한 그의 행위를 따지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보고 있으니 일체는 되어 가는대로 따라야 한다.

이렇게 우리 집안의 분쟁은 해결됐다. 이 일을 우리는 줄곧 아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젊은 그가 무슨 과격한 행위라도 할 것 같아 두려웠다. 3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기회를 봐서 그에게 알려주었더니 뜻밖에도 그가 나보다 더 담담했다. “엄마는 수련인이므로 그와 따지지 않은 것은 맞아요. 선생님께서는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한다는 도리를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아버지와 다른 사람은 같은 해 퇴직을 했지만 생일이 몇 달 늦은 것 때문에 봉급이 연속 두 급 오르지 않았어요? 보세요, 내 사업이 이렇게 순조롭고 수입도 낮지 않은 것은 모두 대법이 우리에게 준 복이 아닌가요?”

나는 놀랍고 기쁘기도 했다. 아이는 사업에서 걱정을 덜었을 뿐만 아니라 대의명분을 잘 알고 있었다. 이는 모두 대법이 내린 은혜다! 나는 이해됐다. 파룬따파의 법리가 나를 억울하고 미워하던 마음 상태에서 해탈시켜 주었던 것이다.

대법 수련을 하니 신불이 보우해 주시다

대법 가운데서 19년을 수련하면서 내가 절실하게 느낀 것이라면,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확실히 부처님의 보호가 있으며, 대법을 믿으면 재앙이 복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략 2005년 여름일 것이다. 나는 시에서 열린 회의에 참가하고 나서 점심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떠났다. 그 때 하늘에서는 작은 비가 내려 길은 질퍽였다. 사거리에 이르렀을 때 신호등을 보지 않았고 넓은 길이 텅 비어 있으므로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동남 방향에서 서북 방향으로 가로 질러갔다. 길 중간에 막 이르렀을 때 오토바이가 나는 듯 달려오더니 ‘펑‘하는 소리와 함께 나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나는 부딪혀 길가 북쪽에 있었는데 여전히 자전거를 탄 채로 땅에 서있었으나 자전거 손잡이는 비뚤어졌다. 그런데 그 오토바이는 부딪혀 길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오토바이 전조등은 멀리로 날아갔으며 그는 질펀한 흙탕물 속에 앉아 있었다. 그는 기어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다가 내가 여자인데다 자전거를 탄 것을 보고는 더는 따지지 않고 투덜거리면서 오토바이를 밀고 가는 것이었다. 나는 이쪽에서 손잡이를 바로 고치고는 역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눈물이 그치지 않고 흘러내렸다. 너무 위험했다. 생각해 보라, 오토바이 속도가 그렇게 빠르고도 무거운데 나는 부딪히고도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았고 게다가 땅에 서 있었다. 이건 사부님의 보우가 아니고 무엇인가!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셨던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6년 12월 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소감>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1/3379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