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젊은 대법제자 ‘대법 속에서 성장하다’

글/ 허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10여 년 수련의 길을 돌이켜보면 처음에는 어른들을 따라서 수련해 대법에 대한 깊은 인식은 없었으며 나중에 나이가 들고 법공부를 깊이 하면서 대법이 우리 매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됐다. 우리가 법을 얻은 것이 얼마나 행운이고 대법제자의 사명도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 만약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하면 사부님 정법에 손실을 입혀 장래에 얼마나 후회할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우리 수련의 길을 이미 만들어 주셨고 오로지 우리가 각종 관념과 사람 마음의 장애물에서 돌파해 인간세상에서 걸어 나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렸다. 아무리 어려운 큰 고비에 부딪혀도 대법제자가 진정으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반석처럼 확고할 수 있으면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해결해주신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뭐든지 다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1. 법을 얻다

우리 가족 중에서 어머니는 가장 먼저 대법 수련을 시작하셨다. 당시 어머니는 여러 질병을 앓고 계셨는데 수련한지 얼마 안 되어 수년간 앓던 각종 질병이 모두 사라졌다. 수련을 시작한 첫날 어머니께서는 매일 드시던 약을 전부 다 버리시면서 기왕 수련을 시작했으면 진짜로 믿어야 하고 진정으로 수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수련을 시작한 후 우리 가족들은 이어서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당시 나는 12살이었고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며 외할머니 집에서 살고 있었다.

대법 수련을 시작하고 나서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됐고 학교에서 학생들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하고 될수록 참고 양보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법공부와 연공을 잘 견지하고 있을 때면 학습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했고 만약 법공부와 연공이 느슨해지면 학습 성적도 떨어졌다.

수련하고 나서 내 몸에 선천적 질병도 완치됐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기침소리가 비정상이었는데 폐질환이 있는 사람들의 기침소리였고 폐에 상처가 있는 것처럼 들렸는데 연공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정상이 됐다. 나는 또 선천성 구루병이 있었는데 연공을 통해 등이 하나도 굽지 않았다. 수련하고 나서 사부님께서 여러 번 신체를 정화해주셨는데 두 차례는 비교적 깊은 인상이 남았다. 한번은 몸에 엄청 많은 작은 여드름이 났는데 여드름은 점점 커지면서 마지막에 속에서 하얀 액체가 흘러나오면서 통증을 수반했다.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시고 소업이 지나고 나면 아무런 일도 없는 것을 알았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두려워하지 않았고 결국 자연적으로 완치됐다. 사부님 말씀대로 “병근(病根)은 이미 떼어버렸고, 남은 요만한 검은 기, 그것이 스스로 나오게 하여, 당신에게 고만한 난(難)을 겪게 하며, 고통을 좀 받게 하는데, 당신이 조금도 감당하지 않는 이것은 안 된다.”[1] 또 한 번은 기침을 매우 심하게 했는데 가래를 뱉어야 했다. 낮에 학교에서는 좀 괜찮은데 가래를 많이 뱉어냈고 저녁에 집에 오면 항상 새벽까지 기침했다. 오랜 기간 지속됐지만 당시 나는 매우 확고했고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계시기에 아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태는 계속 좋게 유지했고 결국 나도 모르게 완치됐다.

우리 가족은 대법 수련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고 많은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와 연공했던 날들은 정말로 소중했다.

2. 학교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깡패 집단은 대법제자를 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단번에 단체 법공부와 연공 환경을 잃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모두 확고했고 나도 대법 수련을 끝까지 하려고 결심했다. 사부님께서 신경문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우리가 속인사회의 형세를 개변하여 전반적인 사회여론이 반대로 된 형세 하에서, 누가 여전히 대법(大法)이 좋다고 하는지, 누구의 심태(心態)가 변화하는지를 보기만 하면, 단번에 다 드러날 것이 아닌가?”[2] 비록 법리에서 알고 있지만 당시 마음은 매우 답답했고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몰랐다.

사부님의 신경문을 공부하면서 서서히 사악의 박해 원인과 대법제자가 짊어진 사명에 대해 알게 됐고 스스로 반드시 진상을 알리고 구도중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학교에서 비교적 친하게 지내는 학생들에게 ‘천안문 분신자살 및 대법의 아름다움 등등 진상을 알렸는데 어떤 학생들은 믿고 어떤 학생들은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았다. 믿지 않는 학생들이 정말로 안타까웠다. 사실 이것도 당시 내 심성과 관계되는 것이고 자비심과 지혜가 부족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자신에게 많은 유감을 남겼다.

고등학교 때 내 짝은 수련생이었고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아는 사이였다. 우리가 한 반에서 자리를 함께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사부님께서 배치해 서로 촉진하고 공동 제고해 구도중생을 하라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함께 각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을 협조했고 때로는 내가 집에서 자료를 가져와 적당한 시기에 자료를 배포하면서 구도중생을 했다.

한번은 학교에서 국기 게양식이 있었는데 일부러 우리는 참석하지 않고 교실에 있었으며 학생들 모두 운동장에 나간 기회를 이용해 몇 개 교실을 선택해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 그중 한 교실에서 우리가 들어가서 책상에 자료를 놓고 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시 깜짝 놀랐고 들어온 학생을 보니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가 뭐하냐고 묻자 나는 그에게 진상 자료를 주면서 잘 보라고 하고바로 나왔다. 그 후 그 동창을 한번 찾아갔는데 그는 진상에 대해 매우 인정했고 진상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학교에서 자료를 배포할 때 비슷한 상황에 부딪혔는데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 하에 모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때론 두려운 마음도 나왔지만나는 구도중생하는 것이고 가장 바른 일을 하는 것이며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계시기에 정념만 있으면 전혀 아무런 위험도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늘 사부님의 이 시를 외우면서 자신의 정념을 북돋워 주곤 했다.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 수련하는 사람은 법을 간직하고 있다네 정념을 발하면 썩은 귀신 터져버릴지니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3]

3. 대학 시절의 경험

대학 입학 후 나는 우리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로 갔는데 집의 수련환경을 떠나 느슨해질까 봐 가족들은 매우 걱정했고 늘 전화해 태만해지면 안 된다고 일깨워주었다. 당시 우리는 6명이 한 숙소에 있었다.

한번은 내가 숙소 관리 책임자에게 휴대폰 요금 충전카드를 구매하러 갔는데 산 것은 30위안이었는데 그는 50위안짜리를 주었다. 나는 수련인이기 때문에 공짜로 얻으면 안 되니 30위안 한 장짜리로 바꿔왔다. 이 일을 룸메이트가 알게 됐는데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냐고 묻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기본적으로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들은 공짜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진상을 알리라는 시기가 온 것임을 깨달았고 당시 몇 명의 룸메이트가 숙소에 있었기에 나는 조리 있게 진상을 알렸고 대법의 아름다움과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 등등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것은 정말로 사부님의 묘한 배치였고 그때부터 나는 숙소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나는 늘 룸메이트에게 진상 자료를 보여주었기에 그들은 모두 알았고 삼퇴도 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1] 대법제자는 오로지 수련하겠다는 이 마음만 있고 확고하게 걸어간다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배치해주시고 우리가 해야할 것은 사람의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려놓는 것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시 중에서 아주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잘라버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요 모두가 미혹 속의 어리석음이로다”[4]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갈 때면 더 많은 학생들이 진상을 볼 수 있게 기본상 나는 자료를 가져가 적당한 시기를 보아 교실에 배포한다. 매번 자료를 배포하기 전 집에 있는 가족 수련생들에게 발정념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그 기간에도 놀라는 일에 부딪혔지만 모두 무사히 지나갔다. 한번은 여름 방학이 끝나고 좌석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나는 몇십 권 9평 소책자, CD와 편지들을 가방에 담았고 또 트렁크 하나를 챙겼다. 그날 버스에는 사람이 매우 많았고 다음날 아침 새벽 3시가 넘어 도착했다. 나는 버스 뒤에 물품 보관함에서 짐을 한참 찾았는데 트렁크만 있고 아무리 봐도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티켓 판매원에게 물었는데 그도 한참 찾아보았는데 찾지 못했다. 마지막 결론은 도중에 내린 사람이 내 가방을 가져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선 학교에 가서 소식을 기다려야 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바로 사악의 교란을 청리하는 발정념을 했고 이 진상 자료들은 구도중생하는 것이고 누가 가져갔으면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고 정념을 발했다. 동시에 안으로 찾으면서 도대체 무슨 마음 때문에 사악이 틈을 탄 것인가? 나는 색심과 안일한 마음 등을 찾았고 그리고 집에 전화를 걸어 알려주고 가족들은 나를 위해 발정념을했다. 낮에 티켓 판매원에게 연락해보았는데 처음에는 소식이 없었는데 늦게 연락해 보니소식이 있었다. 가방을 잘못 가져갔던 사람이 판매원에게 연락했고 판매원은3일 뒤 다시 역에 와서 찾아가라고 했다. 집에 연락했더니 가족들도 걱정했다. 왜냐하면 당시 환경은 매우 사악했고 물건들은 역에서 검사하고 있었는데 이 가방이 다시 돌아와 만약에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 보게 되면 내가 다시 찾으러 갔을 때 매우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수련생들은 발정념을 강화하라고 일깨워 주었고 처음에는 나도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이 진상 자료들을 이렇게 허비해서는 안 되고 나는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계시기에 아무런 일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사부님 말씀이 떠올랐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5] 이렇게 하여 3일 째 되는 날 역에 가서 가방을 찾아왔는데 과정은 매우 순리로웠다. 돌아와 가방을 열어보니 먹을 것만 없어지고 진상 자료는 그대로 있었다. 당시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에 더없이 감사했다.

4. 굳게 믿다

2014년에 나는 젊은 대법제자와 결혼해 딸을 낳았다. 아이가 태어나서 몇 시간만 자고 잘 먹지 않고 울기 시작하는데 놀란 것처럼 잠깐 그쳤다가 팔 다리를 움직이면서 또 큰 소리로 울었다. 밤새 울고 나서 목소리가 쉬어 잘 들리지 않았고 오로지 표정으로 아이가 계속 울고 있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남편은 아이가 머리에 있는 종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생각했고 만약에 계속 이렇게 울고 있으면 생명이 위험하니 병원에 연락해 최대한 빨리 가서 치료를 받자고 했다.

우리는 듣고 간단한 교류를 통해 결국 신사신법을 택했고 아이를 사부님께 맡겼다. 기왕 아이가 우리 가정에 태어났으면 대법제자로 정해진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안고 사부님께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었다. 낮에는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아이에게 들려주고 저녁에는 아이를 둘러싸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어줬다. 아이의 표면 현상에 마음을 움직이지 말자고 서로 일깨워주면서 동시에 모두 안으로 찾아보았다. 온 가족이 수련하는데 아이에게 일어난 문제는 반드시 우리를 고험하고 수련 제고해야 할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3일 째 되는 날 아이의 우는 횟수는 적어졌고 저녁에 가서는 울지도 않고 먹기도 하고 결국 머리에 있었던 종기도 점점 사라졌다. 지금 아이는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고 매우 영리하고 귀엽다. 우리 가족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에 대단히 감사하고 있다.

5. 놀랐지만 위험은 없었다

수련 중에서 또 많은 위험한 일들을 겪게 됐지만 모두 사부님의 보호 하에 가까스로 지나왔다. 몇년 전 교통사고를 겪었다. 그날 우리 가족 네 명이 고향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정면에서 돌을 실은 대형 트럭이 다가왔다. 동시에 차량 한 대가 추월하고 있어서 나는 좀 긴장해 가급적이면 우측으로 운전했는데 결국 우측에 있는 받침돌 두 개에 연속 부딪히면서 ‘꽝’하는 소리에 차가 몇 미터 깊은 다리 아래 골짜기에 떨어졌고 뒤집어져서 바퀴가 하늘로 향했다. 그 순간 어머니는 ‘사부님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 처음에 나는 멍해 있었고 비록 차는 거꾸로 뒤집어졌지만 시동은 꺼지지 않았고 엔진소리가 이상했다. 나는 차가 폭발할까 봐 두려웠고 우리 모두 사부님께 구명을 요청했다. 나는 힘껏 차문을 밀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이때 부근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와 우리를 도와 차에서 끌어냈다. 당시 아버지의 머리와 눈이 부딪혀 상처를 입었고 얼굴에는 많은 유리조각들이 박혀 있었으며 여동생은 머리를 부딪혀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나와 어머니는 크게 다치지 않았는데 나는 단지 왼쪽 눈가에 종기가 생겼다. 마침 당시에 더블캡 트럭을 만났기에 우리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아버지와 여동생은 하룻밤 병원에서 묵었고 다음날 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하려 하자 병원에서는 동의하지 않았고 주치의는 만약 퇴원하게 되면 왼쪽 눈이 실명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고 당시 유리에 찔려 아버지의 왼쪽 눈은 뜰 수 없었고 눈동자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매우 심하게 부어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속으로 명확히 아셨다. 이 사고는 사악의 박해이고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으며 대법제자는 사부님께서 관여하시므로 집에 돌아가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견지하다보면 자연적으로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아버지는 단호하게 퇴원했고 집에 돌아와 통증을 참으면서 법을 듣고 연공하자 결국 일주일 후 눈과 머리 상처는 기본상 회복됐다. 그리고 아버지는 병원에 가서 실밥을 뽑으면서 간호사에게 삼퇴를 시키셨다.

내가 운전했던 중고차는 사고 후 크레인이 차를 끄집어 올려 바로 폐차장으로 옮겼다. 이런 사고에서 운전사가 살아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기사에게 치명적인 것은 핸들인데 내 쪽에 있는 핸들이 안쪽으로 들어갔고 앞 유리에는 많은 머리카락이 껴있었는데 모두 여동생의 것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튕겨서 앞 유리에 머리가 부딪혔고 또 뒤로 튕겨갔다. 당시 이 상황을 보게 된 사람들은 우리가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우리가 모두 큰 일이 없는 것을 보고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이렇게 큰 사고 중에서도 나와 어머니는 기본상 다치지 않았고 아버지와 여동생도 빨리 회복됐다. 우리 모두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것을 알고 있고 아니었으면 결과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죽을 뻔한 고비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감당하신 것이다.

맺음말

정법은 이미 최후로 다가왔는데 우리 다 같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진귀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용맹정진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아쉬움을 적게 남기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와 중생들이 우리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시 한 편으로 수련생들과 서로 격려하려 한다.

‘고난 중에 태어나 반생을 헛되이 보내다가 하루아침 법 얻어 위로 돌진하는도다 다그쳐라 세 가지 일 잘하여 중생을 구도하고 돌아가는 발걸음 늦추지 말라’[6]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대폭로’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2-두려울 것 뭐냐’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2-고집을 버려라’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2-사도은’

[6]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 ‘홍음3-관감’

원문발표: 2016년 11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27/3380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