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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관념을 개변해 진정으로 남을 위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법을 얻은 지 3년이 넘었는데 애당초 어리벙벙하게 대법이 좋다고만 생각하던 데로부터 지금은 깨어나 수련자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할 줄 알게 됐다. 사존의 보호 하에서 비틀거리며 걸어왔는데 법회 기회를 통해 자신의 수련심득을 써내고자 한다. 부족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신사신법(信師信法)하다

2015년 10월부터 나는 대면해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각종 사람 마음이 참 많았는데 두려움, 열등감, 우려하는 마음이 있었고 심지어 사람을 만나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말을 전혀 할 줄 몰랐다. 대법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얘기하라면 얘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99년 7.20 이후와 99년 7.20 이전, 이 두 단계의 상태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므로 당신이 세 가지 일을 모두 잘해야만 수련이고 세 가지 일 중에서 한 가지만 한다면 수련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데, 제고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는 반드시 잘해야 한다.’[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점을 명심하고 속으로 반드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나가서 사람을 구하겠다고 생각했다. 나가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어찌 진정한 수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매일 반드시 착실하게 법공부를 하는 외에 발정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 밖에 발정념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이 발정념을 한 효과를 의심했기에 진상자료를 나눠줄 때 사악의 박해를 받아 세뇌반에 한 달 동안 갇혔다. 이후에 수련생이 귀띔해 주어 대량으로 발정념하기 시작했는데 날마다 한 시간 넘게 했다. 반년이 좀 지나자 공간장이 맑고 투명해지기 시작했고 두려운 마음도 차츰 없어졌다.

진상을 알릴 줄 모르는 문제에 마주해 밍후이왕에서 진상 알리기에 관한 교류문장을 인쇄해 밥 먹을 때도 외우고 길을 걸으면서도 외웠다. 심지어 꿈에서도 남에게 진상을 알렸다. 두 달 후, 나는 애당초 감히 말하지 못하고 말할 줄 모르던 데로부터 매주 2, 3명을 탈퇴시키게 됐고 이후에는 매일 1, 2명을 탈퇴시켰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말을 많이 하고 진상을 많이 알렸지만 마지막에 탈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정말 풀이 죽었다. 또한 매번 진상을 알리러 가기 전에 나가 사람을 구하기 싫다는 생각을 늘 배척해야 했고 아주 큰 결심을 내려야만 입을 열 수 있었다. 이런 단계에 2, 3개월 머물러 있었다.

이후에 현지에서 진상을 잘 알리는 수련생과 협력해 같이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람을 만나면 얘기했고 우려하는 마음, 구별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내심으로 탄복하면서 언제 나도 그들처럼 이렇게 할 수 있겠냐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왜 나의 삼퇴 효과는 좋지 않을까? 이유는 삼퇴를 시키려는 염원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강하지 않을까? 더 깊이 찾아보니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을 완전히 믿지 않았고 의심하는 부분도 있었다. 정말 대겁난이 있을까? 장자석(藏字石)에서 말한 것들이 실현될까? 사악이 이렇게 날뛰는데 정말 망할까? 이런 의혹 때문에 말할 때 자신이 없었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어 효과가 좋지 않았다.

그럼 나는 왜 100%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을 믿지 않을까?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분명히 다 보지 않았는가? 큰 눈(大眼睛), 파룬, 그리고 나 자신의 수많은 전생의 일들, 심지어 늘 다른 공간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보고 들었으면서 왜 아직도 환각이라고 여기고 여태껏 진정으로 믿지 않는가? 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이튿날 법공부 할 때 사존의 말씀을 보았다. ‘인류 고유(固有)의 오랜 관념이 한 세트의 사업ㆍ사유방법으로 형성된 후에는 새로운 인식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 진리가 나타났는데도 그것을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배척한다.’[2] 갑자기 이것이 바로 나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의 교육을 너무 많아 받아 무신론 사상이 이미 깊숙이 마음에 뿌리 박혔기에 진리가 나타나도 감히 믿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그 관념 문제가 아닌가?

법리를 깨달은 후 나는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관념이 바뀌자 진상을 알리는 효과가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

이튿날 일을 보러 나가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을 때, 교통버스 안에서, 밖에서 밥을 먹을 때 오가는 사람 11명에게 진상을 알렸고 9명을 탈퇴시켰다. 한 사람은 아무데도 가입한 적이 없었지만 진상을 명백히 알게 됐고 한 사람만 탈퇴하려 하지 않았다. 그 후부터 진상을 알릴 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모두 그들에게 진상을 명백히 알릴 수 있게 됐다. 또한 자신의 진상 알리기 방식을 모색해냈고 끊임없이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머리가 갈수록 명석해지고 똑똑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컴퓨터 등 많은 것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인쇄, ‘밍후이주간‘ 다운, 진상자료와 호신부 제작 등을 스스로 터득해내 나 자신도 신기했다. 진정으로 사존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대법제자로 말하면 어떤 일을 하든 당연히 아주 빠르다. 더욱 많이 자신을 내려놓았을 적에 법을 실증하는 지혜는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3]는 법을 느끼게 됐다.

수련생과 협력하는 가운데서 이기심을 없애다

나는 인터넷에서 법을 얻었기에 현지 수련생들을 알기 전에는 거의 홀로 수련했다. 혼자 책을 보고 법공부를 하며 진상자료를 인쇄하고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스스로 이런 상태가 괜찮다고 여겼지만 현지 수련생을 알게 되어 법공부 팀에 몇 번 참가한 후 괜찮다고 여기던 이런 상태가 깨졌다.

현지 법공부 팀 수련생들은 대부분 노년 수련생으로서 글씨를 잘 모르고 지식수준이 높지 않아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한다는 것은 더욱이 힘든 일이다. 법공부를 할 때 속도가 늦고, 글씨를 빠뜨리거나 잘못 읽었으며 지방 방언이 심한데다 표준어를 몰라 듣기 아주 어색했다. 속으로 나 혼자서 법공부 많이 하고 잘하는 게 더 낫지 않냐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게다가 가끔 집중해 법공부를 할 때면 그 에너지가 아주 컸다. 그래서 수련생들은 모두 내가 법을 읽는 것을 듣기 좋아했다. 어느 한 번 법공부가 끝난 후, 수련을 하다말다 하는 한 노수련생이 나를 찾아왔다. 교류를 해보니 그녀가 이미 대법을 내려놓은 지 몇 년 됐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전에 그녀는 톈안먼에 가서 법을 수호하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그녀의 매듭을 풀어주기 위해 나는 사부님의 ‘전법륜‘과 ‘홍음‘을 읽어주었다. 듣고 난 후 원래 아파서 구부릴 수 없었던 한 쪽 다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부좌할 수 있게 됐고 읽어준 책을 한 시간 넘게 들은 후 아프지도 않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부님께 감사를 드렸고 당장 수련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표시했다. 현장에 있던 수련생들은 연거푸 신기하다고 했고 나도 사부님의 경문을 읽을 때 그 크나큰 에너지 작용을 느꼈다.

하지만 노년 수련생들처럼 그렇게 법을 읽는다면 효과가 얼마나 되겠는가?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한 후 내 일이 갑자기 많아졌다. 법공부 때 그들의 발음을 바로잡아주고 전자제품을 잘 몰라 그들에게 음악과 문서를 다운해줘야 하며 삼퇴 명단도 인터넷에 올려줘야 했다. 어떤 노수련생은 수련하지 않다가 지금 다시 되돌아오려 해서 그들에게 진상도 알리고 다시 수련하라고 격려해주기도 했다. 그들은 사부님께서 나를 파견해주셨다고 하면서 사부님의 배치에 매우 감사드렸다.

처음에는 기꺼이 이런 일들을 했지만(이후에는 이것이 과시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오래가자 속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는 내가 사람을 구도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는가? 처음에 이 마음이 나타났을 때 깨닫지 못했는데 비록 속으로 달갑지 않았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도와야 할 것들을 여전히 도왔다. 몇 주 뒤, 모순은 더욱 격화됐는데 현지 수련생 두 명이 내가 늘 인터넷에 접속하고 게다가 신수련생이어서 나의 신분을 의심했다. 나보고 안전하지 않으니 인터넷에 접속하지 말라고 하면서 만약 나에게 일이 생기면 그들도 연루된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 법공부 소조에서 나를 말할 뿐만 아니라 다른 법공부 소조에서도 나를 말하면서 내가 과시하기를 좋아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난 단번에 ‘스파이‘가 돼버렸다.

뿐만 아니라 2년 넘게 알고 지내던 외지 수련생이 나와 그녀의 상황을 교류했는데 나는 그녀의 관이 넘기 쉽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녀는 늘 그곳에서 잘못하고 넘지 못해 나도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 그녀와 교류하려 하지 않자 그녀는 자신이 만났던 모든 수련생 가운데서 내가 가장 이기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며칠 동안 잘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면서 그녀가 한 말을 생각했다. 동시에 불공평하다고 여기면서 ‘내가 어찌 그런 노수련생과 비길 수 있단 말인가? 당신보다 법도 늦게 얻었는데 뭐가 이기적이란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정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았다. ‘갑자기 어찌하여 이처럼 많은 번거로운 일이 생기는가? 어찌하여 무엇이나 다 좋지 않게 되는지, 다른 사람들도 그를 잘 대해 주지 않으며, 상사도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가 하면, 가정 내 상황도 매우 불안해졌다. 왜 갑자기 이처럼 많은 모순이 나타나게 되는가?’[2]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자신의 잘못한 점을 깨닫지 못했고 속으로 더욱 화가 나서 불평했다. ‘당신들을 만나기 전에 혼자서도 수련을 잘 했건만 당신들을 알게 된 후 그렇게 많은 일을 해주었는데도 나를 의심하고 배척하다니. 당신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지 않으면 훨씬 많은 일을 덜 수 있는데 내가 뭐 당신들과 함께 법공부하고 싶어 안달 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속으로 현지 법공부 소조의 다른 수련생들과 솔직히 말한 후 만약 그들도 내가 스파이고 그들에게 영향 준다고 여기면 가지 않고 혼자 집에서 법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때 노수련생 언니 세 명이 특별히 우리 집에 찾아와 나와 교류했다. 대체적인 뜻은 내가 지식수준이 있고 법공부를 잘해 너무 이기적이면 안 된다고 했다. 현지 수련생들을 더 많이 이끌어주고 우리는 정체로서 협력을 잘해야 하며 반드시 현지 법공부 소조에 계속 참가하라고 했다. “저는 신수련생이고 수련도 잘 하지 못했습니다. 다들 노수련생인데 그들이 저를 도와야지 어찌 제가 그들을 도와야 하나요? 게다가 그들은 저에게 도움을 청한 게 아니라 제가 그들을 연루한다고 하기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나요?”

노수련생은 나에게 사부님의 새로운 설법을 보여주었다. “관건은, 대법제자 당신은 당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해야 한다는 것인데, 심지어 당신은 수련조차 정진하지 않고 당신은 별로 수련도 하지 않으며 수련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사람을 구하는 대법의 항목 중에서 사람마음이 당신의 집착심을 이끌어 마음속으로 늘 분분히 불평한다. 당신이 불평할 게 뭐 있는가?!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하러 온 것인지 모른단 말인가?! 당신은 당신의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지 모른단 말인가?!”[4]

그들은 가차 없이 나보고 정말 너무 이기적이라고 하면서 지식이 있고 능력이 있으면서 수련생을 돕지 않는 것이 법에 부합되느냐고 말했다.

그들의 말은 나로 하여금 새롭게 자신을 살펴보게 했다. 예전에 이 단락 법은 다른 사람에게 한 말로서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겼다. 오늘 그들이 한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부끄러웠다. 자신이 신수련생이라는 구실로 수련상태가 좋지 않은 노수련생을 도와주기 싫어했는데 속마음은 귀찮은 것을 싫어하고 수련생을 얕보는 마음이 있어서였다. 또한 자신은 신수련생이고 수련을 잘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열등 심리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자신이 사람을 구하는 것을 지체한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이기적인가! 법의 요구와 얼마나 많이 위배되는가. 그럼에도 자신이 수련을 잘했다고 생각했기에 그 외지 수련생은 나보고 가장 이기적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이는 정말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입을 빌어 나를 점화해주시는 건가? 그럼 어떻게 해야지?’ 사부님 말씀은 들어야 한다. 마치 전쟁에 나가는 병사가 어떤 명령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무조건 집행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부님의 설법을 비록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해도 수련생을 도와야 했다.

자신을 내려놓았고 진정한 수련자로 여겼다. 최선을 다해 수련생을 돕고 그들을 신수련생으로 대했으며 외지 수련생에게 사과했다. 내가 확실히 이기심이 너무 강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심득체험을 진심으로 그녀와 교류했다. 그녀도 나에게 사과했고 우리는 원래처럼 사이가 좋아졌는데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자아를 내려놓았고 그런 유언비어를 개의치 않았다. 오직 사부님 말씀대로 했는데 설사 홍수로 인해 물이 넘친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했다. 계속해 우리 이 법공부 소조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를 했다.

새롭게 법공부 소조에 돌아온 후 나를 의심하고 배척하며 더 이상 나와서 법공부하지 않던 수련생이 특별히 찾아왔다. 그녀를 도와 장쩌민 고소 영수증을 밍후이왕에 보내달라고 했다. 이 일은 아주 시끄러운데 메일을 신청해야 하고 안전에 주의해야 해 정말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입으로는 억지로 대답했다. 집에 온 후, 내심으로 수련생을 돕고 싶지 않았기에 억울함과 불평하는 마음이 들끓어 올라왔고 마음도 무거웠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왜 못마땅해 하는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나에게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었고 게다가 그녀가 나를 배척했기에 그녀에 대해 반감이 있어 돕고 싶지 않았다. 이 생각이 나오자마자 분명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불평스럽고 억울해도 반드시 이것을 제거해야 하는데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그날 저녁 마음을 고요히 하고 법공부할 때 사부님의 한 단락 설법이 갑자기 머리에 들어왔다. ‘수련인답게 당신 눈앞의 일체를 대한다면 어떠한 것이든 걸어 지나갈 수 있다. (박수) 당신은 만약 한 신(神)이 그런 문제를 마주했을 때 그가 어떻게 대할 것인지 생각해보라. 당신이 넘지 못할 때,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여서 그렇게 넘어 보고, 그것을 지켜보라.’[1]

마음이 즉시 홀가분해졌고 무슨 물건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렇다. 내가 만약 신이라면 수련생을 도와야 하지 않는가? 분명히 도와야 한다. 노수련생들은 지식수준이 낮고 인터넷을 할 줄 모른다. 마치 이 수련생처럼 장쩌민 고소장을 밍후이왕에 보내기 위해 수련생을 몇 명이나 찾고 많이 뛰어다녔지만 대부분 수련생들은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몰라 할 수 없었다.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수련생은 한참 지나야 우리 여기 법공부 소조에 한 번 오고 게다가 한 달 넘게 걸려야 그녀를 도와 발송할 수 있다.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고 게다가 이렇게 거리가 가까운데 내가 돕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수련생일지라도 수련생이 사람 구하는 항목을 잘하려는 것을 협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늘 수련생 협력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자신이 부딪히지 않았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진정으로 부딪혔으니 수련생과 잘 협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관념을 완전히 바꾼 후 한 주 내에 중고 컴퓨터를 한 대 샀다. 안전한 프로그램을 새롭게 설치하고 사부님의 가지 하에 끝내 메일을 신청해 수련생의 장쩌민 고소장을 발송했다. 이런 일을 할 때 나 자신도 신기했는데 예전에 현지 수련생이 교류할 때 그녀가 이런 것을 배우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2주도 걸리지 않았는데 이런 것들은 예전에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수련생은 매우 감격해하면서 나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나도 각 방면에서, 부딪힌 일에서 자신을 수련자로 여겼기에 정말 모두 잠잠해졌고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진정으로 남을 위하다

수련의 근본은 이기심을 버리는 것이다. 처음 ‘전법륜‘에서 득과 실 이 부분을 읽을 때 늘 혼란스러웠다. 잃는 것은 업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왜 잃어야 하는지 몰랐다. 늘 내가 모두 잃어버린다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겠는가? 어떻게 생활하겠는가? 그래서 이후 수련 과정에서 보기에는 이익에 대한 마음을 닦아 없앤 것 같았지만 진정으로 부딪혔을 때, 예를 들면 박해받아 실업했을 때 괴로워 며칠 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괴롭다는 생각이 나타났을 때 첫 일념이 뭔가 틀렸다고 여겼다. 진정한 수련자는 이런 상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찾아보니 아직도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 내려놓지 못할까? 며칠 동안 지속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법공부를 할 때 한 단락 말씀이 갑자기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세상 사람들은 바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만을 원동력으로 삼아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이익 또한 사람이 느낌 속에서 그것을 위해 가장 기뻐할 수도 있고, 그것을 위해 가장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설사 얻었다 해도 생명의 영원하고 실재적(實在的)인 것이 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이 그것을 위해 필사적으로 어떻게 분투하더라도 진정하게 사람에 의해 좌우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의 일생은 일찍이 정해진 것이며, 신이 사람의 매 일보를 조종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려고 생각했다고 자신이 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사람의 추구는 오히려 집착이 될 수 있다. 세인(世人)은 비록 얻지 못하더라도 필연적으로 이익을 위해 행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간에 사람은 모두 행동하기 마련인데, 다시 말해서 인간의 행위이다.’[3]

그 순간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데 갑자기 모든 일체는 낡은 우주의 이기적인 데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이기심은 모든 업력이 나타난 근원으로서 이 이기심 때문에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는데 집착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서 끊임없이 업을 짓게 된다. 업을 지었기에 사람의 각종 고난과 질병, 불행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이기심은 인류의 모든 고통의 본원이기에 우리는 비로소 근본적으로 이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기심을 버려야 하는 근본원인으로서 새로운 우주의 표준은 남을 위하고 사심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

이 법리를 깨달은 후 심신은 씻긴 것처럼 상쾌하고 홀가분하며 아름다워졌다. 그 후의 생활 중에서 진상을 알리거나 수련생과 협력하거나 아니면 직장생활이나 가정 일에서 나는 곳곳에서 남을 생각했고 확고하게 이 이기심을 제거하려고 했다. 그러니 전반 환경이 다 변했다.

남을 위한 마음이 생기자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진상을 알렸고 더 이상 우려하는 마음이 없었다. 남을 위하는 마음이 생기자 구치소 앞에서도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으며 두려운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구치소 사람까지 나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개변됐다. 예전에 박해받은 수련생에게 돈을 가져다주러 구치소로 갔을 때 그는 한 번도 나에게 좋은 안색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신분증도 검사하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나를 도와 박해받은 수련생 카드에 잔액이 얼마 남았는지 알아봐주었다.

남을 위한 마음이 생기자 수련생 사이의 간격도 사라져 진정으로 하나의 정체가 됐다. 수련생에 대해, 세인에 대해 모두 정중한 마음을 품게 됐고 내심으로 그들이 이 십악독세(十惡毒世)에 그들 세계 중생을 위해 감히 내려온 것에 탄복하게 됐다. 나는 만나는 매 한 사람을 진심으로 대했는데 그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렸든지 알리지 못했든지, 구도됐든지 구도되지 못했든지 모두 자비와 아름다움을 상대방에게 남겨주었다. 어떤 세인들은 관심어린 나의 말 한 마디에 연달아 고맙다고 했다.

물론 수련 과정 중에서 아직도 좋지 않은 마음이 많이 있다. 분명히 많은 것들을 닦아버린 것 같지만 가끔씩 또 올라온다. 예를 들면 가끔 게으름을 피워 정공만 연마하고 동공은 연마하기 싫어지고, 가끔은 사람을 구하러 나가기 싫어 한 번쯤 게으름을 피워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부님의 말씀대로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자신을 진정한 수련자로 여긴다면 우리는 넘어 지나올 수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李洪志)사부님 경문: ‘각 지역 설법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4] 리훙쯔(李洪志)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13회 중국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6년 11월 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3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3/3369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