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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법을 얻고 정진해 서약 실행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와 언니는 불교를 믿는 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외할머니, 외삼촌도 모두 경건한 불교신도였다.

외삼촌 이야기

외삼촌은 자기는 스님 팔자라 비록 출가하지 않았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고 줄곧 불교 법문에서 수련했다고 하셨다.

외삼촌은 역사에서 전해 내려온 각종 예언에 대해 다소 연구했고 수중에 조상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추배도(推背圖)’도 갖고 계셨다. 몇 번은 한 예언책의 한 페이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기도 했다. 안에 삽화가 있었다. 그림 중 한 소년이 있었는데 머리에 한 나무를 이고 있고 옆에 글자가 있었다. 외삼촌은 우리에게 “이것은 정법을 전한다는 예언이다. 남자 아이가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은 나무인데 그건 ‘리(李)’자를 가리킨다. 즉 정법을 전하러 온 사람이 리 씨라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외삼촌은 늘 우리에게 자기가 배운 ‘소법소도(小法小道)’를 말했고 이후에 ‘대법대도’가 인간세상에 전해질 것이고 정법을 전하는 사람은 ‘십팔자(十八子)’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외삼촌이 말하는데 예언에 의거해 추측하면 ‘십팔자는 이미 인간세상에 내려왔다’고 하셨다. 그때 나와 언니는 아직 여자 아이였지만 외삼촌이 한 말을 믿었다.

이런 수련문화가 강한 가정 중에서 어릴 적부터 가부좌하는 것을 배웠다. 정법대도는 내가 어릴 적부터 줄곧 찾는 인생의 목표였다. 지난 80, 90년대에 이르러 우리 지역에도 기공열풍이 나타났고 나와 언니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여러 기공을 시도해 봤다. 매번 새로 배운 기공에 대해 말할 때 외삼촌은 “이 종파의 사부님은 리(李) 씨냐?”고 한 마디 물으셨다. 우리의 “아닙니다.”란 대답을 들었을 때 외삼촌은 언제나 “‘십팔자(十八子)’란 바로 ‘리(李=十+八+子)’자다! 이 대법대도의 사부의 성이 리 씨이시다. 너희들이 지금 배우는 것은 아니야!”라고 하셨다.

1996년에 나와 언니는 드디어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섰다! 대법을 얻은 기쁨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때 이미 70세가 넘은 외삼촌은 우리에게 상세한 상황을 물어보신 후 평생 청정무위(淸淨無爲)하던 노인이 드물게 격동해 일어나 “여생에 드디어 정법이 인간세상에서 전해지는 것을 만났구나!”라고 하셨다. 하지만 대법제자들이 공원에서 단체로 연공하고 자유롭게 수련한다는 것을 들었을 때 외삼촌은 아주 곤혹스러워하셨다. 그는 “예언에 따르면 정법수련은 극도로 큰 고난, 고험을 만날 수 있고 수련자는 유배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자유로이 수련할 수 있느냐?”라고 하셨다.

외삼촌이 우리에게 말한 그 예언 때문에 우리는 이후에 사당이 잔혹하게 파룬궁을 박해하고 광적으로 박해하는 사태 하에서도 전혀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대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또한 박해를 감당하는 것은 수련 중의 필연이라는 틀린 생각을 갖게 됐고 심지어 한동안 이렇게 해야만 더 높이 수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 차례 사부님의 관련 설법을 배운 후에야 구세력을 부정하는 법리를 알았고 자신도 여러 차례 박해를 당한 후에야 점차 깨달았고 근본적으로 알게 됐다.

안타깝게도 외삼촌은 평생 배우고 연마한 것은 소법소도 중의 법리고 또한 연마한 것은 부원신(副元神)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외삼촌이 법을 얻는 큰 방해가 됐다. 그가 파룬따파를 수련하려 할 때 주의식은 방해를 극복하지 못해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나와 언니보고 그의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다. 이후에 그는 그 동안 다른 공간, 혹은 꿈에서 늘 한 여자가 “당신이 몇 년 수련했으면 몇 년을 따랐어요. 지금 정법을 수련하면 혼자 남은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요, 아니면 함께 죽어요. 당신을 죽이고 말까요?”라고 했다고 하셨다. 당시 외삼촌의 주의식이 정법을 수련하겠다는 결심을 크게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대법 수련을 포기했던 것이다. 정말로 안타까웠다. 그는 거의 평생 정법이 전해지는 그 날을 기다렸지만 정법이 진정으로 눈앞에 있을 때 오히려 정법수련에 들어서지 못했다.

설법 중 사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만약 당신이 인연이 없으면 정말로 들어오지 못한다.”[1] “겉으로 보기에는 그 자신이 들어오지 않으려 하거나, 혹은 주위환경이 그가 들어오는 것을 저지했거나, 어떤 사람이 그에게 어떠어떠한 말을 하여 가지 말라고 했거나, 그 자신이 번거로운 일을 내려놓지 못했거나, 이것도 어렵고 저것도 어려우며,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1]

비록 이렇지만 외삼촌은 여전히 복을 얻으셨다. 아마 2003년이었을 것이다. 83세의 늙고 쇠약한 외삼촌이 침대에 드러누우신지 이미 보름이 넘었고 거의 음식을 먹지 않으셨기 때문에 집안사람은 그를 위해 후사를 준비했다. 박해를 당해 노동교양소에서 금방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상황을 안 후 나와 언니는 외삼촌을 보러 갔다. “외삼촌, 파룬따파가 정법이라는 것을 아는 이상, 지금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좀 읽어요”라고 했다. 노인은 맥없이 손을 들고 목구멍을 가리키며 말할 수 없다고 표현했다. “그러면 마음속으로 읽으실 수 있겠어요?” 외삼촌은 미약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나와 언니는 외삼촌의 침대 곁에서 함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읽었다.

1시간 후에 외삼촌이 목구멍을 약간 움직이더니 가래 한 줌을 내뱉었고 잠시 휴식 후 음식을 드시겠다고 했다. 그 후 음식을 드시기 시작했고 건강도 하루하루 좋아지셨다. 7년 후 천명을 스스로 알고 있는 외삼촌은 죽기 전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읽는 것을 계속 잊지 않으셨기에 앓지도 않다가 돌아가셨고 향년 90세였다.

박해가 왔지만 협조 거절

99년 7월에 파룬궁 박해가 발생했다. 사당의 천지를 뒤엎고 광적인 탄압 하에 원래의 단체 연공환경이 파괴됐다. 마음이 매우 아팠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왜 연마하지 못하게 하는가? 기어코 연마하겠다! 당시 구세력에 관한 사부님의 법을 몰랐으나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이 바른 믿음의 일념을 통해 제자를 가지해주셨다. 그리하여 공원에서 공개적으로 단체 연공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천지를 뒤엎는 듯한 사악한 환경 하에서 몇 명 대법제자가 공원에서 공개적으로 단체연공을 반 년 넘게 견지할 수 있었는데 만약 사존의 가지, 보호가 없다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처음에 몇 명 대법제자와 비교적 조용한 공원을 찾아 연공했고 내가 연공기를 가져오는 것을 책임졌다. 우리는 연공음악을 틀고 정정당당하게 연공하기 시작했다. 이후에 잇달아 더욱 많은 대법제자가 참여했다. 물론 구세력도 기회를 봐서 파괴하고 교란하려고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었다. 당시 깨달음이 높지 않고 개인 수련에서도 정진하지 못했기에 자신을 불공평하게 대하는 직장을 대면해 사람 마음이 움직였고 분노했는데 한번은 원망하는 마음으로 직장에서 화를 내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일을 보러 가고 있었고 짐바구니에 진상자료도 들어있었는데 갑자기 한 승용차에 부딪혀 혼수상태에 빠졌다. 사고를 낸 기사는 도주했다. 교통경찰이 나를 병원으로 보냈고 가족에게 통지했다. 깨어난 후 머리를 몇 바늘 꿰맸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안 되서 단체 연공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들이 나타나더니 우리를 납치했고 현장에서 TV방송국 기자가 녹화하기도 했다. 이때야 교통사고를 당한 후 교통경찰대대 경찰이 떨어진 진상자료를 국가보안에게 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가보안 경찰은 내가 대법제자라는 것을 알고 날 미행했기 때문에 우리 연공장을 발견했다. 대다수 대법제자는 파출소에 납치됐다가 잇달아 집으로 돌아갔는데 난 경찰에게 고문을 당했다. 그들은 진상자료를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고문해도 소용없자 날 구치소에 불법 수감했다.

불법 심문 중 경찰이 “자료를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말하기만 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경찰에게 “만약 어디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말하면 그 진상자료를 제공해준 대법제자는 어떻게 되죠?”라고 물었다. 경찰은 “그러면 그는 판결 받고 교도소에 들어갈 거야”라고 했다. “그가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과 제가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은 무슨 차별이 있어요? 그를 교도소에 보내는 것보다 제가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이 나아요. 자료를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알려주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다.

당시 그 일념이 비교적 순정했는지 경찰들은 다시 날 심문하러 오지 않았고 며칠이 지난 후 보석 명의로 날 석방했다.

법리를 깨닫고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하다

사악한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부터 불법 가택수색을 당하고 수감당하고 판결당했으나 당시 법리가 똑똑하지 못했고 또한 법을 얻기 전에 그 예언들에서 말한 정법수련은 마난과 고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자신이 박해당할 것이라는 관념을 형성했기 때문에 사존께서 구세력의 법을 부정하라는 법을 제때에 깨닫지 못했고 근본적으로 자신의 고정관념을 바꾸지 못했다. 그러므로 여러 번 불법 가택수색과 수감을 당했고 노동교양소, 감옥에서 교도관의 잔혹한 학대를 대면할 때 언제나 한 번 또 한 번 피동적으로 감당하기만 했다. 비록 노동교양소에서 교도소에서 행정재심의, 항소 등 반박해하는 일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구세력의 법리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고 과정 중 다만 표면적으로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는 것에만 멈춰있었다. 물론 이렇게 했어도 사악을 크게 벌벌 떨게 했다.

계속 항소하는 것을 막기 위해 관련 기관에서는 주민센터 공무원을 파견해 남편과 협상하게 했다. 우리에게 10만 위안, 심지어 20만 위안을 주는데 다만 ‘생활보조금’ 명의로 발급할 수밖에 없고 ‘배상금’ 명의로 줄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이 나와 상의할 때 나는 “오로지 오판 사건을 바로 잡는다는 ‘국가배상’ 명의로 줘야 항소를 취소할 것이고 아니면 이 돈을 받을 수 없으며 항소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편(파룬궁을 연마하지 않았음)도 이 생각에 찬성했고 이런 더러운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교도소에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또 다시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수감됐고 며칠 사이에 나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급했다.

이번에는 철저히 각성했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됐고 마음속으로 ‘제자가 못났습니다. 수련에 정진하지 못해 사악에게 틈을 타게 했고 또 사부님께서 신경을 쓰시게 했습니다. 제자를 가지해주십시요. 이번에는 꼭 나가고 다시는 사악에게 박해당하지 않겠습니다. 지금부터 제자는 꼭 잘 수련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한동안 자신의 수련 문제를 반성하기 시작했고 법리를 대조하고 제때에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잡았다.

사존께서 “몸이 감옥에 갇혔다고 슬퍼하지 말라 정념정행하면 법이 있도다 조용히 생각해 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2]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구치소에 수감당한 후 한 무리 경찰들이 또 우리 집을 불법 수색했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은 내가 여러 차례 박해당하는 것을 보고 언제부터인지 중국공산당의 일부 법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는 이치가 당당하게 불법 가택수색을 하는 경찰보고 검찰원의 도장이 찍혀있는 수색증을 내놓으라고 했고 아울러 수색증에 검찰원의 도장이 없으면 수색할 자격이 없다고 했으며, 만약 강제로 수색하려 한다면 반드시 증명서 한 장을 쓰고 누가 당신들을 파견해 불법행동을 하게 했는지 써야 하고 또한 서명해야 한다고 했다. 수색하러 온 경찰은 당연히 그들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감히 서명하는 사람이 없었고 수색하지 않은 채 철수했다.

며칠이 지난 후 남편은 내가 아무런 사실 근거 없이 체포당했다는 것을 알고 의분이 가슴에 가득 찼고 어디에서 온 지혜와 용기인지 큰 현수막을 만들었다. 대의는 어떤 사적인 감정으로 법을 어기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수막을 우리 집 창밖에 걸어놓았다. 이후에 남편이 말했는데 현수막이 비교적 좋은 효과를 얻게 하기 위해 그는 끈으로 자기를 묶고 창밖으로 기어나가 큰 못으로 현수막을 벽에 고정해놓았다고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높은 아파트인데 사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당신은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고 대단한 좋은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께서 돕고 있으세요.”라고 했다.

현수막은 관련 공무원을 아주 긴장하게 만들었고 여러 차례 우리 집에 와서 “먼저 현수막을 거둬요, 기타 일은 모두 의논하기 쉬워요”라고 했다. 남편은 “저희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바로 현수막을 철거할 겁니다!”라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10여일 불법 수감당한 후 그들은 또 ‘보석’ 명의로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만약 사존의 가지가 없다면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후로 한동안은 견지해 세 가지 일을 했는데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다. 비록 여전히 나가서 진상을 알리지만 단지 구두로 진상을 알렸고 어떤 진상자료도 감히 들고 나가지 못했다. 남편도 법률에 대한 한 속인의 인식으로 소위 ‘증거’를 그들 수중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조심하라고 했다.

대략 3개월 후 국가보안대대장이 전화로 경찰국에 한번 왔다가라고 했다. 보석의 기한이 됐고 결속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내 서명이 필요하다고 했고 서명하면 보석이 끝났다고 했다. 당시 정념이 매우 강했다. “당신들이 한 것은 모두 불법인데 무슨 끝내고 안 끝내고가 있어요? 서명하러 가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다. 이후에 그들은 많은 방법을 생각했다. 가족을 협박하고 친척, 친구들을 동원해 설득하게 했지만 일률로 협조하지 않았다. 이렇게 1년 넘게 끌었다.

어느 날 검찰원의 두 공무원이 우리 집에 왔다. 협조하지 않자 경찰이 검찰원에 고소했는데 지금 자료가 그들 손에 있다며 한번 보라고 했다. 마침 그 날 남편도 집에 있었다. 그는 정의롭고 엄숙한 말로 경찰이 어떻게 불법으로 사건을 처리했고 법률의 사실과 증거를 무시했다고 하자 검찰원 공무원도 반박할 말이 없었고 다만 “이렇게 합시다. 이 고소 자료를 먼저 한번 봐요”라고 했다. 나는 “보지 않아요, 보면 이 불법 행위를 승인한 것 아닌가요?”라고 했다. 그들은 “그래도 자료는 받아둬야 해요”라고 했다. 나는 “안 받아요. 받아놓으면 이것은 당신들이 불법적으로 사건을 처리한 증거로 될 겁니다. 이후에 고소한다면 당신들이 함께 불법으로 사건을 처리한 증거로 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자신을 위해서라도 남겨두지 않는 것이 좋죠”라고 했다. 남편도 옆에서 “지금 당신들이 이대로 가져가면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던 걸로 할게요. 아니면 경찰을 고소할 때 검찰원마저 함께 고소할 겁니다.”라고 했다.

검찰원 공문원은 듣고 바로 “좋아요, 좋아요, 그럼 가져갈게요.”라고 했다.

그 후로부터 다시는 집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등 번거로운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어떤 환경이든지 사악의 요구, 명령과 지시에 협조하지 말라.”[3]는 사부님 말씀만 듣겠다는 일념만 갖고 있었다. 확고하게 법에 있는 일념은 전반으로 구세력을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체득했다.

부대 군급 간부가 구제되다

나는 주로 대면 진상을 알렸고 동시에 정기간행물, 인터넷 돌파 프로그램, 호신부 등을 결합했고 사람에 따라 다른 진상자료를 줬다. 손자가 어려 내 보살핌이 필요할 때는 그를 안고 공원 등지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손자가 학교를 다니자 더 많은 곳으로 갈 수 있었다.

한번은 버스에서 한 노인을 만났는데 인사말을 나누고 화제를 찾아 진상을 알렸다. 먼저 양쪽 녹지대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왜 이 나무들을 팠다가 심었다가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노인도 꽤 감동했고 정부는 백성들의 돈을 낭비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최근에 체포당한 탐관오리로부터 사당의 부패 등 문제를 말하기 시작했고 사당이 만들어낸 억울한 재판 등으로 인해 각종 천재인화가 발생했다고 했다.

노인은 좀 부끄러워하며 “틀린 말은 아닙니다, 공산당의 탐오부패는 심각해요”라고 했다. 그런데 그는 혜택 받은 사람이고 군급 퇴직간부이며 퇴직금은 한 달에 1만 위안이 넘어 2만 위안에 가깝다고 했다. 그래서 “공산당의 나쁜 말을 하라고 하면 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다.

그가 스스로 군급 간부라고 하자 나는 “쉬차이허우(徐才厚), 궈보슝(郭伯雄)은 모두 군중의 큰 호랑이죠, 군중의 부패가 이런 정도예요. 어르신처럼 정직한 분이 우리나라의 이런 상황에 대해 더욱 가슴 아파해야하지 않겠어요? 그때 군대에 계실 때도 부패가 이렇게 심각했나요?”라고 말했다.

노인은 부끄러워하며 “있기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죠.”라고 했다. 나는 “쉬차이허우, 궈보슝은 사실 더욱 큰 죄가 있어요. 즉 장쩌민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고 파룬궁 수련생의 생체 장기적출에 참여했고 고가로 팔아 폭리를 도모했어요. 그들의 이런 비인간적인 죄악은 지금 전 세계에서 다 알고 있고 국제 각 언론에서도 보도했었어요. 이것은 업보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천재인화가 이렇게 많은 것은 모두 공산당이 나쁜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하늘의 업보를 받고 있는 것이라 중국공산당 및 부속 조직 공청단과 소선대에 참가했던 사람은 탈퇴를 선포해야만 진정으로 신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평안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서 “사실, 진정으로 나라의 앞날을 관심하는 사람이야말로 공산당이 어떻게 패배하고 있는지 관심하고 있어요. 쉬차이허우, 궈보슝 등 같은 사람은 장쩌민의 노예를 하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고 다만 장쩌민의 도구이지 그들은 진정으로 나라의 앞날을 관심할 줄 몰라요. 공산당이 이렇게 부패하고 이렇게 나라를 망치고 있으므로 오로지 공산당에서 탈퇴해야만 무감각하게 말을 듣는 노예가 아니고 진정으로 나라의 주인으로 될 수 있고 진정한 애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하늘이 자비를 베풀어 다시 한 번 사람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고 있어요. 만약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자신 및 가족을 소중히 아낀다면 탈퇴하세요! 젊었을 때 나라를 위래 공헌했기 때문에 퇴직금은 나라에서 준 복리고 마땅히 받아야 하는 거예요. 이건 공산당이 준 게 아니에요. 공산당이 돈이 어디 있어요? 전국 인민이 그것을 먹여 살리고 있는데. 삼퇴해도 퇴직금과 각종 복리를 받는데 영향주지 않아요. 가명을 짓고 탈당하고 진정한 애국자로 되세요. 어떠세요?”라고 말했다.

이때 노인은 “좋아요, 탈퇴해버리지!”라고 하며 직접 그의 진짜 실명을 알려줬다.

계속해서 파룬궁수련생이 공산당의 범죄를 폭로하는 것도 사실 진정한 애국행위고 ‘삼퇴’를 권하는 것도 큰 좋은 일이며 더욱 많은 사람이 공산당을 따라 함께 업보를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줬다. 노인에게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기억하고 절대 파룬궁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매우 빨리 노인이 정거장에 도착했다. 버스가 정거장을 떠날 때 창문으로 노인이 정거장에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고 버스가 멀리 떠났는데도 여전히 계속 손을 들고 있는 것을 봤다.

장쩌민 고소한 후 진상 알리기

장쩌민에 대한 형사고소장을 보낸 후 최고검찰원, 최고법원에 배달됐다는 문자를 받은 후 얼마 안 되서 한번은 주민위원회에 볼일이 있어 갔는데 주민위원회 주임을 만났다. 이 사람도 나에 대한 박해에 참여했었고 경찰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와서 가택수색을 한 적이 있다.

그녀는 “그렇게 많은 고생을 했는데도 아직 파룬궁을 연마해요?”라고 물었다.

“주임이 물었으니 정말로 알려줘야 하겠어요. 중국에서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은 완전히 합법적이에요. 이후로 절대 박해에 참여하지 말아요. 그건 정말로 자신을 해치는 거예요. 진심으로 당신들을 위해서 이것을 알려주는 거예요. 이전에 저에 대한 박해는 완전히 불법이지만 당신들을 탓하지 않아요. 모두 그 원흉 장쩌민의 속임에 넘어갔으니까요. 한 가지 알려줄 게 있어요. 즉 이미 장쩌민을 고소하는 고소장을 최고 검찰원, 최고 법원에 보냈고 배달됐다는 문자도 받았어요. 정부의 새로운 사법정책 ‘안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하고,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심리한다’는 법에 의거해 장쩌민을 고소한 거예요”라고 했다.

당시 사무실의 많은 사람이 조용히 듣고 있었고 그 주임도 입을 크게 벌리고 “아, 아……” 몇 번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도 방법이 없어요,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라 방법이 없어요!”라고 했다.

올해 여름 어느 날 주민위원회를 지나가다가 게시판에 대법을 모욕하는 사진이 붙어있는 것을 봤다. 그 중 한 폭의 옆에 대의로 ‘지금 중앙의 안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하고,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심리한다는 법률이 있는데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무고하고 함부로 고소한다’는 등 모욕하는 글이 쓰여 있었다. 진상을 아직 모르는 이 사람들이 너무 가련하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마침 일이 있어 주민위원회에 갔다. 그 노주임은 이미 퇴직했기에 내가 쓴 장쩌민을 고소장을 들고 새 주임을 찾아갔다. 새 주임에게 나는 누구누구인데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인데 알고 있을 거라고 했다. 그녀는 “알아요, 알아요,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은 전 반대하지 않아요. 반대하지 않아요.”라고 했다. 나는 “반대할 수 없는 것이죠. 왜냐면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은 중국 법률에 부합되는 것이고 합법적이기 때문입니다.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완전히 불법이에요. 이미 지금 중앙의 ‘안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하고,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심리한다’는 새로운 법률에 근거해 장쩌민을 고소했고 최고 검찰원, 최고 법원에 배달됐다는 문자도 받았어요. 지금 새 정부는 파룬궁에 대한 태도가 지난 장쩌민 정권 시대와 다르니까 당신들도 형세를 똑똑히 알아보고 틀리게 줄을 서지 말아요.”라고 했다.

계속해서 “오늘 장쩌민을 고소한 고소장을 가져왔으니 한번 봐요. 우리 대법제자는 완전히 법에 의거해 고소한 겁니다. 그런데 바깥 게시판에 대법제자가 장쩌민을 고소한 것이 무슨 ‘무고’냐 ‘함부로 고소’냐 등 파룬궁을 모욕하는 사진이 나타났어요. 이런 사진은 위법이니 찢어버리길 바래요”라고 했다. 그녀는 바로 “그런 일이 있었나요?”라고 말하며 아래 직원보고 찢어버리라고 했다. 세 명이 함께 나갔는데 게시판 앞에 서서 감히 찢지 못하고 이것은 ‘상급’ 지도자가 붙이라고 했다며 찢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아직 진상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고소장을 줄게요. 천천히 봐요”라고 했다.

그녀는 한 페이지를 보자 “쓴 수준이 높네요. 지금 바쁜 일이 있지만 이건 보기 좋아요”라고 했다. 그래서 고소장과 함께 공안부에서 반포한 14가지 사교 리스트 자료를 주어 파룬궁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기타 관련 진상자료도 줬다.

자료들을 그녀에게 대략 일주일 놔뒀다. 이 기간에 마음에 일부 파동이 생긴 적이 있다. 요즘에 감시가 심한데 그녀가 상부에 보고하지 않을까 등 좋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매우 빨리 그것들을 부정했다. ‘그녀가 만약 상부에 보고하면, 고소장을 그들의 상사에게 보여주면 좋은 일이 아닌가? 또한 진상을 전하는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볼수록 좋고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수록 좋다!’ 이렇게 생각하자 단번에 마음이 상쾌해졌다.

그 주임이 고소장을 돌려줄 때 “아주 잘 썼어요, 이런 방식을 아주 찬성해요, 요즘 너무 바빠 더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럼 일을 봐요, 이후에 무슨 좋은 것이 있으면 또 보여줄게요.”라고 했다.

하지만 모욕하는 선전 사진은 여전히 있었다. 마음속으로 ‘그러면 제자가 가서 그것을 청리하게 해주세요’라고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어느 날 저녁에 그 사진들을 찢어내려고 준비했다. 그 동안 손자가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날 따라 갔다. 나는 그에게 뭘 하겠다고 했다. 그는 “할머니, 가서 찢어내요, 옆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읽을 게요”라고 했다. 이후에 손자는 내가 선전 사진들을 찢어낼 때 다른 길에는 오가는 행인이 많았지만 우리 여기 길에만 사람이 없다고 했다.

사진을 찢어버리면 주민위원회 사람은 아마 날 의심할 것이다. 만일 정말로 내게 물으러 온다고 해도 그들을 협조하지 않고 “잘 찢었네요, 그건 공덕무량한 일이에요”라고만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에 이 일에 대해 묻는 사람이 없었다. 한동안 지나서 기타 선전 사진을 붙여놓았다.

장쩌민을 고소한 후 아무런 소란도 받지 않았다. 가장 주요한 원인은 신사신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 우리에게 “수련 중에서 마난(魔難)에 부딪힐 때 자신을 닦아야 하고 자신을 보아야 하는데, 이는 구세력이 배치한 마난과 그것들이 배치한 마난 속에서 어떻게 잘할 것인가 하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며,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4]라고 알려주셨다.

만약 속인의 사유에 빠져 실명으로 고소하면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면 구세력이 만든 박해를 승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로 박해를 당할지도 모른다. 수련생과 교류할 때 우리가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은 사부님의 정법이 이 한 단계까지 왔기 때문이고 우리 대법제자가 정법노정을 따라 가야만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배치해주신 수련의 길을 걷는 것이고 사악이 파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박해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에 적지 않은 수련생이 교란을 받았다. 수련생과 이렇게 교류했다.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면 바로 이런 박해를 승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 박해가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해가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 당시 사부님께서 계시는데 누가 감히 우리를 움직이겠는가. 백 분의 백으로 박해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확고한 일념으로 구세력은 감히 날 박해하지 못했고 전화로 물어보는 이런 교란도 없었다. 물론 고소장을 쓰는 과정 중 아주 착실하게 열심히 썼고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수정하고 또 수정했고 사소한 부분에도 가능하게 잘 썼으므로 일정한 전문적인 수준을 보여줬기에 누구에게 보여줘도, 어느 각도에서 봐도 모두 바른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도 우리에게 “물론 이런 일들은 비록 복잡하지만, 심층의 것들은 사부가 있고 또한 다른 신들도 도와서 한다. 표면상의 일 역시 어려움이 매우 큰데, 이것은 여러분들이 마음을 써야 한다.”[5]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법에서 일하고 열심히 하며 거기에 시시각각 사부님의 가지가 있기 때문에 마지막의 효과, 일으킨 작용은 짐작할 수 없는 것이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홍음2-슬퍼하지 말라(別哀)’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5년 뉴욕법회설법’

(밍후이왕 제13회 중국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6년 11월 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밍후이대륙법회>제13회(2016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2/3369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