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明慧법회| 사부님의 위대함, 법의 위대함(1)

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문안인사 드립니다!

전 세계 수련생께 허스(合十)합니다!

대륙법회는 이미 13회다. 매번 부러워하면서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들었고 봤지만 나도 사부님께 보고드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쓰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고 쓸 줄 모르는 것이고 또한 손이 변형됐기 때문에 글씨를 쓰는 것은 나에게 너무 힘들었다. 사부님께 드리고 싶은 말은 너무 많지만 마음속에 간직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다른 수련생이 와서 도와 문장을 써주겠다고 하자 너무 기뻤다. 그러나 격동되자 또 어디서부터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무엇이 생각나면 그걸 말하는 수밖에 없다!

3살 때 반신불수

나는 올해 59세이고 2002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했다. 난 심한 반신불수 환자라 두 다리를 쓰지 못하고 버틸 힘이 없으며 침대를 지탱하고 약간 서있는 것마저 불가능했고 국수처럼 연약했다. 서 있는 느낌이 무엇인지 몰랐다. 다리가 연약할 뿐만 아니라 요추도 연약했기에 등에 물건을 지탱하지 않으면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나의 두 무명골 중 한쪽은 높았고 한쪽은 낮았으며 엉덩이도 한쪽은 높았고 한쪽은 낮았다. 앉을 때 오로지 한쪽 엉덩이만 닿게 된다. 만약 모두 닿게 하려면 몸이 비뚤어진다. 오른쪽 팔은 힘이 없어 오른손으로 반사발 물만 들어도 떨었다. 10개 손가락 중 6개 손가락이 변형됐고 비뚤어졌다. 사지 중 왼손만 그래도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일반 가정의 아이로, 3살 때 한번은 42도까지 고열이 나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는데 맞은 후 온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됐다. 순박한 부모는 감히 병원에 따지지 못했다. 그 세월에 누가 감히 따지겠는가. 내가 반신불수로 되는 것을 눈을 뻔히 뜨고 봤다. 어머니는 “이 아이를 어느 날까지 키울 수 있으면 키우자”고 했다. 얼마 안 되어 머리를 들 수 있고 상반신은 지탱하고 앉을 수 있었으며 왼손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움직이고 싶으면 아주 낮은 의자에 앉고 손으로 움직이면서 기어다녔다. 이후부터 이렇게 살았다.

나는 가족의 걱정거리가 됐다. 금방 철이 들었을 때 어머니의 표정을 내 머릿속에 박아놓았다. 그녀는 멍하니 날 바라보며 내 다리를 만졌다. 커서 자매들이 시집갔다. 어머니는 언제나 “네가 늙으면 누가 너에게 밥을 해주겠니”라고 걱정했다. 어머니는 도처에서 날 입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결국 찾아냈다.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은 고아인데 사람이 좀 모자랐고 가난하지만 건강은 좋았다. 하지만 지능의 제한을 받아 나가서 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이 사지 중 한 곳만 쓸 수 있는 내가 돈 버는 주력이 됐다.

우리는 구운 고구마를 팔았다. 남편이 필요한 물건을 다 준비해 놓고 날 함께 차에 올려놓고 시장으로 보냈다. 나는 팔기만 했다. 과정의 어려움은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런 장사도 할 수 없게 됐다. 바로 1999년 쯤 신체에 또 다른 병이 생겼다. 유방에 탁구공만한 종양이 생겨 쓸 수 있던 팔마저 힘이 없어졌고 하루 종일 약으로 통증을 덜었다. 또 심장병에 걸렸고 위장에 병리변화가 나타나 자꾸 화장실에 가야 했고 온몸이 아파 참을 수 없었고 각 장기도 쇠약현상이 나타났고 하루 종일 혼수상태였다. 자매 집에 먹고 남은 상비약이 있으면 약 이름을 상관하지 않고 가져다주면 다 먹었다. 원래부터 윗부분이 반신불수인데다가 팔도 들 수 없고 온몸이 쇠약해졌다. 사람들은 죽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사는 것이 더욱 힘들다고 생각했다. 장사를 할 수 없지만 수입을 끊기게 할 수 없기에 한 사람을 고용해 좀 장사를 돌봐달라고 했다.

궁지에서 대법을 만나다

생명이 궁지에 이르렀는데 전환기를 맞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2002년 한 파룬궁수련생을 만났다. 그녀는 부지런하고 선량하며 우리를 잘 대했다. 그녀는 파룬궁은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라고 가르쳐주는 좋은 공법이고 매우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연마하고 병이 나았다고 했다. 그녀는 내게 ‘전법륜’ 한 권을 줬다. 책을 받고 이 책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고 나의 이 한 평생의 곤혹, 고통을 다 말해줬을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 배우든 진짜로 배우면 되고 사부님께서 사람의 마음만 본다고 했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뻐서 “내게 사부님이 생겼다! 내게 사부님이 생겼다!”고 했다. 나는 법을 얻었다. 내가 법을 얻은 그날-2002년 추석을 잊을 수 없고 평생 잊기 어렵다.

법을 얻기 쉽지만 배우고 연공하는 것은 힘들었다. 학교를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아는 글자가 몇 개 되지 않아 더듬거렸다. 법공부를 하기엔 너무 힘들었다. 그렇지만 모르는 글이 있으면 수련생에게 물었고 열심히 적어놓았다. 집에서 혼자서 법공부할 때 한 글자 한 글자 대조해가며 배웠다. 초기, 매일 1강 배우기 위해 오후 4시부터 저녁 9시, 10시까지 배웠고 5, 6시간에야 1강을 다 배울 수 있지만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다.

단체 법공부할 때 글을 추가하지 않으면 빠뜨리거나 틀리게 읽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어느 날 만약 외우면 법공부할 때는 틀리게 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먼저 한 줄 한 줄 외웠고 다음에 두 줄 세 줄 외웠고 그 다음에는 한 단락씩 외웠다. 아무리 힘들어도 견지하면서 드디어 ‘전법륜’을 외웠다. 단체 법공부할 때 따라 읽을 수 있게 됐다.

연공은 더욱 힘들었다. 먼저 가부좌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엉덩이 한쪽은 높았고 한쪽은 낮았기에 앉지 못하고 요추가 연약해 바로 버틸 수 없었다. 다리를 지탱할 힘은 없지만 감각은 있었고 아픈 것은 알았고 또 아주 민감했다. 먼저 높은 쪽 엉덩이 밑에 방석을 받치고 허리 뒤에 방석을 받치고 가부좌했다. 진짜로 몹시 아팠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며 엉덩이가 아프고 온몸이 아팠다. 견딜 수 없어 몸이 떨렸고 마비됐으며 온몸에 땀이 뚝뚝 떨어졌으며 10분밖에 견지하지 못했다. 이게 연공인가? 이렇게 연공해서는 안 된다. 수련생들처럼 똑바로 앉아서 연마해야 한다.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엉덩이 밑에 받쳤던 방석을 빼고 허리 위에 받쳤던 방석을 빼고 연공했다. 1분, 2분, 10분 견지했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견지해왔다. 보름 후에 1시간 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됐다.

동공(動功)을 연마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두 팔로 지탱하고 앉았지만 언제나 들지 못했다. 이건 아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견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공할 때 서지 못하면 침대에 앉아했다. 표준 동작을 하지 못하면 얼마만큼 할 수 있으면 그만큼 했고 아무튼 연공했다. 제2장 공법 포륜(抱輪)을 할 때 정말로 어려웠다! 두 손을 힘겹게 들면 1분도 견지하지 못했다.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워도 다시 들었고 힘들어 온몸에 힘이 없어도 계속 들었다. 법공부든 가부좌든 동공이든 억지로 버티고 억지로 버텼다. 무슨 법리를 모르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파도 어려워도 졸려도 억지로 버텼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 법공부하면 졸리고 힘들지만 견지해왔다. 어떤 때 졸려 책이 바닥에 떨어지면 또 주워들고 계속 배웠고 견지했다. 나도 모르게 힘들지도 졸리지도 않게 됐다.

다시 태어나다

법공부하고 연공한지 2개월 쯤 됐다. 어느 날 저녁에 온몸이 아파 견딜 수 없었는데 침을 삼키면 등에서부터 2개의 작은 공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고 또 한 번 삼키면 또 튀어나왔다. 사부님께서 신체를 정화해주신다는 것을 알았고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다.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사부님께서 관할해주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아무리 괴로워도 웃었다. 언제부터인지 유방에 있는 두 종양이 없어졌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온몸이 아프지 않게 됐고 심장병, 위장병, 쇠약함이 다 없어졌고 힘이 생겼다.

게다가 법을 얻기 전 오른손은 반사발 물도 들 수 없었는데 지금 힘이 생겼고 물건을 들 수 있게 됐다. 비록 아직 반응이 원활하지 않고 동작이 느리지만 나에 대해서는 이미 큰 도움이 됐다. 원래 사지 중 하나만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 반을 쓸 수 있게 됐다. 이것을 감히 생각한 적도 없는데 지금은 진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온몸의 병이 없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약 한 알도 먹은 적이 없다. 또 물건을 팔고 장사할 수 있으며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법을 얻을 때 마침 사악이 대법을 가장 심하게 박해했을 때라 온가족은 내가 대법을 연마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러나 내 변화를 보고 온가족은 대법을 지지했고 남편도 자발적으로 과일을 사서 사부님 법상 앞에 놓았다.

아무리 바빠도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았고 시간을 다그쳤다. 행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아침에 다른 사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 바지를 입을 때 먼저 손으로 바지를 다리에 끼어 넣고 팔로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고 손으로 힘을 주어 한쪽 바지를 위로 끌어올렸다. 다시 몸을 다른 한쪽으로 기울이고 다른 한쪽 바지를 끌어올리고 다음에 팔로 몸을 지탱하고 뒤집고 엎드려 손으로 힘을 주어 침대를 붙잡고 다리가 침대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내려오게 한다. 어떤 때 꼭 잡지 못하면 ‘쿵’하고 바닥에 떨어진다. 세게 떨어지면 한참이 되어서야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작은 의자 위에 앉아 조금씩 앞으로 화장실(특별히 만든 변기)까지 기어간다. 세수한 후 또 침대까지 기어간 후 연공했다. 하루 생활과 연공은 행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정상적인 속인보다 4,5시간 더 걸린다. 겨울에 솜옷, 솜바지를 입어야 했기에 더욱 힘들었다.

생활, 일, 수련을 잘 배치하려면 많이 고생해야 한다. 화장실에 덜 가기 위해 물을 적게 마시고 밥을 적게 먹는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도 억지로 참았다. 법공부하고 연공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잤으며 졸리면 억지로 버텼다. 사부님께서는 다시 태어나는 희망을 주셨다.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 줄 몰랐고 사부님 말씀만 잘 들었고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했다. 법을 얻은지 14년이 된다. 법공부, 연공을 하루라도 지체한 적이 없다. 아무리 어려워도 견지해왔고 아무리 힘들어도 웃었다. 법을 얻은 사람이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을 마음에 두다

구도됐기 때문에 나는 아주 기뻐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비록 신체가 건강하지만 아직 진상을 모르는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들을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걱정했다! 그들을 구도하고 싶었다. 비록 걸을 수 없지만 계속 고구마를 팔 수 있기에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대법은 좋아요! 당신들은 알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이런 소원이 있자 인연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왔다. 고구마를 사는 사람은 거의 단골이기에 그들은 이전의 내 정황을 알고 있었고 이후에 나의 정신, 몸의 큰 변화를 보고 모두 아주 신기해서 물었다. 그러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들에게 알려줬고 그들은 듣고 진상을 알게 됐다.

내게 별 두려워하는 마음은 없다. 한번은 남자 몇 명이 고구마를 사는 것을 보고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꼭 진상을 알리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줬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알려줬다. 그들은 동의했으나 표정이 아주 이상했다. 그들이 간 후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그들이 아마 국가보안, 혹은 경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많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의 목숨은 법이 준 것이기에 사부님 말씀을 듣고 사람을 구해야 하며 누구든 다 구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이후에 아무 일도 없었다.

운전 배우기

점차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구마를 팔기에 대다수 단골이라 대부분 사람에게 다 진상을 알렸다. 낯선 얼굴이 매우 적고 더욱 많은 중생을 접촉할 수 없는데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할까? 나는 하루 종일 생각했다. 어느 날 거리에서 달리는 보행자동차에 관심이 끌렸다. 보행자동차는 작고 조작이 간단하고 사람을 태울 수 있다. 마음이 움직였다. 차를 운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도 차는 발과 다리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반신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될까?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날 정말로 차 한 대가 내 앞에서 멈췄다. 자세히 물어보고 관찰해 보니 이런 차는 개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즉 차의 원래 조작시스템은 언제나 발로 어느 부위를 밟아야 하는데 전부 손으로 조작하는 것으로 개조할 수 있다. 듣자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렸다. 희망이 생겼다!

가족에게 말하자 온가족은 “이런 몸으로 어떻게 배워? 배우더라도 차를 몰고 나가면 누가 마음이 놓이겠어? 어릴 적부터 클 때까지 바깥세상이 무슨 모습인지를 모르고 길도 모르는데 어떻게? 조금도 움직일 수 없고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50세 넘는 반신불수가 운전을 배운다는 것을 누가 들어봤어?”라고 모두 반대했다. 당시 이미 54세가 됐다. 그렇지만 이것이 바로 내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길이고 꼭 갈 것이고 꼭 할 수 있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움직일 수 없고 어디에서 차를 파는지 모르면 날 도와 사주는 사람이 있고 어떻게 개조할 줄 모르면 누가 도와서 개조해줬다. 모든 것이 그렇게도 우연하고도 순조로웠다.

차는 사왔지만 운전 배우기가 어려웠다. 첫 번째는 어떻게 차에 타느냐 하는 문제다. 이 한 가지 문제만 해도 골치 아프다. 평소는 언제나 휠체어에 앉았다. 휠체어에 올라앉으려 하면 작은 의자로 조금씩 휠체어까지 기어 올라가면 된다. 지금은 차에 올라가려면 먼저 조금씩 휠체어까지 가고 다음에 휠체어를 차 문 앞까지 가서 한 널판자로 휠체어와 차 사이에 넣고 다시 휠체어에 조금씩 조금씩 기어갔다. 널판자를 휠체어와 차 문 사이에 놔두고 휠체어에서 조금씩 차안으로 기어갈 때 ‘쿵’하고 휠체어가 멀리 밀려 나갔다. 나는 세게 바닥에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작은 의자도 옆에 없었다. 남편은 내가 차 사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에 계속 나와 싸웠다. 그래서 운전을 배우는 과정은 남편의 욕을 먹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내가 넘어진 것을 보고 그는 멀리서 “어찌 넘어져 죽지 않아? 넘어져 죽어도 당신을 상관하지 않겠어. 상관하지 않아”라고 했다. 정말로 어려웠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좀 쉬었다가 기어서 작은 의자를 찾고 조금씩 움직이면서 휠체어 앞까지 갔고 또 차문 앞까지 왔으며 널판자를 놓고 또 차 안으로 움직였다. 처음에 힘을 줄줄 몰라 휠체어가 또 밀려났고 또 넘어졌으며 또 기어 일어났다…. 남편은 욕하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기어가고 조금씩 움직였다…. 점차 차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웃이 차를 운전하는 것을 가르쳐줬고 모두 세 번 가르쳐줬는데 모두 하루도 되지 않는다. 개조 차량이기 때문에 모두 손으로 조작할 수 있다. 절차는 이렇다. 왼손으로 클러치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가속페달을 누르면서 왼손이 천천히 클러치를 놔줄 때 오른손으로 가속페달을 리듬 있게 눌러야 하고 동시에 오른손은 왼손의 수요에 따라 리듬 있게 속도를 파악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 또 생겼다. 오른손은 법을 얻은 후 힘이 생기게 됐지만 여전히 반응이 느리고 동작이 민첩하지 못했다. 지금은 차를 운전할 때 오른손이 민첩하게 왼손과 합력해야 하는데 태어나서부터 두 손을 협력할 수 없고 협력해본 적도 없다. 법을 얻기 전에 사지 중 오로지 하나만 움직일 수 있고 10개 손가락 중 6개가 비뚤었는데 지금은 두 손으로 반드시 민첩하게 협력해야 했다.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첫날 이웃이 가르쳐줄 때 그가 차 밖에 외쳤다. “왼손으로 클러치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가속페달을 눌러요.” 어릴 적부터 이런 물건들을 본 적이 없어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그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겨우 좌우를 가릴 줄 알고 왼손으로 클러치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가속페달을 눌렀다. 그러나 오른손의 반응이 너무 느려 잘 되지 않아 리듬감이 없고 민첩하지 못해 왼손과 협력할 수 없었다. 차는 갑자기 아래위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웃은 또 “클러치를 누르고 가속페달을 눌러요”라고 외쳤다.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는지 이 차는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아래위로 요동쳤다. 작은 배처럼 요동쳤고 나는 차 안에서 춤추는 사람처럼 여기저기 부딪혔다. 이웃은 평소 날 아주 존중했는데 이 정도 되니 나에 대해서도 화를 냈다. 이렇게 운전하는데 시동이 또 꺼졌고 도로 중간에 멈췄다. 손이 마비돼 한참 지났는데도 시동을 걸지 못해 다른 사람의 길을 막자 뒤에 기사가 욕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줄곧 날 욕했고 가르치는 이웃도 내게 화를 냈으며 뒤에 막혀있는 차안의 사람도 날 욕했다. 정말로 조급했다! 간신히 길을 비키고 뒷차가 지나가게 했다.

마비되고 민첩하지 않은 손을 보면서 맥이 빠지고 나른해져 핸들에 엎드렸다. 풀이 죽은 나는 ‘이 손이 말을 듣지 않으면 운전할 수 없는데 정말 안 되겠구나’하고 한참 슬퍼했다. 자신에게 ‘포기할 것인가? 포기하면 정확한 것인가?’고 자신에게 물었다. 대답은 ‘아니다! 이렇게 되면 길이 없고 사람을 구할 수 없다. 난 대법제자다! 포기하겠다는 일념을 가져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을 강박해 거꾸로 생각하게 했다. ‘확고하게 배워야 한다. 반드시 배워야 한다. 이것은 내가 중생을 구하는 길이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 연마하겠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 연마하겠다. 낮에 차가 막히니 밤중에 나와 연습해야겠다.’

이렇게 저녁 11시에 나왔다. 휠체어를 타고 널판자를 놔두고 몸을 천천히 차안으로 움직였고 넘어지면 기어일어나 차를 운전했다. 남편도 따라 나왔지만 도우러 온 것이 아니고 날 욕하러 온 것이다. 이번에는 차가 막히지 않았다. 드넓은 도로에 차가 시동이 꺼지면 또 아래위로 요동치기 시작했고 나는 차 안에서 따라 요동치면서 부딪혔다. 차는 또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또 맥이 빠져 핸들에 엎드려 있었다. 남편은 더욱 화를 냈고 더욱 세게 욕했다.

나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계속 차를 운전했고 차는 계속 쿵쿵 퉁퉁 아래위로 요동쳤다. 맥이 빠졌다가 기어일어났다 하며 계속 의지력을 강화했다. 사부님께서 “그러나 거꾸로 말한다면 또 당신의 의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의지를 당신 자신이 가서 닦아야 하지 않는가? 자신의 의지를 강화하고 그것을 억제함이 바로 의지를 강화하는 것이고 역시 수련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목숨을 사부님께 맡기고 사부님 말씀대로 중생을 구도하고 운전을 연습하겠다.

누가 생각할 수 있으랴. 보름도 안 되는 사이에 오른손이 민첩하게 됐고 왼손과 협력해 리듬감 있게 가속페달을 누를 수 있게 될 줄이야. 오른손이 민첩하게 됐고 사지 중 지금 뜻밖에 두 개를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현대의학도 영원히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보름 만에 운전을 배웠다. 다른 사람이 그러는데 정상적인 일반인도 3개월은 배워야 도로에서 달릴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보름 만에 배웠다. 다시 한 번 대법의 초범성과 사부님의 가지를 체득했다. 나는 몹시 기뻐했다! 기뻐서 정말로 표현할 수 없다. 사부님께 대한 감사를 표현할 수 없다! 반신불수인 54세 사람이 차를 운전할 수 있고 스스로 집문을 나갈 수 있게 됐다! 무슨 두려움, 고생, 어려움, 위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겠다. 난 대법만 갖겠다!

(계속)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미국법회설법-뉴욕좌담회설법’

(밍후이왕 제13회 중국 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6년 11월 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밍후이대륙법회>제13회(2016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1/3369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