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明慧법회| 금강처럼 굳은 의지로 대법을 수련하니 가정과 만사가 형통

글/ 중국 대법수련생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010년에 법을 얻은 후 5년 수련과정 중 기쁨과 슬픔, 고생 및 낙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중 일부를 여러분과 교류하려고 하니 적절하지 않은 곳은 자비로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기이한 인연으로 법을 얻다

어렴풋한 기억에 나는 어릴 적부터 아주 강렬한 느낌이 있었는데 마치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2008년 나는 억울하게 구치소에 가게 되어 그곳에서 대법제자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대법 진상을 이야기해주었는데 대법의 아름다움과 사부님의 자비를 들었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강렬한 감동을 느꼈고 격동됐다.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것이 파룬따파라는 것을 알았다. 리(李) 대사님은 바로 내가 찾으려 했던 사부님이시다.

말하자면 신기하게도 구치소에 가기 전에는 파룬궁에 대한 그 어떤 부정적인 정보를 듣거나 접하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 고의로 중국공산당이 대법에 대해 마성적으로 선전한 것을 나와 갈라놓은 것 같았다. 나는 1위안짜리 지폐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위에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가 적혀 있었다. 비록 아주 낡은 돈이지만 나는 한 번 읽고 매우 마음에 들어 그 돈을 소중하게 보관했다. 때문에 대법제자가 진상을 이야기해도 어떠한 장애가 없었고 거의 무엇을 말하면 그대로 믿었다. 매일 가장 좋아하는 일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성심껏 읽는 것이었다. 읽을수록 기쁘고 즐거웠다. 이렇게 나는 파룬따파와 연을 맺었다. 나는 속으로 금생에 반드시 파룬궁을 수련하겠다고 결심했다.

이상하게도 내가 대법을 수련하겠다고 결심한 그때부터 언제나 각종 사람들이 주변에서 대법에 대한 나쁜 말을 했다. 수련하면 이렇고 저렇고 하면서 감옥살이를 한다고 했다. 내 마음은 이런 것에 동요되지 않았고 속으로 ‘만약 정말로 옥살이를 한다면 그것은 내가 파룬궁을 위해서 바른 말을 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 달 남짓 감금됐고 증거가 부족해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구치소에서 나온 후 ‘전법륜’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 중에 어디에 가서 대법제자를 찾을 수 있는지 몰랐다. 그리하여 롄화(蓮花)산에 가서 여러 신들에게 절하면서 진정한 불법(佛法)을 찾아주기를 바랐다. 또 소원을 비는 나무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걸어놓았다.

1년 동안 찾아다니고 기다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남자친구와 함께 연례 전국예술박람회에 참가했다. 그곳에서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이끌리듯이 한 화가 옆으로 가게 됐다. 구치소에 있을 때 대법제자가 이 여 화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미모가 고귀해보였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내재적 온순함과 수려함을 겸비했다고 들었다. 호기심에 인터넷에서 그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그녀의 이름과 미모를 기억했다. 이렇게 이 기연은 이어져갔다.

이 여 화가는 나에게 2008년도 션윈 CD를 주었다. 다 보고 그날 저녁 꿈을 꾸었는데 나는 하늘로 올라갔다. 으리으리한 천궁, 날씬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선녀들, 튤립송이만한 금빛 우담바라 꽃 등 한 번도 본적 없는 하늘 밖의 기이한 광경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고 일부는 아직도 새롭다.

나의 간절한 요구에 의해 며칠 후 끝내 보서 ‘전법륜’을 모셔왔다. 그날은 특별히 바빴는데 집에 오니 11시쯤 됐다. 씻은 후 보서를 받쳐 드니 마침 12시 종소리가 울렸다. 사방에서 환호소리가 들렸는데 이날은 2010년 1월1일 새해였다. 나는 이것이 나를 위해 환호하는 것 이라고 느꼈고 내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은 이날부터라고 생각했다.

나는 ‘전법륜’에 이끌렸으며 읽을수록 빠져들었다. 그 다음날 저녁 거의 다 읽었을 때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 육체는 자고 있었지만 원신(元神)은 아주 또렷했다. 나는 파룬 3개가 배 위에서 일자로 줄지어 선풍기처럼 돌아가고 바탕색이 흰색인 것을 보았다. 깨어났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파룬이 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전법륜’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이 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고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격, 진동은 형용하기 어려웠다. ‘나는 이 법을 찾기 위하여 살고 있지 않았을까? 생생세세에 모두 찾아다닌 것 같았는데 오늘 끝내 찾았구나. 오래전 세상에 내려올 때의 비장한 장면들이 꿈속에서 재현됐다.’ 수많은 부처가 이 세상에 내려올 때 그 확고부동함과 호탕하면서도 비장한 장면은 인류의 언어로는 형용하기 어려웠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부친께서 내 뺨을 세게 때리다

법을 얻은 지 2개월이 채 안 되어 가족에게 속아 집으로 와서 대법을 포기하라는 협박을 당했다. 그것은 정말로 큰 고비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아버지가 큰 산이라고 느꼈고 나의 가장 유력한 의지처였다.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우리를 돌보실 수 없어 우리 형제자매는 거의 모두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아 성장했기 때문에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잘 따르고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았다. 내가 영리하고 자상했기에 가족 중에서 아버지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다. 내가 무엇을 하려하면 아버지는 거의 다 해주셨고 만약 아버지가 반대하면 나도 제멋대로 하지 않았고 뜻에 따랐다. 때문에 내 기억에 아버지가 한 번도 나를 욕하신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수련을 시작하자 아버지에게 욕을 먹고 한 대 맞을 줄을 어찌 알았을까? 온 가족이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내심 슬프고 처량한 마음이 들어 슬프고 분해서 당시 사부님의 한 구절 법만 생각났다. “하나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1] 나는 이 한 구절의 법을 사수하고 그 비참하고 분노가 섞인 원망하는 마음을 내리눌러 자신에게 부정적인 생각이 생기지 못하게 했다. 명백한 그 일면은 나에게 내가 만약 포기하면 우리 가족은 영원히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오직 법 중에서만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그들을 구도할 때까지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안 좋을 때는 하마터면 가족에 의해 세뇌반에 갈 뻔 했을 때였다. 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결연한 것을 보고, 또 수련하다 이후 잘못 깨달은 사람들이 이해 못할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내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생각하셨다. 가족들은 나를 더욱 의심하고 어디를 가나 제한했다. 당시에는 진짜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백가지 고생이 한꺼번에 내리거니’ 같은 심정이었다. 나를 부모님께서 키워주셨기에 내 성격이나 성품이 어떤지 가장 잘 아실 텐데 왜 그러시는지 줄곧 이해되지 않았다. 더구나 어머니는 그렇게 고생스럽게 인간세상의 고초를 다 겪으며 보살님의 은덕으로 나를 가지게 되어 어머니의 생명에 희망을 주었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리고 아버지와 같은 입장에 서서 덮어놓고 반대하셨다.

가족의 태도와 수단은 문화대혁명 당시 모녀가 서로 미워하고, 부부가 서로 원수가 되며, 가족들이 서로 싸우는 비참한 정경을 이해되게 했다. 공산당 문화에 세뇌된 사람들은 사실과 이유를 이성적으로 찾을 수 없고 선악과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며 중국공산당의 탄압 소리만 듣고 사실 앞에서도 믿지 않으며 공정함도 말하지 못한다.

나는 심사숙고 해보았다. 결론은 대법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얼마나 어렵든지 나는 이 대법을 수련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속으로 가족들이 날 이렇게 대하면 나도 미련이 없었기에 가출을 생각했고 대법만 수련할 수 있다면 밖에 비바람이 분다 해도 감수하겠다고 생각했다.

치욕을 참고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다

내가 가출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중풍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셨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파룬궁을 수련하더니 집마저 버리고 부모님의 건강도 돌보지 않는다고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3]라고 알려주셨다. 나는 가족도 바르게 하지 못했는데 무슨 저력이 있어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데 대해 부모님은 시종 안심할 수 없을 지라도 나는 아버지의 요구를 받아들여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를 보살피기로 결정했다. 나는 확고하게 대법을 수련할 것이지만 무정한 사람이 아니고 바로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나는 더 좋아졌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가장 좋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의 친지와 친구의 영예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려 했다.

나는 집에 와서 정착하고 임시 일자리를 찾았다. 이렇게 나는 내 공간이 생겨 24시간 동안 모두 가족의 감시를 받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요구하셨고 나는 내가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들이 이익을 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전의 논쟁하는 마음을 바꾸고 행동으로 말을 대신했기에 가족과의 관계도 묘하게 개선됐다. 이웃도 도울 수 있으면 곧 도왔고 나가고 들어올 때 모두 인사를 했으며 노인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했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선행하고 덕을 쌓으며 부모와 어른에게 효도하는 도리를 알려주었다. 점차 나는 그 지역에서 칭송하는 좋은 사람이 됐고 모두들 부러워하며 아버지가 키운 아이가 예의가 바르고 사람 돕는 것을 즐긴다며 좋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듣고 아주 기뻐하셨지만 여전히 나의 수련을 반대하셨고 토론할 여지가 없었다.

어머니의 건강은 점점 좋아졌고 어느새 일 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내가 비록 이전처럼 논쟁하지 않지만 파룬궁을 수련하는 태도가 하루하루 더 확고한 것을 보셨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며 나와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후부터 나는 이전처럼 그렇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전에는 잠도 자지 않고 밤중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말하지 않고 속으로 이후에 내가 이전보다 더 좋아졌다고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생각하고 나서 나에게 “매일 온 가족이 모두 너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니? 나는 이미 너를 어찌할 방법이 없구나. 가라. 그러나 꼭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나는 듣고 속으로 말할 수 없이 기뻐서 머리를 끄덕였다.

이렇게 나는 정정당당하게 수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동생이 대법의 길에 들어서다

내가 정정당당하게 수련할 수 있게된후 남동생과 조카딸 그리고 부모님은 기회와 인연이 딱 들어맞아 모두 내 옆으로 왔다. 대법의 아름다움은 나와 다른 수련생들을 통해 조금씩 그들 마음에 침투했고 공산당 문화의 해독을 받은 그들의 마음을 용해시켰다.

남동생이 이로움을 가장 크게 얻었다. 나와의 관계로 여러 수련생을 접촉했고 그들은 여러 각도로 그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점차 그는 대법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있게 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대법의 길에 들어섰다. 지금 그는 대법에 대해 아주 확고하다. 근기가 좋기 때문에 대법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일반 신수련생을 초월했다. 또한 사부님께서 그에게 한 쌍의 혜안을 주셔서 그는 한 눈에 사람의 성품, 됨됨이, 성격 특징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또 꿈속에서 나와 그의 전생의 관계를 보았다. 원래 그는 전생에 나의 아들이었다. 어쩐지 나는 그를 엄마처럼 아주 귀여워했고 잘 포용할 수 있었다. 남동생은 수련해 그의 고집, 제멋대로 하는 것과 조급한 성격을 고쳤고 충동적인 성격과 술을 마시는 나쁜 습관도 고쳐서 부모님에게 아주 큰 위안이 됐다. 현재 그는 효도를 맡아 집안을 아주 잘 안배한다. 부친은 어릴 적부터 우리가 자라는 것을 지켜본 큰 이모에게 “나는 아들이 변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좋게 변해 이렇게 안심시킬 줄은 생각지 못했어”라고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지금 아버지는 사람들을 만나면 곧 아이들이 어떻게 효도하는지 말하고 얼마나 행복한지 말한다. 어머니는 우리를 보면 얼굴에 행복한 웃음을 지으신다. 비록 지금 집이 부유하지 않고 생활이 여전히 아주 빠듯하지만 우리의 정신은 아주 충족하고 행복하다. 나는 중국의 가화만사성이라는 그 속담을 믿는다.

확실히 그랬다. 지금 우리 집에는 연공인이 두명으로 그 불광이 널리 비치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오빠네 일가족이 모두 변하다

오빠는 줄곧 가족들의 근심덩어리였다. 상습적으로 도박을 할뿐만 아니라 늘 가족에게서 이득을 보려하고 밖에서는 사람들에게는 대범했으나 가족에게는 인색했기 때문에 늘 작은 이익을 위해 아버지와 다투었다. 거기에 오빠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여러 해 아팠기에 집이 가난해 끼니를 때우지 못했다. 부친은 생계를 위해 부득이 고향을 떠나 밖에서 생계를 도모했다. 이후에 어머니를 데려갔기에 오빠만 집에 남게 됐다. 아버지가 일자리가 안정된 후 곁으로 데려갈 때까지 고아처럼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고 아는 척하는 사람이 없어 늘 학교를 무단결석했다. 그동안 오빠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기다 나와 여동생, 남동생이 태어난 후 우리집은 점점 부유해져서 우리 셋은 요구하는대로 다 얻을 수 있었고 특히 남동생은 부모님이 떠받들며 키웠다. 먹는 것도 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먹여 오빠의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가 아버지의 성격이 충동적이어서 일을 극단적으로 처리하고 이익을 중히 여기셔서 오빠와의 관계에서 줄곧 많은 갈등을 일으켰다.

오빠와 새언니의 관계는 아주 나빠 항상 돈 때문에 큰소리로 싸우면서 아이들을 돌보지 않아 조카와 조카딸은 마음이 답답해 둘 다 모두 집을 빨리 떠나려 했다. 조카딸은 자폐증에 걸려 외부인과 일체 접촉을 거절하고 길을 잃을까 봐 버스 타는 것마저 걱정했다.

내가 조카딸을 나에게로 데려왔을 때 그녀는 16살이었다. 그러나 이미 얼굴이 우울해있었다. 나와 남동생은 늘 그녀를 격려해주었고 대법의 법리에 따라 그녀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었다. 반년 동안의 노력으로 조카딸은 마침내 정상을 회복했고 지금은 강하고 활발하다. 어느 날 그녀는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고모, 다른 사람들은 나를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어떻게 알겠어요?” 지금 조카딸은 철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을 독립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자신이 벌어서 공부하고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게 한다.

조카는 여름방학 때 나에게 왔다. 가정과 사회의 원인으로 그의 가치관은 비뚤어졌고 이 세상에서 오직 돈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겼다. 정확한 인생관이 없었기에 그는 인터넷게임에 빠져서 나오지 못했다. 비록 그는 아주 총명하지만 그것은 약은 것이고 이익을 따지는 총명함이었으며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지 못하고 가족에게 적대감이 있었다. 때문에 밖에서 늘 난관에 부딪히고 일이 순조롭지 못했다.

나와 남동생은 그가 난관에 부딪힌 일을 통해 천천히 그를 인도했고 그에게 진정성, 선량함, 참고 양보하는 것이 일을 처리할 때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원칙과 태도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가 이번에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나에게 “여기서 저는 제가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요!” 방학 내내 그는 아주 말을 잘 들었고 열심히 그림공부를 하면서 인터넷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와 남동생은 아주 바빠서 그를 보살필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한쪽에서 우리를 기다렸고 우리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했다. 이것은 나에게 사부님께서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의 법을 생각나게 했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최소한 당신이 지닌 에너지마당은 당신 온 가족에게 모두 유익하다. 당신은 정법(正法) 수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닌 그러한 자비하고 상서로운 힘은 모든 바르지 않은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

이번에 아이가 집으로 돌아간 후 오빠는 아들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남동생이 전화통화를 해서 아주 많은 말을 했는데 그는 이전에 잘못한 것을 말했고 고치겠다고 말하면서 가족에게도 잘하고 부모님께도 잘해드리겠다고 했다.

오빠의 전화를 끊고 남동생은 즉시 나에게 전화했다. 내 목소리를 듣자 그는 울먹이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울면서 기뻐서 “누나 이것은 기뻐서 우는 거야, 금방 형하고 통화했는데 나와 많은 말을 했어. 나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우리 가족이 오늘처럼 되기를 고대했어. 형이 고칠 수 있으면 우리 가족은 화목할 수 있어.” 나는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불광이 비친다는 것이야, 이것은 우리 둘이 수련하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역사상 얽히고설킨 정을 해결해주셔서 우리 가족의 오늘이 있게 된 거야!”

사부님께서 우리 온 가족을 보호해 주시고 계시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4]는 것은 우리집에서 여러 차례 나타났다.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우리 가족을 보호해주시고 계신다.

작년에 하이난(海南)에 큰 태풍이 발생했다. 관리가 허술한 건물들은 모두 바람에 부서졌다. 그러나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오빠네 집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날 묘하게 한 대의 큰 컨테이너 차량이 그의 문 앞에 서있어 큰 바람을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또 아버지가 올해 농장을 하려고 길을 넓힐 때 길가의 풀을 태우다가 화재가 나서 다른 사람의 숲을 2무(畝·1무는 약 667㎡)나 태웠다. 농장 주인은 우리 아버지가 연세가 그렇게 많은데도 필사적으로 불을 꺼서 과로하고 연기를 마셔 폐병이 재발한 것을 보고 줄곧 아버지의 건강상태를 지켜보면서 최소한의 배상금인 고작 1500위안을 배상하게 했다. 이것은 내 예상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폐병이 도져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아버지의 이런 상황이면 보통 폐암으로 되는데 아버지는 폐에 약간의 염증이 있는 외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나와 남동생은 모두 알았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재난을 해결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폐병이란 관을 넘게 해주셨다.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아버지의 난관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 한 차례 사건을 통해 어머니는 대법과 사부님을 아주 신임하게 됐고 매일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염하신다.

그날 남동생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가 이미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처음에 아버지는 조금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남동생은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이전의 아들을 원하세요? 지금의 아들을 원하세요? 이전의 아들을 원한다면 저는 지금 이전의 아들로 돌아갈게요”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고 어머니는 결단력 있게 지금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어머니, 남동생, 내가 모두 기뻐하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말없이 허락하셨다.

이 몇 년 동안의 수련을 돌이켜보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먼저 이 일부분을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도움과 관심에 감사드린다. 나 이 신 수련생에게 이 짧은 몇 년 내에 정법노정을 따라 올 수 있게 해주시고 대법제자가 되게 해주신데 감사드리고 자신의 사전(史前) 큰 염원을 실현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은 나에게 비할 바 없는 영광이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각지 설법 5-2005년 캐나다 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마음고생’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서: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12회 중국대륙 대법제자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5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明慧중국법회>제12회(2015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10/3186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