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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도 오지 않는 종결’을 다시 논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의 이 문장을 보고 깊은 감수를 받았다. 비록 법리상에서 정법시간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지만 이 몇 년 동안 실제 정법수련 중에서 사악의 압력 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이런 집착에 움직이고 이런 잘못된 사상이 노출됐을 때 바로 그것을 제거하고 배척해 제고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임하고 그것을 따랐는가.

예를 들면 어떤 수련생은 스스로 정법시기가 언제 종결되는지 추정하고 일시적인 생각으로안배하는데, 법을 실증하는 일을 정법이 종결될 때까지 하려면 얼마만한 돈을 준비해야 지탱할 수 있는지 추정한다.(나 자신도 이런 아주 좋지 않은 생각이 있기에 이 기회를 통해 내놓고 제거하려 한다.)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의 경문을 읽을 때 순수한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부님 말씀 중에 종결을 암시하는 시간과 계절을 찾거나 혹은 사부님께서 아무리 길어도 몇 년이 되면 종결된다고 하셨는지를 느끼며 속인 마음으로 상상한다. 자신이 법 중에서 생각했던 종결 시간이 됐는데도 종결되지 않으면 또 실망한다.

이 여러 해 동안 많은 수련생들이 정법의 종결시간에 집착하다 떨어져 수련을 포기하고 심지어 반면으로 나갔다. 또 많은 수련생들이 잠재의식 속에서 정법시간에 집착해 넘어지거나 매번 실망 중에서 나태해지고 엄중하게 소침해지기도 했다. 총체적으로 지금은 아주 느슨한 환경이지만 오히려 99년 당시에 하늘을 뒤덮은 사악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이 올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던, 하늘을 진동하는 용기와 정신을 상실했다.

또 사악이 제거되고 형세가 급격히 변하고 있으며 자신을 잘 수련해 중생구도의 시간이 곧 종결되는 관건적인 시각에 빨리소침한 상태에서 걸어 나와 수련 당초의 심태로 중생구도를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세에 휘말리고 있어 오늘은 누가 반부패로 무너지고 내일은 또 무슨 소식이 있다며 관심을 갖는다. 사악한 공산당 매체에 장(江) 두꺼비(장쩌민)를 겨냥해 비판적인 소식이 실리자 기뻐하고 곧 종결되는 느낌이 들어 고생스러운 나날이 곧 끝날 것이라고 속인처럼 생각했다가 열병식에 장 두꺼비가 나온 것을 보자 실망을 금치 못한다. 이것이 수련인인가? 이것이 수련하는 것인가? 위대한 사존께서 우리의 수련과 중생구도를 위해 거대한 감당으로 시간을 연장해주셨는데 우리는 아낄 줄 모른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생각하신 것을 생각하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은 사부님의 원래 뜻과 정반대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위험하지 않은가? 엄중하게 법에 위배되는 이러한 집착은 수련생이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함께 회고해보자. 2000년 9월 26일 밍후이편집부 문장, ‘엄숙한 가르침-사부님의 최근 한 차례 말씀을 기록하다’ 중에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마난의 엄중한 고험 앞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 사람들과 각종 구실로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감추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마음이 아프다. 또한 그들은 사람의 가장 교활한 심리로 말한다. 걸어 나오는 것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고 사람과 싸우는 것이라는 등등이라며 이런 구실로 자신을 속일 뿐만 아니라 걸어 나오려는 다른 사람들도 동요시키고 있다. 어떤 사람은 또 말한다. ‘사부님께서는 왜 이 일을 빨리 종결하지 않으시는가?’ 나는 사람의 말로 그들에게 한 마디 하려 한다. 이런 사람들은 뻔뻔스럽지 않은가! 마난 중에서 박해를 받고 있는 그런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바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사람 중에서 걸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대법제자 단체는 당연히 16년 동안 간난신고를 겪으며 조사정법하여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오늘까지 왔다. 그러나 사악의 압력 하에 우리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는 아주 나쁜 사람의 마음이 자주 나오는데 우리가 반드시 각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근원이 어디에 있든 사실상 우리 개인의 집착하는 일체와 사람의 마음이 오늘날 사악의 박해를 너무 중하고 크게 본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 자신의 이해로는 오늘날 사악의 표현, 환경을 크게 보면 그것은 크고 심지어 산처럼 당신을 짓누르는데 매우 고통스려울 것이다.그래서 마음에서 언제나 빨리 종결되기를 기대한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면 사실상 그것은 바로 아주 작게 변해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관건은 당신이 사람의 마음으로 대하는가, 아니면 정념으로 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당신이 사람의 기준으로 보는가, 아니면 생사를 내려놓고 신의 일면으로 보는가 하는 것이다. 일은 상대적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이라고 느끼지만 사실은 더 높은 각도에서 보면 좋든 나쁘든 모두 속인이다. 또 예를 들면 우리가 16년의 간난신고 속에서 시간이 아주 길다고 느껴지지만 지나고 나면 한순간이다. 아무리 큰 고생을 했다 하더라도 하나의 꿈과 같다. 역사의 각도에서 보거나 우주의 무한히 긴 시간으로 말하면 이 시간은 더욱 보잘 것 없다. 마난 중의 고통도 마찬가지로 만약 자아를 뛰어넘고 자아 명리심의 틀에서 벗어나 더욱 높은 각도로 본다면, 자신을 한 개 우주의 왕 혹은 주역의 각도로 본다면 그것은 갈수록 작아지는데 그것을 난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무슨 난이겠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밀종의 밀레르빠가 수련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가 당시 수련한 그 법은 여래 층차인데 그는 어떻게 수련했는가, 얼마나 큰 고생을 겪었는가? 그가 어떤 마음으로 상사(上師)가 말한 법을 대했는가?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추호도 범하지 않았으며 상사의 요구대로 했다. 조금의 그릇된 마음도 없었으며 원망도 후회도 없이 아무리 큰 고생을 겪더라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대법제자로서 더없는 행운으로 만왕의 왕이 될 수 있고 사부님의 제자가 되어 우주 대법 중에서 사존의 무한한 자비로운 보호 하에서 수련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큰 과위를 얻어 자신의 가장 높은 경지로 돌아갈 수 있고 우리 본신이 여러 경지 중의 한 작은 우주의 대표이기에, 반드시 어떠한 태도로 이 일체를 대해야 하고 어떻게 수련하고 어떻게 해야만 이 위대하고 신성한 일체에 부합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사실상 이 위대한 일체를 우리에게 펼치도록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사부님의 거대한 요람 속에서 수련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나는 나의 법신이 당신을 보호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더욱 높은 경지를 말하지 않았으며, 더 큰 이야기는 아직 하지 않았다. 사람은 다른 공간에 모두 신체(身體)가 있기 때문에 매 사람이 그 신체에 일정한 에너지가 있을 때에는 모두 크게 변할 수 있다. 저쪽에서 수련하는 나의 신체는 상당히 큰데, 어느 정도로 큰가?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서 미국에 가신다면 저는 어떻게 연공해야 합니까? 당신께서 저를 보호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나는 법신이 당신을 보호해 준다고 말했다. 사실 또 다른 한 층의 뜻이 있는데, 단지 나의 법신만이 당신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큰 공간범위, 일정한 우주공간범위마저도 아직 나의 그 배(肚子)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신이 어디로 간다 해도 그것은 모두 나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잘 수련하기만 하면 된다.”[1]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높은 위치까지 올려서 앞으로 우주의 수호자가 되게 하려고 하신다. 이 얻기 힘든 환경에서 우리가 성장해 단련하고 성숙되려면 그렇게 큰 위덕을 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이 ‘요람’속에는 우리 주변의 각종 사람, 각종 선악이 표현되는 환경이 있다. 관건은 우리 마음이 이 큰 무대의 배경에 미혹되거나 교란받지 말고 대법의 요구대로 정념으로 일체를 대해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을 반드시 해서 이 연극 무대의 주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배경이 어떻게 사악하든지 사실은 곧 대법을 높게 드러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대극의 주연 대법제자들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사존께서는 시시각각 이 ‘요람’ 옆에 서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 우리 마음에 무슨 마난, 고통 이런 개념이 없어야 하고 반드시 사부님께서 직접 감화시켜주시고 조사정법을 돕게 해주신데 대한 희열과 행운, 영광을 느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말하자면 비록 인류사회에 무슨 집착할 것이 없지만 우리는 위에서 내려왔기에 사부님과 각 층차에서 인연을 맺었고 인류사회까지 내려와 인류사회에서 천만년을 윤회했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바로 오늘날 조사정법하고 중생구도를 해서 자신의 사전(史前)의 신성한 서약을 실현하려는 것이 아닌가? 사존께서 법으로 건곤(乾坤)을 바로 잡아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이 역사적인 시각에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됐고 또 위대한 사존과 함께 있다! 이것은 억겁에도 만나지 못하는 기연이다! 만약 우리가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 잘 할 수 있다면 인간 세상에 있는 이 짧은 시간은 우리 생명 중 가장 소중하고 영예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람 마음이 이렇게 많지 않다면 이러한 복(福)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이기적이지 않다면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곧 이 시간을 아껴 더 많은 중생을 구했을 것이고 빨리 종결되기를 고대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양가장(楊家將: 북송의 양씨 가문의 장수들), 악가군(岳家軍: 남송의 악비 가문의 군사들)의 명성은 천고에 남아있다. 우리도 그중 일원이 되어 생명을 무릅쓰고 사부님을 따라 전투를 치렀고 두려움 없이 충성하는 의로움을 펼쳤으며 용감하고 감동적인 한 단락을 역사에 써냈다. 오늘날 우리의 생명도 정법 중에서 대법이 생명을 만들어낸 위엄, 신성함과 휘황찬란함을 펼쳐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파룬따파의해-베이징(北京) 法輪大法 보도원회의에서 하신 건의’

문장발표: 2015년 10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0/15/3175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