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역시 종결과 시간에 대한 집착을 논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법을 배우며 법으로 자신을 연마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는 것이다. 사상에 반영된 생각은 법에 부합되는 정념이 아니면 자신이 아직 잘 연마하지 못한 일부분 혹은 마귀의 방해로 생긴 사악한 생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사상에 반영된 모든 생각을 법으로 대조해 봤다. 사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고 그 한순간의 일념이면 해결된다. 현재 자신이 있는 층차에서의 법에 대한 인식으로 일념이면 이 생각이 법에 부합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있다. 관건은 법으로 대조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 수련은 바로 법에 부합되지 않는 생각을 찾고 없애는 것이 아닌가? 그럼 평소 그것을 찾으려고 해도 찾지 못하는데 저절로 사상에 반영되면 딱 좋지 않은가? 관건은 그것이 법에 부합되는지 되지 않는지 발견하고 그것을 붙잡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붙잡으면 쉽다. 반드시 계속 파고 들어가야 한다. 반영된 것은 이 사상의 근원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끝까지 근원을 찾아내 그것을 파내야 한다.

그럼 종결에 집착하는 이 생각을 만약 계속 파고 들어가면 무슨 결과일까? 만약 당신 스스로도 자신이 원만할 수 있을지 잘 모르며 잘 연마하지도 못했다면 종결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종결하면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이 잘 수련했다고 생각하고 종결하면 ‘하늘’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야말로 이런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법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어찌 ‘괜찮게 연마했다’고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사실 이것의 근원은 당신이 안을 향해 찾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오직 안을 향해 찾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이 잘 연마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착실하게 연마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문제가 보이고 더욱 높은 층차에서 더욱 높은 법을 인식할 수 있으며 방금 법에 부합되지 않았던 곳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해나가고 부단히 정진하는 것인데 어찌 잘 연마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만약 정말로 안을 향해 찾지 않으면 자신이 잘 연마했고 원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 생각인데 사부님과 법의 표준으로 볼 때 정말로 그러한가? 이 마음 자체가 큰 집착이 아닌가? 엄중하게 말하자면 자심생마의 전주곡이 아닌가?

그럼 시간에 집착하는 것은, 어떤 문장에서 봤는데 이전의 한 수련생이 계속 연마하지 않았는데 그 원인이 바로 사부님께서 늘 곧 종결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언제나 종결하지 않으셨다며 시간에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슴 아픈 심경으로 나는 자신의 층차에서 시간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말해보려고 한다. 이런 몇 가지 내포가 있다.

첫째, 사부님께서는 “대법이 우주 중에서 법을 바로 잡는 일도 곧 끝나게 되었다.”[1]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우리 이 시간의 각도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내가 정법(正法)하는 것도 십몇 년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것이 아주 빠르지 않은가? 실제로 아주 빨라서 바로 이렇게 손을 한 번 흔드는 사이에 이 일체가 완성되는데, 인간의 공간 속에서 표현해 낸 시간적 차이는 바로 십몇 년이다. 게다가 정법 이후의 우주의 전체 시간이 모두 빨라졌다.”[2]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럼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빠르다’의 체현은 그 공간에서의 그런 정황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사부님께서 “결속하게 된다. 당신들은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제자들이 인간에서의 일을 잘 완성하고 진정으로 조사정법의 작용을 일으키면 매우 빨리 종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한 것이 어떤가? 종결하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 자신의 탓이 아닌가?

셋째,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부님께서는 끊임없이 이 공간의 시간을 빠르게 움직여 원래의 몇 분을 몇 년, 심지어 더욱 길게 만드셨다고 생각한다. 그럼 이 시간에 끊임없이 만들어진 세인의 업력을 사부님께서 소업하셔야 한다. 아니면 썩은 사과를 어떻게 남기겠는가? 그럼 사부님의 큰 감당으로 바꿔온 시간을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하는 데 쓰지 않고 아직도 시간에 집착하고 종결하지 않으신다고 사부님을 ‘원망’하고 있다. 그럼 우리가 사부님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가?

이상을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북미순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3-대뉴욕지역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5년 10월 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0/3/3169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