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촨 대법제자
[밍후이왕] 장쩌민을 고소하는 큰 조류가 이미 시작됐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바로는 수련생이 이미 고소장을 보냈고 많은 수련생이 한창 쓰고 있지만 적지 않은 수련생은 여전히 관망하거나 심지어 쓰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말해보려 한다.
1. 두려움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관망하고 무엇 때문에 쓰지 않는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간단한 한 글자가 아니다! 두려움 배후의 요소는 무엇인가? 두려움 배후에 덮어 감추려는 마음은 무엇인가? 박해를 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 현 상태에 만족하는 마음, 가정, 가족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이미 소유한 물질이익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안일한 생활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심지어 손자를 봐줄 사람이 없을까 봐 두려워하고, 자식을 돌볼 사람이 없을까 두려워하며, 업무를 할 사람이 없을까 봐 두려워하고, 농작물을 심을 사람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는 등등등등 각종 위사위아(爲私爲我)의 마음이다. 매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며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도 서로 다르다.
정법 수련은 이미 오늘에 이르렀다. 내려놓지 못하는 이런 집착을 사실 우리는 이미 다시 말하기도 부끄러워한다. 말하기만 하면 모두 마땅히 비웃을 일이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일부분 수련생 중에 오히려 확실히 존재하는 집착이다. 심지어 이런 것이 바로 집착인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천국으로 갖고 갈 수 있단 말인가?”[1]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두려움이 없다면 당신을 두렵게 하는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2]라고 알려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3]라고 말씀하시었다. 우리는 사존께서 말씀하신 이 법에 동화됐는가? 우리의 사상이 어느 한 층 생명에 부합될 때 그 한층 생명은 정말 우리 몸에서 작용을 일으킨다. 우리가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고 정정당당하게 할 때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운 마음, 걱정, 의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할 때는 정말 문제가 나타난다.
두려움은 무엇인가? 두려움은 사람과 신을 분별하는 경계선이 아닌가?
2.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찍 1999년 7.20전에 우리 대법제자가 사존의 법에서 혹독한 시련이 오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한 제자가 사존께 물었다. “사부님께 여쭙고 싶은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됐을 때 그의 제자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청컨대 사부님께서는 세상 사람과 천상(天上)에 전해 주십시오. 우리 대법제자들은 절대로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요.”[4]
99년 7.20후, 얼마나 되는 대법제자가 생사를 내려놓고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는 노정을 걸었는가. 박해가 시작된 후 10여 년이 지났다. 우리는 한 번도 공개적으로 말할 기회가 없었다. 오늘 정법은 이미 마지막에 이르렀고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 길을 깔아 놓으셨다. 오늘 원흉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은 정법의 수요며 이전에 베이징에 가는 것과 같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직접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지하게, 펜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은 무엇인가?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대법제자에게 박해가 종결되고 위덕을 수립할 기연을 주신 것이 아닌가?
3. 고소장은 무엇인가?
사실 나도 이번 박해로 인해 집착이 증가한 한 사람에 속한다. 각양각색의 마난을 겪고 한 차례 한 차례 불법 감금된 후 나는 구세력에게 매우 강한 두려운 마음을 강요당했다. 이 두려운 마음은 줄곧 내가 정진하는 것을 저애했다. 고소장을 쓰면 반드시 본명과 본성을 써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닌가?
우리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복습하자. “당신들은 늘 나에게 위로 이끌게만 하고 당신들 스스로 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 법을 명시적으로 말해야만 당신들은 비로소 움직이며,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거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는 이런 행위를 수련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관건적일 때, 내가 당신들에게 사람과 결별하라고 하면, 당신들은 나를 따라오지 않는데, 기회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갈수록 크다. 수련 중에 사람의 어떠한 것을 섞든지 모두 극히 위험하다. 사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괜찮지만, 당신들은 확실히 알아야 하는데, 길은 당신들 자신이 선택한다는 것이다.”[5]
고소장은 무엇인가? 고소장은 우리가 엄혹한 박해를 겪은 후 사부님께 바친 한 부의 답안이 아닌가?
4. 밍후이에서 고소장을 보존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밍후이왕이 우리 대법제자의 속인 중의 집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우리 이 대 가정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 매 대법제자에게 자리 하나를 준비하셨다. 우리의 고소장을 보존하면 우리가 있을 지정 좌석이 아닌가? 쓰지 않은 수련생의 좌석은 비지 않겠는가?
‘최초의 집(最初的家園)’이란 노래 한 곡이 생각난다. “빨리 깨어나세요, 나의 수련생, 더는 배회하지 마세요, 더는 관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관망하든지 아직도 길이 얼마나 길든지, 법과 함께 있어야만 오래된 염원을 실현할 수 있어요.” ‘빨리 행동을 하세요, 나의 수련생’, 당신은 사부님께서 빈 위치를 바라보실 때 “빨리 돌아오너라, 나의 아이야”라고 하신 자비로운 부름을 느낄 수 있는가?
2015년 뉴욕법회에서 한 제자가 물었다. “사존께서 우리를 위해 대도무형의 심층 내포를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밍후이왕, 대법학회가 대마두를 고소하는데 관한…..”[6]
사부님께서는 대답하셨다. “그렇다. 마땅히 그것을 고소해야 한다. (뭇 제자 열렬한 박수) 전 인류가 모두 마땅히 그것을 고소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중국인을 해쳤고 그것은 또 많은 세계상의 기타 지역 사람들을 해쳤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두 그것의 거짓말 때문에 장차 지옥으로 끌려가게 됐다.”[6]
사부님께서 법은 이미 모두 똑똑히 말씀하셨다. 우리의 매 대법제자가 모두 행동해 정체협력하고 바른 신의 힘으로 이 박해를 종결하기 바란다.
개인의견해다. 만약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수련생이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진수(眞修)’[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去掉最後的執著)’[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미국중부법회설법’[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뿌리를 캐다(挖根)’[6]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5년 뉴욕법회설법’
문장발표: 2015년 6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6/14/3108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