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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을 해체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모순에 부딪히면먼저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비로소 자신을 찾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안을 향해 찾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한 수련생은 늘 수련생 사이에 문제를 만들고 전에 마찰이 있었던 수련생의 꼬투리를 잡아 악담하고 헐뜯는다. 그녀가 많은 수련생에게상처를 주는 것을보면서 나는 원망하는 마음이 깊게 생겼다. 그녀의 얼굴을 보거나 이름만 들어도 혐오스러웠고 안을 향해 찾는 것을 잊었다. 왜 내가 늘 그녀의 표현을 보게 되고 듣게 되는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최근 주변 수련생과 작은 마찰이 생겼는데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그녀는 늘 거절했다. 내가 그녀에게 번거로움을 가져다 줄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법공부팀에서 수련생이 핸드폰을 지니고 법공부를 하고 자세도 그다지 좋지 않아 수련생을 일깨워주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왜 이렇게 안전에 주의하지 않는가? 왜 사부님과 법에 이렇게 불경한가?’

어쨌든 다른 사람의 언행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의 집착심을 건드리면 불만스러웠고 그를 원망했다. 이 한 점에서 보면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은 일종의 정서이고 정이다. 정의 지배 아래서 일을 만나면 우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고 ‘밖으로 찾는’ 사유방식이 형성된다. 그러나 그것은 근원이 아니고 우주의 법리 ‘진선인’을 완전히 위배한 것이다. 정법 중에서 그것은 마땅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그렇다면 왜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가? 개인 수련의 각도에서 볼 때 우리는 일을 만나면 사람의 각도에서 생각하고, 늘 자아를 견지하며, ‘나의 감수’, ‘나의 인식’, ‘나의 이익’, ‘나의 체면’ 등 사람의 것을 지킨다. 그러므로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근원은 바로 ‘이기적인 마음’이다.

만약 ‘나’의 느낌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각도에 서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고, 수련생을 선의적으로 돕고, 정말로 도울 수 없어도 수련생을 원망하면 안 되고 수련생을 도와 묵묵히 발정념을 하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겠는가?

정법의 각도에서 보면 일부 수련생은 역사상 원한을 맺은 적이 있다. 구세력은 이 점을 이용해 파괴적으로 배치해 일부 수련생 사이에는적거나 많거나 원한이 존재한다. 수련생 사이의 원망은 다른 공간에서 간격의 물질이 생기게 하고 법을 실증하는 표현에서서로 교란을 한다. 특히 지금 사악이 적은 상황에서 원망은 사악의 힘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파괴적인 작용을 하고 일정한 정도에서 대법제자의 정체협조를 교란한다. 원망은 일반적인 표현에서 그다지 격렬하지 않고 대법제자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으므로 소홀히 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법에서 그것의 위험성은 크다.

원망은 또한 대법제자가 안을 향해 찾는 데에 하나의 벽을 형성한다. 그것은 자신을 견지하고 다른 사람을 얕잡아 보는 마음, 선의적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 다른 사람을 관용하지 않는 마음 등 각종 사람 마음과 관계가 있다.

원망도 일종의 부(负)의 생명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일종의 마이며 대법제자가 내보내는 원망으로 그것의 생명을 유지한다. 마음속의 원망을 해체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다시는 대법제자를 가로막을 수 없게 해야 한다.

문장발표 : 2013년 8월 2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8/21/2784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