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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할 ‘수’를 말해보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한 대법제자로서 자신이 날마다 모두 대법에서 수련한다고 여기는 것은 ‘이치상 이렇게 함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내가 처한 층차에서 무엇이 “수’인가라는 나의 작은 인식을 교류하려 한다.

1. 밍후이왕에서 전체 국면과 관계되는 중요한 소식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먼저 대륙대법제자들에게 제공한 아침 연공 방송에 대한 “수”를 말해보자. 2007년부터 밍후이왕에서 박해환경 중의 대륙수련생에게 베이징시간으로 아침 연공을 제의한 후 많은 수련생이 참여하였다. 또 많은 수련생은 밍후이왕의 제의에 따라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각종 이치를 찾아 자신이 “수”를 하지 않은 구실을 찾았다.

밍후이왕 2011년 중요하게 ‘폭죽을 터트리자’라는 문장을 추천한 후 대륙 대법제자들은 자신의 관념과 사람 마음을 포기하고 제때에 밍후이왕의 방향에 협조한 자가 있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자신의 입장에서 밍후이왕이 무엇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문장을 발표했는가라고 질책했다. 이것도 하나의 수련할 수 있는가 수련할 수 없는가, 제때에 정법의 수요에 협조할 수 있는가의 고험이며 가져온 결과도 모두 부동하다. 어떤 수련생은 아주 시기적절하게 잘했고 아주 좋아 마땅히 일으켜야 할 작용을 하였다. 어떤 수련생도 제때에 하였으나 한 것이 순정하지 못하고 일부 사람 마음과 집착을 지녀 구세력에게 틈을 주어 일부는 교란당했다. 어떤 수련생은 하지 않고 강렬하게 밖으로 찾으면서 밖으로 밀며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자신을 실증하고 내부를 교란하는데 썼다. 어떤 사람은 ‘천천히 오고’ 시기를 놓쳐 정법의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2, ‘세 가지 일’을 얼마나 했는가? 혹은 대법제자가 행한 항목에 참가하는 문제에서 볼 때 무엇이 “수”인가를 판단할 수 없다. 참여하는 것과 수련은 갈라놓을 수 없다. 아주 잘 용합되는 것이 바로 수련이다.

사부님께선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마땅히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할 법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부님께선 “당신들이 사람의 상태를 개변하고 이성(理性)적으로 대법(大法)에 대한 진정한 인식으로 승화하려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곧 기회를 잃을 것이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 [1] 그럼 우리가 진정으로 수련에 대한 함의를 이해한 것이 얼마인가? 신변의 이러한 교훈은 적지 않다.

어떤 수련생은 박해당해 세상을 떠났거나 납치당해 박해당했는지를 막론하고 표면에서 세 가지 일을 한 것도 모두 좋다. 그러나 그의 신체에 모두 생각지 못한 박해가 출현하여 그들 주위의 수련생들도 의혹……그들이 그렇게 잘 수련했는데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일이 나타나는가? 수련생들이여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사무아의 정각(正覺)에 도달하라고 하셨다. “수련한 것이 집착이 하나도 없는” 경지에 이르라고 하셨다. 우리는 얼마나 도달했는가? 기타 방면은 모두 잘 수련했다. 또 한 방면 예를 들어 “색욕지심”을 아직도 깨끗이 제거하지 못하여 그것이 어찌 될 일인가? 혹은 표면에는 일하는 것이 기세 드높으나 자신이 근본에서 사람으로부터 신으로 개변하지 못하니 그것을 ‘수’라 할 수 있는가?

일부 수련생이 매우 많은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는 각종 항목을 행하는데 참여하는 것을 포함하여 만약 내심으로부터 근본을 개변하지 못하면 그것은 ‘수’라고 할 수 있는가?

3, 대법을 일반적인 ‘이론’과 ‘지식’으로 여기고 문제에 부딪칠 때 대법에 대조하여 자신을 수련하지 않고 혹은 맹목적으로 대법에 대조하여 다른 사람을 수련하거나 혹은 법을 한쪽에 놓고 자신이 사람 중의 경험과 지식, 사람의 사상관념에 따라 하면 모두 ‘수’와 수를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

사부님께선 무수하게 안을 찾는 법을 말씀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안을 찾으며 모순에 부딪칠 때 안을 찾지 않고 다른 사람을 수련하면 그것은 수련이 아니다 등등은 이미 아주 명확하다. 대법에서 십몇 년 수련하여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정말 매우 많은 순간 모두 ‘수’를 하지 못했다. 곤두박질하며 오늘까지 걸어왔다. 만약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가 없었다면 어떤 모양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이 유혹이 충만한 세계에서 어느 정도로 미혹되었는지 알 수 없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내심으로부터 사부님께서 구도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점화하셔서, 수련 중에 존재하는 문제를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밍후이왕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광범위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 [1]리훙쯔 선생님의 경문 ‘정진요지 – 경고하는 말’

문장발표: 2013년 2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정법수련마당 >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2/21/270247.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