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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저우 신미감옥의 박해로 마비된 위안훙웨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남

[밍후이왕통신원 허난보도] 겨우 45세인 정저우(鄭州)의 파룬궁(法輪功)수련생 위안훙웨이(袁宏偉)는 정저우 신미(新密)감옥에서 박해로 마비되었다. 2011년에 출소했으나 집에서 보살펴 줄 사람이 없어 양로원에 보내졌는데, 2013년 1월 23일 점심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위안훙웨이는 2008년 5월에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 및 불법 감금을 당했고, 2009년에 불법 판결을 받아 정저우 신미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위안훙웨이는 이번에 납치돼 박해를 당하기 전에는 심신이 건강했으나 감옥 안에서 박해를 당해 심각한 병 상태가 나타났다. 후에 또 뇌수술을 받았고, 2011년에는 휠체어에 앉아 출소했다.

위안훙웨이가 박해를 당하던 기간에 그의 모친은 근심과 비통 속에서 처량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연로하신 부친도 역시 중병을 앓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출소 당시에 이미 마비된 위안훙웨이는 억지로 현지 주민위원회에 떠맡겨졌고, 주민위원회 측은 위안훙웨이를 정저우 교외 지역의 ‘톈신(田馨)’ 양로원으로 보냈다.

그 후에 위안훙웨이의 상태가 심해지자 톈신 양로원에서는 또 성 직속 제3인민병원(전 정저우 지질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치를 했다. 응급처치 도중에 위안훙웨이의 기관이 절개되었고 40여 일간의 의료비를 지불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2013년 1월 23일, 성 직속 제3인민병원에서는 위안훙웨이의 상태가 이미 안정되었다고 했다. 그 후에는 그를 다시 톈신 양로원으로 돌려보냈다. 세 번째 날, 위안훙웨이의 친구가 그를 면회하러 양로원으로 갔을 때, 그가 1월 23일 오후에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저우 신미감옥은 허난성(河南省)에서 파룬궁수련생을 감금해 박해하는 가장 사악한 소굴이다. 교도관은 ‘병치료’를 구실로 파룬궁수련생에게 박해를 감행했고, 신체검사 명목으로 몸에서 ‘질병’을 찾았다. 그런 다음 의사와 서로 한 패가 되어 작은 병을 크게 만들고, 심지어는 병이 없는 것이 병이라면서 치료하고 약(무슨 약인지는 모름)을 먹도록 했다. 약을 먹지 않으면 곧 죄수를 시켜 욕하고 구타하며 모욕을 주었다. 감옥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일부 파룬궁수련생을 ‘치료’시켜 몸을 허약하게 무너뜨렸는데, 심지어 불구가 되거나 사망했다.

허난성 싼먼샤시(三門峽市) 천웨민(陳躍民, 48세)는 정저우 신미감옥에서 박해로 목숨이 경각에 달해 집으로 돌아왔으나 계속 중공 각급인원의 끊임없는 교란으로 결국 2011년 4월 26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정저우시 가오신구(高新區) 자오촌(趙村)의 파룬궁수련생 리시루(李西錄)는 2011년 3월에 3년의 불법 판결을 받았는데, 신미감옥에서 박해로 당뇨병 증상이 나타났다. 게다가 점점 심각해져 결국 2012년 3월 9일 저녁에 박해로 사망했다. 광둥(廣東) 잔장시(湛江市) 파룬궁수련생 메이성신(梅勝新)은 2012년에 중국 신년 후에 허난 정저우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가족이 서둘러 정저우에 갔으나 최후의 한번을 보지 못한 채, 시신은 화장되었다. 중공(중국공산당) 당국은 가족에게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위협했다.

위안훙웨이는 심신이 건강했으나 중공 악당(惡黨)의 박해로 마비되었고, 출소한 뒤에 또 610에 의해 함부로 기층 사회로 떠넘겨졌다. 기층의 민중은 격분하고 있지만 감히 말은 하지 못했다.

위안훙웨이가 박해로 사망한 것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무수한 인간의 비극 중 한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이번 인간비극의 재난을 일으킨 주모자로서의 중공은, 잔인하게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을 뿐만 아니라, 또 기층 민중을 핍박해 선량하고 무고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함에 참여했다. 중공이 중국의 모든 국민을 납치해 이번 죄악에 참여시키는 것은 중공이 죽음에 이르러서도 국민을 끌어다가 순장품으로 만들려는 의도인데, 이로써 중공의 사악함을 짐작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13년 2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2/22/2702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