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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창춘 제2기 파룬따파 서화 촬영전을 회억

글/창춘 대법제자

[밍후이망]

1. 창춘 제2기 파룬따파 서화 촬영전

1997년 5월 10일부터 18일까지,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공을 전하고 설법을 하신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창춘시 난링(長春市南嶺) 체육관에서 ‘창춘 제2기 파룬따파 서화 촬영전’을 거행하였다.

이 서화전은 서화계 저명인사들이 앞장서고 창춘 파룬따파(法輪大法) 보도소 총본부에서 주최하였다. 목적은 파룬따파를 널리 알리고 사람마음을 선으로 지향하도록 일깨워주어 도덕이 승화하도록 하고 아울러 민족전통문화예술을 발양하기 위해서였다.

正厅师尊画像
전시관 정면의 사존님 초상화

서화전은 5개 전시홀로 나뉘어져 있었다. 정면에 위치한 큰 전시실을 들어서면 전시판이 진열되어 있는데 정면 중간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대형 법상이 모셔져 있고 오른쪽에는 파룬도형이 걸려 있었다. 도형 아래에 ‘진선인(眞善忍)’세 글자는 황금색으로 빛났고 왼쪽에는 서문(前言)이 있었다. 앞에는 만개한 생화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측면에는 사철 푸른 송백이 그 기품을 드러냈다. 참관하는 사람들은 정면 큰 전시실에서 다시 만나기 어려운 귀한 기회라고 여기며 모두들 기념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전시실은 넓고 환하게 신성하고 장엄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이번 서화촬영 작품은 전국각지에서 출품됐는데 먼 곳은 하이난(海南)에서 오기도 했고 또 동북 3성과 산하 각 현과 지역에서도 출품됐으나 창춘의 작품이 제일 많았다. 어떤 것은 보도소, 연공장, 법 공부 팀에서 올린 것도 있었다. 그 외 한 가정이나 개인의 명의로 출품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모두 규격이 큰 서화들이었고, 어떤 것은 미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을 청하여 그린 것도 있었다. 작품의 양식은 다양했으며 모두들 서도(書法)의 경지에 이른 것들로 그림, 사진, 목판화, 종이공예, 자수, 벽걸이 직물, 비단을 재료로 한 각급의 공예품 등이 많았는데 모두 1천여 점이 넘었다. 전시실의 규모가 작품들을 모두 여유롭게 전시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관계로 전시실 중간에 칸막이를 임시로 설치하여 양면에 작품을 게시했는데도 그래도 장소가 여유롭지 못해 복도에까지 작품들을 가득하게 내걸었다. 이렇게 하였지만 늦게 도착한 작품들은 더 이상 전시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书法作品选

전시된 작품들은 그 규모만큼이나 내용도 다양했다. 사존께서 설법하신 원문의 구절을 직접 써서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공덕과 대법의 현묘한 신기를 칭송하였고, 사존께서 구도하신 은혜에 감사를 표했으며, 또 자신이 대법의 법리를 깨달은 수련의 체득을 표현하기도 했다. 어떤 그림은 연재형식으로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묘사하기도 했다. 몸의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였으며 가정이 화목하고 도덕이 올라가고 등등 …. 작품마다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에 동화하여 마음을 닦고 선을 지향한 것을 체현해 냈다. 매 작품마다 은사와 파룬따파(法輪大法)에 대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 맺히지 않은 것이 없고 모두 자신의 마음으로 쓰고 그리고 제작한 것들이었다. 바로 서화전 개최의 취지를 말한 전언(前言)에서 밝힌바와 같이, 창춘은 사부님의 고향이고 파룬따파의 발원지다. 매 작품들은 창춘의 많은 수련자들이 법을 스승으로 삼으며 법을 배우고 고생스럽게 연공을 하여 마음을 닦아 착실하게 수련한 웅장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충분히 묘사되고 반영되었다. 전체 전시회는 성스럽고 웅장했는데 마치 대법제자가 수련한 한 부의 긴 두루마리와 같았다.

这组连环画讲述了炼功点的蓬勃发展、学员祛病健身、家庭和睦、善待他人、学法悟法的故事
이 한 세트의 연재 그림은 연공장의 활기 있는 발전, 수련생이 병을 제거하고 신체가 건강해졌으며 가정이 화목하고 타인을 선하게 대하며 대법을 배우고 법을 깨달은 이야기를 서술하였다

서화전은 입장료가 없고 비용을 받지 않았다. 모든 세인들을 향하여 정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파룬궁(法輪功) 수련생들은 파룬마크(法輪章)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알 수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수련생이고 또 많은 사람들은 대법의 연분에 따라 온 인연이 있는 세인들이었다. 참관자들은 전국각지에서 모두 왔으며 특히 북경과 천진은 물론 동북 3성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으며 또 외국의 친구들도 찾아왔다. 주차장에는 관람자들이 타고 온 대형 버스들이 한 줄 한 줄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는데 대오를 지어 밤새도록 달려오기도 했다. 노인은 부축을 하고 어린이를 손과 손을 잡고 한 집 한 가정들이 모두 다 몰려왔다.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의 인파는 줄곧 끊임이 없었다. 그 많은 관람객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에 그 큰 전시실은 협소하기만 했다. 그래서 뜨거운 햇볕이거나 쏟아지는 가랑비이거나를 도외시한 채 끝없이 긴 줄을 이어서 차례를 기다렸다. 관람을 마친 많은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잊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교류하며 메모를 남기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参观者在参观、拍照、留言
관람자들이 기념촬영하고 메모를 남기는 모습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공을 전하시고 설법하신 5주년을 기념한 서화 문예교류회

그림 전람회 기간 중에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이 공을 전하고 설법한 5주년 기념 서화문예교류회’를 한 번 개최 하였다.

문예 교류회는 두 번으로 나누어서 했다. 첫 번째 문예교류회에서는 서화 계통에서 온 30여 명의 명인들이 각자 훌륭한 그림의 풍채를 펼쳤는데 그 중 대부분은 모두 파룬궁수련생들이었다. 이 서화가들은 대법의 인연으로 그림전람회에 모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림전시를 관람한 후 흥이 나자 붓을 휘둘러 발묵(潑墨-진한 먹물을 뿌리거나 쓰는 서화법)하여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찬양을 표시하였다.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모두 감동되었고 또 자신의 서화로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한 번 한 폭의 서화작품이 완성되면 높이 치켜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준 후 벽에 매달았다. 명인이 직접 현장에 와서 그린 작품들은 모두 최상급 작품으로 층차가 높고 풍미가 농후하여 일반 서화전에서는 보기 드물 뿐만 아니라 전례가 없는 일이라 대 성황을 이루었다. 문예교류회에서 89세의 서화계 대선배가 사존께 생신의 축하를 올렸고 열 살 되는 어린 제자가 경건하게 진언 ‘진선인’ 세 글자를 썼다. 이처럼 전문가와 유명인사 그리고 민간 서화애호가, 지도 교사, 선배와 학생, 어린이 등 각계의 품격 있는 유파와 전서, 초서, 예서, 해서 등 각종 서법 등을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소재로 공동으로 마음을 쏟아낸 것은 서화계에서는 확실히 보기 드문 일이었다. 파룬따파와 관련된 성스러운 인연은 이처럼 휘황찬란함을 구현하였다.

문예교류회가 끝난 후 한 서화명인이 고가로 이 서화작품들을 매입했다. 그는 이 작품의 진정한 내포와 예술적 가치를 잘 알기 때문이다. 후에 이 작품을 국내에서 다시 국제로 순회전시를 계획하고 준비하던 중 중공(중국공산당)이 박해의 형세로 변하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다.

두 번째 문예교류회는 서화를 애호하는 아마추어 수련생들과 동북 사범대학 예술계통의 학생들이 사부님의 감은(感恩)을 표현하고 자신의 예술재능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마지막에 모아진 작품을 한데 연결하니 35m나 되는 긴 두루마리가 되었는데 아주 크고 웅장해 보였다.

이번 동북 사범대학 예술계통의 수련생들은 정말로 좋은 행운을 만난 것이다. 졸업하기 전에 이번 서화전에 참가하여 심성의 제고와 예술을 실천하였을 뿐만 아니라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사부님을 만나 뵌 것이다. 많은 수련생들은 모두 회억의 문장을 썼고 아름다운 순간순간을 남겼다.

그날은 1997년 5월 24일이었고 졸업하고 학교를 떠나게 된 때였다. 한 수련생 집에 여러 수련생들이 모여 있었는데 마침 사부님께서 오셨다. 사부님께서는 침상 한 옆에 앉으셨고 여러 사람들은 모두 바닥에 앉았다. 사부님께서는 매우 많은 말씀을 하셨다. 그때 동서양의 문화예술의 발전과정과 예술을 찬미하는 말씀을 하셨는데,‘2003년 7월 21일 미국워싱턴 특구 미술창작 연구회 설법’에서 집중적으로 말씀하시기 전에 이미 이곳에서 그 문제를 말씀하셨다. 특히 파리의 예술을 찬미하셨고 또 여러 사람들이 기회가 된다면 모두들 파리로 가서 직접 보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또 이 수련생들이 장래에 미술 전업을 할 때 지향해야 할 문제와 그 작용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수련생들은 일부 수련과 관련된 문제를 질문했는데 사부님께서 하나하나 자상하게 해답해 주셨다. 끝난 후 사부님과 모두들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눈물 닦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창춘에 돌아오셔서 대법 제자들이 개최한 서화전을 칭찬해 주셨다. “공덕이 무량하구나, 공덕이 무량하구나!”라고 하셨다.

제2기 서화전이 이처럼 웅대한 것은 제1기 서화전의 기초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1기 서화전은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공을 배우고 법을 전하신 3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개최되었었다. 1995년 5월 10일에서 14일까지 장춘시 고급과학기술 빌딩 전시실에서 서도(書法), 국화(國畵-현대중국회화 형식), 유화, 판화, 목조, 수채화, 포첩화(布貼畫), 수예품, 종이공예, 비단 소재 작품, 사진 및 각종 수공예품과 그 외 손으로 베낀 ‘전법륜(轉法輪)’및 수정본 ‘전법륜(轉法輪)’등 총 655점이 전시되었다. 5일 동안의 관람자 수는 6천여 명에 달했는데 전국각지에서 왔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第一届书画展参观现场
제 1기 서화전 참관현장

제2기 서화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전람회 기간 중에 성, 시의 각 기공단체와 인체과학연구원 각 위원회의 위원장들이 모두 참석하여 전시된 작품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관찰했는데 이 관람을 통해 전시회와 파룬궁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어 그들의 뜻을 밝혔는데, “리훙쯔(李洪志) 선생께서 사람들에게 심성을 착하게 하고 덕을 중히 여기도록 가르치시어 많은 국민들의 몸과 마음 건강하게 되었고 점점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니 더욱 많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할 수 있도록 확대 발전 시켜줄 것을 호소한다.”고 했다. 이들 책임 있는 각 기관단체의 수장들이 전시회를 관람한 후 참관의 소회와 지도적 작용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서문을 썼는데 이 서문과 그리고 관련된 사진들은 모두 ‘내부자료 특집’ 1995년 7월 18일 제6기 제4판에 “파룬따파가 장춘에서”라는 제호로 실렸다. 정말로 매우 일찍 파룬궁을 이해하고 지지한 친구들이 박해에 연루됨이 없이 파룬궁과 연분을 맺었으니 참으로 행운을 얻은 것이다. 그들은 이 몇 해 동안 박해가 없는 가운데서 대법과 맺은 좋은 인연이 헛되지 않기를 희망했는데 이것도 파룬궁 친구들의 충심에서 우러나는 축원이었다.

《法轮大法在长春》(内部资料

3. 대법제자가 개최한 서화전은 대법의 내포다

전법륜 중에서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을 가장 진귀하게 보기 때문에, 오직 수련하는 사람에게만 움직여 줄 수 있다. 어떻게 움직여 주는가? 만약 사부의 위덕(威德)이 아주 높으면, 다시 말해서 사부의 공력이 아주 높으면 그가 당신에게 소업(消業)해 줄 수 있다. 사부의 공이 높으면 당신에게 많이 없애줄 수 있고 사부의 공이 낮으면 다만 조금 없애줄 수밖에 없다. 우리 예를 들어 말해 보자. 당신의 금후 인생행로 중의 각종 업력(業力)을 모두 집중시켜 그것의 일부분을 없애버리는데, 절반을 없애버린다. 나머지 절반도 당신은 넘지 못하는데, 산보다도 더 높다. 어떻게 하는가? 그것을 무수한 여러 몫으로 나누어 당신이 수련하는 각개 층차 중에 배치해 놓고, 그것을 이용하여 당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게 하고, 당신의 업력(業力)을 전화(轉化)하여 당신의 공을 자라게 한다.”

처음 법을 얻은 한 수련생은 사부님의 설법에 대해 이해를 잘 하지 못하여 생활 중에서 만난 마난을 한동안 돌파하지 못하였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꿈을 빌어 도와 주셨다. “사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를 직관(直觀)적으로 알려주시며 “어떤 장애를 만나도 오직 사부만을 믿고 용맹정진하여 앞으로 계속 나가라.”고 격려를 해 주셨다. 그리하여 이 수련생은 꿈을 통해 보고 느낀 바를 소재로 법리에 대한 깨달음을 나타내는 포첩화(布貼畫)를 제작하였다. 이 포첩화를 본 수련생들은 모두 깊은 감흥을 받아 깨달음을 받았고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은사의 양고용심(良苦用心)과 도화(度化)에 감사를 드렸다.

同修根据梦境制作布贴画
수련생이 꿈을 통해 법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제작한 포첩화(布貼畫)

박해 후, 중공은 관련되는 대법서적, 녹음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 등을 닥치는 대로 강탈했고 또 서화전에 전시되었던 작품과 사진 등등 모두 압수해 갔다. 악인들은 이 작품들을 경찰학교에 나열해 놓고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극히 지당한 일이라며 그 증거로 그 작품들을 ‘증거’자료로 제시하며 세인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 중에 이 포첩화를 제일 앞에 게시해 놓고 “파룬궁이 얼마나 ‘미신’인지 보라.”고 하였다. 사당(邪黨)은 무신론을 추앙하고 신불(神佛)의 진실한 존재를 부정하였다.

세인들이 어떻게 불법의 끝없는 힘과 무궁한 지혜를 알겠는가?! 사부님께서 19년간 법을 전하시며 큰 손을 한 번 휘저으시니 불법은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오늘 다시 본다면 사악의 세력은 아직 남았다 한들 얼마나 남았겠는가? 대법제자들은 12년의 박해 중에서 생사를 내려놓고 사악과 맞서며 얼마나 되는 음산한 안개를 걷어냈으며 인연 있는 사람들을 구도했는가. 침착하고 단호하게 오늘까지 걸어 온 대법의 길, 더 이상 쟁론할 필요가 없는 이 사실은 바로 눈앞에 있다.

중공은 각 기관단체의 단위별로 인원을 구성하여 집단으로 경찰학교에 가서 그 서화작품들이 얼마나 미신적인가를 보도록 독려하였다. 파룬궁을 중상모략하며 보여주는 그 며칠 동안에 대법제자들도 섞여 들어가서 관람했다. 한 무리의 구경꾼들이 돌아간 후에 전시되었던 책과 서화작품들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관람 중이던 대법수련생들이 가져간 것이다. 대법수련생들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한 점씩 또 한 점씩 도로 가져왔다. 어떤 사람은 여행 가방을 들고 갔는데 문을 지키는 사람은 어쩐 일인지 분명히 알면서도 제지하거나 상관을 하지 않았다. 이 작품들이 잘 보관되어 하루라도 빨리 인연 있는 사람과 정정당당하게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작품 중에는 또 수련생이 삼가 은혜로운 마음으로 바친 ‘천제(天梯)’라는 제목의 유화 한 폭이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그 뜻을 음미하게 한다. 그림에는 사다리 하나가 하늘로 직통하고 있고 사다리 꼭대기는 사부님의 큰 손인데 손에 연꽃 한 가지를 들고 계신 모습이었다. 이 유화는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제일 아름다운 과위를 준비해 주셨고 또 대법수련이… 하늘로 올라가는 이 사다리를 놓아주셨으며 수련하는 사람은 오직 끝없이 수련하여 위로 오르면 정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품의 내용이다.

拍摄油画呈现的神奇景象
유화에서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 것을 촬영한 것임

제1기 서화전의 한 작품은 수련생이 천목으로 보고 그린 ‘조회가원도(早回家園圖)’란 작품이 있었다. 그림은 수승하고 신기한 선경을 묘사하였다. 선산면면유원(仙山綿綿悠遠), 누각금벽휘황(樓閣金碧輝煌), 금교연화(金橋蓮花), 옥수백운(玉樹白雲). 융융(融融)한 에너지로 구성된 천국세계에서 신불과 보살이 연화대를 밟고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다. 그 회화 작품은 우리에게 “그곳은 진정한 우리의 집으로 이렇게 아름답고 수승하다. 정진으로 착실히 수련하여 하루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알려 주고 있었다.

同修凭天目所见绘制《早回家园图》
수련생이 천목으로 보고 그린 ‘조회가원도(早回家園圖)’

이 작품은 노년 수련생이 매화를 한 뜸 한 뜸 수를 놓아 그려 만든 작품이다. 십 여 년의 박해 중에서 수련생들이 견정했듯이 마치 그 사나운 폭설에 굴하지 않고 피어난 매화는 여전히 찬바람 속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혼탁한 세상에 맑은 연꽃 억만 매화 찬 바람에 자태가 더욱 어여쁘네.”(홍음2-매화)와 같다. 그 한 땀 한 땀 놓은 수는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에 대한 감은(感恩)이고, 대법에 대해 견정하기가 반석 같은 금강의 의지이며 수련에 대한 용맹정진의 결심이었다. 후에 한 수련생은 이 작품을 찍은 사진 속의 매화꽃이 매 송이마다 모두 금빛 찬란한 부처의 모습인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刺绣梅花图
매화그림의 수예품 ‘오설능상(傲雪淩霜)’

4. 서화전에서 매우 많은 신기한 일이 발생하였다

필자는 이 목판 ‘낙화’를 만들기 전에 성숙된 어떤 완정한 구도를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러나 창작을 시작할 때 먼저 화판 중간에 주존의 법상을 낙화(烙畵-인두화)한 다음 양측에 인물을 각각 낙화하였다. 그 사이에 보살과 신의 풍모는 제각각이었는데 정체구도는 매우 원만하였다. 회화 전시회 기간에 어떤 사람은 이 작품을 보고 “화면 배치가 매우 정교하고 양측에 각각 아홉 분의 보살 나한이 배치된 것이 정확히 불가에서 말하는 제일 큰 숫자와 대응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필자가 그 사람이 평하는 말을 들은 후 자신의 작품을 보고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품을 만들 때는 원래 이런 구상이 없었다.“명명지중(冥冥之中-나타나지 않는 가운데)‘의 배치가 있다.”며 관람자는 신묘한 그림재주에 감탄을 하였다.

木板烙画
목판화

창춘 대법제자들은 이 전시를 위하여 연속으로 7박 7일간을 일했는데 이 기간 중에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어느 날 깊은 밤에 여러 사람들이 몹시 시장기를 느끼고 있는 순간 즉시 어떤 사람 앞에 많은 음식물과 음료수 등이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은 후 서로 “누가 가져온 음식이냐?”고 물어 보았지만 아무도 그 음식이 어디서 누가 가져왔는지를 알거나 본 사람이 없었다. 한밤중에 현장을 떠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이 음식물들은 하늘에서 떨어졌나? 마지막 중론은 인근 상점 주인이(수련하지 않은 사람) 보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음식 대금을 지불하려고 하자, 그 주인은 “당신들 사부님께서 사신 것이에요.”하고 말했다. 이 일은 오늘까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이다.

한 여자 수련생은 휠체어에 앉아 왔다. 전시실에 도착하여 두 명의 남자 수련생이 부축하여 걸었다. 그녀가 전시실에 왔을 때 자원봉사를 하던 수련생은 그녀가 파룬 마크를 부착한 것을 보고 “당신은 이미 파룬궁 수련생인데 왜 스스로 걷지 못하죠?”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을 부축하던 수련생에게 자기를 그대로 놓아두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혼자 한 발 두 발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렇게 걸으면서 기뻐하며 정면의 법상 앞까지 걸어갔다. 그녀는 두 손으로 합장을 하면서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온 얼굴은 이미 눈물로 가득하였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모두 감동되어 함께 울었다. 그녀로부터 들어 알게 된 사연은 아이를 해산할 때 심한 산후풍으로 두 다리가 마비되어 그때부터 걷지를 못했으며 그렇게 단 한 번도 걷지 못해 반신불수가 된지 이미 18년이 되었다고 했다. 길고 긴 18년! 그러나 이 짧고 짧은 단 몇 분 사이에 그녀는 똑바로 섰고 정상적으로 걸어 다니게 되었다. 그 무슨 말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를 드리겠는가!

여러 사람들은 서화전 에너지 마당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전시장 밖 상공에 큰 파룬이 선회하고 있었고 장내 곳곳에 모두 파룬이었으며, 전시된 작품 속 연꽃 그림에도 금빛이 나타났는데 이때 찍은 사진들도 이런 신적(神跡)들이 나타나 있었다.

비록 이 서화전시를 한 현장뿐만 아니고 전시장을 오가는 길에서도 신기한 일이 많았다. 료우베이(遼北) 지역의 대법제자들은 5경(새벽3~5시)에 버스를 타고 창춘까지 직행하였다. 운전기사가 노선에 익숙하지 못해 방향을 잃었다. 탑승자들은 매우 조급하였다. 그 때 인솔책임을 맡았던 보도원이 남몰래 사부님께 “도와주십시오.”하고 청원을 드렸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갑자기 나타났다. 차 앞부분에 금빛 파룬이 계속 선회하면서 목적지까지 인도를 한 후 사라졌다.

전시회가 끝난 후 몇 명의 수련생들이 기차 편으로 귀가하면서 서화전시회에서 찍은 사진을 보았다. 그 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한 중년 부인도 호기심으로 그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그 사진을 보던 부인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했다. 수련생이 탁자위에 놓인 사부님 설법 책을 들었다. 그러자 그 부인이 소리를 지르면서 “내 몸 안의 물건이(구렁이)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 물건이 ‘이 마당은 너무 바르기 때문에 나는 견디지 못하겠다.’라고 말한다.”하고 말했다. 그 부인의 몸에는 원래 큰 구렁이의 부체가 있었다. 이미 그녀를 20년 넘게 따라 다녔는데 평소에 늘 그녀에게 신백낭자전기(新白娘子傳奇)란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수련생들은 이 부인에게 도리를 말하고 또 그녀에게 그 부체는 매우 좋지 않는 물건이며 오직 정법을 수련하면 우리 사부님께서는 당신을 도울 수 있고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라고 말해 주었다. 그 부인은 명백해졌고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부체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다짐의 말을 했다. 우리는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 부인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매우 더러운 많은 것을 토하였고 얼굴은 즉시 불그스레하게 변해 혼탁하지 않았으며 정신도 좋아졌다. 그 부인의 큰 구렁이가 갔으며 갈 때 그녀에게 양심도 없이 “다시 또 만나자.”고 했다고 말을 했다. 그 부인은 사부님의 모든 설법 책을 원하며 청하였고 반드시 대법을 잘 배우겠다고 다짐을 한 후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서화전이 대법홍전에 일으킨 작용은 정말 불가사의(不可思量)하였다. 관람하던 어떤 속인 사람은 즉시 대법 속으로 들어섰고 또 어떤 사람은 계속 인연을 맺었다. 과거에 정진하지 않던 수련생은 촉동을 받아 용맹정진하고, 법리에 대해 의심하던 태도를 지닌 사람은 신념을 견정히 하게 되는 등 전시회를 관람한 사람들은 모두 부동한 정도의 고무를 받았다. 아래 그림은 수련생이 제작한 그림으로 창춘 파룬따파 연공장 분포 도안인데, 1997년 대법이 창춘에 홍전(洪傳)된 형식을 반영한 것으로 이미 곳곳에 꽃을 피웠고 그 꽃이 보이지 않는 지역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중공이 박해를 할 때 창춘시에서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수련생이 8만 명이 넘는 인원수로 집계되었다.(실제 수련자의 수는 이 통계보다 월등히 많았다)

5. 서화전을 전개하는 과정 역시 대법제자들이 수련하는 과정이다

전시회에 참여한 수련생들은 모두 한 번의 단련을 체험했다.

画展前同修们冒雨赶到一个会议室连夜赶制作品
전시회 전날 수련생들이 비를 무릅쓰고 회의실에 와 날을 새면서 작품을 제작하다

대법수련은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서다. 서화전의 전 과정은 정말 수련인의 심성과 경지를 체현하게 했고, 모두 사전에 준비하였다. 현장의 준비과정도 조직적으로 맡은 일들이 있었고 이를 뒤에서 업무적으로 지원하는 것들도 모두 대법제자들이 스스로 감당하였다. 차가 있는 사람은 차를 내놓고,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내놓고, 기술이 있는 사람은 기술을 제공하여 하나의 정체를 이루었다. 일의 순서와 맡은 책임은 명확하고 분명하게 했다. 누구나 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일의 대소를 가리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어느 부분 어느 세목이든지를 막론하고 수련생들이 모두 묵묵히 와서 했다. 정말 유기적인 일체로 원용하며 누락이 없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생활을 위한 업무가 있어 낮에 직장에 출근했다가 퇴근하면 이곳으로 와서 작품을 정리하고 품목과 수량을 점검하고 분류했으며, 시설물을 설치하고 매고 붙이고 걸었으며, 작품을 배열하고 방을 청소했다. 한 번 시작하면 밤을 새웠다. 그 중 많은 수련생들은 모두 연공장의 보도원이이어서 연공시간이 되면 연공장에 녹음기를 틀고 현수막을 걸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새벽 4시경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서 녹음기를 연공장으로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가족에게 아침식사를 마련해 주고 출근했다. 근처에 집이 있는 일부 노년 수련생은 자원해서 그림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마련해 주기도 했는데 수 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밥과 반찬을 집에서 손수 장만해서 자전거에 실어 밀고 끌고 와서 여러 사람들이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게 했다.

전시판을 만드는데 매우 많은 판자가 필요했다. 당시 운동장에는 적지 않은 베니어판이 쌓여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각종 선전물을 부착해서 사용했다가 폐기한 베니어판이었다. 아쉬운 대로 돈을 내고 그 판들을 그림 전시판으로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자 일부 수련생들이 “그 판들은 낡고 순정하지 못해 더럽다.”고 하는 바람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난처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 때 베니어판을 한 차 가득 실은 화물차가 왔다. 누가 사서 보냈는지 많은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중간에 또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 누구를 기대하거나 기다리지도 않았고 또 돈을 갹출하거나 모으지도 않았는데 4천 위안(70여 만원)의 돈이 든 자루가 한 곳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충족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누가 갖고 온 돈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각종 물품이 필요하거나 부족하게 되면 누가 보태거나 보내온다. 이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일로 되었다.

외지에서 참관하러 온 매우 많은 수련생들은 법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단체로 찍고 조별로도 찍었다. 합장하는 자세를 찍은 후에 다시 가부좌한 모습을 촬영하려고 하였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질서유지를 담당한 수련생이 촬영 중인 사람에게 빨리 가라고 독촉을 했다. 그러자 다른 수련생이 즉시 질서유지 담당자에게 시정해 주었다. “이 수련생이 법상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는 걸 얼마나 기뻐하겠는가. 우리가 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가?”하고 말했다. 수련생들은 모두 이랬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모두 안으로 찾고 서로 일깨워주고 즉시 자신을 바로 잡는다.

안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하는 환경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더욱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원래 창춘시 난링(南嶺) 체육관을 대관하여 수련생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시 준비를 해서 배치를 끝냈다. 그런데 갑자기 체육관에서 임시 신문 발표회가 열리게 되어 부득이 이미 준비해 놓은 전시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작품을 게시하기 위한 설치물을 완성하여 작품을 붙여 놓았으며 또 필요한 선반까지 모두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할 수 없이 여러 수련생들이 합세하여 즉시 설치된 시설물과 게시된 작품들은 철거한 후 장소를 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내주었다. 그들의 행사가 끝나자 수련생들은 밤을 새워 서화전이 예정대로 개최될 수 있도록 다시 설치하고 준비했다. 모순에 직면하면 대법은 대법의 선해 방식이 있고, 일에 부딪치면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진실하고 선량해야 한다. 이것으로 상대방은 매우 감동되어 무상으로 전시실 하나를 더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원래는 세 개 전시실을 대여했었으나 후에 또 무상으로 서화전을 위해 두 개 전시실을 대여 받도록 해 주었다. 이 일은 서화전의 미담으로 되었고 진선인에 따라 수련하는 대법제자의 풍모를 더욱 체현하였던 것이다.

이 업무에 참여했던 수련생들은 당시의 서화전을 회상하게 되면 모두 공동의 감수가 있다. 수련생들의 고생과 그 정신, 사심이 없는 지불, 순수무아(純淨無我)의 심성 등 서로 협조하고 배려한 것들은 모두 매우 높은 경지에 도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의 정체를 이루어 창춘 대법제자가 그때 시기의 ‘정체 수련상태’를 대표하였다고 할 수 있다.

书画展结束后,全体工作人员在运动场合影
서화전이 끝난 후 전체 업무 참여자들이 운동장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2002년 ‘5.13’,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신 지 10주년이 되는 해에, 장춘에서 개최된 두 번의 서화전 전통을 이어가기 위하여 일부 수련생들이 또 성공적으로 ‘창춘 파룬따파 제3기 서화전’을 거행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후 여러 사람들은 전시회에 참여할 작품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밤에 큰 솜이불로 창문을 가리고 밤마다 서둘러 작품을 준비했다. 대법제자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글씨의 한 획 한 획, 한 뜸 한 뜸은 잔혹한 박해 중에서도 사존에 대한 그리움, 대법에 대한 견정한 신념, 정법수련에 대한 금강의 의지가 융합되었다.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것은 당시 사악이 창궐한 환경 속에서 매우 짧은 시간 내에, 결코 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백여 점의 작품이 마련된 것이다. 작품들의 면면은 유화, 수채화, 국화(國畵), 스케치, 조각, 도예, 자수, 편직 작품과 그 외 각종 수공예 제품들이었다. 전시회에 참여한 작품은 대법의 아름다움을 반영한 것이고 사악의 박해를 폭로한 것이며 사람을 더욱 기쁘게 한 것 등등이었는데 그 중에는 진상을 명백히 안 속인의 작품도 있었다.

한 수련생은 회상을 하면서 “그날 내가 그림전시회를 보러 갔을 때 세 개 전시실에 작품들이 가득히 걸려 있던 것이 생각나요. 나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이것은 역사의 견증이고 이것은 피와 생명으로 세운 길이예요. 그 99마리 종이학을 바라보면서 불법 감금된 대법제자들이 얼마나 자유를 갈망하겠는가를 생각 했어요 … . 이때 나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 알 수 없는 동력이 용솟음쳐 나왔어요. 나는 꼭 줄곧 걸어갈 거예요. 이후 얼마나 큰 곤난(困難)을 만나든지를 막론하고 뒷걸음질 치지 않을 것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창춘 대법제자들은 극히 엄혹한 환경 하에서 위축되지 않고 19년간 대법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수련하며 사부님을 바싹 따랐다. 우리는 걸어 지나왔다. 12년 동안 사악의 박해를 타파하고 우리는 걸어 지나왔다. 위대하신 사존님의 60회 생신을 맞이하여 창춘 대법제자들은 사부님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사존께서 우리를 구도하시고 우리를 육성하셨으며 우리에게 일체를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시기를 기다려 기연을 창조하고 다시 창춘 파룬따파 서화전을 열어 대법의 자비와 위덕을 펼쳐 보이고 이 한 단락 우주정법의 휘황찬란함을 견증하겠습니다.

창춘 대법제자들은 사부님을 생각합니다. 사부님께서 일찍 돌아오셔서 고향의 제자들과 한 자리에 다시 함께 하시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기에서 제자들은 사부님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사존께서 생신을 유쾌하게 보내시기를 축원합니다!

(English Translation: http://www.clearwisdom.net/html/articles/2011/5/27/125562.html)

문장발표 : 2011년 5월 1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온고명금(溫故明今)>사부님의 은혜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14/240676.html“파룬따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