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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광의 혜택을 받고, 사부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나는 1994년 법을 얻은 어린 대법제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린 나이에 대법에 들어선 것이 얼마나 신성하고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던가! 매번 내가 법을 얻은 초기, 사부님과 함께 있었던 날을 회상하노라면 언제나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 행복하며 격동적이었고, 마음속으로도 비할 바 없는 따뜻함이 넘쳐 흘렀다! 이것은 정말로 만고의 기연이다!

8살에 사존의 설법을 삼가 듣다

사부님께서는 1994년 내 고향에 오셔서 공을 전하고 설법하셨다. 그해 나는 바로 8살이었고, 삼대가 함께 사는 우리가 사부님의 설법을 삼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어릴 적 나의 천성은 움직이기 좋아하고, 장난이 심해서 그렇게 깊이 사부님의 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강단 위의 사부님께선 높고 크며 웅대하고 자비로우셨다는 느낌뿐이었다.

매일 사부님께서 법을 전한 후 몸소 수련생에게 공을 가르쳐 주셨는데, 나와 여동생은 아주 까불어 시도 때도 없이 강단 위, 아래로 뛰어다녔다. 사부님께서는 많은 인내심으로 앞줄의 수련생의 자세를 바로잡아주셨다. 며칠의 학습반이 끝나 모두 사부님과 함께 강당 문 어귀에서 사진을 찍었고, 나와 여동생은 사부님의 양쪽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사부님께선 자비롭게 우리 둘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지금 회상하노라면, 그것은 사부님께서 용맹정진하라고 우리 둘을 격려해주셨던 것이다. 장래 꼭 시시각각 대법의 요구대로 해서 합격한 대법제자가 되고 절대 속인의 명, 리, 정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로구나!

사부님께선 내 고향을 떠나기 전에, 동반했던 대법제자와 함께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사부님께선 아주 친절하셨고 하나도 으스대지 않으셨으며 제자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하셨다. 나와 여동생은 사부님께 각자의 곡을 연주해드렸고, 사부님께서는 귤 절반을 나에게 주시며 머리를 톡톡 치면서 축복의 말씀을 해주셨다. 사부님께서도 우리에게 연주를 한 곡 해주셨다. 그때 어떤 대법제자는 눈물을 흘렸다. 아마 그들은 사부님께서 심혈을 기울이신 것을 이해했고,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고 사람을 구도하시기 위해 각 지방으로 바쁘게 뛰어다니시는 힘겨움을 보았을 것이다!

연장자들은 부엌에서 밥을 했는데 사부님께서 “됐다. 됐다. 너무 하지 말아라.”고 분부하시기도 했다. 사부님께서는 식사하시는 것도 아주 간단했다. 한 접시의 해산물을 오직 하나만 드셨다. 사부님께서 농담으로 “이 갯가재들이 자꾸 눈앞에서 흔들거린다.”고 말씀하시자 모두들 다 웃었다.

그때, 우리는 다 사부님께서 중생, 세인을 위해 감당하신 모든 것을 깊게 체득하지 못했다. 지금 법공부를 깊이 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도하시기 위해 온 마음을 쓰셨음을 체득하였다. 그때 강당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수련생들은 정말로 제일 행복하고 제일 행운을 가진 이들이었다.

사존은 줄곧 나를 보호해주셨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속인 사회의 큰 염색독을 접촉했고, 또한 나의 법공부 시간은 갈수록 적어졌다. 대학교에 붙은 후 나는 집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학습하게 되자 거의 법공부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대법의 뿌리는 어릴 적부터 깊게 내 마음속에 박혀 있었다. 내 가족들은 아주 확고했다. 그들은 늘 나를 독촉하고 내가 떨어질까 봐 걱정했으며, 매번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에 집에 가게 되면 연장자들은 법공부, 연공하라고 재촉했다. 어른들의 독촉과 도움으로 나는 법공부를 통해 자신을 바로잡고 어떤 때는 나가서 일대일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부했다. 사존께선 줄곧 나를 보호하셨다. 내가 법을 얻어서부터 지금까지 10여 년의 시간, 나의 신체는 줄곧 좋았고 종래로 약을 먹어 본 적도, 병원에 간 적도 없었다.

대학을 마친 후, 연구생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 중 나의 우수한 성적은 또다시 대법의 신기함과 대법제자로서의 영광을 증명했다. 작년에 시험을 준비하던 것을 회상하면 한 걸음 걸을 적마다 순조로웠으며, 모두 신불(神佛)이 도와주었고 매번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곧 풀렸다.

나는 예술을 배우는 학생이므로 다른 학교의 연구생 시험을 친다는 것은 아주 어려웠다. 또한 내가 지원한 학교는 국내에서 가장 좋은 음악 학원이었다. 전공 시험을 치기 전에 나는 어디에서 연습해야 할지를 걱정했다. 시험을 칠 학교 부근의 음악실은 다 예약이 되었고, 설령 예약이 될지라도 연습하려면 가격이 비쌌다. 시험 치기 며칠 전, 나는 기차에서 이 학교에서 시험 보는 여학생을 만났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일부러 인연 있는 사람을 나에게 안배해 주셔서 그녀에게 진상을 듣도록 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여학생은 아주 상쾌하게 나에게 그녀의 음악실에 가서 연습하게 했다. 학교의 것은 아주 좋았으며, 마음대로 가서 연습해도 됨으로 나의 연습하는 시간을 보장해 주었다. 결국 나는 전공 성적은, 앞에서 몇 번째로 뽑혔다.

다음으로는 문화과의 복습이었다. 준비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학습초기에 배웠기에 머리가 어리둥절하고 아주 힘들었다. 매일 아주 적게 잤으며, 몇 번이나 머리가 아팠고 메스꺼워 토할 뻔 했다. 나는 끊임없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읽었으며 속으로 도와달라고 사부님께 빌었다. 이렇게 좀 생각하니 나아졌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감당하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완전히 신사신법을 해내지 못했다. 만약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것을 견지했다면, 내 생각에 성과가 컸을 것이다.

끝내 시험 치는 시간이 됐다. 시험장은 전쟁판과 같아 한 사람의 심리 소질도 시험하는 것이다. 내 마음은 비록 많은 기복은 없었지만 긴장한 감은 조금 있었다. 나는 줄곧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읽었다.

제일 마지막 과목을 칠 때, 3시간 동안 두 세트 시험지의 문제였는데, 너무 긴장하여 머리는 텅 빈 상태가 됐다. 그때의 심정이 얼마나 뒤엉켰는지 모른다. 앞의 세 과목을 다 잘 쳤으나 만약 제일 마지막 과목에서 실패하면 앞의 노력은 다 헛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시험시간의 절반이 지나가고, 1시간 반 밖에 남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나는 두 번째 시험지를 들고 속으로 제자에게 지혜를 계몽해 달라고 사부님께 청했다. 그러자 기적이 나타났다. 머리는 지혜가 열린 것처럼 신속히 다시 두 번째 시험 문제의 답안을 쓰고 나서, 다시 처음 시험지를 들었더니 금방 할 줄 몰랐던 문제를 바로 알게 되었다. 3시간 문제의 양을 1시간으로 다 완성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지혜이다!

성적이 나왔고, 나의 점수는 합격 접수보다 꽤 많이 높았다. 사실 평소에 나보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도 많았으나 그들은 다 합격하지 못했다. 내가 합격한 것은 정말로 사존의 자비로우신 보호를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문장을 써 내 수련생과 함께 노력하고 우리가 함께 정진해서 공을 이루고 원만하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1년 5월 3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온고명금(温故明今)>사부님의 은혜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31/240284.html